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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동 작은집

어느 날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김동인(金東仁)은 아내를 데리고 숭삼동(崇三洞)에 있는 이광수(李光洙)의 집으로 찾아갔다. 전차 종점 근처에 있는 탄탄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개업의(開業醫) 허영숙(許英肅)과 함께 사는 이광수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김동인이 이광수의 처 허영숙에게 재혼한 아내를 소개했다.
“형수님 제가 열한 살 차이가 나는 이 사람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름이 김경애(金瓊愛)라고 합니다. 잘 봐주십시오.”
허영숙은 얌전하고 침착해 보이는 김동인의 아내를 보면서 말했다.
“교복만 입히면 아직도 학생이라고 할 정도로 앳되 보이네요.”

김경애는 이광수 부부에게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허영숙은 김동인이 이빨이 빠져나가 볼이 움푹 팬 걸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평양의 부잣집 아들이 문학지를 한다면서 물려받은 재산을 다 써버린 것이다. 영화사업도 수리(水利)사업도 다 실패했다. 문단에 있는 사람들 치고 그에게 술이나 밥을 얻어먹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이제 돈이 떨어지고 기가 푹 죽어 있는 것이다. 양복만 입던 멋쟁이가 후줄근한 한복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옆에 있는 그의 재혼한 아내마저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허영숙은 부엌으로 가서 저녁밥상을 차렸다. 김동인은 평양의 집이 빚 때문에 없어진 걸 간단히 얘기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 이광수가 물었다.
“그래 경성에서 거처할 곳은 정했나?”
“집값이 싼 서대문 행촌동을 다녀봤는데 언덕배기에 작은 집 한 채를 보기는 봤습니다. 그런데 워낙 돈이 없어서요. 형님께서 신문사에 잘 얘기하셔서 원고료를 미리 받을 방법이 없을까요?”
이광수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김성수(金性洙) 사장에게 말을 해서 원고료를 선불로 달라고 해보겠소. 아우님도 이제는 새 부인을 얻었으니 마음을 잡고 문학에 전념하시오. 작가가 구원받는 길은 글을 쓰는 것밖에 없을 테니…”

옆에 있던 허영숙도 김경애의 손을 잡고 김동인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그 좋은 재주로 글 쓰는 일에만 매달리세요.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부인을 고생시키면 안 되잖아요?”
“알겠습니다. 형수님.”
김동인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허영숙은 김동인에게 몰래 수면제 ‘포수 클로랄’을 건네주면서 덧붙였다.
“제발 복용량을 줄이세요. 약보다는 차라리 술을 드시고 주무시든가. 가장 좋은 방법은 꽃 같은 신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자는 거예요.”
김동인이 간곡하게 부탁한 약이었다. 김동인은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잘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날 밤 김동인 내외가 여관으로 돌아가고 이광수 부부는 심각하게 걱정을 했다.
“본부인은 도망가고 저렇게 어린 새 신부를 얻었으니 저 양반도 이제는 정신을 차리겠죠. 아예 원고를 언제까지 몇 매를 쓰겠다, 하는 각서라도 받으시고 신문사 사장께 말씀드려 내외가 살 수 있는 집 한 채는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허영숙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요. 저 사람이 우리 조선 문단에 공헌한 게 큰데 말이오. 내가 사장께 말씀드려 보겠소.”

며칠 후 이광수는 김동인을 신문사로 불러 다음번 연재소설의 원고료를 선불로 건네주었다. 그 돈으로 김동인은 서대문 행촌동 210의 96번지에 있는 작은 기와집을 한 채를 월부로 계약했다.

김동인(金東仁)은 평양으로 내려가 이삿짐을 꾸렸다. 살림은 빅터 유성기와 레코드, 싱거 재봉틀이 전부였다. 김동인이 행촌동으로 가족을 데리고 올라왔다. 경성은 역시 뭔가 달랐다. 어느 날 김동인은 딸 옥환(玉煥)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잠시 시내를 다녀왔다. 그 사이 집은 아내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던 김동인의 눈에 대문간에 새로 놓인 쓰레기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쓰레기통이 웬 거야?”
김동인이 마당에 들어서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경성부청 공무원이 와서 들여놓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값이 2원인데 제가 1원70전밖에 없어서 그것만 줬어요. 그 공무원에게 저녁 다섯 시에 나머지 돈을 받으러 오라고 했는데…”

아내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김동인은 의아했다. 경성부청에서 쓰레기통 장사를 한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쓰레기통은 아무래도 1원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걸 두 배 값으로 받는 것이다. 관청의 일이란 이쪽에서 신청을 하고 독촉을 해도 여러 날이 걸리는데 당일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관청에서 외상까지 남겨놓았다는 소리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