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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의 메시아   

1931년 늦가을이다. 김동인(金東仁)은 평양에서 올라와 경성의 태평여관에 묵으면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한 가족의 가장(家長)이었다. 글이 밥이 되는 세상은 아니었다. 가난이 닥쳐왔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글 쓰는 재주밖에 없는 그의 마지막 생명줄은 원고료밖에 없었다. 돈이 있어야만 가족들의 입에 밥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평양의 남은 자투리땅에 저당권을 설정하고 돈을 빌려 옷감을 사뒀지만 가격이 폭락해서 손해를 보았다. 그는 사업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동아일보에 근무하던 이광수(李光洙)가 김동인에게 신춘문예 현상모집 심사를 맡겼다. 김동인은 여관방 앉은뱅이책상 위에 400편이 넘는 응모 작품을 쌓아놓고 심사했다. 그해 연말이 가까울 때였다. 김동인은 그동안 열편의 창작과 4, 5편의 수필을 썼다. 그 원고료를 받아 아이들의 겨울옷을 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된 이광수가 이번에는 그에게 연재소설을 청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문소설이라는 것은 독자에게 신문을 팔기 위하여 연재하는 것이니까 재미있게 써야 해.”

이미 여러 소설가들이 수입을 얻는 방편으로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고 있었다. 당시 글을 발표할 곳은 주로 신문이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그 대표자였고, 중외일보는 중앙일보로 이름을 바꾸었다. 매일신보가 동아일보와 대항하여 꾸준히 문학작품을 싣는 신문이었다. 신문은 대체로 창작소설을 싣지 않았다. 소설분야는 잡지인 ‘동광(東光)’이나 ‘개벽(開闢)’이 바뀐 잡지 ‘별건곤(別乾坤)’에 간신히 지면 몇 페이지가 창작을 위해 제공될 뿐이었다.

그는 신문사에서 원고청탁이 와도 거절했었다. 주요한(朱耀翰)이 동아일보 편집국장대리로 있을 때였다. 주요한은 몇 번 동아일보에 소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김동인은 단편 창작을 몇 개 써주고 연재소설에는 응하지 않았다. 대중의 입맛을 맞춘다는 건 그의 예술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 대중소설을 쓰는 것은 자기를 굽히고 스스로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정조(貞操)를 파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순수한 조선의 문학을 개척해야 하겠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용강 온천으로 갔다. 그는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조선에 대한 인식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의 내면에서 조선의 메시아 대원군(大院君)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대원군의 영혼은 작가에게 그가 이루고 싶었던 조선과 그의 엘리트 동지들의 활동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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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민씨(閔氏) 일가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조선은 스스로를 보호할 군사력이 없었다. 어린애 같은 나약한 존재였다. 태풍같이 불어오는 외국세력을 대할 정치적 감각도 없었다. 조정은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약했다. 지방관들은 백성들을 착취하기에만 급급했다. 모든 건 상대적이었다. 백성들 역시 조정에 대해 마음이 멀어져 있었다. 누가 임금이 되건 백성들은 관심이 없었다. 북(北)에서는 러시아 세력이 남(南)에서는 일본세력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해안을 통해 들어온 미국과 프랑스세력은 이미 여러 이권(利權)을 독차지했다. 그런 속에서 조선의 소수 엘리트들은 외국세력의 야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조선 백성들은 어린양이었다. 뒤늦었지만 메시아로 나타난 대원군(大院君)의 통치에 의해 나날이 새로워가는 조선이었다. 고종(高宗)도 무능한 임금이 아니었다. 이등박문(伊藤博文)에 맞서는 과단성 있는 정치가였다. 목표는 ‘대조선(大朝鮮) 건설’이었다. 그들은 조선인만의 강대한 나라를 꿈꾸었다. 당당히 맞서 외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길러야 했다. 풍부한 재정과 비옥한 강토, 민중들에게  활기와 기쁨과 평화를 주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대원군의 쇄국(鎖國)정책은 그런 힘을 배양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문을 닫아 건 기간이었다. 대동강 연안에서 들어오는 미국 배를 불태워버리고 강화에 온 프랑스 함대를 퇴각시켰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엘리트 세력이 깨달은 게 있었다. 외국 군대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군대가 외국의 군대에 비해 많이 뒤떨어졌다. 무기와 전술 모두 뒤졌다. 그들은 뒤떨어진 군대로 장래 외국과 상대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군사력을 키워야 했다.

조선의 엘리트 세력은 소수의 무관(武官)출신들을 은밀히 독일로 보냈다. 그들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다. 그들은 유럽에서 놀랄만한 외국의 문명을 흡수하고 있었다. 조선 선각자들의 자식들로 비밀단체가 조직됐다. 외부적으로는 합숙을 하는 사설교육기관으로 위장했고 지도자와 조직원은 선생과 제자의 관계로 신분을 위장했다. 핵심 조직원들은 스무 명 가량의 똑똑한 청년이었다. 조직의 안전을 위해 조직원의 신상은 모두 비밀이었다. 그들이 신봉하는 사상체계는 이미 전통적인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과는 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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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閔氏) 정권은 무능하고 탐관오리의 부패가 심했다. 넓게 보지를 못하고 자신들의 집권유지에만 급급했다.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외세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비밀조직은 그들의 상징적인 지도자로 대원군을 추대했다. 빈곤하게 살아본 대원군은 자신에게 철저한 인물이었다. 비단옷을 피하고 무명옷을 입었다. 기름진 반찬이 상(床)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권력을 틀어쥔 최고의 위치에 있어도 그는 사소한 것 까지 종을 시키지 않고 직접 했었다. 지도자의 그런 행동이 백성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조직원들은 여러 가지 공작임무를 수행했다. 권력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테러와 첩보활동이 병행됐다. 그들은 각자 정보원이 되어 토색(討索)하는 관리, 백성의 원성, 궁중의 사치를 보고 하나하나 면밀하게 기록해 나갔다. 그들 각자는 선전선동의 기능도 담당했다.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유언비어가 퍼지도록 하기도 하고 직접 변장을 하고 시장에 나가 소문을 냈다. 신분을 위장하고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조직원 중 미남 청년과 여자조직원 인화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부패된 정권의 핵심을 지키는 또 다른 인물과의 대립 갈등구조로 독자들을 재미 속으로 깊이 함몰시키는 내용들을 끝없이 긴박하게 연결시킨다는 구조였다.

비밀조직원들은 무당이나 점쟁이들에게 은근히 권력주변의 정보를 흘렸다. 무당이나 판수들은 그걸 여염집에 퍼뜨렸다. 기생들은 양반층에 그걸 전했다. 그렇게 퍼진 얘기들은 다시 양반집 하인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온 장안의 하류층에 퍼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장안에 퍼진 얘기들은 장꾼들의 귀로 들어가 조선팔도에 퍼졌다. 참빗장수는 전라도로, 중은 강원도로, 선비는 충청도로, 벼슬아치는 경상도로, 기생은 평안도로, 각종 직업과 계급의 사람들을 다리삼아 그들이 노리는 의도적인 소문들이 조선 전역에 퍼졌다.

정치공작에 의해 어느 날 대원군은 권좌에서 떨어진다. 내려쌓인 눈이 운현궁(雲峴宮)의 기와에 두툼하게 덮여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대원군이 사랑에서 묵묵히 난초를 치고 있다. 비밀조직원들은 불만을 가진 구식군대의 병사들 사이에 끼어들어 혁명을 일으켰다. 그게 임오군란(壬午軍亂)이다. 비밀조직원들은 하나하나 흩어져 군인들 선봉이 되어 나아갈 곳을 암시하고 습격할 곳을 말했다. 그들은 혁명을 성공시키고 대원군을 다시 지도자로 추대해 앉혔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침입한 일본과 러시아세력이 너무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외국의 속임수에 넘어간 민씨(閔氏)정권은 너무 많이 문을 열어주었다. 외국공사의 세력은 정부를 움직이고 군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통상을 요구하던 외세가 내정까지 간섭했다. 사랑하는 나라 사랑하는 백성이 낭떠러지에 섰다. 나라의 창고에는 재정(財政)이 없었다. 군인은 총을 멜 줄 몰랐다. 장교는 말을 탈 줄 몰랐다. 관리는 백성을 보호할 줄 몰랐다.  군대는 정식훈련을 못 받았다. 이런 조선은 존재할 수 없었다. 나라의 힘만 있었다면 외국이 어떤 문제를 들고 와도 당당했을 텐데 약했기 때문에 당했다. 일본은 조선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일본의 태도가 강한 것은 조선이 무력함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나라의 파산이었다. 서양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다시 세우기는 너무 늦었다.  나라가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는 비밀조직원들의 심정은 이랬다.

‘인젠 다시 가망 없이 거꾸러진 조선 거기서 이제 살아가야 갈 고통과 그 삶의 무의미’
그 말은 비밀조직원 모두 자결을 하게 된 동기였다. 그들이 집단 자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김동인은 ‘젊은 그들’의 일 회분을 써서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로 보냈다. 그게 발표되기도 전에 동아일보는 정간(停刊)처분을 당해 버렸다. 편집국장인 이광수로부터 위로의 편지가 왔다. 김동인은 차라리 잘 됐다고 체념했다. 그는 이제 절대 빈곤 속에 있었다. 담배 값까지 끊어진 곤궁한 처지였다. 어디서든지 글 주문만 들어오면 응하고 싶었다. 평양의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대동강의 쪽배 위에서 생활하면서 신경증과 우울증 증세가 생겼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불면증은 계속됐다. 돈은 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신경증과 불면이라는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절실했다.

정간 처분을 받았던 동아일보는 얼마 후 다시 나기 시작했다. 김동인이 ‘젊은 그들’로 붙인 제목의 소설이 다시 연재되기 시작했다. ‘젊은 그들’은 연재한 회수 300여 회로 홍명희(洪命憙)의 ‘임꺽정(林巨正)’에 이은 장편이었다. 일본에 빼앗겼던 대중들의 영혼을 다시 일으키면서 그는 단번에 최고의 인기작가로 부상(浮上)했다. 독자들로부터 편지가 쏟아졌다. 그가 평양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동아일보의 소설 ‘젊은 그들’을 열심히 읽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중의 마음에 불이 붙고 있었다. 조선의 정체성에 관한 새로운 인식들이 심어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