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없었다

13. 국방부 발표문 13페이지 : 동두천시 광암동 지하 21m에 땅굴 및 광장이 있다는 민간인 탐사자들의 주장에 따라 민간인 관계자, sbs 기자, 군 입회 하에 시추기 2대를 이용, 합동 시추했으나 이상 징후가 없었고 민간인 탐사자 김종우(金鍾又)씨도 sbs카메라 앞에서 착오를 시인했다. 지하 21m는 표토층 및 연암대로서 보강재 없이는 땅굴 굴설이 불가능한데 코아 확인 결과 보강재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고 동두천 지역이 땅굴 침투거리 상으로는 10km 이상 되는 곳이며 단시간(1시간30분)내 시추기 컴프레셔의 공기압 3백50PSI를 극복할 수 있는 완벽한 역 대책은 불가능하다.
지난 5월8일 sbs 취재팀과 군은 시추기 2대를 동원, 동두천시 광암동 지역에서 5개공을 시추했다. 추를 사용해 땅굴을 찾는 김종우(金鍾又)씨가 잡은 축선을 택했었다. 이날 밤 10시까지 작업했지만 땅굴을 못 찾았는데 金씨도 착오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으며 단층맥이 땅굴로 오인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하음 잡을 수 있다

14. 국방부 발표문 14페이지 내용:1992년 3월 26일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땅굴에서 월간조선 취재팀과 함께 정지용(鄭址龍)씨 청음기 성능 실험을 해봤다. 실험 결과 동파이프로부터 1m 떨어진 월간조선 기자와 군인의 대화음은 녹음되지 않았고 5m 떨어진 곳에서의 착암기 타격음도 잡히지 않았으며 2m 이격 된 곳에서의 착암기 타격음은 녹음이 됐지만 분석결과 기계음 파형이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鄭씨 청음기는 지하매질(암반)을 통과한 진동의 원형(기계음) 포착은 불가능한 장비다.

제 ○땅굴에서의 실험 결과에 대한 국방부 발표는 사실이다(월간조선 5월 호에 실험상황이 자세히 소개돼 있음). 2m 떨어진 곳에서의 착암기 타격음은 [통통통통―]하는 동파이프가 빠르게 울리는 듯한 소리로 녹음됐는데 이 소리를 한국 표준과학연구원에서 분석해 봤더니 기계음 파형이 아니라 진동에 의해 동파이프가 떨리는 소리라는 결과가 나왔었다. 기계음이 분명한 소리가 지하매질을 통과하고 나니 비(非) 기계음으로 분석된 셈이다. 이에 대해 음향 진동 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기계음이 그대로 전달됐다면 지하 매질을 통과했더라도 비 기계음으로 바뀌기는 어렵다}면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분석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발표는 김포 후평리와 동두천시 광암동 시추 현장에서 鄭씨 청음기로 녹음된 민간인 시추기 작업 소리를 분석해보니 기계음 파형이 나왔다는 내용(국방부 발표문 8페이지)과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실험과 종합적인 취재 끝에 내린 월간조선과 sbs취재팀의 공통된 결론은 鄭씨의 청음기가 지하음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화음 녹음 실험은 경기도 연천군 구미리에서 녹음됐다는 사람 말소리와 관련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땅굴관통 시추공으로 내려진 청음기가 한번은 땅굴 천장 허공에 뜬 상태에서, 또 한번은 청음기를 위로 조금 올려 청음기 끝 부분이 땅굴 안에서 보일락 말락하게 한 상태에서 실험해 봤지만 말소리는 녹음되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 월간조선 취재팀이 鄭씨 집에서 鄭씨 청음기를 뉘어 놓고 청음기 윗부분의 테이프가 감긴 부분 가까이(50cm 정도 이격)에서 {아}하며 소리를 지르자 그 소리는 그대로 녹음이 됐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의 한 소리전문가는 {소리에는 물체를 그대로 [투과]할 수 있는 특성이 있는데 동파이프의 경우도 투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말 땅굴을 파고 있더라도 우리로서는 현장의 지하조건을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 목소리가 녹음된 환경을 알 수 없으며 따라서 단 한번의 실험만으로 鄭씨 청음기로는 땅굴 속의 사람 말소리를 잡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돌 조각 낙하소리로 오해 여지?

15. 국방부 발표문 15페이지 내용 : 정지용(鄭址龍)씨의 청음기는 군 청음기에 비해 많은 잡음이 잡힌다. 군은 시추공 내부가 안정된 후(2∼7일 후) 녹음하지만 鄭씨는 시추작업 완료 즉시 녹음해 돌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 등 잡음이 계속되며 옆에서 시추할 때도 녹음을 해 잡음이 많이 들어간다.
이는 군 관계자들이 취재팀을 만날 때마다 강조했던 내용이다. 시추 직후 시추공 내부는 돌 조각이 떨어지고 물이 차 오르는 소리 등으로 소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둔감한 鄭씨 청음기는 웬만해선 이런 소리를 잡지 못하며 돌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의 경우 소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鄭씨가 녹음했다고 주장하는 기계음과는 확연하게 구분해 낼 수 있다. 잡음 문제는 오히려 수십만 배 증폭으로 지상의 소리가 새 들어가고 시추공 내 돌 조각 떨어지는 소리를 착암기음이 나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처럼 크게 잡곤 했던 군 청음기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적용시켜야 할 것 같다.

과장된 최신장비

16. 국방부 발표문 17페이지는 군의 땅굴탐지 능력에 대해서 [인공위성 측량으로 정확한 시추공 위치 판독(10계단 좌표)·완벽한 시추공 편차 측정(mm 단위) ·시추공간에 위치한 공동 1백% 포착가능]이라고 자랑했다. 제한사항으로서는 [1970년대 말 이후 땅굴 정보 수집의 제한, 탐지장비·전문인력 및 예산부족]을 들면서 기본 시추계획에다가 민간인들의 진정을 처리하자면 추가적인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간인 탐사자들은 반론문을 통해서 이런 주장을 했다.
[① 그렇다면 탐지과는 지난 20년 동안 1만 공에 가까운 시추를 했음에도 (또 땅굴이 20여개나 남아있다 면서도) 왜 단 한번도 땅굴을 찾아내지 못했는가(1∼4호 땅굴은 탐지과의 탐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귀순자 등의 특수정보 제공에 의해서 발견된 것임).
② 제3땅굴의 경우 세 구멍의 관통을 하고서도 관통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나?
③ 제3땅굴은 그 땅굴의 측량기사인 김부성(金富成)씨가 귀순하여 신고했는데도 발견하는 데 3년이 걸렸으며 제4땅굴도 특수정보를 받고 발견까지 7년이 걸렸는데 과연 군의 탐사능력이 만능이고, 민간인의 탐사능력은 믿을 수 없단 말인가? 우리는 땅굴 탐사에 관한 한 모두가 그 탐사기술의 한계와 지하조건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지하 기계음을 듣고도 시추를 하여 땅굴을 찾지 못했다면, 기술의 부족을 탓해야지 기계음 자체를 부인하여 땅굴이 없다는 식으로 자위해서는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군의 장비가 시추공의 편차를 아무리 정확히 측정한다고 해도 시추공이 목표를 벗어나는 것을 막는 기술은 아직 없으므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추지역의 지하공동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다는 내용은 엄청난 과장이다. 군은 이번 발표 때 최신장비를 갖고 있음을 특히 강조했으나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알게 되면 크나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병 주고 약 주고

17. 발표문은 [향후대책]에서 [땅굴발견을 위한 군·민 합동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신고센터운동
▲전문요원으로 위원회 구성
▲민간기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 탐사자들의 집요한 노력을 당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또 냉소적인 태도로써 부정한 뒤에 나온 것이라 전혀 진실성이 없어 보였다. 보통 때 같으면 높이 평가될 수도 있었을 군의 전향적 자세는 언론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은 채 묻혀버렸다.

민간인들도 [우리의 반론]에서 여러 가지 요구와 호소를 내어놓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저희들은 군 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①軍과 민간인 탐사자 사이의 공개토론
②우리가 갖고 있는 녹음테이프 전체에 대한 종합적 분석

저희들은 언론에 요구합니다.
①우리가 갖고 있는 녹음테이프를 전부 공개할 테니 이의 진위를 밝혀줄 것.
②한양대 오재응 교수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은희준 박사의 상반된 분석결과를 취재하여 시비를 가려줄 것.
③ 군은 최근까지도 저희들의 녹음테이프는 조작했다고 주장했는데 언론이 저희들을 상대로 조사하여 그 진위를 밝혀줄 것.

저희들은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①군에서는 북한땅굴은 이미 휴전선에서 발견된 네 개의 [단거리 전술용 땅굴]만 있고 1980년대 이후엔 굴착을 중단했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노리는 [장거리 전략 땅굴]이 서울근교에까지 들어와 지금도 계속 뻗어가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엔 전방에서 지하소리가 많이 잡히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 후방의 민간인 거주지역에서 지하소리가 많이 잡히기 시작한 것도 장거리 땅굴의 서울접근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② 이제는 군에게만 땅굴탐사를 맡겨둘 수는 없고 모든 국민들이 나서야 하겠습니다. 땅굴징후 신고, 관련 기술 제공, 탐사에 따른 아이디어 제공 등의 방법으로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저희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우리의 생명, 우리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땅굴을 찾고 있습니다.
③국방부 발표문은 {민간인 탐지자 등이 제시한 지점에 관한 한 땅굴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했습니다만 저희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걸고서 기필코 북한 장거리 땅굴을 발견, 국방부 발표문이 실수임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김일성(金日成)과 싸우기 전에 내부의 벽과 먼저 싸워야 하는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이랬어야 했다

국방부 발표문을 조목조목 분석·검증해 보니 군의 발표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론으로 귀착되었다. 즉, 국방부 발표문 가지고서는 정지용(鄭址龍)씨 등이 녹음한 소리가 지하 기계음이 아니라는 설득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하 기계음임을 부인하려면 鄭씨가 갖고 있는 2백 개 이상의 녹음테이프 전부를 제3자인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에서 분석해야 한다. 군은 민간인들의 취약점을 찾는 데 주력하다가 보니까 그런 종합적인 조사를 할 생각을 내지 못했고 이제 와서는 결과적으로 鄭씨 녹음테이프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발표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 발표문을 통해서 민간인들의 청음기가 지하음을 녹음할 수 있음이 아주 역설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들이 문제의 지하 기계음을 조작하지 않았다면 녹음된 소리를 지하 기계음으로 봐야 할 상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이 발표문에서 군은 그 동안 사석에서 주장해오던 [조작설]을 철회하고 거꾸로 민간인들의 [남다른 관심과 투철한 안보의식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으니 발표문의 논리에 근거하더라도 지하 기계음임을 부인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민간인들이 기계음을 조작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감옥으로 보내야지 높이 평가해줄 이유가 없다).

국방부가 그렇게 단정적인 부인발표를 하려면 민간인들의 녹음테이프에 들어 있는 기계음을 하나도 남김없이 부정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추었어야 했다. 단 하나의 지하 기계음도 부정되지 못한다면 북한 장거리 땅굴의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국방부 발표문을 보면 단 하나의 지하 기계음도 제대로 부인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국방부 발표문은 이랬어야 했다. [민간인들이 제시한 녹음 테이프의 소리가 전부 지하 기계음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하음의 성격은 워낙 복잡하고 지하소리만 갖고서는 북한 장거리 땅굴이란 단정을 하기는 어려우므로 우리 군은 민간 탐사자들과 손잡고 북한 장거리 땅굴의 서울근교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는 탐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여유 있게 나왔더라면 대 육군은 민간 탐사자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축적된 경험을 인수, 발전시키면서 모범적인 민군 협조체제를 구성, 공동의 목표를 향해 사이좋게 나갈 수 있었을 것이고 끝없는 말싸움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군이 지금부터라도 장거리 땅굴을 부인해 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후방지역에서 감지된(그러나 보고가 안 된) 이상 징후들을 모두 수집, 정리한다면 땅굴추정 축선 이라든지 기간별 특성 따위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여지를 두지 않은 군의 단호한 부인으로 이제부터는 어차피 서울근교에서의 땅굴탐사는 민간인 몫이 돼버렸다.

장거리 땅굴에 대한 군 수뇌부의 부정적 시각이 널리 알려짐으로써 이제는 후방지역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더라도 군인들은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군대처럼 경직된 조직은 상부의 견해에 맞춰가는 식으로 하부가 움직여 가는 속성이 있다. 민간인들도 이제부터는 군부대에 땅굴징후를 신고하지 않고 경찰이나 민간 탐사자들에게 신고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에서는 땅굴을 찾는 데 자신의 기량과 정성을 바치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어 정지용(鄭址龍)씨 등 민간 탐사자들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월간조선과 sbs에는 땅굴징후제보자, 땅굴 찾는 데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사람들, 성금을 내겠다는 이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많은 국민들도 국방부 발표에 유감과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단호한 발표가 그렇게 효과를 거두는 것 같지도 않다.

기계보다 인간을 믿어야

이번 취재를 통해서 월간조선 취재반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군인과 기자들 가운데서 땅굴문제와 직접 부딪쳐 씨름해 본 이들은 대체로 민간인 탐사자들을 믿게 되고 지하 기계음과 장거리 땅굴의 가능성을 수긍하게 되는 데 반해서 그런 현장감각이 없는 이들, 주로 책상에서 보고를 받는 간접 체험자들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녹음 테이프의 생생한 기계음과 현지주민들의 실감나는 증언들을 직접 들어 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는 넘기 힘든 인식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었다. 군 수뇌부가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결핍돼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직접적인 현장감각일 것이다. 결정권자가 거대하고 복잡한 관료체제의 포로가 되고 왜곡되기 쉬운 보고서나 최신장비를 맹신하게 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게 된다.

한양대 오재응(吳在應)교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소리분석기계이다. 사람이 듣고 느껴서 지하 기계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분석기계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고 했다. 제2땅굴 발견자인 정명환(鄭名煥)장군도 {나는 지하에서 이상한 기계작업 소리를 들었다는 현지주민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군대가 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굳이 저렇게 나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군은 그 동안 민간인 탐사자들의 모든 것을 의심해 왔다. 의심이란 것은 끝이 없고, 충분한 해명도 있을 수 없다. 의심 앞에선 아무 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일이 제대로 풀리려면 군과 민간인 탐사자들 사이의 의심증과 인간적 불신부터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해소작업은 힘센 쪽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 이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쯤 주 불가리아 대사인 김재수(金在洙)씨(육사12기 출신의 예비역 준장)가 월간조선 5월 호의 서울근교 지하 기계음 관련 기사를 읽고 월간조선부에 편지를 보내 왔는데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재수(金在洙) 대사의 편지

[(전략)정지용(鄭址龍)씨라는 분 뵙지는 못했지만 정말 애국자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장하는 것 다 사실일 겁니다. 아무리 과학장비가 발달이 되고 해도 인간의 경험과 느낌, 이것들을 무시 못합니다. 이것을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鄭씨의 주장, 주민들이 들은 이상한 소리들, 발견이 안됐다고 해서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5감에 기본을 두지 않고 과학기계로만 땅굴을 찾아낸 적이 있습니까. 저는 1971∼72년, 제2땅굴이 발견된 바로 그 지역에서 대대장, 사단 정보참모 근무를 해서 그 지역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73년에는 대령진급이 되어 차 상급 부대인 5군단 정보참모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단에서, 참호에서 경계근무중인 초병이 발 밑에서 폭음 같은 것을 들었는데 아마 좀 졸다가 멀리서 들리는 포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하여간에 참고로 보고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아무리 병사가 설사 졸았다 하더라도 발 밑에서 나는 소리를 구분 못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지역으로 달려갔습니다. 중대장의 말을 들어 봤습니다. 그 초소 바로 뒤 돌산 위에 중대장실이 있었는데 책상 위에 놓인 물그릇의 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초소와 중대장실 이외의 곳에서는 전혀 그런 징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폭음 같은 소리를 녹음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 소리가 또 났을 때 녹음한 테이프를 들어보았습니다. 폭음소리 같지 않은 [딱딱딱…] 꼭 햄머로 돌을 치는 소리 같았습니다. 기계로 들은 것도 아니고 약 1.5m 정도 판 지상의 경계호 속에서 병사가 귀로들은 소리를 녹음한 것이었습니다.

군단장(당시 유병현 중장)께 보고를 했습니다. {그것 참 이상한데요. 정보참모, 철저히 규명을 해보시요}하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분이 지휘관으로 계셨기 때문에 용기를 갖고 일을 했지 {그럴 수가 없지요}하고 묵살해 버렸으면 그걸로 끝났을 겁니다. 저는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며 분석을 했습니다. 근거라고는 병사가 들은 소리, 녹음 테이프, 그 전후방의 지형, 전술, 전략적 중요성, 북쪽 지역의 항공정찰 사진 등을 토대로 했을 뿐입니다. (중략) 상황판을 휴대하고 군사령부에 가서 관계참모와 수뇌부 장군들 앞에서 상세한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다들 듣고 나서 {이 사람아 북괴군이 무엇 할 짓이 없어 지하 1백m에 4km나 되는 굴을 파고 있겠는가?}하면서 한 마디로 묵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맥이 빠져서 군단에 돌아와서 보고를 드렸더니 {군사령부에서 안 믿으면 우리끼리라도 탐지활동을 계속합시다}하는 군단장님의 명령이 있어 그때부터 예상 출구지역에 병력을 깔고 차차 우리측 지표면으로 굴착해 나오는 것에 대비해 1m 내지 2m 지하의 소리를 들으려고 의사들이 쓰는 청진기를 동원해 청음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는 굴착기도 없었고 청음 장비라고는 없었을 때입니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가 저는 이태리 무관시험에 합격이 되어 합참으로 전속이 되어 서울로 나와 있었는데, 하루는 육군본부 정보참모 부장실에 친구가 있어 들렀는데 부장실로 상황판을 들고 장교들이 드나들며 야단법석이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귀순 월남자 김부성(金富成)씨가 땅굴을 파고 들어오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내 말을 믿을 때가 오나 보다}하고 생각을 했습니다.(중략)

제가 왜 이런 말씀 드리냐며는 그때 그 병사가 청음기계도 아닌 귀로 또 지하 1m도 아닌 지표면에서 들은 폭음 같은, 발 밑에서 나는 소리가 결코 착각이나 허위가 아니었으며 그것이 상급 부대로부터 묵살을 당했거나 또 김부성씨의 제보가 없었으면 엄연히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파놓은 많은 땅굴들을 통해 기습공격을 당해 대한민국이 손쓸 사이도 없이 적화통일의 제물이 되었을 때나 뒤늦게 이 사실이 진실로 밝혀질 것이며 그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땅굴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해석이 구구 각색이지만 김일성이가 바보가 아닙니다. 전술, 전략적으로 이 지역에는 없다, 왜 하필 이리로 파고 들어오겠는가 하는 등등 다 소용없습니다.

[땅굴 굴 착중] 확신

지하 1백m 밑 4∼10km의 땅굴, 처음에 누가 상상이나 하고 믿었겠습니까. 군의 정밀장비에 부정적으로 나타나니까 아니다… 그런 것도 꼭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지용(鄭址龍)씨가 설치한 간단한 장비나 주민들이 직접 들은 소리나 징후들,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그 후 1970년까지 부사단장을 하면서 또 땅굴 탐지의 책임을 맡고 1년간 분석, 시추 등 땅굴탐지에 미치다시피 했습니다. 鄭씨 등 여러분들이 겪은 것 그대로입니다. 군의 수많은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서 시추도 몇 백 개를 하면서 별별 방법을 다 써봤습니다. 10m 간격으로 파놓은 시추공을 통해 미군의 최신장비라는 것으로 전자기파를 쏘아 나타나는 그라프에 틀림없는 땅굴징후가 나타났다 해서 좋아서 밤새도록 축제분위기… 다음날 파보고 폭파해보고 별 별짓을 다해봐야 무엇이 나타납니까. 결국 최신정밀 장비도 꼭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도 김일성이는 몇 개가 발견이 된다 해도 몇 개를 성공적으로 은밀히 파놓으면, 유사시에 그것을 이용, 기습공격을 하면 우리는 제대로 방어 한번 못하고 무너지는 결과가 될 것이며 金日成이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그것을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金日成은 어느 정도 땅굴작업이 성공되고 남한이 정치적, 도덕적으로 타락이 되고 경제적으로 곤란해지고 좌경학생들이 사회와 치안을 혼란시켜 후방을 교란시키면 일거에 기습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완성된 핵무기로는 외세의 개입을 막는 위협의 수단으로 쓰고 만약에 적화통일에 실패할 때 휴전의 카드로 써먹을 것입니다.

정(鄭)씨 등 땅굴 탐사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정말 애국자이고 이 사람들을 헛소리한다거나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보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 사람들이 지목한 땅속에서 지금 틀림없이 땅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겁니다. 부정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군에서도 물론 막대한 인력과 예산, 우수한 장비로 탐색을 계속하고 있겠지요. 그러나 막상 전문가가 없습니다. 하다가 지치면 포기하고 지휘관이 갈리고 종사인원도 교체되고… 등등 취약요소가 많습니다. 오히려 몇 년씩 계속해서 종사하는 민간전문가들의 산 경험과 지식이 필요할 겁니다.

이 사람들은 반면, 인력과 예산, 활동범위 등이 제한되는 취약점이 있을 겁니다. 땅굴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꼭 찾아내야 합니다. 군도 민간 전문가를 흡수해서 전담기구를 그야말로 인적, 물적 면에서 결합, 장기적으로 꾸준히 탐색을 해야 합니다. 북한의 역 대책에 말려들어 징후가 뜸하면 아니다, 없다 등등으로 손쉽게 결론 내버리지 말고 말입니다. 핵무기 못지 않게 무서운 북한의 땅굴을 망각해 가고 있는 이때에 鄭씨 등 민간인들이 그것들을 찾아내려고 사재를 털어 가며 애쓰고 있고 또 월간조선에서는 취재팀을 편성, 심층취재를 하셔서 어느 전문가 못지 않게 이를 파헤치고 정확한 판단을 해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쳐주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신 것은 정말 구국의 큰 역할을 하신 것이며 이에 대해 다시 한번 경의와 감사를 깊이 드리는 바입니다(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