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행촌동 작은집

“도대체 경성부청의 공무원이 와서 어떻게 했는데?”
김동인이 구체적으로 물었다. 경성부청은 지금의 서울시청을 의미했다.
“오전 10시쯤 웬 양복쟁이가 하나 와서는 자기는 경성부 위생계 직원인데 쓰레기통을 하나 설치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주인양반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니까 당신이 돌아올 시간을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쯤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가더니 한 시간쯤 후에 그 사람이 인부에게 작은 쓰레기통 하나를 들려가지고 다시 왔어요.”
“그래서?”
“그 공무원이 하는 말이 쓰레기통은 경성부의 위생을 위해서 관청의 명령으로 경성의 부민들이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것이지 집주인이 마음대로 하고 안하고의 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관청의 위생명령을 어기면 과태료에 처해진다고 하면서 쓰레기통 값으로 2원을 내라고 했어요.”

관청의 명령이라면 질겁을 하던 시절이었다. 김동인의 아내는 1원70전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30전은 저녁 때 주인이 돌아오면 받으러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경성부청에서 부민(府民)에게 폭리를 취할 리도 없고 더구나 위협을 하면서 억지로 그렇게 할 리가 없어. 사기가 틀림 없구만, 원 세상에 그런데 걸리다니.”
김동인이 아내를 나무랐다. 그의 아내는 펄펄 뛰면서 말했다.  
“저녁 때 그 남자가 나머지 30전을 받으러 오면 잡아서 경찰에 넘깁시다.”
“올 리가 있겠어?”
“온댔어요.”

김동인이 저녁 무렵 건넌방 책상 위에서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침에 다녀갔다는 그 남자 같았다.
“노형 경성부에서 나왔소?”
“네, 위생계에서…”
남자는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었다. 김동인은 다짜고짜 방에서 나가 그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신분증 좀 봅시다.”
“없습니다.”

그때 부엌에 있던 아내가 나오면서 말했다.
“아까 아침에 왔던 그 사람이 아닌데?”
사기단의 다른 놈인 것 같았다.
“이놈도 한 패니까 마찬가지야. 그래 할 짓이 없어 경성부에서 쓰레기통 장사한다면서 이십 전도 못 되는 물건을 2원에 팔아? 경찰서로 갑시다.”
김동인이 잡아끌었다.
“아니 2원이라뇨?”
잡힌 남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 쓰레기통은 1원20전에 제가 팔았습니다. 그 남자가 이 집에서 30전을 더 받아오라기에 왔습니다. 나쁜 놈이네요. 제가 바로 잡아올 테니까 기다리십쇼.”

그 남자는 그렇게 김동인을 깜빡 속이고 줄행랑을 쳤다.
당시 행촌동은 도심 외곽의 새로 만들어진 동네였다. 새집들이 지어지니까 쓰레기통 장사들이 흔했다. 그들은 모두 근엄한 얼굴로 손에는 수첩을 들고 공무원 행세를 하며 쓰레기통을 사라고 겁을 주고 다녔다. 관리의 명령이라면 꼼짝 못하던 시절의 한 단면이었다. 두 달 후 어느 날 그 사기꾼 쓰레기통 장사가 김동인의 손에 우연히 잡혔다.
“속여서 미안합니다.”
그 남자가 사과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속여?”
“속였다기보다는 영업상 거짓말을 조금 했습니다.”
“영업상? 거짓말을?”
“네 용서해 주십시오.”

김동인은 그 말을 들은 후 차마 경찰서까지 끌고 갈 생각이 없어졌다. 그는 슬며시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을 놓아주면서 말했다.
“영업상 과장하는 건 이해할 수 있고 그렇지만 경성부의 일본인 관리를 빙자해서 서민들에게 협박을 하는 건 좋지 못한 일이요.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그 일은 ‘사기사(詐欺師)’라는 소설로 태어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