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에 한국군을 동원하라!』

李鍾贊 육군참모총장이 부산의 임시 경무대에 불려가 질책을 받던 날 崔英聲교육과장은 朴正熙 작전국차장과 함께 사격 대회 개최에 따른 브리핑 차트를 총장실에서 만들고 있었다. 崔중령은 며칠간 밤새워 만든 차트를 총장실 벽에 붙여 놓고 참모총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늦게 李장군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고지식한 崔중령은 차렷자세로 브리핑을 준비 태세를 취했다. 李총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귀관! 여기는 보병학교가 아니야! 그만 둬!』영문도 모를 호통을 들은 崔과장은 朴차장과 함께 브리핑 자료를 주섬주섬 거두어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 5월28일 밴 플리트는 李承晩대통령을 이날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또 만났다. 그는 계엄령을 빨리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계엄령해제는 국회기능의 정상화를 뜻하며, 이것은 또한 李承晩의 재집권 기도를 무산시킬 것이 분명했다.

● 5월30일 미 국무장관서리?이날 주한미국대사에게 1급비밀로 분류된 급전을 보냈다. 이 전문에서 국무방관 서리는 「유엔사령부가 경찰권을 행사하거나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그 타당성과 시기에 대한 유엔 한국위원회(언커크)와 밴 플리트의 의견을 알려주기 바람. 한국정부와 미군이 충돌할 경우 한국군의 태도도 궁금함」이라고 했다. 미국측이 스스로 계엄령을 선포, 사태를 장악하겠다는 의지가 처음으로 나타난 공문이다. 미군에 의한 계엄령이 李承晩의 실각을 의미한다는 것은 자명했다.

● 6월1일 미국 대리 대사 라이트너는 이날 미 국무부에 「유엔군에 의한 계엄령 선포 대신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전문을 보냈다. 대리대사가 제의한 조치들 중엔 「유엔군 병력의 부산 근교 진주와 함께 흥미있는 대목이 있다. 즉 「유엔군의 계엄법이 규정하고 있는 선에 따라 한국 육?및 해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의 탐색」이란 대목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미군이 한국군을 앞세워 李承晩정권을 무너뜨릴 방안을 강구하자고 건의한 것이다.

● 6월2일 이날 미국 국무부의 극동문제 담당 차관보가 국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李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어 국회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유엔국이 한국군과 협력하여 무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위와 같은 압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미국정부는 한국군 부대를 포함한 유엔군 병력을 동원하여 계엄령을 선포, 한국 경찰을 접수해야 할 것이다.」는 대목이 있다.

● 6월 4일 이날 미 국무장관이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전문은 계엄령선포에 의한 李정권의 붕괴작전을 잠시 보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은 「李承晩이 계속 대통령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미국과 유엔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것이 워싱턴의 판단이다. 李承晩이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뽑혀져야 국내외에서 더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張澤相)총리와 협조하여 총리가 제안한 타협안(필자주:발췌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미군의 부추김과 비호, 그리고 육본참모들의 정의감과 반(反) 李承晩 감정이 어울려 이즈음 대구 육본에서는 쿠데타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柳原植의 증언
『나는 朴대령과 함께 2개 대대를 부산에 파병, 李정권을 뒤엎을 계획을 추진했고, 미군도 양해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미군이 태도를 번복,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생전의 증언)

丁來赫 당시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의 증언
『이종찬, 이용문,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논의한 적도 있습니다. 후방에 있는 몇 개 대대를 부산으로 보내 계엄령을 무효화시키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병력을 누가 지휘하느냐를 논의하는 데 이 총장이 이용문 준장에게 박정희 대령이 그 병력을 지휘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대 저는 이 작전 계획의 코드 네임을 반정(反正)이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며칠 뒤 이용문 장관은 이 총장에게 박정희 대령이 목숨만 보장해준다면 반정 부대를 지휘하겠다고 말하더라고 보고하더군요. 미군의 태도 변화로 이 계획은 구상단계에서 끝난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을 너무 순진한 눈으로 본 것이지요』

具常은 李鍾贊 총장과 李龍文 국장 두 사람으로부터 따로따로 부산정치파동에 대한 의논 상대자가 되었다. 李총장은 李국장 등이 추진하고 있는 반정계획에 대하여 미온적이었다. 李국장이 적극적이었던 데 대해 李총장은 문민우위의 원칙을 깨뜨릴 마음이 아직 없었다. 具常도 군의 정치 개입을 말리는 입장이었다.

張澤相 총리가 조직한 신라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1952년 6월21일 발췌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측 직선제 개헌안과 야당측 내각책임제 개헌안중 좋은 점만 발췌하여 혼합한 것이란 주장이었으나 실제로는 대통령 직선제의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은 두 가지 공작을 펴고 있었던 것 같다. 미 8군은 한국군을 이용한 쿠데타 계획을 추진하고, 주한 미 대사관은 張총리를 지원하여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는 쪽으로 움직였다. 일견 상반돼 보이는 두 가지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다가 최종 순간에 가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미국의 오랜 대외정책의 관행이었다. 張澤相측에선 이런 논리로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면 미 8군은 이승만 박사를 감금함 뒤 군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군정보다는 발췌개헌안이 낫지 않은가. 독안에 든 쥐를 잡으려고 독까지 깰 수는 없지 않은가?』 미군의 쿠데타 계획은 공작적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유출되어 발췌개헌안 통과를 돕는 쪽으로 이용된 감도 없지 않다.

잠시 쿠데타 계획의 추진을 보류했던 미국은 6월 하순에 가면 다시 구체화시킨다. 6월25일 미국 연합참모본부는 도오쿄의 극동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에게 긴급 전문을 내려보냈다. 몇년 전에 공개된 그 전문은 이러했다.
「(전략)『유엔을 대신해서 행동하라』는 미국 정부의 허락이 떨어지면 유엔군 사령부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 육군 참모총장에게 육군과 경찰 및 유사 군사 집단의 모든 병력을 장악하도록 명령한 뒤 부산 지역에 직접 계엄령을 선포, 그 업무에 당하도록 지시하라. 정책상 한국군만 동원하도록 할 것.
ⓑ계엄 통치를 할 경우에도 한국 육군의 포고령은 한국 정부의 기능을 주권의 상징으로서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조속히 민간 정부로 복귀토록 하는 선에서 발표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사항과 관련하여 한국 육군 참모총장의 신뢰도를 평가하여 보고하라.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방 조치로 50년 7월14일에 유엔군에게 이양한 작전권을 다시 가져 갈 경우를 가상하라」

이 전문은 한국 육군을 앞장 세운 쿠데타 계획의 수립을 유엔군 사령부에 지시한 내용이다. 한국 육군 이종찬 총장의 신뢰도를 평가하도록 지시한 것은 흥미롭다. 신뢰도 평가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81년에 조셉 굴든이 쓴 「한국전 비사」에 따르면 『워싱턴-서울 사이에 오고간 여러 전문들은 한국 육군참모총장이 미국과 이승만 사이의 어떤 대결에서도 미국 편을 들 것임을 시사했다』고 썼다.

육본 심야회의의 운명적 결정

미국정부 공위당국이 한·미군 합동작전에 의한 쿠데타를 구상하고 있던 이무렵 대구 육본에선 심야에 극비 참모회의가 열렸다. 당시 李鍾贊총장의 비서실장이던 安光鎬대령(도미 유학을 떠난 丁來赫 대령의 후임·무역진흥공사 사장 역임)은 이 회의가 열린 날짜를 「계엄령선포 1주일 뒤」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다른 참석자들은 발췌개헌안이 통과된 날 전후라고 하여 정확한 날짜는 더 검증되어야 할 일이다. 『그날 밤 총장 전속 부관이 유병일 중령이 전화를 걸었다. 참모회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깊은 밤에 무슨 일인가 싶어 육본 회의실로 달려갔다. 이 총장과 유재홍 참모차장은 없었다. 이 총장은 계엄령 선포 이후에는 관사에 칩거하고 유 장군이 총장을 대리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이기붕 등 여당정치인들이 뻔질나게 찾아와 이 총장이 부산에 내려와 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과시해달라고 졸랐으나 그는 계속 거절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도착했을 땐 다른 참모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이용문 작전국장은 빠졌고 박정희 대령이 대신 참석했다. 김종면 정보국장, 양국진 장군이 참석했던 것 같고 인사참모도 나왔다.

그날의 의제를 유병일 부관이 설명했다. 후방에서 공비 토벌하고 있는 2개 대대(혹은 연대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음)를 부산에 보내 원용덕의 헌병대를 견제하자는 것이 의제의 요점이었다. 아주 간단한 병력 이동 같지만 어떤 결과를 빚는다는 것을 그곳에 모인 참모들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이 잘 알고 있었다. 2개 대대 약2천명의 전투 병력이 부산에 들어가면 불과 수백 명에 지나지 않는 원용덕 부대는 무력화될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계엄령의 실효를 뜻하며 야당이 우세한 국회에서의 자유스런 투표로 이승만이 실각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참모들은 이미 그 문제를 토의한 듯하였다.

투입 병력의 지휘관으로 박경원, 이용 대령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나의 느낌으로는 회의의 분위기가 대세, 즉 파병하는 방향으로 거의 굳어진 것 같았다. 나는 퍼뜩 이 총장을 생각했다. 그의 평소 지론이 정치에 군이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건 친위 쿠데타 세력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결과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모들은 날 보고 참모회의 의장으로서 이 총장 대신 유재홍 차장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유재홍 장군은 관사에서 자고 있었다. 밤2시쯤된 시각이었다. 대령과 소장 사이였지만 우리 두 사람은 어릴 때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다. 나는 유장군을 지프차에 태워 육본으로 가면서 상황 설명을 했다.

잘 하면 혁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성공 여부는 일선의 사정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단장급이 반발하면 수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전쟁수행에 차질이 생긴다. 성공해도 군이 혁명했다는 오점을 남긴다. 미군의 지지가 중요한데 밴 플리트가 이 총장을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이렇다 할 힌트를 준 건 없다. 이 총장은 가끔 「미군이 이런 생각하고 있는 진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지만…. 유장군은 참모회의장에 들어가 의장 자리에 앉고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김종면 정보국장이 맨먼저 의제를 설명했는데 「작전 참모도 가능하다고 합니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사참모는 일선 장병들의 사기나 군기에 영향이 가면 안된다면서, 한다면 신속하게 치러져야 하는데 그 판단은 인사 참모로선 못한다고 했다.

유 총장은 이용문 장군을 대신하여 참석한 박정희 대령에게 의견을 물었다. 박 대령은 싱긋이 웃더니 말하길 「그 문제는 상부에서 결심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한다면 지장이 없게끔 수배는 됩니다」고 했다. 지금도 박 대령의 그 웃음이 웬지 선명하게 뇌리에 살아 있다. 군수참모는 「그 문제는 G2(정보) G3(작전)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물으니 어느 참모도 「꼭 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참모들의 견해를 다 들은 유 장군은 「그러면 육본의 태도를 분명히 하겠다. 오늘 현재, 육본의 결심(군의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5월26일의 육본 훈령)엔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회의를 마치고 방을 나가는데 김종면 국장이 내 어깨를 툭치면서 「안 대령! 잘 됐수다」고 했다. 나는 「잘 됐수다」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참으로 길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무거운 분위기였고 국가 운명이 이 자리에서 크게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모두가 갖고 있었다』

안광호(安光鎬)는 그 뒤 줄곧 李총장을 아주 가깝게 모셨다. 미국 참모대학에서 함께 학생신분으로 공부할 때 슬쩍 『그때 발안자가 누구였습니까?』하고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대답 대신 『朴正熙 그 사람 인물이야』라고 이야기하더란다. 安씨가 동감이라고 했더니 『어떤 점이 그렇더냐?』고 물었다. 『그날 밤 회의에서 박정희 대령의 표정을 보니 질문에 답할 때나 유차장의 결심이 발표되었을 때나 표정이 꼭 같더군요. 그것을 보고 저는 그 분을 청탁(淸濁)을 같이 들여마실 수 있는 큰그릇으로 보았습니다』고 했더니 李장군은 『잘 봤다』고 했다. 5·16뒤에 安씨는 李장군에게 『이왕이면 그때 했을 걸…』하고 말했다가 호된 꾸지람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5·16의 도상연습

이상이 자료로 미루어 대구 육본의 일부참모들이 미8군과 협력하여 반李承晩쿠데타를 구상하고 있었고, 핵심부서인 작전국의 李준장과 朴正熙차장이 이 계획에 깊숙이 개입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계획의 한 관계자는 朴正熙대령이 이 사건으로 배운 바가 많았고, 그것은 5·16거사 때 큰 교훈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측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민주주의 지지의 원칙도 희생시킨다는 것, 한국에 권력의 실체가 확립돼 있는 한 미국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력으로 기존체제를 뒤엎을 의지는 없다는 점, 소수병력으로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는 것이 쿠데타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교훈을 그는 잊지 않았을 것이다.

7월4일 저녁 국회는 계엄군과 경찰의 감시 속에서 본회의를 열고 기립투표로써 발췌개헌안을 1백66명 참석에 1백33명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高貞勳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미군은 한국 전쟁의 수행에 있어서 한국의 국내정치 상황이 방해가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든지 하는 것은 다 명분이었고, 전쟁 수행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은 장면의 추대를 생각했으나 그 세력이 이승만 쪽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리니까 이승만 지지로 돌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이용문이 추진한 쿠데타 계획을 나중에 미군이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미국측의 태도표변에 의해 피해를 본 것은 미국에 의지하여(또한 순수한 정의감에 의해) 李承晩에게 반기를 들었던 육본 수뇌부였다. 개헌안 통과 직후 李承晩은 李鍾贊총장을 해임, 미국 참모대학으로 보내버리고(후임은 밴 플리트가 추천한 白善燁) 李龍文준장은 수도사단장으로, 金宗勉정보국장은 제주훈련소 부소장으로 쫓아버렸다. 金준장은 몇 달 안 있다가 김창룡(金昌龍)특무대장에 의해 동해안 반란 음모 사건을 모의했다고 해서 구속되었다(金준장은 실형을 살고 석방된 뒤 복권, 복직됨).그러나 朴正熙 대령은 차장으로 남았다.

1953년 1월17일 朴正熙대령은 근혜(槿惠)양의 첫돌을 며칠 앞두고 포병으로 전과, 광주포병학교에 들어갔다. 陸英修는 槿惠양을 포대기에 싸 안고 광주로 가서, 광주로 가서 동명동에서 셋방살림을 했다. 이때의 육군 포병감 신응균(申應均.육군준장예편)에 따르면 포병을 증강하면서 포병단장급으로 10여명의 고참대령들을 뽑아 교육을 시켰는데, 이때 朴正熙대령이 포병으로 넘어옴으로써 장성진급에도 유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병장교들은 군에서 비교적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포병장교들은 꼼꼼하고 정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무기는 짧을수록 배신한다」는 말을 잘 쓴다. 권총이 배신을 많이 하고, 대포, 즉 포병은 충직하다는 뜻이다. 朴正熙가 포병으로 전과함으로써 5·16을 성공하게 만든 포병인맥이 구축되는 계기가 이루어졌다. 5·16때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온 6군단포병단장 문재준(文在駿.당시 대령)을 비롯, 홍종철(洪鍾哲)·구자춘(具滋春)·백태하(白泰夏)·신윤창(申允昌)·이낙선(李洛善) 등 5·16 주동자들이 포병장교들이었다. 5·16 주동그룹은 아니지만 육군참모총장까지 오른 노재현(盧載鉉)·김계원(金桂元), 연합참모회의의장 심응선(沈應善), 세 번 내무장관을 지낸 박경원(朴璟遠)등 朴대통령이 중용한 이들이 포병인맥에 속한다.

미군 고문관과 사이 나빠

1953년 6월23일 具常(당시 영남일보 주필)은 朴正熙 대령으로부터 인편의 연락을 받았다. 『오늘 오후에 이용문 준장이 남원에서 대구로 날아올 터이니 퇴근하지 말고 기다렸다가 셋이서 같이 한잔하자』는 얘기였다. 그때 남원에 사령부를 두고있던 남부전투지구 사령관 李장군이 남원을 출발하기 전 朴대령에게 미리 전화 연락을 해둔 모양이었다.

『반내미 자식아! 죽기는 왜죽어!』 이런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장례식에서 친우 대표로 具常은 조사를 읽었다. 조사의 첫 마디가 『반내미 자식아! 죽긴 왜 죽어!』였다. 朴正熙를 매료시켰던 李龍文의 요절(당시 37세)은 한국의 현대사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까지 말하는 이들이 있다. 李龍文장군이 살았다면 朴正熙는 李장군을 추대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을 것이고, 李장군은 張都暎과는 달리 朴正熙를 장악하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으리란 가상에서 하는 말이다. 일선 지휘관보다는 참모로서 더 적격이었으리란 평인 朴正熙는 그 성격이 뒤에서 일을 꾸미기에 적합했다.

李龍文이 사라짐으로써 朴正熙는 그에 어울리지 않는 쿠데타 지휘관이 되어 전면에 나섰고 그 뒤의 한국 정치문화를 자신의 성격에 맞추어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1953년 7월 朴대령은 광주에서 제3군 포병단을 창설, 강원도 양구로 이동했다. 陸英修는 대구에서 서울 동숭동의 셋방으로 이사했다. 처제와 친정어머니도 따라왔다. 낡은 집의 방을 두 개 썼다. 천장이 낮아 이해 여름엔 무더위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서향받이 방에 뙤약볕이 들면 陸英修는 딸을 안고 동생이 쓰는 방으로 피신했다.

따라다닌 「숙군연루자」 꼬리표

3군단 포병단장 시절 朴단장은 포병단에 파견된 미 군사고문단장 베이커 중령과 사이가 아주 나빴다. 고문단은 10여 명의 장병으로 구성돼 있었다. 한국군 취사장에서 약 2백m 윗쪽에 미군들이 변소를 지으려고 했다. 朴대령이 이에 항의했다. 미군들은 분뇨가 지하수에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고 변명했다. 朴대령은 『그렇다 하더라도 밥짓는 데 가까이 변소를 만드는 것은 우리 풍습에 어긋난다. 한국 땅에선 한국 풍습에 따라야 된다』면서 끝내 변소를 못 짓게 했다고 당시 전속부관 원병오(元炳旿)중위(경희대 문리대학장)는 말한다. 베이커 중령은 미 8군의 포병부장 파커 준장에게 朴대령에 대해서 나쁘게 보고한 적이 있었다. 파커 준장은 朴대령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쁜 보고가 올라오고 있으니 유의하라고 朴대령에게 귀띔을 해준 모양이었다. 화가 난 朴대령은 베이커 중령을 불러 『왜 그따위 보고를 올렸느냐?』고 꼬치꼬치 따졌다. 원병오(元炳旿)중위에 따르면 朴대령은 미 고문단 장교들이 턱도 없는 참견을 하면 면전에서 『잠꼬대 그만 하라고 그래!』라고 쏘아붙였다. 통역장교가 그걸 적당히 통역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단다.

朴正熙에는 늘 숙군 연루자란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元부관에 따르면 朴대령이 3군단 포병단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부단장으로는 정봉욱(鄭鳳旭)대령이 같이 임명되었다. 鄭대령은 6·25때 인민군 포병 중좌로 참전했다가 국군에 투항해 왔었다. 미군측에선 비슷한 전력이 있는 두 사람이 같이 근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 부단장을 딴 데로 보내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朴단장은 『鄭대령이 귀순한 것은 북괴군이 유리할 때이다. 그러니 그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면서 같이 데리고 있으려 했으나 결국 鄭대령은 전보되었다. 朴正熙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鄭장군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元炳旿에 따르면 姜文奉 3군단장과 朴正熙포병단장은 서로를 어렵게 생각하는 관계였고 친밀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姜文奉은 나이는 朴正熙보다 여섯 살이 아래이고, 만주군관학교도 후배였지만 조선경비대에 일찍 들어간 덕분에 당시는 소장과 대령 사이였다. 元炳旿는 『朴대통령이 비록 상관들에게 예절바르게 처신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엘리트의식이 대단하여 대단치 않게 여기는 듯했다』고 말했다. 朴正熙는 대부분의 자기 상관들보다 나이도 많았기 때문에 경력·학력·지력·나이에서 모두 자기보다 떨어지는 상관에게 굽혀 지내야 하는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3군단 포병단장 시절 대부분의 참모들은 엄격하고 돈을 모르는 朴단장 밑에서 일하기를 꺼려했다. 잠시 근무하다가 인사운동을 하여 다른 데로 나가곤 했다고 한다.

그때 작전참모로 있던 김광돈(金光敦)소령은 충직하게 朴단장을 모셨다. 朴正熙는 대통령이 된 뒤 이런 방법으로 그 빚을 갚았다. 金光敦씨가 고참 대령으로 국방부 과장으로 있을 때 朴대통령이 순시를 나왔다가 한 구석에서 경례를 올려붙이는 그를 발견했다. 『어이, 김대령, 그 동안 뭘 하고 다녔나?』 金대령은 전직들을 쭉 외어댔다. 朴대통령은 다 듣고 나더니 『응, 할 것 다 했구나』고만 이야기했다. 군 고위층에선 그 말을 『할 것 다 했으니 장군으로 진급시켜라』는 뜻으로 재빨리 해석하고 金대령을 진급시켰다. 그는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뒤 창원기계공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