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덤을 파고 古都(고도)를 벗기며 괴상한 부호풀기에 일생을 바치는가. 이 시리즈가 황금의 미케네, 熱砂(열사)의 메소포타미아, 人身供養(인신공양)의 잉카 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누구나 가질 이 의문을 풀어보기로 하자.

발굴의 목적은 “인간을 캐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발굴은 휴머니즘이다”는 명제가 성립될 것이다. 지평선 밑에 깔려 잃어버린 세계를 발굴, 그 古代(고대)를 살고 간 인간들의 고뇌와 환희를 같이 느끼자는 게 발굴의 목적인 것이다. 때문에 눈부신 출토품들은 고대를 재구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발굴의 목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출토품을 목표로 삼는 발굴을 우리는 도굴이라 부른다. 고대를 애써 부활시킬 필요가 있는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의 말대로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3점이 겹치는 시간과 공간을 살아간다. 현재가 있게 한 과거, 여기서 미래를 살아가는 교훈을 얻는다는 것, 이것은 역사학의 목표일 뿐 아니라 고고학의 목적이기도 하다. 聖書(성서)의 傳道書(전도서)는 “앞에 있었던 일은 뒤에도 일어나고 과거에 이뤄진 일은 미래에도 성취된다”고 말하고 있다.

발굴은 현대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古代(고대)이집트와 미케네 및 바빌론문명이 빠진 세계사를 생각해보라.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이 3대문명은 지난 200년 동안의 발굴로 명백해진 것이다. 폼페이의 땅 밑에서 1700년 동안 고통을 간직해온 善男善女(선남선녀)들의 한을 풀어주고, 殷(은)의 무덤에서 목 잘린 채 3500년을 헤아려온 순장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는 것, 이것은 발굴이 가진 인간적인 의무인 것이다.

1973년 11월 江原道(강원도) 古汗(고한) 탄광에서 일어난 매몰 사고 때 “성재야 아빠의 비참한 뒤를 따르지 말고 사나이다운 인간이 되어라”―공기가 희박해가는 坑(갱)안에서 죽어가며 이런 유서를 남긴 감독 김종호 씨. 그의 눈물겨운 투쟁은 48시간 뒤의 발굴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발굴과 유적발굴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 아니라 48시간과 수천 년이란 시간의 차이라 하겠다. 한 인간의 고통이 주는 감격이 이럴진대 하물며 수백만의 인간이 수 천년 동안 피땀으로 이룩한 古代(고대)문명을 캐냈을 때의 감동이야….

1972년 日本(일본)에서 반환된 新羅人面瓦(신라인면와)의 우는 듯 웃는 모습. 百濟(백제)여인의 웃음으로 고증된 이 미소는 뭣을 증언하는가. “생각하는 사람”(로댕)보다 10길이나 더 깊은 명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 뒤엔 어떤 시대정신이 숨겨져 있을까.

고고학자들은 항상 출토품의 저쪽을 보려 한다. 발굴은 차가운 돌조각이나 금붙이를 캐내는 게 아니라 따뜻한 인간의 숨결을 느끼자는 데 궁극적인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휴머니즘의 과학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