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나는 폭로한다』

정직한 돈벌이의 흐뭇함 속에서…

석달간에 걸친 히로뽕 지하제국(地下帝國) 탐험을 마무리할 때가 이제 온 것 같다. 약 3년간이 준비작업을 거친 탐험이었지만 지하제국의 출구(出口)에 서니 아쉬움이 남는다. 입구(入口)에서 량학승(梁學承)씨란 가이드를 만났던 것처럼 출구에서도 나는 전승찬(田昇贊)씨(31·서울시 종로구 송월동 17)라는 동행인을 만났다. 그는 4년간을 히로뽕 제국과 교도소에서 보내고 이제 막 손을 씻은 사람이었다. 그는 출구를 나서 나와 헤어질 때 봉투를 하나 내놓았다. 그 속에는 글이 들어 있었다. 그 내용은 석달 간의 탐험으로서도 아쉬움을 느꼈던 나의 부족한 취재를 보충할 만한 것이었기에 부록처럼 여기에 덧붙여 놓기도 했다.

저는 히로뽕 밀매를 하다가 검거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지금은 출소하여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부정과 부패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부정·부패이며, 제가 옛날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기도 합니다. 저는 국가관이 남달리 투철하여 이런 폭로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한때 히로뽕 거래로 수백, 수천만 원을 손쉽게 굴린 적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새벽 3시에 집을 나와 서울의 어느 수산물 도매 시장으로 달려가 어류 중매업으로 하루하루를 몸으로 때우며 2백만 원 단간 셋방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에라도 히로뽕 밀매로 호화판 살림을 차릴 수 있고, 사실 그런 유혹도 많습니다만 그때마다 어머니, 아내, 그리고 여섯 살 난 딸의 얼굴이 떠올라 그런 꾐을 뿌리치게 합니다. 저는 비로소 정직하고 착한 생활과 그렇게 벌어들이는 적은 돈의 값어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저의 가슴에는 불덩어리처럼,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칩니다. 그것을 억누르고 삭이자니까 가슴속에 멍이 들고 홧병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의 울분은 물론 히로뽕꾼들과 그들의 후견인 내지 공모자 역할을 맡고 있는 악덕 수사관들에 대한 것입니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일터로 나갈 때마다 저는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사는 뽕꾼들을 생각하고, 토큰만 믿고 분주하게 시내를 오갈 때마다 수퍼 살롱을 굴리는 그들을 떠올리고, 정직한 돈벌이의 흐뭇함과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저들의 싸늘한 비웃음을 상상합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 생활과 하루하루를 벽돌처럼 쌓아가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을 다 경험한 저이기에 뽕꾼들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뼈에 사무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뽕꾼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대역죄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량한 국민들의 성실한 삶을 비웃고 건강한 윤리 기준을 깨뜨리는 자들이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저가 뽕꾼들과 비호세력을 폭로하려는 것은 이러한 소박한 분노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꼭 없어야 할 사람 등 세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꼭 없어야 할 사람이 마약 감시원 자리를 지키고 있다거나 겉으로는 사장 행세를 하며 뒤로는 히로뽕 밀매를 하고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꼭 없어져야 할 사람은 꼭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저에게는 사회 정의라면 사회 정의일 것입니다.

정보원 생활로 배운 히로뽕

보사부 마약 감시원 오○○씨와 알게된 계기는 1977년 초 대마초 사건이었다. 나는 S전문대학생 10여명과 함께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보사부 서울 마약 감시분소에 끌려가 심한 문초를 열흘간 받았다. 그 때 나를 취조한 사람이 오씨였다. 나는 끝까지 대마초 흡연 사실이 없다고 진술, 무혐의로 풀려났다. 나는 심한 문초의 후유증으로 20일간 집에서 앓아 누웠다. 얼마 뒤 오씨는 내가 입이 무거워서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정보원으로 삼았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히로뽕 수사에 협조하거나 수사 정보를 제공했다.

79년 1월 오씨와 나는 수사 공작에 착수했다. 평소 안면이 있던 김익규라는 사람에게 접근, 『미국 사람이 히로뽕을 사려고 하는데 선을 달아 달라』고 했다. 김씨는 승낙했고 롯데 호텔 커피숍에서 내가 샘플을 건네 받기로 했다. 그 커피숍에 김씨는 차 모 형사를 파수꾼으로 데리고 와 같이 앉아 있었다. 나는 미국인을 데리고 갔는데 그는 물론 밀매꾼으로 위장한 미군 수사관이었다. 차 형사는 당시 검찰에 파견 나가 있던 마약 수사의 베테랑이었다. 김씨는 차씨를 데리고 와 멀리 떨어져서 미국인과 미국인이 타고 온 파란 포니차를 확인하게 했다. 혹시 미국인이 수사 요원이나 정보원이 아닌 가를 친한 마약수사관을 통해 알아보게 하는 것으로서 뽕꾼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
차 형사는 「함정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안심한 김씨는 장소를 명동 외교 다방 앞으로 옮겨 그날 오후 3시께 미국인이 몰고 온 포니 안에서 나에게 2.5g의 히로뽕 샘플을 전해주었다.

나는 다시 이 샘플을 그날 오후 5시 오씨에게 주었다. 김씨와의 약속에 따라 나는 며칠 뒤 부산으로 내려갔다. 보사부 마약 감시원들과 미군 CID수사관들도 동행했다. 부산역 앞 아리랑 호텔에 투숙한 나는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전화 번호를 대주면서 천일남씨를 찾아가라고 했다. 천씨는 당감동 삼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1월 21일 오후 3시께 천씨는 영어 통역을 한 사람 데리고 나와 함께 아리랑 호텔로 가 밀매꾼으로 위장한 미국인(그의 이름은 스프링필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을 만났다. 미국인이 히로뽕 대금조로 현금 2천7백만 원을 갖고 있음도 확인했다.

호텔을 나온 나는 천씨를 따라 괴정동으로 갔다. 큰 단독주택으로 천씨는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노○○씨 집이었다. 노씨는 집에 있었다. 한 동안 우리가 기다리고 있으나 노씨의 부인이 히로뽕이 든 비닐 봉지를 여섯 개 갖고 들어와 저울로 달았다. 2천7백g이었다. 노씨와 천씨, 그리고 나는 이 물건을 구두 넣는 종이가방에 담아 아리랑 호텔로 갔다. 일행 가운데 천씨는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기다리고 노씨가 나와 함께 814호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미군수사관들과 한국 마약 감시원들이 덮쳤다. 이 순간 천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우리는 다음날 노씨를 서울로 압송했다.

주범(主犯)과 從犯(종범)이 거꾸로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도큐 호텔 앞에 있는 서울 마약 감시 분소 근처에는 고향 다방이 있다. 여기서 그날 나는 마약 감시소 김계장과 맞닥뜨렸다. 김씨는 부산에서 올라온 이○○씨와 함께였다. 이씨는 히로뽕 사건이 터지면 관청 상대로 수습을 하러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나는 몇 달 전 김계장 등 몇몇 감시원이 노씨의 밀조 사실을 덮어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씨는 그 김계장을 통해 노씨의 구명 운동차 온 것이었다. 분소에선 결국 노씨로부터 조서를 이상하게 받아 노씨는 단순한 히로뽕 운반책이 되고 달아난 천씨가 노씨의 상선, 즉 히로뽕을 노씨에게 건네준 사람으로 조작돼 버렸다. 이 때문에 노씨는 기소되자마자 석달 만에 집행 유예로 곧 풀려났다. 주범과 종범이 거꾸로 된 것이었다.

내가 아는 노씨는 히로뽕 밀조·밀매로 갑부가 된 사람이다. 그의 집에는 감시용 TV가 문 앞에 부착되어 있었고 양과점도 경영하고 있었으며 수십 억대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천씨는 D대학의 레슬링 선수로 국가 대표까지 했었다. 달아났던 천일남씨는 석 달 뒤 노씨 및 나와 부산 천씨의 집에서 만났다. 내가 보는 데서 현금 3백만 원을 오씨에게 주면서 잘 봐달라고 했다. 오씨는 천씨와 헤어진 뒤 나에게 「안녕하십니까?」하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부산의 영도에 있는 뽕꾼을 찾아가 『안녕하십니까? 요즘 잘돼 갑니까?』하고 인사를 하니 50만원을 주는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러 가자」는 말은 일종의 은어로서 특별한 확증이 없는 뽕꾼들을 찾아가 촌지를 뜯어 가는 것을 뜻한다.

현직 수사관과 히로뽕 밀매 동업

오○○씨는 79년 4월인가, 5월인가에 대전분소로 전보 발령 받아 내려갔다. 나는 이 무렵 이미 더블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오씨의 정보원으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히로뽕 밀매를 했다. 나의 히로뽕 밀매는 오씨와의 동업하에서 이루어졌다. 오씨는 밀조꾼으로부터 히로뽕을 받아 나에게 넘겨주어 팔도록 시키거나 범인으로부터 압수한(물론 그 범인은 놓아주고) 히로뽕을 나에게 넘겨주어 팔도록 했다. 현행 밀매범을 잡았다가 놓아주면 2중으로 돈을 벌게 된다. 놓아주면서 돈 받고 압수한 히로뽕은 나를 통해 팔아서 돈 벌고.

나는 이런 물건(히로뽕)을 충남 대학병원 안 마약 병동 1층에 있는 대전 마약분소 사무실 내 캐비닛에 넣어 보관했다가 멋대로 꺼내 팔곤 했다. 오씨와 함께 조○○ 감시원이 그곳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 열쇠를 오씨로부터 받아 갖고 다니며 무상출입했다. 혼자 들어가서는 수사 서류를 볼 때도 있었다.

79년 6월인가, 7월인가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보사부 마약 감시원 임○○씨와 오○○씨가 압수된 4㎏의 히로뽕을 서울에 사는 노○○이란 여자 밀매꾼에게 팔았다. 보사부 서울 마약 감시 분소 근처의 고향 다방에서 임씨가 하얀 백에 든 히로뽕을 노 여인에게 전달해 주는 것을 목격했다. 뒤에 오씨로부터 들을 얘기로는 6백만 원을 대금으로 받았다는 거였다. 노 여인은 주름살이 많은 얼굴이었고 그 때 대학 다니는 딸이 있었다. 오씨는 노 여인으로부터 일제 소니카세트 라디오 2개를 얻어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마약 분소는 무상출입

나는 오씨와 짜고 히로뽕 밀매를 하면서도 보사부 서울 감시분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오씨 이외의 다른 직원들과도 자주 접촉했다. 내가 그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지냈는가를 보여 주는 에피소드-.

79년 7월쯤, 서울 혜화동의 해외개발공사 옆 건물에서 마약 수사 교육이 2주간 실시된 적이 있었다. 전국 보사부 마약 감시원뿐 아니라 경찰관, 검역소 직원들까지 참석한 교육이었다. 이때 피교육자들이 기념 촬영한 사진(흑백, 대학노트지의 3분의 2 크기)을 나는 한 장 얻었다. 이 사진을 히로뽕꾼들에게 팔면 한 장에 2백만 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히로뽕꾼들이 한국의 마약 수사원 얼굴을 전부 다 알아 버리면 장사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79년 여름에는 보사부 마약 계장 황○○씨를 내 차에 태워 대전에서 강경까지 모신 적도 있다. 범인 잡는 사람이 범인차를 탄 셈인데 그 때 황계장은 대마초에 대한 계몽 강의차 가는 길이었다.

함정 수사에 내가 빠지고

79년 6월 나는 또 오씨로부터 히로뽕을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히로뽕은 그 유명한 부산의 거물 오봉서씨로부터 오씨가 얻은 것이었다. 팔게 되면 1㎏당 백만 원씩을 오씨에게 주기로 하고 나는 밀매 루트를 찾아 나섰다. 오씨가 어떤 방법으로 히로뽕을 구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한번은 제주도에서 꿀통이 인편으로 오씨에게 부쳐져온 적이 있었다. 꿀통속에는 비닐 봉지에 쌓인 히로뽕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오씨의 물건을 팔아 주기 위해 먼저 박○○란 건달에게 5g의 샘플을 주었다. 며칠 뒤 박씨는 『전기섭이란 사람이 히로뽕 살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고 나에게 알려왔다. 나는 전기섭씨를 어느 다방에서 만나기로했다. 나는 오씨를 파수꾼으로 데리고 갔다. 오씨를 먼저 그 다방으로 보냈다. 나는 근처 공중 전화 박스에서 그 다방으로 전화를 걸어 전기섭씨를 바꿔 달라고 했다. 전씨가 카운터로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것을 오씨는 보고 있었다. 오씨는 전씨가 혹시 수사관인지 아닌지를 감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전기섭씨의 정체를 일단 체크하도록 한 다음 나는 전기섭씨를 다른 다방으로 불러냈다.

두 번째 다방으로 이동하기 전 나는 오씨와 따로 만나 『함정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안심했다. 전기섭씨와 나는 두 번째 다방에서 비로소 대면, 인천호수장 호텔에서 물건과 돈을 교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가격은 ㎏당 3백만 원으로 정했고 5㎏을 건네주기로 했다. 79년 8월27일 나는 근처 다방에 물건을 맡겨 놓고 호수장 호텔로 갔다. 그릴에서 전기섭씨 일행 세 사람을 만났다. 전씨는 돈 가진 사람은 211호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돈 가진 사나이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 50세가 넘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방 하나를 갖고 있었다. 나는 바짝 긴장하여 침대 밑을 훑어보았다. 누가 숨어 있지나 않나 해서였다.

나는 돈을 보여 달라고 했다. 가방을 여는 사나이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무 거액이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기섭씨를 구석으로 불러 왜 저렇게 돈이 많으냐고 물었다. 전씨는 ㎏당 8백만 원씩 받기로 했다면서 당신 몫(1천5백만 원)만 가져가면 될게 아니냐고 했다. 나는 전씨가 중간에서 ㎏당 5백만 원씩 남겨먹는 걸로 생각했다. 나는 물건을 가지고 오겠다면서 객실을 나와 프론트로 갔다.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프론트 직원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집어 주면서 『211호 손님이 몇 시에 들었느냐?』 『그 옆방에는 누가 있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프론트 직원은 의심할 만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캥겼지만 아까 본 돈 뭉치가 눈에 어른거리자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다방에서 히로뽕이 든 가방을 찾아 호텔객실로 다시 들어오자마자 나는 문을 안에서 잠그고 돈을 받아 챙긴 뒤 전기섭씨 일행에게 『물건 테스트를 해달라』면서 뽕을 건네주려고 했다. 이 때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는 그제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았다. 『아뿔싸! 이렇게 되면 몇 년 콩밥 먹게 되나?』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급한 김에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누군가가 안에서 문을 열어 주었다. 10여명의 잠복 형사들이 권총을 빼들고 우루루 쳐들어 왔다. 나는 갖고 있던 칼을 빼들고 반항하면서 목욕탕으로 피해 들어갔다. 히로뽕을 수돗물에 녹여 증거를 없애려고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나는 붙들리고 말았다.

뒤에 안 일이지만 나는 노○○씨를 잡던 똑같은 방법의 함정 수사에 스스로 걸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전기섭씨 일행도 나와 함께 함정에 빠졌다. 프론트 직원은 위장한 형사였고 히로뽕을 사겠다고 돈 가방을 들고 있던 사나이는 인천 경찰서 형사계장이었다. 나는 인천 경찰서로 붙들려 갔다. 열흘 동안 버티며 물건의 출처를 불지 않았다. 엉터리 이름을 대어 형사들을 뺑뺑 돌리기도 했다. 오씨가 나의 구명(救命)에는 손을 쓰지 않고 자기 살길만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나는 배신감을 누르지 못하고 검사 앞에서 오씨의 관련 부분을 자백했다.

오씨와 오봉서씨도 곧 붙들렸다. 그러나 경찰 발표에서는 오씨의 직업을 감춰 그 때 일반인들은 이 엄청난 사건을 알지 못하고 그저 히로뽕꾼들이 또 구속되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인천의 동○○였다. 변호사에게는 2천만 원을 주었다. 아파트를 판 돈이었다. 변호사 사무장에겐 또 별도로 백만 원을 주어야 했다. 1심에서 나는 징역 7년을 구형받았으나 선고는 징역 2년이었다. 나는 복역하고 81년에 출소했다. 당연히 나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 마땅한 오씨는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났다.

뽕꾼의 노예가 된 감시원들

마약 감시원들이 히로뽕꾼들과 친밀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급, 수사비가 형편없는데다가 수사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보사부 감시원들의 실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 변명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일부 감시원들은 뽕꾼들을 수사 자원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뽕꾼들에게 코가 꿰이어 끌려다니거나 그들과 히로뽕 밀매를 동업하였으며 그들이 적극적 비호 세력이 되었고 법률 상담자 역할까지 했다. 오씨처럼 마약 감시는 부업이고 히로뽕 밀매가 본업이 된 감시원도 있다.

마약 감시원들 가운데 롤렉스 금딱지 차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20만원 남짓한(79년 당시) 봉급을 받으면서도 자가용 몰고 다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는가? 첩을 두고 2중 살림을 하고 있는 감시원들을 한번 꼽아 볼까? 뽕꾼들에게 한번 뇌물을 받은 감시원은 영원히 그 뽕꾼의 대부가 되어 그를 돌보아 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A라는 감시원이 있다 하자. B라는 수사관이 A가 돌보아주는 뽕꾼을 잡으러 출장간다고 하자. A는 즉시 그 뽕꾼에게 전화를 걸어 귀띔을 해 준다. 뽕꾼은 달아날 것이고 B 수사관은 수사비만 쓰고 헛탕을 치게 된다. A감시원은 나중에 정보 제공비조로 적어도 기백만원을 뽕꾼으로부터 받는다. 악덕 감시원들은 누구는 누구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기 때문에 동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그런 뽕꾼들은 좀처럼 잡아 넣지 않는다.

노○○씨의 경우는 미군과 합동수사로 엉뚱하게 잡혀 그를 평소에 잘 보아주던 감시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노씨처럼 평소 뇌물을 주던 뽕꾼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잡히면 그는 감시원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 우선 조서를 잘 받아 준다. 밀조범을 밀매범으로, 밀매범을 단순한 운반책으로 둔갑시켜 형량을 줄이는 것이다. 노씨와 천씨 경우처럼 상선과 하선을 바꿔치기 하거나 달아난 공범에게 모든 걸 미뤄버리는 식으로 조서를 받아 주기도 한다. 감시원이 평소 친하게 지내는 뽕꾼의 이름을, 어느 범인이 붙들려 와서 공범으로 들이대면 그 부분을 묵살하여 수사 확대를 못하게 하기도 한다.

육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준다. 일반 뽕꾼이 잡히면 혹독한 고문을 받는 게 보통이지만 선이 달린 뽕꾼에겐 숙직실에서 잠을 자게 할 정도이고 변호사 선임, 가족과의 연락 등도 발벗고 나서 해 준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씨의 협력자로 일할 때는 『히로뽕을 리어카에 싣고 다녀도 누가 나를 잡겠는가?』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뽕꾼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가리키며 『이게 천만원짜리다』고 부끄럼 없이 말하는, 그런 감시원들과 유착된 큰 뽕꾼들은 경찰 등 다른 수사 기관에서 잡거나, 우연히 붙들리지 않는 한 체포될 염려가 거의 없었다.

한번도 체포되거나 수배당하지도, 한번도 신문에 나거나 연행되지도 않은 뽕꾼들이야말로 거물들이며 그런 자의 이름을 나는 손가락 꼽으며 댈 수 있다. 평소 친한 뽕꾼이 달아나면 일부러 잡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12월17일 부산 중앙동의 K다방에서 나는 종업원에게 자주 들르는 뽕꾼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 중에는 수배중인 사람도 있었다. 종업원은 그들이 수시로 드나든다고 했다. 뇌물 수수혐의로 수배된 前 마약 감시원은 자기를 수배한 수사 기관의 앞 다방(서울 소재)에서 자기를 붙들어야 할 수사관과 연락을 하고, 그 다방 종업원까지도 前 감시원의 이름을 알 정도다.

검사에게까지 손 뻗기도

70년대에 뽕꾼들을 돌보아 주던 많은 악덕 수사관들이 쫓겨났지만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검사가 어떤 감시원 데리고는 수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라면 그 분위기를 알 것이다. 감시원들은 동료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동료의 비행을 고발할 수도, 혼자 결백할 수도 없는 건 아니지만 매우 어렵다. 부패한 감시원이 계속 남아 있는데서 빚어지는 가장 큰 위험은 정직한 신참자들까지도 같은 분위기로 물들게 하는 오염성, 바로 그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봐 주고 서로가 서로의 뽕꾼들까지 봐 준다면 수사는 선이 없는 조무라기만 조지는 수준에 머물지 않을 수 없다.

뽕꾼들은 마약 담당검사의 인사 이동에 굉장한 관심을 가진다. 아무리 감시원들과 친하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검사들과도 선을 달아 놓지 않으면 안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혀 안면이 없는 검꾼들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모색하려고 애를 쓴다. 검사의 친구, 동창 중에서 적당한 소개자를 물색, 아주 부담없는 술자리 등을 마련하여 극진히 대접을 해두는 식으로. 검사들은 뽕꾼 이외에 노회한 마약 감시원들로부터도 나쁜 영향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이황순씨 사건 때 붙들려다가 탈출했던 김창순씨는 보사부 마약 감시원들 사이에서는 가장 유능하고, 가장 멋진 「인물」로 평가받았고 검사의 신임도 두터웠던 사람이다. 그는 수사도 잘했지만 뽕꾼들로부터 뇌물 받는 데도 탁월했었다. 두각을 나타낸 감시원들 가운데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잘한 사람들이 많았다. 뇌물 수수로 수배되거나 구속된 마약 감시원들이 거의가 「능력 있는 수사관」이었다는 것은 히로뽕 수사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검사 입장에서 보면 뽕꾼들을 많이 잡아들여(비록 피라미들이라 해도) 자기 이름을 빛내주는 감시원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감시원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이상한 일에 관련될 수도 있다.

내부의 적을 먼저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큰 깡패들은 거의 히로뽕에 손대고 있다. 부산뿐 아니라 서울, 대전, 광주, 목포, 여수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5대 깡패를 손꼽아 보면 히로뽕과 관계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히로뽕 거래를 하지 않으면 돈벌이가 안 되고 부하들을 거느릴 수도 없다. 이들 깡패들은 또 카지노 나이트클럽 등에도 관여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밤업소를 뛰는 일부 연예인들에게까지 히로뽕이 흘러들 수가 있다.

히로뽕도 습관성이지만 뽕꾼들도 습관성이다. 아무리 혼줄이 나고 감옥 생활을 해도 여기서 손을 씻는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달에 한 번꼴로 5㎏을 거래하여 1년만 잡히지 않는다면 한 밑천 잡는다. 만약 10년 동안 안 잡힌다면 그는 갑부가 된다. 그런 갑부가 지금 얼마나 많은가? 그런 갑부를 모르는 마약 수사관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수많은 유혹과 협박을 뿌리치고 히로뽕 세계를 떠났다. 떠난 이상 히로뽕 조직은 말살시켜야 할 나의 적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나의 적」을 청소하기 전에 우리 편 안에 박혀 있는 「내부의 적」을 먼저 솎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내부의 적」이 누구누구인지는 마약 수사에 종사해 본 검사, 형사들이라면 모를 리 없다. 수사관도 인간인 이상 같이 일하다가 보면 부하나 동료의 비행을 눈감아 주게도 된다. 나는 이들 「내부의 적」이 꼭 쇠고랑을 차거나 해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비정한 인간은 아니다. 다만 고양이에게 고기덩어리를 지키라고 시킨 것과 같은 꼴이 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은 바로잡혀져야,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과 이웃, 그리고 온 국민들이 마음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