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반란 토벌 사령부에 참모로

1948년 8월17일 尹希重외 2백18명의 7기특별반 사관후보생들이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거의가 일제시대의 군 복무 경험자들이었다. 이주일(李周一.육군대장 예편·감사원장 역임) 정래혁(丁來赫.육군중장 예편·민정당 대표위원 역임)등이 끼여 있었다. 8월20일 이들 생도는 완전무장을 하고 학교 부근의 산을 돌아오는 약10㎞의 구보를 했다. 여기서 민영식(閔英植) 서청하(徐淸河) 두 생도가 일사병으로 죽었다. 그때 구보의 지휘자는 중대장인 朴正熙 소령이었다. 사고의 책임을 지고 중대장 직에 직위 해제가 되고 말았다.

이 사고는 석 달 뒤 그에게 닥쳐 올 위기의 예고편이었다. 1948년 10월19일 밤 8시께 비상 나팔을 신호로 하여 여수 주둔 14연대 반란이 일어났다. 이 연대는 제주도 공비토벌 작전에 출동하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연대내 남로당 조직책 池창수 상사가 주동이 된 이날 밤의 반란으로 20여명의 장교들이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14연대가 여수를 점령하자 순천에 파견돼 있던 2개 중대도 호응, 순천을 점령했다. 이 반란사건으로 1주일 뒤 현재 여수에서만 관민 1천2백명이 학살당하고 중경상자 1천1백50명, 이재민 9천8백명이 발생했다. 순천의 인명피해도 4백여 명에 이르렀다.

김점곤(金點坤)소령은 당시 육군정보국의 첩보과장 겸 전투정보과장이었다. 여수에서 반란사건이 나자 그 이튿날 미군 수송기편으로 광주로 내려갔다. 육군본부는 21일자로 광주의 5연단 사령부내에 반군 토벌사령부를 설치, 사령관에 육군총사령관인 송호성(宋虎聲) 준장을 임명하여 제2(여단장 元容德 대령), 제5여단(여단장 金白一 대령)을 지휘하게 하였다. 작전 부대로는 제 4연대 소속 3개 대대 등 10개 대대 병력이 배치되었다.

22일엔 여순지구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金點坤소령은 토벌사령부의 참모장인 白善燁중령(당시 육군정보국장)의 작전 및 정보참모로 따라 내려간 것이었다. 『며칠 있다가 元대령이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일종의 내근 데스크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령관과 참모장이 일선 전투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저에게 지시를 내리면 그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예하 부대에 대한 작전 명령, 보급 지원, 경찰과의 연락 등이 주 임무였지요. 저희 과에 와 있던 유양수(柳陽洙) 소위는 경찰과의 연락장교로 부렸고, 내과에 있던 이기건(李奇建) 소위도 불러 내렸지요.

그런데 제가 너무 바빠서 저를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그때 생각난 것이 육사 중대장으로 있었던 朴正熙소령이었습니다. 춘천 8연대에서 중대장인 저의 밑에서 소대장으로 있을 때 친밀하게 지냈거든요. 그때 연대장이었던 사람이 元토벌사령관이었기 때문에 朴正熙를 쓰라고 했어요. 제가 육군본부로 전문을 쳐서 육사에 있던 朴正熙 소령을 불러 내렸습니다. 그는 저를 보좌해서 작전관계업무의 내부정리를 맡아 했습니다. 상황판 정리, 작전관계 보고서 작성 등의 일이었지요. 아주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고, 이상한 낌새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전시기록엔 朴소령이 작전참모로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작전계획엔 깊이 관여하지 못했어요. 따라서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반란군에 유리하도록 부대배치를 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말이지요』

崔楠根의 비극

朴正熙가 광주의 토벌사령부에서 작전참모로 일하고 있을 때 만군의 선배이자 군내남로당 조직의 거물인 최남근(崔楠根)이 사령부로 붙들려 와서 朴소령이 보는 앞에서 신문을 받았다. 함경도 태생인 崔楠根은 만군 봉처눈관학교 출신으로서 해방때는 무장 한인독립단의 소탕을 임무로 했던 만군 산하 간도특설대의 신병교육대 부대장이었다. 몸집과 배포가 모두 큰 그는 여운형(呂運亨)의 건국동맹 군사분맹이 조직한 만군내 비밀결사에 들어 있었다. 이 조직엔 朴正熙도 관여했으므로 두 사람은 아는 처지였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만주로 쳐들어와 지휘계통이 혼란한 틈을 타서 崔楠根은 2백여 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백두산 기슭으로 들어가 『지금부터는 조선독립군이다』고 선언, 해방된 것도 모르고 며칠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그때 이 부대의 하사관이었던 박창암.朴蒼巖의 증언) 군사영어학교 출신인 崔楠根 중령은 여순반란사건이 났을 땐 마산주둔 15연대장이었다. 그는 하동방면으로 출동, 반란군의 지리산 입산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개 대대를 이끌고 10월21일에 지리산 부근에 도착했다. 이때 반란군의 기습을 받았다.

그는 제1중대장 조시형(趙始衡)소위(전 농림부장관)와 함께 반군에 체포되었다가 6일 뒤 하동군 화개장터에 나타났다. 탈출했다는 것이었지만 반군에게 체포된 상황부터가 의심스러운 점이 많아 광주의 토벌사령부로 압송되었다. 사령부에서 그를 신문한 것은 金點坤이었고, 그 신문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朴소령이었다. 金소령은 崔楠根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8연대에서 중대장으로 부임한 것이 崔중령이었다. 그때 이미 미군CIC는 崔중령의 사상을 의심, 미행하고 있었다.

金點坤은 崔楠根이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조선경비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무단이탈, 가족을 데리고 온다면서 두 달 동안 북한을 다녀 와 한때 도망자로 분류되어 있었던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직속상관을 조사하게 된 金소령은 예우를 해주었다. 계급장을 스스로 떼게 했다. 수갑도 안 채우고 잠도 장교숙소에서 재웠다. 백지를 주고 자술서를 쓰게 했다. 崔楠根은 자신이 실수로 붙들렸고 반군과 같이 행동하던 중 기회를 포착, 탈출했다고 썼다. 金소령은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에 비춰 崔의 진술은 허위라고 단정, 끈질기게 바른말을 하라고 요구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고문을 할 수도 없고 해서 金소령은 자신의 소견서를 봉투에 넣어 崔의 신병과 함께 서울의 정보국으로 보냈다. 육군본부에선 11월8일자로 崔楠根을 제4여단 참모장으로 전보발령했다. 그 며칠 뒤 광주에서 서울로 철수한 金소령은 白善燁 국장에게 인사차 갔다. 마침 그때 미군CIC장교가 들어오더니 崔楠根에 대한 정보자료를 내 놓았다. 그때서야 白국장은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金소령의 밀봉봉투를 꺼내 보더니 안색이 변하는 것이었다. 金소령은 제4여단에 전보를 쳐 崔참모장을 즉시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곧 답신이 왔는데 崔는 부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숙군에 열중하던 金昌龍대위를 불러 올려 崔를 수배하라고 지시했다. 며칠 뒤 崔楠根은 대전에서 붙들려 군법회의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고 1949년 5월26일 오후 2시 수색에서 총살되었다.

「한국전쟁사」(국방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군법회의에서 崔중령은 『반군인 김지회(金智會) 부대와 부딪쳤을 때 그를 죽일 수도 있었는데 같은 말이고, 같은 얼굴이고, 같은 함경도고 해서 인간적인 양심에서 그를 죽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손을 들고 합류하였다』고 진술했다. 탈출동기에 대해서는 『비록 좌익사상을 가졌지만 반란으로 어제의 전우들이 골육상잔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며, 또한 나를 아껴 준 상관이나 부하들을 배신할 수가 없어 탈출하였다』고 했다. 탈출 때는 金智會의 처가 묵인하여 겨우 빠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도망한 사람에 대하여는 『내가 이미 국군을 배반한 반역자가 되었는데 필경 중앙에 가면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이다.

그러면 재차 金智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2중의 배반자가 되기 때문에 군인생활을 청산하고 조용히 살기 위해서 도피했다』고 진술하였다. 그는 머리와 인간미가 좋아 상관·동료·부하들에게 선망적인 존재였음을 기화로 각 부대를 전전하면서 군내의 좌익세력 부식에 전심하였다」 金點坤은 崔楠根이 金智會 부대에게 납치, 탈출한 것은 모두 위장된 것이며 탈출은 별도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책략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의견을 달리 하는 이도 있다. 박창암(朴蒼巖)은 崔楠根이 동생 앞으로 남긴 유서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요지는 「남오야! 큰형은 좌익 손에 맞아죽고 나는 우익에게 죽는다. 이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는 잘 생각해 보고 아무쪼록 부모님에게 잘 해드려라」였다. 崔楠根의 사형집행을 지휘한 것은 만군시절 건국동맹 군사분맹의 지하조직에 같이 들어 있었던 왕년의 동지 文容彩헌병장교였다. 그날 사형집행장에는 崔楠根과 친했던 군 후배들과 미 고문관 하우스맨 대위 등도 입회했었다. 崔는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고, 문용채(文容彩)에게는 『文형! 나 먼저 가요』란 인사말을 남기고 총탄을 받았다고 朴蒼巖은 말했다.

순국의 제1파에 체포돼

「한국전쟁사」엔 이렇게 씌어져 있다. 「여순지구의 숙군은 육군정보국 소속의 빈철현(賓哲顯) 대위가 지휘하는 조사반(李世鎬 金昌龍 박평래.朴平來 양인석.梁麟錫 이희영.李熙永)이 광주에 도착, 약3천 명을 조사, 남로당 계열 1백50명을 색출하였다. 17명의 2기생, 60여명의 3기생, 그밖에 4천7백49명이 1949년 7월말까지 총살, 유기형, 파면 등으로 제거되었다」 숙군 과정에서 여순반란사건은 남로당 수뇌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14연대내 남로당 조직의 독자적인 행동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사건직후엔 남로당의 전국적인 반란기도라고 판단,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순사건은 조선경비대 시절 거의 방치되어 왔던 군내의 남로당 조직을 소탕하는 계기가 되었다.

金點坤은 11월 초순에 朴正熙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근방에서도 연쇄적으로 군반란이 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군 수뇌부에선 남과 북으로 협공 당하지 않나 하고 대단히 불안해 했다는 것이다. 金點坤은 숙군이 시작된 것은 상부로 부터의 지시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정보국을 중심으로 한 육군내부의 위기의식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나라가 넘어가고 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朴正熙는 광주에서 육군사관학교로 돌아온 지 며칠 뒤인 1948년 11월11일에 군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다. 육사7기생도의 졸업날이기도 했다. 朴正熙와 같은 육사2기생인 손희선(孫熙善)은 朴正熙등 육사 교관들이 여러 명 체포된 직후 후임 중대장으로 발령받아 부임했는데, 육사의 분위기가 살벌했었다고 한다. 朴蒼巖은 朴正熙가 체포되기 며칠 전에 朴正熙의 만주 군관학교 1기 선배인 최창윤(崔昌崙)을 따라가 서울 모처에서 그를 만났다고 한다. 朴蒼巖은 두 사람의 밀담엔 끼이지 않았으나, 『이때 崔선배가 朴소령에게 북한공산주의의 실상을 이야기해주었다. 朴소령이 체포된 뒤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된 데는 崔선배의 충고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崔昌崙은 朴正熙와 대단히 친했던 인물이다. 만군내 呂運亨 계열의 지하 독립운동 조직에 朴正熙를 추천한 것도 崔昌崙이었다. 그는 1946년 2월 呂運亨의 밀명을 받고 박승환(朴承煥) 朴蒼巖 박임항(朴林恒) 등 동지들과 함께 북쪽으로 가 공산주의자로 위장, 북한인민군의 창설요원으로 일하던 중 呂運亨과의 관계가 들통이 나 몽땅 투옥됐다가 朴承煥은 옥사하고, 나머지는 풀려나 남쪽으로 집단 탈출한 지 몇 달 되지 않을 때 朴正熙를 만난 것이었다. 崔昌崙은 이때 남로당에 포섭된 과거의 동지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고안주의의 실상을 전해주며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만군내 독립운동조직의 선배였던 崔楠根연대장이 여순반란사건 직전에 서울의 지휘관 회의에 참석차 올라오자 崔昌崙은 朴蒼巖을 데리고 가 담판을 했다고 한다. 열정적인 崔昌崙은 밤을 새워가면서 崔楠根을 공박, 결국 남로당에서 손을 떼겠다는 대답을 받아냈다는 것이 동석했던 朴蒼巖의 증언이다. 崔楠根은 『남로당에서 발을 빼면 군대에 더 있을 수 없다. 과수원이라도 하나 사서 조용히 살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 며칠 뒤 여순반란사건이 났고 崔楠根은 애매모호한 행동을 하다가 숙군의 회오리바람에 날아가버렸다. 朴蒼巖은 崔楠根의 그런 모호한 태도는 崔昌輪의 설득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는 사상적인 무국적자로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무고한 연루자도 많아

「한국 전쟁사」는 「숙군선풍의 화」란 항목까지 두어 숙군의 부작용을 솔직히 반성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조사방법이 증거주의가 아니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였다. 고문의 결과로 동기생이나 술 친구들을 끌어들여 무고한 장병이 고생해야 하는 실례도 있었다. 좌익계 조직책들은 포섭대상자 연명부를 만들었는데 이들 대상자가 혐의를 풀기까지는 심한 고문과 옥고를 치러야 했다. 적백을 가려내기가 힘들었고, 희생되는 마당에서도 애국가를 부르는가 하면 대한민국 만세, 李承晩 대통령 만세를 부르고 총살을 당하였으니 좌익불순분자들을 색출하기는 힘들었다」 숙군에 대해선 군수뇌부의 제동도 심했다. 정보국의 金點坤과장은 金昌龍이 중심이 된 수사팀의 작업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구속대상자의 결재를 받아내곤 했는데, 이응준(李應俊) 육군총참모장과 丁一權 참모부장은 꼬치꼬치 따지고, 또 구속자가 너무 많은 데 대해 난색을 보이곤 했다. 『사실 그때는 논리적으로 따지면 왜 조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기가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피의자가 누구를 찍으면 일단 구속수사를 했는데, 나중엔 세 피의자가 동일인물을 찍을 경우 구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숙군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던 간부들도 친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붙들려 들어가니까 수사팀에 대해 못마땅해 했습니다. 국외자와 당사자의 생각 차이는 큰 것이니까요. 무리가 없을 수 없었지만, 남북관계를 넓게 보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 악역을 기피할 수가 없었어요』

金昌龍이 자꾸 구속대상자 명단을 올리니까 채병덕(蔡秉德) 준장(3군참모총장)은 『야, 야, 이렇게 잡아 가두다간 너하고 나밖에 안 남겠다』고 농담을 하더라고 金昌龍은 부하들에게 털어 놓더라고 한다. 숙군이 시작되었을 때 金昌龍이 실무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계급 때문이 아니었다. 육사 3기생 출신인 그는 그때 1연대 정보주임으로 있었다. 金昌龍은 미 군정시대에 1연대에서 근무할 때부터 군내의 공산당 조직에 대한 정보를 수집, 그들을 일소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일제 때 관동군 헌병으로서 중국공산당의 지하조직을 수사한 경험, 해방 뒤 「악질전직자」로 분류되어 소련군에게 고통을 당한 체험등이 金昌龍을 공산주의자란 말만 들어도 피가 역류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순반란사건이 났을 때 金昌龍은 白善燁정보국장, 金安一 정보국 특무과장 등과 함께 미군 방첩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달간의 교육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金昌龍은 숙군의 실무에 뛰어들게 됐다. 군내 남로당 조직에 대한 정보와 수사경험이 가장 많은 金昌龍은 계급과 소속을 초월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숙군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가 소속된 1연대는 육본의 직할부대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어 白善燁 정보국장은 金昌龍을 직접 부렸다.

金點坤은 『金昌龍은 모든 사람은 공산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놓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부터 가려내는 일종의 네가티브 시스템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金昌龍은 상대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믿을 때 비로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며, 그런 상관이 아니면 복종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인연으로 나와 白善燁 국장은 그가 절대복종하는 상관이었고, 그 때문에 朴正熙에게 손대지 말라는 지시도 잘 들어주었다』고 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혹독한 신문

金點坤 소령은 朴正熙가 체포된 이틀 뒤에 그 사실을 알고 金昌龍 대위에게 『때리지 말고 조사하고, 자술서를 받아 보도록 하라』『때리지 말고 조사하고, 자술서를 받아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朴正熙와 거의 같은 무렵에 구속된 김도영(金道榮) 소령(육군대령 예편·육사 1기 출신)은 남산 근방에 이었던 헌병사령부 영창에서 1주일간 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넘어갔다. 그때 서대문형무소에는 1천여 명의 숙군피의자들이 2동의 건물에 수용돼 있었다. 이틀 뒤 형무소 내 조사실로 불려 갔다. 金昌龍 李漢晋 등 3∼4명의 수사요원들이 있었다. 벤치 같은 의자에 앉았다.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전기고문을 받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朴正熙였다. 『너도 불지 않으면 저렇게 당한다』고 겁을 주기 위한 것 같았다.

신문하던 한 조사관이 『너 이러다간 죽으니 우선 아무나 대어놓고 재판정에서 부인하라』고 귀뜀했다. 金道榮은 우선 살고보자는 마음에서 같은 연대의 부관장교 등 2명을 세포라고 찍었다. 이 두 사람은 그 뒤 구속돼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金道榮은 결국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돼 즉시 공비토벌에 투입되었다. 경인지구부대의 숙군책임자였던 차호성(車虎城) 소령(당시 특별부대 정보처장)은 서대문형무소에서 金昌龍·李漢晋 팀이 쓰던 조사실의 옆방을 역시 조사실로 쓰고 있었다.

車소령이 어느 날 金昌龍 방에 들어갔더니 朴正熙가 혼자 앉아 있었고, 조사관들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車씨(서울 녹번동 거주)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朴형! 이왕 자백하려면 깨끗이 털어놓으세요. 솔직히 불어야 속도 후련해질 것 아니오. 너무 걱정 마시오. 그랬더니 朴正熙는 이미 다 털어놓았다고 대답하더군요』 朴正熙를 신문하여 조서를 받은 이한진(李漢晋)은 일제시대의 학병출신으로서 우직했고, 힘은 장사였다. 5기생으로서 朴正熙와는 사제지간인 셈이다. 그는 숙군 뒤엔 특무부대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1군단 정보처장으로 전출한 직후 대령으로 제대했다. 말년엔 거의 실명하다시피 되어 고생하다가 몇 년 전에 사망했다.

수사관의 증언

金昌龍과 함께 숙군의 실무책임자였던 당시 육본정보국의 특무과장 金安一 소령은 육군준장으로 예편한 뒤 목사로 변신,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朴正熙를 직접 신문했던 金昌龍과 李漢晋이 죽은 지금 그는 육사동기생 朴正熙의 비밀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여순반란사건과는 朴正熙가 아무 관련이 없고 여순사건은 남로당 수뇌부의 지령에 의해서 일어난 게 아니고 14연대내 남로당 조직이 독자적으로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군내 남로당 조직을 단시간에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은 남로당 군내조직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공산당 조직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반공개적으로 활동한 때문에 정보가 많았고, 남로당 군사책 이재복(李在福)의 비서가 먼저 잡혀 방대한 조직명단이 입수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 朴正熙가 이념적인 공산주의자는 절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교적 솔직하게 이야기해 갔다.

『朴正熙는 붙들리자마자 이럴 때가 올 줄 알았다면서 자술서를 쫙 썼습니다. 이 자술서를 잘 썼기 때문에 그가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술서에 따르면 朴正熙는 형 相熙씨의 유족을 李在福이가 도와 朴正熙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와 알게 되었다고 했어요. 그의 자술서대로 수사를 해보니 소득이 많았어요. 또 朴正熙의 신문받는 태도가 아주 휼륭하여 조사관들을 감복시키는 바가 있었습니다. 담담하게 털어놓으면서도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수사에 협조한 사람은 거세된 환관과 같은 거지요. 그런 점에서 朴正熙를 살리자고 밑에서 건의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거지요. 朴正熙를 석방할 때 나, 金昌龍, 白善燁 3명이 연대로 신원보증을 했습니다. 이 3명이 그의 구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이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누가 살렸나?

白善燁(육군대장·교통부장관 역임)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어떤 인물을 통해 형무소에 있던 朴正熙가 꼭 할말이 있다고 해서 만나주었고, 그 자리에서 朴正熙는 도움을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첫 번 대면에서 白善燁은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그분의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白善燁은 朴正熙의 구명에 관계했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그때는 내가 살린다면 사는 겁니다』고 했다. 『안하무인이란 비판을 들었던 金昌龍도 내 명령엔 절대 복종했다』면서 朴正熙에 대한 심한 조사를 금지시키고 출소 뒤 그를 정보국으로 데려온 것도 오직 자신의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金點坤 당시 전투 정보과장의 기억에 따르면 元容德과 김일환(金一煥.만군대위·군사영어학교출신·국방차관 역임)도 朴正熙의 구명운동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군내에서 元容德의 발언권이 셀 때는 아니었지만 칼자루를 쥔 白善燁 정보국장에 대해선 말발이 먹힐 수 있는 관계였다. 白국장은 일제시대에 평양사범을 졸업, 교사로서의 의무적 복무기간을 채우지 않고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갔었다. 조선총독부 측에서 이를 문제삼아 입학이 취소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당시 만군 군의관이었던 元容德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어 白善燁은 만군장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던 것이다.

朴正熙와 육사2기 동기생인 송석하(宋錫夏.육군소장 예편)에 따르면 朴正熙는 그 뒤 白善燁보다는 元容德에게 더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朴正熙의 큰딸 朴在玉이 한병기(韓丙起)와 결혼할 때 주례를 선 것도 元容德이었다. 朴正熙는 5·16거사가 성공하자, 그때 김성주(金聖柱) 살해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元容德을 풀어주도록 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세배를 다녔으며, 元장군의 아들(육군장성)의 뒤도 봐주었다. 경인지구부대의 숙군을 책임지고 있었던 당시 특별부대(지금의 군수기지사령부에 해당) 정보처장 차호성(車虎城)은 『金白一특별부대 사령관도 朴正熙를 살려주도록 白善燁 국장에게 부탁하라고 나에게 지시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숙군 당시 蔡秉德 참모총장 보좌관 겸 미 고문단장 특별보좌관으로 있어 한미 군 수뇌부의 동향에 정통했던 고정훈(高貞勳.신사당 총재 역임)은 朴正熙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한 요인으로서 미군의 태도를 지적했다. 한국군의 산파역을 맡아 그 뒤 30여 년 동안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하우스맨 대위를 비롯한 이들 고문관들이 李承晩대통령에게 무리한 숙군이 양질의 장교들을 거세하게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는 것이다. 金點坤 교수는 朴正熙가 구원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수사에 협조했고, 조직표상으로는 상층부에 있었으나 활동이 전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