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智澈의 부상(浮上)으로 金載圭 불만

金泳三총재의 등장은 79년의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거 중요한 것은 유신정권의 핵심부에서 일어난 권력구조의 변화였다. 金載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車智澈이 세어진 것이다. 전당대회 공작의 실패는 朴대통령에겐 金의 무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무능을 보완하는 식으로 車智澈이 정치에 깊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유정회 의장이었던 태완선(太完善)은 이런 기억을 갖고 있다. 『언젠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저녁을 먹는데, 朴대통령이 차지철(車智澈)을 창쪽으로 불러 「자네는 국회에 있었으니까 잘 알 것 아닌가」하고 무슨 일을 부탁하는 것을 본 벅이 있다』 金載圭의 정치감각을 불신하게 된 대통령은 車실장의 국회의원 경력을 중시하게 됐던 것 같다.

신민당의 5·30전당대회에서 車는 신민당의 계보 보스인 ㅅ의원을 통해 반金泳三측을 지원했다. 그후 책임추궁의 화살이 金載圭에게 쏠리자 金은 사석에서 『車실장이 돛?어떻게 조정했는지 모르겠다. ㅅ이 무슨 보스야. 李모보다도 못한 머저리 바보지』라고 불평을 토로했다. 金泳三총재 등장 직후 車智澈은 정재호(鄭在鎬.유정회) 박찬종(朴燦鍾.공화당)의원 등에게 『朴대통령의 특별한 당부인데, 앞으로의 정국 대응책에 대한 보고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朴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은 車실장의 활동이 이즘부터 더욱 적극화되는 것이다. 車실장의 이런 역할 변화는 그의 인격도 상당히 변형시키게 된다.

그는 78년까지만 해도 악평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공화당에선 78년 총선을 앞두고 車실장은 『그런 짓은 당에서 할 일이지 내가 뭐라고 할 수 없다』고 겸양의 자세를 보였다. 鄭在虎는 『74년에 車智澈의원이 경호실장으로 임玆팀?땐 적임자란 평이 지배적이었다』고 했다. 『국회의원으로서 車智澈은 처음엔 공수단 출신의 혈기방장하고 와일드한 젊은이란 인상을 주었다. 그가 변신하게 된 계기는 국회내의 폭행사태로 언론의 뭇매를 얻어 맞고부터였다. 근신하고 조심하는 자세로 돌변, 사람이 갑자기 달라진 듯했다.

그때쯤 전직 국회의원의 딸과 결혼식을 조용하게 올렸는데 몇 달 뒤 외간남자 문제로 이혼을 해버렸다. 이 사건으로 車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친한 기자에게 울면서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이 충격도 車를 인간적으로 성숙시킨 듯했다. 낡은 코트, 모자, 구두를 신고 외모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수양에만 진력하는 듯 했다. 내무위원장으로서는 사회를 아주 공평하게 봐 야당의원들도 좋아했다. 그는 결벽증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돈에 대해서도 깨끗했다』

공화, 유정회는 金과 車의 도구화

이런 車智澈은 79년에 접어들면서는 과거의 안하무인식 인견형으로 되돌아 가는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金정렴 대통령비서실장이 78년12월말에 물러나고 金桂元이 취임한 것도 車의 변모에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은행원 출신으로 치밀한 金정렴은 10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바깥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대통령을 보필했다 때문에 후발주자인 車실장이 월권을 하기엔 거북한 상대였다. 金載圭와 車智澈은 金정렴실장을 주일대사로 보내고 金桂元을 후임으로 앉히는 데는 손발을 맞췄다는 얘기가 있다. 金載圭와 金桂元은 군 시절부터 친밀했다. 金載圭가 자동차추락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것을 金桂元이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건져준 인연도 있었다.

78년에 金載圭는 주중대사이던 金桂元을 귀국시켜 경북 봉화 영주지역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金桂元은 한 달 동안 표밭 점검을 해보았다. 김창근(金昌槿)의 기반이 워낙 강해 승산이 없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金載圭는 金昌槿을 다시 공화당으로 영입하고 金桂元은 비서실장으로 추천했다. 車智澈도, 만만치 않은 金정렴이 옆에서 사라지는 걸 바랐으므로 金桂元 임명은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했다고 한다. 金桂元은 육군참모총장과 정보부장을 거친 무골이었으나 유순하고 합리적이며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박력은 없어 이미 청와대의 터줏대감이 돼 있는, 대통령 목숨의 위탁관리자인 車와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위자인 金실장이 부임인사를 車에게 하러 갈 정도였다. 車의 영향역이 커졌음을 입증한 사건은 백두진(白斗鎭)이 10대 국회의장으로 임명된 이이었다. 여권에선 丁一權 등을 밀었으나 車가 미는 白斗鎭(당시 유정회 의장)이 임명됐다.

최근 白斗鎭은 본 기자에게 『내가 車실장 덕으로 국회의장이 됐다고 하는데 그러면 朴대통령은 車신장의 로보트였단 말인가』로 반문했다. 車는 국회상임위원장 내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10대국회 개원벽두에 있었던 白斗鎭파동은 국회의장 선출에서 퇴장이란 반대의 방법이 야당에게는 허용이 안된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李哲承 체제의 신민당이 가진 무력함을 노출시켰다. 이 파동은 金泳三이 재기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79년의 갖가지 정치사건들은 車智澈과 金載圭가 상호 경쟁적으로 실패하고 망쳐놓은 결과이기도 했다. 『朴대통령은 위대한 분이었다. 金載圭나 車智澈은 朴대통령 앞에서 지적인 면에서나, 경륜에서나, 인격면에서 도무지 얼굴도 바로 쳐다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朴대통령의 한 가지 단점은 인사문제에서 인정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金致烈의 평이다. 朴대통령의 잔정 때문인지, 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이란 가장 중요한 직위에서 문제점 많은 두 사람은 유신의 종말까지를 朴대통령과 동행했다. 5·30전당대회 때부터 대야(對野) 공작의 창구는 金載圭와 車智澈로 2원화되었다. 車는 대통령의 위광을 업고 유정회와 공화당을 조종하기 시작했고, 신민당의 일부 의원들도 주무르게 됐다. 공화당과 유정회는 벌써 전에 독자적 정치력을 상실했고, 이제는 金載圭와 車智澈 양쪽으로부터 조종받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정보부의 차장보가 유정회 의장에게 「전화지시」를 내릴 정도였고 車실장은 공화당 의원총회의 발언까지도 사전에 조정했다.

정치공작의 2원화는 불가피하게 金載圭와 車智澈의 암투와 갈등을 낳았다. 두 사람 가운데 심리적으로 몰리는 입장에 처한 것은 金載圭였다. 대통령의 신임이 車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金은 車에게 「꿀리는」입장으로 뒤집혀졌다. 남을 뒷전에서 헐뜯는 성격이 아닌 金도 『車智澈이 귀찮아 죽겠다. 자꾸 식사나 커피를 같이 하자고 부른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金이 車에게 『보고한다』느니 『불려간다』말이 그의 부하들 사이에도 퍼졌다. 車는 장관들이 대통령을 만날 때는 자기방을 거쳐가거나, 사후에 면담 내용을 알리도록 함으로써 행정부에까지 간여하고 있었다. 車의 이런 월권행사를 무시한 것은 金致烈 등 몇몇 장관들 정도였다. 金이 대통령에게 올리는 건의는 車에 의해 늘 견제받기 시작했다.

대야 문제에 있어서 金은 집행책임자였기 때문에 온건론을 펴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車는 집행의 책임이 없었으므로 훈수하는 입장에서 강경쪽으로 의견을 제시했고, 朴대통령은 車쪽으로 기울었다. 金載圭는 더러 『각하는 보고를 받는 자리에선 납득을 하는데 다음날엔 뒤집기가 일쑤다』고 걱정했다. 『朴대통령은 가끔 金이 보고하는 정보를 車에게 건네주어 사실여부를 검증하도록 했다』고 申형식은 말했다. 『의심나면 잘라야 하는데 金載圭를 못 미더워하면서도 계속 쓴 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대통령과 경호실장으로부터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었던 金載圭는 그 인물의 그릇이 그런 스트레스를 수용, 소화할 만큼 크지도 깊지도 못했다. 능력에 비해 과분한 책무를 지고 그는 끙끙대고 있었다.-

대통령이 친히 대질신문

78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朴승규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 崔태민 목사에 대한 비위조사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린 적이 있다. 대통령은 이 봉사단에 관여하던 큰딸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래도 崔목사의 활동은 계속됐다. 얼마 뒤 金載圭는 휘하의 백광현(白光鉉)국장에게 조사를 시켰다. 검사출신인 白국장은 崔목사의 비행을 구체적으로 적발했다. 기업체로부터 수천만원, 또는 억대씩의 기부금을 받아 횡령, 유용한 일이라든지, 이권개입, 여자관계의 추문 등등. 金載圭는 조사결과를 朴대통령에게 보고했다.

崔목사가 손떼게 할 것과 경리장부를 똑똑히 정리하도록 할 것을 함께 건의했다. 대통령은 『정보부가 이런 것도 하느냐』고 언짢게 생각하더라고 한다. 마지못해 朴대통령은 이 문제로 「친국」을 했다. 朴대통령이 가운데 자리잡고 한쪽에 金載圭·白光鉉, 다른 쪽에 큰딸과 崔목사를 앉히고 일종의 대질신문을 한 것이다. 崔목사는 여기서 자신의 비위사실을 딱 잡아뗐다. 朴대통령은 검찰에 별도로 조사를 시켰다. 그 결과는 白국장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 얼마 뒤 崔태민은 봉사단의 명예총재로 물러났다. 명예총재이던 대통령의 큰딸이 총재가 됐다.

金載圭는 그뒤에도 崔목사에게 집요한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79년 5월에도 「崔목사가 「대통령 큰딸의 뒤에서 계속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그 자는 백해무익한 놈이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할 놈이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전임자들이 금기시하던 「로열 패밀리」에 대한 이런 조사활동은 金載圭의 인간됨을 연구하는 데 좋은 사례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보고도 하는 사람이다』는 평가도 있지만 「만용」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정보부장 정도라면 대통령이 친국을 할만큼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崔목사가 손을 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을 것이란 얘기다. 金은 용기나 사명감을 과시나 하듯 『내가 안하면 누가 감히…』『내 직책을 걸고…』식으로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崔목사 사건은 金載圭의 朴의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朴대통령 가족의 金載圭에 대한 신뇌에 금을 가게 한 사건이었다고 평하는 이들도 많다. 이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 말년의 朴대통령은 인사문제에서 너무 정에 이끌려 옛날과 같은 과단성 있는 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金載圭, 金총재 설득도 실패

79년 정국에서 金泳三총재 당선에 이은 金載圭의 두번째 실패는 YH사건이었다. 金은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사건의 여공들을 해산시킬 때 강공책을 쓰도록 했다. 金은 柳赫仁(대통령 정무제1수석비서관) 고건(高建.정무제2수석비서관) 김정섭(金正燮.정보부제2차장보)과 대책회의를 했는데 치안본부측에서 경찰투입시한을 연기해 달라고 했는데도 속공을 명령, 국회의원과 기자들에게까지 뭇매를 가하는 불상사를 불렀다. 이 사건은 신민당의 자세를 경화시켰고 여론과 언론의 보도자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정국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분수령이 됐다(金載圭는 여공들의 자살 : 자해소동을 막기 위해 강공책을 명령했다고 군재에서 변명).

金載圭의 세번째 실패는 제명전야의 비밀회담에서 金泳三총재를 설득시키지 못한 일이었다. 뉴욕 타임즈에 실린 회견기사가 문제가 됐을 때 金泳三제명을 공화당 박준규(朴浚圭)의장서리, 유정회의 太完善의장에게 직접 지시한 것은 朴대통령 자신이었다. 朴대통령은 두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격앙된 말투로 제명을 지시했는데, 『법률가에게 물어보니까 법 이론상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 덧붙이더란 것이다. 「법률가」란 대통령 법률담당 특별보좌관 申직수 밑의 金모 검사였다. 제명 전날인 10월3일 朴浚圭·太完善·金桂元·金載圭는 신라호텔의 어느 객실에 모여 다음날의 전략을 의논했다.

太完善의 회고다. 『金桂元실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늘 아침 모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는데 金총재의 제명을 재고해 달라는 부탁이었다.」면서 「우리 네 사람이 각하에게 지금 올라가 재고를 건의하자」고 했다. 네 사람은 쉽사리 동의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車실장이 나타났다. 車실장은 펄펄 뛰었다. 「방금 각하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 각하의 뜻은 절대로 제명쪽이다」고 했다. 그래서 청와대행은 포기됐다』

바로 이날밤 8시30분부터 1신동안 金載圭는 남산 기슭의 공관에 金泳三총재를 극비리에 초빙, 대면했다. 최근 金泳三은 본 기자 앞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金부장과 나는 같은 김녕金씨지만 단독 대면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金부장은 전날(10월2일) 朴대통령과 장시간 나의 제명문젤 이야기했다면서, 내일 아침 기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뉴욕 타임즈 기사에 대한 해명을 해주면 이걸 명분으로 하여 제명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해명 제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金부장은 거의 애원조로 사정하다시피했다. 그는 몇번이나 「그렇게 하면 나라도, 金총재도, 朴대통령도 불행하게 됩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제명을 강행하면 빠른 시일 안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때 말한 「불행」은 정권 붕괴를 뜻하는 것이었고, 「빠른시일」은 79년 가을이나 80년 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무슨 정보가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어떤 정권이든 강경책만 쓰면 내분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결국 金총재 설득은 실패했고 金載圭는 朴대통령 앞에서 또 하나의 실점을 기록한 것이었다.

우직, 의리, 엉뚱, 만용의 金載圭

金泳三과의 면담에서 나타난 金載圭의 면모는 파국을 막으려고 애쓰는 온건론자로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업무관계로 이즈음의 金載圭와 접촉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우직하고 예절바른 인간됨은 인정하면서도 능력면에선 혹평을 서슴지 않고 있다. 朴찬현 당시 문교부장관은 『대국을 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었다. 시국관에 기조가 없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태도를 바꾸곤 했다. 또 소심한 편이었다. 회의에서 발언을 한 뒤 「내 말이 지나치지 않았는가」「그 장관이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까」하고 묻곤 했는데, 대수롭지 않은 걸로 그러는 것이었다』고 했다. 金의 참모로 일했던 金모씨는 『대통령께 하는 그의 1일 데모징후보고는 나열식이었다. 어제 어느 교회에서 반정부 집회가 있었고, 내일은 어디서 터질 것이라는 식으로 나열만 할 뿐 대책이 없는 것이었다. 통치자의 입장에선 그런 보고를 들으면 쓸쓸해진다. 그럴 때는 車智澈처럼 「새끼들, 또 나오면 싹 뭉개 버리겠읍니다」는 말이 오히려 위안을 주게 된다.

金載圭가 보고를 한 다음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사람은 꾸지람을 듣게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 金의 보고는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金載圭는 업무의 대소와 완급을 못 가리는 사람이었다. 직접 주교나 추기경을 만나러 가곤 했는데 그것은 하급자가 할 일이다. 그러나 하급자가 결재 받기엔 아마도 가장 상대하기 쉬운 부장이었을 것이다』 ㅈ씨는 『金載圭는 부하가 쓴 보고서를 대통령께 충실히 읽어드리는 사람이었다. 보고서를 왜곡, 수정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자신의 능력한계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부장은 어떤 참모를 두느냐가 중요한데, 79년엔 그런 점에서도 운이 없었다』고 했다.

金致烈 당시 법무장관은『車에 비해 金이 온건론 쪽이었다고 하지만 「론」으로 부르기에는 논리나 일관성이 없는 의견이었다. 한 마디로 소신이나 중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보부장으로서의 영향력도 전임자들보다 약했다. 「욱!」하는 성격이 있어 무식한 머슴이 화가나면 큰일을 저지르는 식으로 일을 벌일 사람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鄭在虎는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79년 추석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柳赫仁씨가 롯데 호텔로 빨리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崔圭夏총리, 金聖鎭문공부장관, 柳赫仁, 오유방(吳有邦)공화당 대변인, 외무차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궁정동 정보부장 관사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우리는 그곳으로 옮겼고 총리만 공관으로 갔다.

金載圭가 우리를 맞더니 총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접니다. 각하가 국수 주셔서 맛있게 먹고 오는 길입니다. 각하께선 대단히 기분이 좋으십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한국을 경찰국가라고 비난을 했답니다. 이 비난에 대해 미 국무성의 고위관리가, 케네디의원은 마치 자기가 차기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냉소적인 코멘트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런 정보를 올렸더니 각하께서는 흥분하셔서 여당 대변인들이 이에 맞춰 케네디 의원을 반격하는 성명을 발표하도록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문안작성회의가 시작됐는데 金부장은 바쁜 일이 있다면서 나가버렸다. 그러자 金의 부하 한 사람이 「코멘트를 한 사람은 미 국무성 고위 관리가 아니고 서울 미 대사관의 참사관이며, 그것도 사석에서 한 얘기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일로 추석날에 이런 회의를 소집한 金載圭에게 울화통이 터졌다. 총리에게 문안을 보고하러 가는 김성진(金聖鎭) 장관의 차중에서 「저런 돌대가리가…」하고 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총리에게 일고의 가치도 없는 논평이라고 했으나 총리는 「기왕 金부장이 보고한 사항이니…」라고 해서 짤막한 성명문을 다음날 발표하긴 했다』

金의 병명은 활동성 만성간염

당시의 金載圭는 얼굴이 까맣게 타 있었다고 한다. 간이 나빠서 그랬다고도 하고, 金의 범행을 간질환에 기인한 정신착란으로 풀이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점은 사실과 다른다. 당시 金載圭는 간 전문가인 서울의대 김정룡(金丁龍)교수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었다. 金교수는 71년부터 金부장을 치료해 왔었다. 부마사태 무렵의 金載圭는 「만성 활동성 간염」으로서 약화가 정지된 「현상유지」의 상태였다. 일상 생활엔 별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이 상태는 간경변증의 전 단계로서 얼굴 검은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金교수는 1주에 한번씩 공관으로 金부장을 찾아가 주사를 놓거나 약처방을 해 주었다. 金載圭는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고단백식품, 평형식 등 의사가 내리는 처방에 충실히 따라 金교수에겐 「모범생 환자」로 기억되고 있다. 10여 년간 만나도 공무의 관계된 이야기나 잡담은 전혀 없어 「차갑다」는 인상이었고 의사라면 누구에게도 「박사님」이라 부르며 공손했다고 한다. 부나사태를 전후하여 몇 번 만났지만 그의 심경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金載圭는 군 시절 포 사격으로 오른쪽 고막에 손상을 입어 청력이 다소 약했다. 그래서 대통령께 보고할 때는 왼쪽 귀를 그쪽으로 향할 수 있도록 좌석배치를 해달라고 부하에게 명령하곤 했다. 그의 보고태도는 신하가 왕을 대하듯 했다고 한다. 부마사태 직전의 시점에서 金載圭가 반의(反意)의 씨앗을 품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징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金大中에 대한 「1일 연금해제」, 그 전의 金大中 병원 이감조처, 金泳三과 비밀 면담했을 때 간절하게 『이러면 대통령도 불행해 진다』『대통령이 당신을 구속하려 한다』고 털어놓은 등등. 그러나 이런 징후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노출됐을 뿐,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충직한 보필자였다. 문제는 그의 「반의」가 어떤 계기로 터지는가였다. 그 시기는 의외로 빨리 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