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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닮았다

1931년 첫눈이 내리던 연말의 어느 날이다. 시인 김억(金億)이 김동인(金東仁)을 찾아왔다. 사업을 하다가 집까지 날린 김억(金億)은 가족을 모두 시골집으로 보내고 낙원동의 한 여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시인의 끼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 한 여인이 생겼다. 진남포에 있는 초등학교 여선생이었다. 둘이 잠시 사귀면서 여관에 함께 있었다. 그도 가족이 있고 여선생도 헤어진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는 여자였다. 사귀던 그들 남녀가 무슨 일인지 다투고 헤어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김억(金億)을 측은하게 여긴 김동인은 여자가 싸우고 진남포로 내려갔을 때 직접 거기까지 가서 여자를 달래기도 했다. 김억의 품에 도로 가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말이 많고 억센 여자였다. 그 여자의 어디를 보고 시인이 반했을까 고개를 갸웃했었다. 다시 혼자가 된 김억은 에스페란토 강습과 시의 교정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주요한(朱耀翰)이 주간(主幹)을 하는 잡지 ‘동광(東光)’에 나오는 시(詩)를 봐주고 50전씩 받고 있었다. 잡지사에서 우표를 동봉하여 시를 보내면 그 시를 고쳐 주는 일이었다. 김억은 그 우표까지 팔아 술값과 담배 값에 사용했다. 잡지사에서는 김억을 ‘시(詩) 땜장이’라고 불렀다. 김동인을 찾아온 김억은 흥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돈이 있을 때는 염상섭(廉想涉)에게 술 깨나 샀어요. 인간적인 도리로 치면 염상섭도 형편이 나아졌으면 나한테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다 망하고 이렇게 처참하게 있으면 신세를 갚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어요. 글쎄 제가 망한 걸 소재로 소설을 써서 발표했지 뭡니까? 그러니 복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억(金億)은 성질이 단순해서 한번 누구를 밉게 보면 바꿀 줄을 몰랐다. 그는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오산학교 선생을 할 때 가르친 학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춘원 이광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이광수가 편집국장으로 있는 동아일보에는 시를 보내지 않았다. 김동인이 중간에 서서 이광수에게 김억의 시를 좀 사주라고 권했다.  

“좋은 원고면 얼마든지 사지요.”

이광수의 대답이었다. 이광수는 동아일보 가정란(家庭欄)에 명부열전(名婦列傳)을 연재하기로 했다. 그리고 김억(金億)보고 원고를 쓰라고 했다. 김억은 안 쓰겠다고 버텼다. 김동인은 중간에서 김억을 달래 원고를 쓰게 하고 그걸 동아일보의 이광수(李光洙)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몇 회 원고가 계속되더니 연재가 중단됐다. 김동인이 동아일보에 물어보니 원고가 오지 않아서 중단했다는 대답이었다. 김동인이 김억에게 원고를 왜 안 쓰느냐고 물었다. 그는 안 쓴 게 아니라 동아일보에서 원고를 받으러 오지 않아서 그랬다고 했다. 자존심의 대결이었다. 그런 김억이 여교사와 사귀면서 지낼 때의 상황을 염상섭이 보고 그만의 차근차근한 필치로 소설화 한 것이다. 그걸 본 김억이 화가 나서 김동인에게 복수를 부탁하러 온 것이다.

“글쎄…”
김동인은 안서(岸曙)의 말을 그냥 받아주는 척 듣고 있었다.
“여기 나와 있어요. 대책을 강구해 주세요.”
김억은 가지고 온 잡지 한 권을 김동인 앞에 밀어놓았다.

다음날 김동인은 고향에 가기 위해 경성역으로 갔다. 김억은 역까지 따라 나와서 글 복수를 부탁했다. 김동인이 평양 집으로 돌아왔다. 김동인은 건넌방의 자신의 작업실에 가서 앉았다. 불면증은 계속됐다. 하룻밤을 꼬박 기차를 타고 왔는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갑자기 염상섭의 생활이 머리에 떠올랐다. 염상섭은 나이 서른을 넘겨 결혼했다. 그는 서울 아현동에 셋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김동인은 언젠가 김억과 함께 신혼의 염상섭의 집을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염상섭의 삶이 아늑해 보였다. 바로 근처에 이은상(李殷相)이 살고 있었다. 이은상을 통해 자연히 염상섭의 신혼생활을 들을 수 있었다. 염상섭은 아내와 부부싸움이 잦다고 했다. 아내를 때리기도 하는 것 같았다. 이은상이 전하는 부부싸움은 늦게 결혼한 남자가 흔히 가지는 의처증이라고 짐작했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은 의처증(疑妻症)을 모티브로 해서 이야기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 무대에 염상섭을 닮은 회사원인 노총각 M이 나타났다. 그가 늦게 결혼을 했다. 서른두 살이 넘은 나이였다. 십대면 벌써 색시를 맞이하는 풍습에 비추어 이건 늦어도 보통 늦은 결혼이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지독한 성병인 매독 때문이었다. 그는 성욕(性慾)이 강했다. 어쩌다 돈만 생기면 바로 싸구려 창녀에게 달려갔었다. 성병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 치료 중에도 그는 또 여자에게 달려갔다. 고환염이 오래되자 그는 생식능력이 상실됐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일 년쯤 지나자 그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가 아내를 못살게 굴었다. 때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았다. 그의 생식능력이 없는 것을 아는 의사는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사실대로 말해주면 아내의 간통이 드러나고 그 가정은 깨지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창녀촌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어 성(性) 불능이 된 그가 결혼한 것 자체도 사기로 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 그는 자신과 닮은 곳이 있나 알아보기 위해 아들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발가락이 닮은 것 같았다. 김동인(金東仁)은 그런 대충의 구성에 살을 붙여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염상섭이 그것을 읽고 대번에 자기를 모델로 했다며 분노했다. 염상섭은 그 소설에 대한 반박문을 써서 잡지 ‘동광(東光)’에 가져다주었다. 잡지의 주간인 주요한(朱耀翰)이 그 글을 발표하지 않고 보류했다. 그게 문단의 화제가 됐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