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기습한 나라의 수두로 비록 소규모 병력이 들어온다 해도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대 사변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5·16과 12·12사태가 증명하고 있다. 5·16 쿠테타는 박정희(朴正熙) 소장을 지원하는 공수부대, 해병여단, 포병부대 4천명이 서울로 진입하여 성공한 것이다. 朴소장에 반대하는 수십만의 1군은 너무 멀리 있었던 것이다. 12·12사태 때도 육본 측과 보안사 측이 팽팽히 대치해 있는 가운데 전두환(全斗煥) 장군 측에 가담한 박희도(朴熙道) 준장이 김포의 공수 1여단 병력 불과 1천여 명을 이끌고 행주대교를 넘어 서울로 들어와 국방부와 육본을 장악함으로써 대세를 결정지었다. 서울 근교 땅굴이 위험한 것은 바로 한국의 심장부를 직격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12·12사태 때 기습을 당해본 사람이요 군의 대표적인 전략가였던 정승화(鄭昇和) 전 육군참모총揚?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정승화(鄭昇和) 예비역 대장은 북한군이 장거리 땅굴을 통해 서울 근교에 수 개 사단 규모의 특수부대를 일시에 투입할 경우, 『우리 군은 효과적인 대응이 거의 불가능하며, 적이 땅굴작전과 동시에 전 전선에서 남침하면 미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패전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고 말했다. 鄭장군이 피력한 견해를 요약한다. 『장거리 땅굴을 통해서 대병력을 서울 근교에 기습적으로 집중 투입하면 우리 군은 분산돼 있으므로 이를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적군은 땅굴 출구에서 교두보를 확보, 사단 규모의 정예병력을 쏟아 붓는데 우리는 분산된 병력을 소집하고 집중시키는데 개전 초기의 결정적인 시간을 허비해 버릴 것이다. 더구나 적은 야간에 국군복장을 하고 나와 통신·지휘체계를 혼란시키고 미?설정한 목표물을 신속히 점령할 것이므로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독사가 전진할 때는 개구리가 아무리 많아도 저지할 수가 없다. 개구리들이 뭉쳐서 쇠뭉치처럼 독사에 저항해야 하는데 적군은 그런 병력 집중의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 특수부대의 기습능력은 이스라엘이나 독일군 이상이다. 서울 근교에 나타난 북한 특수부대가 서울의 남쪽으로 우회하여 포위하고 북한의 대병력이 전선을 돌파하면 1백만이 넘는 남북한 병력이 좁은 지역에서 섞여버리므로 공중폭격의 효과도 약해진다. 6·25 때는 한국이 서울을 빼앗기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은 그럴 수가 없다. 배후에서 소규모의 적이 나타나도 전방의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진다. 1951년의 중공군 춘계 공세 때 나는 동부전선 3사단 18연대의 대대장이었는데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있다. 한국군 3사단과 9사단 보급로를 감제하는 고개를 중공군이 배후로 침투, 점령해 버리자 2개 사단이 당황하여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발을 떼니까 후퇴가 아닌 붕괴로 변해버렸다.
기습의 공포감 때문에 순식간에 지휘체제가 마비되고 조직이 해체되면서 군대가 군중으로 변해 제멋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우리 대대를 인솔, 방대산을 기어오르는데 다른 병력과 섞이게 되었다. 지휘체제가 무너진 「군중」속에 섞여버린 내 부대를 옆으로 빼내는 데 혼이 났다. 나중에 점검해보니 그 사이에 수십 명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배후의 적은 이처럼 무섭다. 북한이 조기에 서울을 점령해 버리면 미군이 개입할 명분도 약화될 것이다. 분단국가가 상호간의 힘 겨루기를 통해 민족통일을 이룩했는데 미국이 개입해서 다시 분단시킬 수 있겠는가. 북한은 남한을 정복하자마자 대대적인 통일 축제를 벌이고 미국에 대해서는 추파를 던질 것인데…. 우리 대통령도 몇 년 안에 통일이 된다고 하고 김일성은 1995년에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단기간 내의 통일은 무력 통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앞으로 몇 년을 잘 버티면 통일에의 결정적인 주도권을 쥐게 되는데 이 결정적 시기에 해이해지면 오히려 먹힐 수가 있다. 이런 때의 국가 지도자는 문제를 직시할 줄 아는 현실주의자여야 한다.
1978년 가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군단장 이상 지휘관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다과를 베푸는 자리에서 실토한 이야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옛날에는 임진왜란과 6·25에 대비하지 못한 조정과 정부를 원망 많이 했는데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애. 바다 너머 일본의 동향이 수상하다고 사신을 보낸 조정이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돌아온 사신이 정사(正使)는 위험이 있다, 부사(副使)는 침략의 위험이 없다고 보고하니 조정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겠나. 만약 전쟁의 위험이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태평성대에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들을 착수해야 하고 위험이 없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면 편하게 지낼 수가 있으니 전쟁이 안 난다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6·25 때도 한국군은 전쟁이 임박했다고 하고 미국은 걱정이 없다고 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어떻게 했겠나. 내가 요사이 북한의 위협을 국민들에게 호소해도 안 믿으려 하니 우리 옛 조정의 고민을 이해할 수가 있겠어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것인가의 여부는 김일성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데 그의 대남 무력통일 전략이 바뀌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들은 남한과의 전쟁이 한 달 이상 끄는 장기전으로 갈 경우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철저히 기습에 의존하는 단기전을 구상하고 있으며, 장거리 땅굴은 그런 전략의 필수품이다. 대부대를 공중이나 배로 후방에 침투시킨다는 것은 손실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완전한 엄폐가 가능한 땅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경보병부대의 전력
아웅산 폭파의 경력
북한이 땅굴을 통한 기습을 할 때 투입할 병력으로 우리 군이 보고 있는 것은 경 보병부대이다. 이 특수부대의 전력을 알아본다. 약 1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해 세계 최대규모로 알려진 북한 특수부대는 경 보병형 여단(경 보병·공수·상륙·정찰), 사단 경 보병 대대, 제병(諸兵)연합여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땅굴을 통한 침투가 유력시되는 부대는 경 보병 정찰여단과 사단 경 보병대대이다. 경 보병여단과 사단 경 보병대대는 북한 특수부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병력 4만4천∼4만8천명) 주요시설 점령·파괴, 후방교란 등 일반적인 특수부대의 임무를 수행한다. 1만7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정찰여단은 평시에는 대남 침투와 정보수집, 전시에는 후방침투, 방어작전 교란을 노리는 정예부대이다. 모두 전방에 배치돼 있는데 1983년의 미얀마(구 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 1978년의 최은희(崔銀姬)씨 납치사건은 이 부대원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
북한이 경 보병 부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특수부대를 가지게 된 것은 경 보병 부대를 중시하는 김일성(金日成)의 군사전략 때문이다. 金日成은 1969년에 열린 인민군 당 4기4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방어전과 정규화부대, 유격부대의 배합작전을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소부대도 필요하고 대부대도 필요하다. 경보병 부대가 정규병과 배합작전을 잘해야 한다…. (6·25)전쟁 시기 문경고개에서 경 보병 련대가 단 3개만 있었으면 적을 부산까지 내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략상 경쾌한 부대와 소부대 또는 정규부대와 유격전을 배합하여서 산악전을 잘 할 수 있는 무기로써 무장하고 이러한 전술로써 적을 소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비 반충포(무반동포), 81mm 박격포, 기관총만 가지면 싸울 수 있다. 특히 야간 전투, 산악전투, 우회조치를 실현할 수 있는 부대들을 조직하고 훈련과 전투준비를 해야 한다」
한편 지난 1988년 미국의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데즈가 지은 「북한군 특수부대」는 북한 특수부대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참고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비밀 해제된 미군의 각종 문서, 세계 각국의 공개정보 등을 종합해 만든 것으로 북한 특수부대의 역사·임무·편성·전술·능력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분석이 우리 군에서 평가한 것과 똑같다고 볼 수는 없으나 군에서도 가치있는 자료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이 서적과 경 보병부대 출신 귀순자 이영선(李英善)씨의 증언을 중심으로 북한 특수부대 현황을 살펴본다.
미사일도 장비
「북한군 특수부대」에 따르면 경 보병 여단은 북한 최전방 군단인 1·2·4·5군단에 각 1개 여단씩 배치돼 있으며 각 여단의 병력은 3천8백 명이라고 한다. 사단 경 보병 대대는 북한 지상군의 각 보병·차량화보병·기계화보병 사단에 1개 부대씩 편성돼 있다. 경 보병 대대의 병력은 4백 명 정도다. 경보병 부대원들은 임무의 성격상 소총, 기관총, 대전차 로켓 등 소화기 위주로 무장해 전차·대포 등 중화기를 갖추고 있진 않지만 웬만한 펀치력은 갖고 있다. 3km 떨어진 전차까지 파괴할 수 있는 AT―3 대전차 미사일, 저공 비행하는 항공기를 공격할 수 있는 SA―7 단거리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등은 경보병 부대가 갖고 있는 강펀치들이다. 경보병 부대원들은 세계의 여느 특수부대원처럼 후방침투·교란, 주요시설 점거·파괴 등을 주임무로 한다.
귀순자들과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공격 우선 순위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핵·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육무기, 군단 급 이상 규모의 주요 지휘통신시설, 미사일 등 중요 군사장비들, 일정 시간 동안 작전상 필요한 지역 확보, 중요한 애로(隘路) 확보를 통한 기동로 확보 등의 순서라는 것이다. 경 보병 부대 출신 귀순자 이영선(李英善)씨는 『북한군은 특히 남한과 미국의 미사일을 중요시해 공군기지 전차부대 등을 공격하러 가다가도 미사일이 발견되면 도중에 목표를 바꿔 미사일을 우선 파괴하라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이들 부대의 훈련은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들만큼 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李씨는 『북한에선 「경보병 부대원 생활을 10년 하면 뼈 속의 인(燐) 성분까지 말라 버린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훈련이 엄격하고 고되다』고 밝혔다. 황해북도 평산군 싸리재 일대에 위치한 가로, 세로 8×8 km인 훈련장엔 서울 광화문 일대, 옛 중앙청을 축소한 모형과 랜스·호크 미사일, 어네스트 존 등의 모형이 있다. 그 옆에는 전차·비행기·기관차 폭파훈련장도 있어 실제 남한 목표물을 파괴하는 듯한 감을 가지고 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자폭(自暴)하도록 교육
경보병 부대원들은 남한 시설·무기를 파괴하는 것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노획한 남한 무기를 어떻게 다루는가 도 훈련받는다. 소총, 기관총뿐 아니라 남한 지뢰, 대전차로켓을 노획했을 때에도 이를 다룰 수 있다. 국군 복장으로 위장 침투한 경보병 부대원은 따라서 남한 무기를 「현지조달」해 쓰게 된다. 경보병 부대원들은 남한 풍습과 사투리 교육도 받아 남한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 이영선(李英善)씨의 경우 경상도 사투리를 자연스레 쓸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귀순 후 기자회견을 했을 때 그가 남한 출신자가 아닌가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경보병 부대원들은 적에게 잡혔을 경우 자폭하도록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은 이적행위를 하는 것이므로 그러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1983년 아웅산 사건의 범인이었던 북한 정찰여단 소속 두 장교는 미얀마군에게 잡히자 자폭을 시도하기도 했다. 땅굴을 통한 침투훈련 사례는 아직 확인된 적이 없다. 이영선(李英善)씨는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 때 소속 경보병 부대원들이 제3땅굴 입구 근처에 소형 지하 아지트(비트)를 굴설하고 3땅굴을 통한 침투에 대비했었다』고 증언했다. 경보병 부대원들의 복부기간은 10∼12년으로 북한군 일반 사병보다 훨씬 길다. 복무기간도 길고 근무하기도 힘들지만 경보병 부대원들의 사기는 일반 사병보다 높다고 한다. 전역 후 취업할 때 우대해 주고 「공산대학」 졸업증을 주면서 명예소위 계급장을 달아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 보병 부대 출신자들은 당·행정부·학교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포공항 습격 훈련도
서울 근교 땅굴을 통해 경보병 부대가 수도권으로 침투한다면 서울에 대해 어떤 공격 형태를 취할 것인가 도 관심사이다. 귀순자들과 군의 관계자들은 경보병 부대가 서울 시내에 들어와 시가전을 벌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덩치가 워낙 커서 시가전을 벌이다가는 북한의 손실도 커져 「서울에 파묻히는 꼴」이 돼버릴 우려 때문에 서울을 우회, 포위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란 얘기다. 인민군 장교 출신 귀순자 신중철(申重哲)씨는 『북한군은 서울만 점령하면 남조선 전역의 50%를 장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유사시 땅굴이나 공중으로 서울의 동쪽(철원―평강), 서쪽(김포―강화), 후방 기동로에 특수부대를 투입, 서울의 고립·차단을 시도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서울을 공격 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 2군단에서 복무했던 이영선(李英善)씨는 경 보병 부대의 서울 공격전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훈련장에서 중앙청 습격 등 시가전에 대비한 훈련도 받았지만 주된 것은 아니었고 김포공항,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물 공격훈련을 주로 받았습니다. 또한 공격의 주안점을 단기간에 서울을 고립시키는 데 두고 경 보병 부대 1개조마다 전파방해 장비(ECM)를 갖춰 한미군 지휘통신체제를 교란시키도록 교육받았습니다』
귀순자들의 증언 : 북한의 땅굴 굴착 능력
『땅굴 굴착은 생활의 일부분』
우리가 북한과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자주 범하는 오류는 문제를 북한인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 땅굴문제를, 북한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 귀순자 4명을 한자리에서 모아놓고 얘기를 들어보았다. 귀순자 김남준(金南俊)씨(31)의 주선으로 1980년대 후반에 귀순한 김창화(金昌化)(35), 유천수(柳天洙)(29), 홍명진(洪明進)씨(28) 등이 지난 5월15일 코리아나호텔 음식점에 모여 약 2시간 가량 땅굴문제에 대한의견을 교환했다. 이들의 견해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땅굴(갱도)굴착은 북한주민들에게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돼있다는 점이다. 우연히 모인 귀순자 네 사람 모두 갱도굴착 경험이 있어 한국 남자들이 제대 후 군대시절 얘기를 하듯 암반 층에 굴을 뚫던 시절의 얘기를 하며 웃곤 했다. 이들은 『북한에는 갱도가 없는 곳이 없어 세계 최고의 땅굴 국가일 것』이라면서 미군이나 한국군의 공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 이후에는 전방에 배치된 각 중대마다 굴 파는 조를 만들어 자체 갱도를 파도록 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북한의 갱도 굴진 속도가 예상외로 빠르다는 것이다. 평북 북창에서 너비 4m, 높이 5·7m 크기의 대피갱도를 팠던 김창화(金昌化)씨는 『착암기를 쓰지 않고 정으로 다이너마이트 구멍을 뚫고 폭파시키는 방법을 쓰면서 총53명이 3교대로 1년 동안 4km를 뚫었다』고 말했다. 개성시 장풍군 대덕산리 민경대대에 근무하면서 대피호공사를 했던 유천수(柳天洙)씨도 같은 방법으로 총15명이 3교대로 1·5×1·5m 규모의 갱도를 3개월만에 3백m를 팠다고 밝혔다. 착암기를 쓰지 않고 정 만으로 구멍을 뚫기 때문에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엄청난 횟수의 해머질을 해야 한다. 때문에 갱도공사에 「알통」이 생기게 마련이고 처음에는 한번에 10번도 못하는 해머질(3·5kg 무게) 숙달되면 쉬지 않고 5천 번까지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1일3∼4m씩인 굴진 속도는 착암기를 쓰면 매우 빨라진다. 북한은 지난 82년부터 88년까지 태천강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직경 9m의 지하수로를 40km 가량 뚫은 적이 있다. 이 공사에 참여했었던 측량 기술자(당시 사회안전부 경비대대 소속) 홍명진(洪明進)씨는 『착암기를 쓰면 하루 수십m씩 굴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은 북한의 장거리땅굴 굴착이 전단면 굴착기(TBM)를 쓰지 않고도 가능함을 의미한다. 거대한 태천발전소 수로를 재래식 방법으로 뚫었듯이 마음만 먹으면 30∼40km의 땅굴을 TBM 없이 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기·배수는 큰 문제 아니다
세 번째는 환기·배수 문제 등이 장거리땅굴 굴착시에도 예상만큼 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태천발전소 지하수로 공사에 대해 홍명진(洪明進)씨는 이렇게 말했다. 『40km의 터널이었지만 호흡에 지장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환풍 통이 터널 한구석에 죽 이어져 있었는데 송풍용 팬은 출입구에 있었을 뿐입니다. 공사 중에 수맥을 건드려 물이 터널 안으로 쏟아져 나왔던 적도 없었어요. 제일 큰 문제는 환기가 아니라 다이너마이트 폭파 후 생기는 유독가스 정도였습니다』
네 번째는 북한의 장거리땅굴 굴착이 측량 기술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다. 태천발전소 지하수로의 경우 40km라는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오차 없이 당초 계획했던 코스대로 완성됐다고 한다. 洪씨는 『북한은 현지 측량을 하지 않고도 정밀지도만으로 정확하게 코스를 잡아 땅굴을 팔 수 있다』고 밝혔다.
다섯 번째로는 한국군 담당 부서에선 땅굴굴착이 중단되었다고 보는 1980년대 중반에도 땅굴을 계속 팠던 것 같은 정보가 한 귀순자에 의해 토로됐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김창화(金昌化)씨는 『1985년 평양 철도대학 재학 중 「지금도 땅굴을 뚫고 있다」는 제대군인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 놨다. 『당시 군대에서 제대한 후배들이 학교에 입학해왔습니다. 인민군 5군단지역(철원지역)에서 근무했던 후배들이 「탱크가 다닐 정도의 땅굴을 몇 군데씩 지금도 뚫고 있는데 이 공사에 동원돼 총은 별로 쏘지 못하고 일만 하다 제대했다」는 것이었어요. 후배들은 그 공사의 목적이「대부대를 남조선 후방에 침투시켜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는데 이것으로 봐도 그 땅굴은 방어용 갱도가 아닌 「남침용」임이 분명합니다』
여섯 번째로 실감한 사실은 북한에서 김일성(金日成)·김정일(金正日)의 작업지시는 절대적인 것이란 점이다. 평양 개성간 고속도로 공사는 金正日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는데 당시 金正日은 산이나 계곡, 강 등 공사에 장애가 되는 지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일직선으로 노선을 죽 그어놓고 공기(工期)내 완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공사에 많은 인민군들이 동원돼 터널을 뚫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높은 교량을 만드느라고 고생했으며 높은 다리 교각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1개소대가 전멸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김남준(金南俊)씨는 『이 사고가 난 직후에 한쪽에선 시체를 치우고 있는데도 선전대가 꽹과리를 치며 선동하는 속에서 공사는 강행됐고 金正日이 지시한 공기 내에 공사를 끝냈다』면서 『기술이나 기계가 문제가 아니라 金日成·金正日의 지시가 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귀순자들도 『남한에서 북한의 기술수준이나 버럭 등의 징후 유무로 북한 땅굴문제를 판단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 라고 지적하고 『金日成·金正日이 서울까지 땅굴을 파라고 명령한다면 정으로 파서라도 해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또 한번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장거리 땅굴을 발견, 金日成부자의 자신감을 꺾어놓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날 모인 귀순자들 가운데 북한이 현재 땅굴을 뚫고 있을 가능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 국민들이 최근의 남북 화해무드에 너무 들떠있는 것 같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한 귀순자는 『남북 화해무드가 고조됐던 1985년에 金日成은 「평화의 구호를 높이 들면 들수록 인민군 동무들은 싸움 준비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어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었다』고 지적하면서 방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해머로 「정」질을 하면서 하루 3∼4m의 갱도를 판다는 북한의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북한에 대해선 적어도 「착암기를 쓰면 기껏해야 하루 3∼4m, TBM을 쓰면 20m정도 굴진한다」는 우리 식의 「과학적」판단이 들어맞지 않을 것 같다. 귀순자들은 남한 식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만을 시도하다가 땅굴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전쟁을 불러들일 가능성을 매우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