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과 너무 닮은 영화 ‘국제시장’

2014년 성탄절 날 우리 가족은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영화를 보며 내내 눈물을 흘렸다. “저 영화는 주인공 덕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지난 일을 영화로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덕수가 흥남 철수 때 피난 왔고 월남에 근로자로 간 것 말고는 나의 지난 경험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김포반도 최전방에서 피난을 왔고 월남에는 전투 보병으로 참전한 것이 다를 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의 줄거리가 내 삶과 똑 같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상영 내내 남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1944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했다. 가난한 농부의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지금 한국 나이 일흔 두 살이 됐다. 부모님은 그 어렵고 힘든 격동의 시대를 사시면서 우리 9남매를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피나는 死鬪(사투)를 벌이며 그 시대를 사시다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신 채 1986년 한 많은 세상을 뒤에 두고 떠나셨다. 그런 아버지의 희생과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우리 9남매는 지금까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끼니를 거르는 날이 다반사였지만 부모님은 큰형과 나를 중학교까지 공부를 가르쳤다.

왜 중학교밖에 못 가르쳤느냐는 원망 어린 마음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어려운 난리 통에 자식을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고마운 일인데 시골 깡촌에서 중학교에 보내준 부모님의 그 은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넓은 은혜요 사랑이다.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생활 전선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꿩 새끼도 알에서 깨어나면 어미가 돌보다가 자라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서 어미 곁을 떠나가니 너도 이제 컸으니 아부지 곁을 떠나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친지의 소개로 영등포에 있는 국립농산물 검사소에 들어가 관공서 給仕(급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도 官舍(관사)에서 자취하며 새벽 6시에 일어나 네 개의 사무실을 청소했다. 겨울에도 맨발로 물청소와 유리창을 반짝거리게 닦아 놓았다.

청소년 때라 그런지 추운 줄도 몰랐다. 검사소 소장님과 직원들은 그런 나를 보고 “李 군은 힘이 장사야, 이 추운 날에도 맨발로 일하니 대단한 놈이야!”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일하며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고 즐거웠다.

나는 그때 월급으로 3000원을 받았는데 월급날이면 기분이 하늘을 날 듯이 좋았다.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 때 술과 쇠고기를 사고 내복을 사 들고 고향에 가서 용돈도 드리면 아버지는 동네방네 다니시며 자랑을 하셨다. 그리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우리 아들이 사온 것이라며 꼭 대접을 해드렸다.

그 모습에 어깨가 으쓱해져 한눈팔지 않고 더 열심히 일했다. 취직한 지 1년이 지나자 배운 것도 많고 요령도 생겼다. 급사에서 시험보조원으로 승급됐지만 하는 일은 같았다. 직원 월급이나 물품대금 수령 등 은행업무가 추가됐다. 새로운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1965년 3월에 軍 입대 영장이 나왔다. 사표를 내고 검사소를 떠나는 날 직원들은 큰길까지 따라오면서 제대하면 또 만나 같이 일하자며 눈물로 배웅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그곳에서 성실히 근무하고 떠난 것 같았다. 삼촌이나 큰형님 같은 분들과 근무하면서 관공서의 많은 업무도 배우고 책이나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공부도 했다. 그 덕분인지 세상 돌아가는 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입대, 월남 派兵(파병)을 결심하다

월남에서의 필자

1965년 3월23일 논산훈련소에 입대한 나는 본격적인 훈련에 임했다. 그렇게 훈련받던 어느 날 소문에 우리나라가 올해 중에 전투부대를 월남에 파병한다는 말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 소문을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감정이 온몸을 감전시키는 듯했다.

전쟁영화에서 본 그 짜릿함과 통쾌감 그리고 흥분이 온몸에 전해오며 월남 전선으로 파병돼 가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꼭 가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을 한 것은 反共(반공) 국가인 우리나라를 위한 것도, 월남에 가서 공산주의를 물리쳐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사명감은 아니었다. 오직 내 젊은 기백과 뜨겁게 끓는 혈기가 未知(미지)의 땅 월남 전선으로 내 몸과 생각을 스스로 따라가게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월남파병을 결심한 뒤로 나는 더욱 열심히 교육훈련에 임했다. 무릎과 팔꿈치가 찢어져 피가 나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훈련소에서 교육받을 때 이른바 ‘빽(배경)’이 있는 훈련병은 ‘열외’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훈련을 쉬도록 했다. 고위급 공직자 등 집안에 권력 꽤나 가진 사람들은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서 그런 짓을 밥 먹듯이 했다.

하지만 나는 월남에 갈 생각을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모진 교육도 달게 받았다. 그 결과 사격에서 우리 소대에서 나를 포함한 단 두 명만이 만점을 받았다. 전투에서 敵(적)을 격파하고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의 방법이고 또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본훈련 6주를 마치고 다시 제2훈련소로 가 보병으로서 꼭 받아야 하는 L.M.G 기관총, 그리고 3.5인치 對(대)전차 로켓포 사격 훈련을 모두 받았다. 모든 기본훈련을 받은 나는 같은 해 6월에 춘천 보충대를 거쳐서 전방 제12사단으로 배치돼 다시 교육 중대에 들어갔다. 다른 대원들은 또 교육훈련이 시작된다고 지루해했지만 나는 월남에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들과 달랐다.

분대 전술훈련이나 소대 전술훈련 받을 때는 월남에서 전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자세로 교육훈련에 임했다. 그렇게 교육을 끝내고 自隊(자대) 배치를 기다리는데 후임 교육 신병들이 들어왔다. 중대장은 내 교육 성적이 좋다면서 신병을 교육하는 조교로 근무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근무하는 중에도 파월 소식은 간간이 들려왔다. 그리고 초가을부터 시행된 연대 기동훈련을 하던 중에 사단장님이 오시더니 마이크로 전투사단 파월 지원자는 모이라고 외치셨다. 나는 이때라고 싶어 대원들을 두고 개울을 건너갔다.

논산훈련소 때부터 기다리던 派越(파월)부대 지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으로 제12사단에서 파월부대에 지원한 장병들은 홍천에 있는 맹호사단 1연대 3대대로 배치되고 나는 10중대 화기소대 57 무반동총 1분대에 편성됐다. 부대편성이 완료되자 즉시 파월을 위한 고된 훈련이 시작됐다. 모든 훈련은 실전을 가상한 훈련이라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전투훈련이 계속 이어졌다.

姜在九 중대장의 殺身成仁

하룻밤 잠자는 시간이라야 3시간 정도지만 그것도 눈만 감았다 뜨는 잠이지 제대로 된 잠은 일요일 밤잠이 유일하였다. 모든 병사가 지원한 사람들이라 힘들고 고된 훈련이지만 낙오자는 나오지 않았다. 간혹 가족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부대에 찾아와서 못 가게 애걸복걸했지만, 거기에 넘어가는 병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팀워크가 일사불란하게 잘 다져졌다.

베트남 푸캇기지에서의 필자. 57mm 무반동총의 모습

이렇게 몇 주간의 고된 전투 훈련이 끝나고 출전할 날을 기다리던 중 일정이 지연되자 실탄사격과 수류탄 투척훈련을 全 중대원이 하게 되었다. 우리 중대는 이날 수류탄 투척 훈련에서 강재구 중대장을 잃은 큰 사고가 일어났다. 내 분대원이 잘못 던진 수류탄을 되받아 던지려다 그만 실패하자 중대장은 당신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수많은 중대원의 생명을 구해낸 후 殺身成仁(살신성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본보기로 남기시고 散華(산화)하셨다.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난 故 강재구 중대장의 살신성인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지만 그분이 보여주신 희생정신은 나에게 군인으로서 책임과 희생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를 똑똑하게 보고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 사고가 계기가 되어 우리 제3대대는 그분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참 군인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재구대대’로 命名(명명)되어 맹호사단 제1연대 ‘재구대대’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비록 같이 월남 전선으로 출전해 전투하진 못하지만 잠시나마 위엄 있고 인자한 큰형님 같은 참군인 강재구 대위를 중대장님으로 모셨던 나는 크나큰 자랑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 ‘재구대대’는 슬픔과 아쉬움을 뒤로 남긴 채 강원도 홍천 기지를 떠났다. 그리고 1965년 10월12일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서울 여의도 비행장 드넓은 활주로 위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내외 귀빈들, 수많은 서울시민을 모시고 장엄한 열병과 분열식을 거행하고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부산항을 향해서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뒤로 하고 영등포역에서 열차를 타고 떠났다. 부산까지 가는 큰 역마다 수많은 국민들이 모여서 떠나는 맹호 용사들을 환송해 주는데 우리 부대는 목이 터지라고 軍歌(군가)를 부르며 그분들께 감사인사를 대신해 드렸다.

새벽에 부산에 도착한 우리 부대는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거대한 美 해군 수송함에 乘船(승선)해 하룻밤을 잤다. 이날 이후 일주일간의 긴 항해 끝에 우리 부대는 10월23일 오전에 ‘퀴논’항 근처로 추정되는 모래벌판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역사적인 상륙을 했다. 그리고 차량과 열차를 번갈아 타고 어느 지역에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처음 보는 정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죽을 곳에 찾아왔구나!”

 중대장 명령으로 나지막한 정글 高地(고지)를 올라갔다. 한밤중이 되자 비는 더욱 쏟아지고 모기와 개미떼가 벌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방 산간 계곡에서는 포탄이 날아와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 들려오고 언제 敵(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순간 “이제 내가 죽을 곳에 찾아왔구나!”는 생각이 들며 “여기가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아이고, 하느님. 내가 무슨 죄가 크다고 이런 지옥에 오도록 했나요?”라며 엉뚱하게도 월남에 온 핑계를 보지도 못한 하느님한테 해댔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찾으려 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중에 비는 계속 쏟아지고 高地(고지) 위에서 길을 잃을 우리 소대는 막다른 공포 속에 빠져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중대 본부에서는 고지 아래로 원대 복귀하라는 명령이 무전으로 내려왔다. 터질 것 같은 긴장 속에 60여 명의 소대원의 운명을 책임진 소대장의 비장한 한 마디인 “우리 이렇게 된 이상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자”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다시 소름이 쫙 끼쳐오며 30발 탄창을 장전한 M2 카빈총을 꽉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그래. 이것이 내 운명이구나. 하지만 어떡하랴. 내가 여기에 이렇게 와 있는걸.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 없지. 죽지 않으려면 내 앞에 닥친 이 현실을 뚫고 나가자.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나는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이 계속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자 두려움과 공포감이 다소 가라앉았다. 그리고 고국에서 힘들게 훈련받던 일들과 故 강재구 중대장의 흐릿한 영상이 스쳐 갔다. 그리고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감정이 차분하고 대담해지는 듯했다.

1966년 1월, 베트콩과 첫 전투를 벌이다

이렇게 시작된 월남전선 생활은 국가와 맹호부대, 특히 재구대대의 명예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내 젊은 혈기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한 달이 지나갔다. 드디어 1966년 1월 5일 밤, 베트콩과 첫 전투가 벌어졌다. 그동안은 前線(전선) 적응과 소규모 수색과 매복 작전에서 약간의 적과 우연히 만난 경우는 있었지만, 그날 밤은 중대전술진지 철조망까지 침투하려는 적과의 교전이었다. 수많은 기관총탄과 소총탄이 매서운 소리를 내면서 중대 전술陣地(진지)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비상나팔소리와 함께 全 중대원들은 즉각 진지에 투입되어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화기 소대 60mm 박격포가 조명탄과 포탄을 발사해 적의 진지 침투를 물리쳤다. 

그날 밤 적의 기습을 물리친 요인으로는 全 중대원들의 즉각적인 應戰(응전)과 중대장의 신속한 상황 판단으로 아군 피해 없이 적을 물리친 것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이날의 전투를 시작으로 우리 중대는 점차 작전 반경이 넓어졌고, 방어 중심에서 攻勢(공세) 중심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주일이 지난 13일 밤에는 적의 82mm 박격포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중대 전술진지 안으로 날아와 터지는 적의 박격포탄은 무시무시한 폭음과 흙먼지를 휘날리면서 작열했다.

우리 분대 진지 가까이 날아와 터지는 포탄의 폭음으로 고막이 터지는 듯 그야말로 공포의 한순간이 계속됐다. 중대에 증강되어 온 아군의 81mm 박격포도 적의 예상 박격포 진지를 향해서 포격해댔다. 얼마간의 숨 막히는 포격전이 계속되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포격전이 끝나자 대원들은 그때야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휴~! 이제 끝났나? 나는 살았구나!”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잠자는 벙커로 모여들었다. 이런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나는 더욱 단련되고 용감한 군인이 되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