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감옥여행>

 대충 원고들이 다 들어왔다. 주요한(朱耀翰)은 ‘불놀이’란 시를 써 왔다. 총 82쪽에 해당하는 최초의 순(純) 문예지의 내용이 완성됐다. 표지는 미술을 공부하는 김찬영(金瓚永)이 그렸다. 동경에서 한글로 된 잡지를 인쇄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요코하마에서 조선어 성경을 만들어 수출하는 ‘복음인쇄소’가 있는 걸 발견했다.

김동인은 요코하마 포구 근처 뒷골목 안에 있는 작은 인쇄소를 찾아갔다. 판자를 덧댄 낡고 허름한 주택가 한켠에 영세한 작업장이 있었다. 두 명의 일본인 직공(職工)이 납으로 된 조선어 활자들을 가지고 성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한글을 모르는 일본인들이었다. 김동인은 일본인 직공들에게 한글을 한 자 한 자 설명해 주면서 원판을 만들었다. 모르는 글자를 고르며 판을 만들자니 일본책을 만드는 것보다 몇 배 힘든 작업이었다.

김동인은 조선의 글이 일본 땅에서 당당하게 활자화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1919년 2월 1일 창간호가 나왔다. 동경의 2·8 독립선언일에 맞추어 창조 1000부가 요코하마에서 철도편으로 동경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국의 ‘신문학’이라는 꽃봉오리가 맺혔다. 2월 7일 밤 김동인은 들뜬 기분으로 어서 다음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조선의 독립선언이 있는 날과 조선 문학의 깃발을 자신이 드는 날이었다.  

밤사이 눈이 내려 은세계로 바뀌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김동인이 아침을 먹고 나서려는데 형사 두 명이 찾아왔다. 그 중 도리우치 모자를 쓴 형사가 물었다.
“조선에서 200원을 송금 받은 적이 있나?”
“그렇습니다.”
“어디에 쓸 돈인가?”
“친구끼리 문예지를 발행하기 위한 돈입니다.”
형사의 눈빛이 그를 꿰뚫을 듯 보고 있었다.
“일단 경찰서로 가야 하겠네. 그 돈의 출처와 사용처를 말하면 될 거야.”

김동인은 경찰서로 연행됐다. 수사과의 사무실 한쪽 구석에 조선 여성 한 사람이 조사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조선 유학생 집회에서 간간히 보던 낯익은 여학생이었다. 조사가 시작됐다.
“다시 묻는다. 학생의 신분으로는 맞지 않는 거액이던데 그 용도가 뭐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잡지를 창간할 비용입니다. 요코하마의 인쇄소나 원고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김동인은 잡지창간의 증거들을 제시했다. 경찰은 그것들을 확인한 후 그를 풀어주었다. 그 바람에 그는 2월 8일 있었던 조선 유학생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했다. 동경의 조선유학생들은 2월 12일과 23일에도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김동인은 2월 23일 동경의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다가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체포됐다. 하루 만에 다시 훈방이 됐다.

평양에서 급히 귀국하라는 전보가 왔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김동인은 밤차로 동경을 떠났다. 3월 1일이었다. 기차가 오사카를 지날 때에 지나가는 소년에게 신문을 사서 훑어보았다. 조선에서 시위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시모노세키에서 연락선에 오를 때와 부산항구에 내릴 때 형사들의 경계가 심해진 걸 느꼈다. 평양을 가는 기차를 타고서야 비로소 사건의 윤곽을 알게 됐다.

전날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은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에 모여서 독립을 선언했다. 파고다 공원에서는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태극기를 게양하고 시위에 돌입했다. 시민들이 합류해서 일부는 창덕궁으로 일부는 경북궁으로 다른 일부는 고종의 빈전(殯殿)이 있는 덕수궁으로 갔다. 군중들은 구리개(오늘날의 을지로)를 거쳐 일본 상인들의 집결지인 진고개(오늘날의 충무로)를 거쳐 남산 기슭에 있는 총독부로 향했다. 시기를 맞추어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함흥등지에서 시위가 있었고 점차로 전국에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다. 세상이 바뀐 것 같았다. 이전 같으면 일본인 차장에게 벌벌 떨 시골 노인이 호령을 하는 광경이었다. 기차가 경성을 지나면서 여러 명의 승객들이 기차에 올랐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왔다가 3·1시위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에게서 비교적 정확한 얘기를 들었다.

그가 도착한 3월의 평양 거리는 춥고 쓸쓸했다. 어머니는 그가 시위에 참가할까봐 위독하다고 가짜 전보를 보냈었다. 그는 집에 묵으면서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모란봉에 이른 아침마다 산책을 나왔다. 어느덧 봄이 왔다. 들판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멀리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은 곳에는 산들이 검은색과 자주색으로 겹겹이 둘러 있었다.

그 산봉우리 위로 아침노을이 붉게 물들면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남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즐겨 걸었다. 간간이 나무꾼이나 다니는, 길 없는 골짜기나 가파른 벼랑길을 선택했다. 가다가 지치면 피곤한 다리를 내어던지고 앉았다. 건너편으로 산중턱이 눈에 들어왔다. 청류벽에서 모란봉까지는 바위들이 거의 직각을 이루고 서 있었다. 모란봉을 지나서부터는 점차 경사가 완만해지고 밑으로는 잔디밭이었다. 멀리 대동강물이 아침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는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순례자가 되어 예술의 길로 정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문학은 그의 구원이었다. 황막한 조선의 벌판에 예술의 아름다운 씨를 뿌리고 싶었다. 문학은 그가 하늘에서 받은 명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창조2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시위가 있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국내에서는 각 도(道)의 대표가 회동하여 한성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정부의 각원(閣員)을 발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대한국민의회를 조직하고 역시 정부각료를 발표했다.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임시 의정원 회의를 개최하여 망명정부를 조직하고 각료명단을 발표했다. 시위는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