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두 번 이루어진다. 이것이 슐리만의 인생이었다. 트로이의 발견, 세계고고학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슐리만. 그는 이제 미케네城(성)에 열중한다.

트로이를 점령한 아가멤논 원정군은 미케네로 개선했다. 아가멤논이 10년 동안 트로이 戰線(전선)에 나가있는 사이 그의 신하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妻(처)와 정을 통해왔다. 아가멤논이 개선하자 아이기스토스는 성대한 잔치를 베푼다. 여기서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을 비롯한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을 요절냈다. 8년 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타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여 복수한다.

이것은 스키로스 등 그리스 극작가들이 수없이 우려먹은 소재다. 슐리만은 비극적인 죽음을 한 이 전쟁영웅들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몽유병 환자 같은 확신이었다. “용기는 좋지만 해도 너무하다”고 고깝게 여긴 학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미케네城(성)의 위치는 당시 벌써 확인돼 있었다[그리스 최남단, 크레타섬의 對岸(대안)]. 獅子門(사자문)을 비롯한 장대한 미케네 시대 유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케네城(성)(400×300m)을 주름잡은 왕들의 무덤이었다. 미케네 발굴에서도 슐리만은 고고학자들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트로이 발견에서 일리아드를 안내서로 삼은 것처럼 그는 미케네에선 로마 여행가 파우사니아스의 기행문을 길잡이로 택했다. 슐리만은 항상 고대기록을 신뢰했다.

당대의 일류 고고학자들은 왕릉이 獅子門(사자문) 밖에 묻혀있다고 단정했다. 슐리만은 파우사니아스가 서기 170년에 적은 대로 獅子門 안에서 발굴을 시작. 1876년 8월7일 그는 125명의 인부를 지휘, 왕릉발굴에 착수했다. 어디를 찔러 왕릉을 찾을 것인가.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맨 처음 발굴된 것은 圓形(원형) 아고라, 즉 市場(시장)이었다. 그는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을 상기했다. “그들은 영웅들의 무덤을 아고라에 건설했다.” 슐리만은 이 원형광장 밑에 영웅들이 묻혀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해 12월6일 슐리만은 최초의 무덤을 발견했다. 터널식의 무덤에서 트로이 전쟁영웅들의 해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허한 눈, 잘려버린 코, 학살의 순간 고통을 인내한 듯한 꽉 다문 입, 아직도 살이 붙어있는 팔찌…. 슐리만은 그 나름대로의 학설을 동원, 이들이 아가멤논과 트로이 전쟁영웅들임을 증명하려 했다. “이들은 火葬(화장)됐다. 살해자들은 증거를 없애려 했던 것이다. 시체를 무덤 속에 집어넣고 그들은 황급히 자갈과 흙으로 굴을 메워버렸다.” 그러나 이 시체들이 황금부장품으로 철갑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슐리만은 살해자들이 국민들 앞에선 음모를 감추기 위해 성대한 의식을 베풀었다고 했다.
 
슐리만의 단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가 城(성)안에서 발굴한 다섯 王陵(왕릉)은 트로이 전쟁시대 보다 약 400년 오래된 기원전 16세기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 반도에서 꽃핀 미케네 문명의 제2증거물을 그가 찾아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호머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유럽문명의 母體(모체)를 해명했다는 점이다. 그리스 민족이 그리스 문명을 얻기 1000년 이상 앞서 古代(고대) 이집트에 육박하는 문명이 그리스 반도를 풍미했음을 밝혀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슐리만이 발굴한 황금가면들.

이들 무덤에서 발굴된 막대한 부장품은 투탕카멘王陵(왕릉) 발견까지는 비교할 데가 없었다. “全세계박물관의 소장품을 끌어 모아도 이 보물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슐리만은 으스댔다. 제1王陵(왕릉)에서만 금관 5개와 701개의 금판조각 및 그림이 새겨진 금장식품과 황금 잔들이 나왔다. 이들 보물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금가면의 출토였다.

황금가면

그것은 미케네城(성) 제4의 王陵(왕릉)에서 나타났다. 5具(구)의 피장자를 덮은 진흙을 벗겨내자 머리가 먼저 드러났다. 머리는 공기 중에 노출되자마자 폭삭 사그라졌다. 슐리만은 그러나 진흙사이를 뚫고 빛나는 황금가면을 놓치지 않았다. 피장자 머리에 씌운 가면은 피장자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었다. 인상은 개성적이었다. 슐리만은 미케네城(성)에서 여섯 가면을 발굴했다. 형태식별이 가능한 것은 5점. 그는 가면의 오뚝한 콧날과 위엄 있는 수염에 주목한다. 슐리만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조사하고 당시 미케네인들은 올리브기름을 발랐다고 단정했다. 옮은 소리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이 가면은 그리스 민족의 얼굴이다”라고 못박았다. 미케네 문명의 주인공은 그리스 민족이란 슐리만의 단정은 1950년대 한 英國(영국)건축가에 의해 뒷받침됐고 그때 이 가면은 결정적인 자료였다.

미케네 문명을 꽃피운 것은 어느 민족이었던가. 이 문제는 100년 동안 유럽고고학계의 최대 쟁점이었다. 에게海(해) 크레타섬 일대의 문명은 地中海(지중해)와 北(북)아프리카 일대에 살고 있던 민족에 의해 기원 전 2600년경 개막돼 기원 전 1100년까지 계속됐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이 민족은 패니키아인들과 혈연관계를 가진 종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크레타 문명 말기 그리스 반도 남쪽에서 일어난 크레타的(적)인 미케네 문명의 주인공은? 크레타섬에서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한 英國(영국)고고학자 에반스는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섬에 근거를 둔 해양세력의 육상 식민지였음은 명백하다”고 했다. 주인공은 페니키아 계통 종족이란 주장. 이에 대해 일부학자들은 기원 전 1900년경부터 그리스 반도로 침입하기 시작한 인도―유럽語族(어족)을 미케네 문명 창설그룹으로 지목했다. 南(남)러시아 평원에서 이동해온 이 집단은 현대 그리스 민족의 母體(모체)다.

선문자B로 작성된 점토판. 네스토르 궁전 터에서 출토됐다.

이 의문을 풀어줄 발견이 1939년 그리스 최남단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나바리노 구릉지대에서 이뤄졌다. 美國(미국) 고고학자 칼 브레겐(Carl Blegen) 박사가 네스토르 궁전을 발굴한 것이다. 네스토르는 트로이 원정에 참가한 영웅. 이 궁전에서 그는 도서관을 발견했다. 진흙 판에 글자를 새긴 고문서가 무더기로 출토. 線文字(선문자) B라 불린 점토판은 618장이나 됐지만 이 문자를 해독할 도리가 없었다. 어떤 계통의 언어인지도 알 길이 캄캄. 이 문자의 해독을 위해 세계 언어학자들은 로제타 비문 해독경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였다.

1952년 이 언어의 해독에 성공한 사람은 또 하나의 위대한 문외한이었다. 英國(영국)건축가 마이클 벤트리스(Michael Ventris).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큰 발전을 본 암호 해독기술을 이용했다. 자료만 풍부하면 어떤 암호도 해독할 수 있다는 공식에 따라 점토판 언어의 분석에 10년을 골몰한다. 기호가 나타나는 빈도, 그 기호의 문장 중의 위치―이런 통계학적 분석이 그의 작업이었다. 기호의 인덱스를 만들고 수학공식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결국 해독은 가설의 설정으로 가능했다.
 
벤트리스는 미케네城(성)에서 발굴된 황금가면을 생각한다. 입언저리를 덮은 무성한 수염…. 크레타 일대의 고대문명엔 이런 풍습이 없다. 그러면 미케네의 주인공은 古代(고대)그리스 민족이 아닐까? 슐리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그는 그리스語(어)의 문법체계를 가설로 정하고 점토판 언어를 해독해 보았다. 1952년 가을 그의 논문이 발표됐다. 점토판 언어는 最古(최고)의 그리스語(어)라는 내용이었다. 미케네 종족은 곧 그리스 민족이었고 그들은 先進(선진) 크레타 문명을 흡수, 미케네 문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해묵은 문제에 마침표를 찍은 벤트리스는 해독성공 다음해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34세였다. 그는 슐리만을 70년 뒤에 다시 빛내준 사람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