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땅굴을 찾는 민간인들과 그들의 땅굴 탐사 방법

민간인들의 땅굴 탐사방법

첨단과학 장비와 음향·지질에 대한 전문가 등 모든 물적·인적 자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군 당국조차 땅굴 찾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자금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달리는 민간인들이 왜 땅굴 찾기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또 어떤 방법으로 지하세계를 탐색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그들의 땅굴 찾기 방법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취재팀은 정지용(鄭址龍)씨가 처음 제보할 당시 땅굴을 찾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냥 웃어넘긴 적이 있다. 막대기나 추를 갖고 지하세계를 논(論)한다는 것이 비과학적이었고 일면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러기에 취재나 기사를 쓸 때 가급적이면 민간인들의 땅굴 탐사방법에 대해 언급을 피하려고 했다. 지하세계의 이상한 소리를 찾게 한 방법 자체에 회의가 생기면 기사 신뢰도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민간인들의 땅굴 탐사방법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오히려 의구심만 자꾸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이나 군 당국이나 땅굴 찾기의 기본 틀은 비슷하다.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그 이상징후 지역을 탐사하고 시추공을 뚫어 보는 것이 기본 형식이다. 차이가 나는 것은 탐사방법이다. 이상징후는 땅굴 탐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에서 폭발음이 들린다거나 땅이 울린다거나 하는 이상징후에 대한 검색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그간 탐사에 종사했던 인사들의 견해다. 그 다음 절차가 이상징후가 나타난 지역에 대한 탐사작업인데 민간인들은 라디에스테지, 다우징거 추 등 지하수맥을 찾는 데 쓰는 기구를 이용한다.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기구를 쓰는 라디에스테지 방식은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국내에 전수된 것으로 현재 상도동 성당의 임응승 신부가 이 부분에서 가장 권위자로 손꼽힌다. 문제는 지하수맥을 찾는 방식으로 땅굴을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것이다. 군 당국도 80년대 초반까지 라디에스테지 방식을 적용해 보았으나, 「땅굴 발견」이라는 실적을 못 올리자 이 방법에 의한 탐사 가능성을 거의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20여 년간 지하수맥을 찾아 왔고 87년부터는 땅굴 탐사작업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김대중(金大仲/48)는 『이용하는 방법이 잘못됐을 뿐이지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기(氣)와 염파(念波)에 의존

金씨는 라디에스테지를 이용한 탐사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라디에스테지 방식은 자력, 다시 말해서 사람이 갖고 있는 기(氣)에 의해 어떤 물체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의 왼손은 「음」, 오른손은 「양」기를 갖고 있는데 이 음양의 기가 사람 人자 모양의 끝 부분에 몰려 미묘한 작용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하수맥을 찾을 때는 물기를 많이 머금은 버드나무 가지를 쓰는데 이것을 갖고 지하수맥이 있는 땅위를 지나면 앞부분이 아래쪽으로 기울게 된다. 땅굴 내에는 레일이나 동케이블, 배수로 등이 있다. 배수로도 인력으로 판 것은 물이 양쪽으로 흐르게 되고 자동굴착기로 한 것은 중심으로 물이 흐른다. 물 흐름은 구배가 높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나는 우선 피아노 강선으로 만든 라디에스테지를 이용해, 쇳덩어리나 케이블이 지하에 매설돼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다음에는 수맥을 찾는 장비로 지하의 물 흐름을 추적해본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땅굴의 조건과 일치하는 현상이 나올 때 바로 지하 땅굴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땅 위에서 지하 세계를 본 듯이 그려낸다는 게 취재팀으로선 잘 납득이 안 가지만 김대중(金大仲)씨는 지금까지 정지용(鄭址龍)씨를 도와 여러 차례 소리의 현장을 찾아냈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金씨는 라디에스테지 방식은 기(氣)를 이용하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 작업을 하면 지쳐 버리고 컨디션이 안 좋은 때는 탐지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한다. 주로 연천 지역에서 탐사활동을 해 온 김종우(金鍾又)씨(47)는 추와 다우징거라는 장비를 쓰고 있다. 다우징거는 ㄱ(기역)자 모양의 장비인데 지하수맥, 단층대, 공동(空洞) 등의 현상이 나타나면 이 ㄱ자 모양이 벌어지거나 좁혀지며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 추를 쓰게 되면 이상징후 지역에서 미세한 추의 흔들림이 나타나는데 이를 염파(念波)로 감지한다는 것이다.

김종우(金鍾又)씨는 『나는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도 없고 또 규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상징후가 나타나는 지역에서는 분명 내 몸 속에서 반응이 나타난다. 그런 세계를 제3자에게 이해시키기는 힘들다. 과학, 과학 하지만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 얼마나 많은가』 라디에스테지 등의 방법은 결국 초능력에 의한 탐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 염파 등 보통사람들은 이해가 잘되지 않는 능력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유리겔라 같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초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미세한 변화를 보통사람보다 더 잘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번 취재 중에 만난 인사들 중에는 김대중(金大仲)씨나 김종우(金鍾又)씨의 탐사방법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그 방법을 터득해 지하수나 하수도 선을 찾을 수 있게 됐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정지용(鄭址龍)씨의 집념

鄭址龍씨와 접촉을 가질 당시만 해도 취재팀은 鄭씨가 땅굴을 찾는 유일한 민간인인 줄 알았다. 그러나 鄭씨 외에도 많은 민간인들이 땅굴 찾기에 나선 선례가 있었다. 김대중(金大仲)씨와 같은 라디에스테지 방식으로 지하 수맥 찾는 일을 하던 윤(尹)모씨 등은 80년대 중반까지 김포 등 여러 지역에서 시추공을 뚫다가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한다. 鄭址龍씨의 경우는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민간인 신분으론 가장 오랜 기간 이 분야에 전념, 노하우 축적이 만만치 않다. 鄭씨의 집념 어린 활동은 결국 강정산(姜井山), 김천환(金天煥)씨 등과 같은 새로운 「집념가」를 파생시켜 땅굴탐사에 직 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적지 않은 숫자다. 취재팀은 이번 취재 기간 동안 많은 민간인 땅굴 탐사자들을 접하면서 이들이 그간 겪었던 애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鄭씨가 88년 4월부터 4년간 걸어온 길은 「인간 드라마」로서 땅굴 발견 여부를 떠나 그 노력 만으로써도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갑자기 땅굴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땅굴의 존재를 확신하고 땅굴을 찾는 것을 인생의 승부처로 삼은 그는 어떻게 보면 한국적 상황이 만들어 놓은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직업군인으로 착실하게 모아 놓은 돈과 퇴직금 등 억대가 넘는 돈을 그야말로 땅에 「처박아」 넣고 이제는 전세 집에서 옹색하게 살고 있다. 제3자는 분명 그를 미쳤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취재팀 역시 그의 태도를 선뜻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를 접촉하면서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사람은 어떤 일에 심취하다 보면 만사가 귀찮고 그 일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 같은 심취의 계기가 강렬했을 때는 일에 대한 몰두의 강도가 더 커진다. 땅굴 찾기는 사람들을 「미치게」하는 요소가 다른 일보다 훨씬 많다. 인간이 진지해질 때는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을 때이다. 이 순간만큼은 부, 명예, 자존심 등에 대한 미련이 일체 사라진다. 오직 생존하기 위한 본능이 작용할 뿐이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땅굴 찾기

땅굴 찾기는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 같은 긴박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땅굴의 존재를 확신한 사람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공포감을 맛보게 된다. 『저놈들이 나와 처자식에게 비수를 꽂으려 하는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보편적인 사람들은 아마 그 실체를 알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를 알리려는 노력이 제3자로부터 부정되고 백안시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절하고 포기한다. 인간의 집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鄭씨는 이 한계에 도전한 인물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한두 번 신고하다가 무시되면 『에이 될 대로 되라지」하며 물러나겠지만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가면서 또 그것으로 모자라니까 요로에 진정해 가면서 지난 4년간 고독한 싸움을 해왔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그의 집념 어린 행동은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 그의 입장을 수용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취재팀은 그가 순박하면서도 고집이 대단히 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지금까지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이 성품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에 겁낼 것이 없고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회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왜 땅굴 찾기에만 매달려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땅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땅굴을 통해 저놈들이 쳐들어와서 죽으나 내가 가산을 탕진해서 굶어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다. 그렇다면 청춘을 군에서 보낸 내가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은가』 鄭씨가 땅굴 찾기에 나선 것은 어쩌면 숙명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그는 대전공고 광산과를 나와 19년이 넘게 보안대에서 근무하며 주로 대공업무에 종사해왔다. 지하세계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광산과를 졸업했고 북한의 의도를 끊임없이 추적하는 업무에 종사한 그였기에 땅굴에 대한 관심이 필연적이었다. 결국 그 관심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3백 공을 뚫은 강정산(姜井山)씨

정지용(鄭址龍)씨에게 중기를 빌려주었다가 오히려 자신이 땅굴 찾기에 더 깊숙이 빠져버린 姜井山씨의 경우도 그 계기는 「땅굴이 있다」는 확신이다. 그는 한양 공대 무기화학과를 졸업한 후 대림, 현대 등의 건설회사를 다녔고 10년 전부터는 독립해 중기대여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주특기는 발파작업이다. 서울 강서구 까치터널공사 등 지하세계와 관련을 갖는 많은 현장을 경험했고 화약협회에서 주관하는 강좌에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학도이자 수십 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업주인 그는 분명 이해득실에 대한 판단도 빠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땅굴을 찾기 위해서 지난해 11월부터 연천 지역을 헤매며 3백 공 이상이나 시추작업을 해왔다. 취재팀이 『그 일을 왜 하느냐』고 물었을 때 강정산(姜井山)씨는 아주 당당하게 『미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땅굴을 찾는 민간인들에게는 「미쳤다」는 표현 외에 그들의 행동을 규정할 만한 특별한 말이 별로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로는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3월27일 저녁 8시쯤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그와 인터뷰를 할 때 취재팀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랜저2.4인 그의 승용차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폐차 직전의 차를 연상케 했다. 인터뷰가 끝난 밤 10시30분쯤 그는 손을 털고는 다시 차를 몰고 적성에서 30분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연천군 아미리 탐사 현장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휴전선 부근의 밤은 어둡다. 게다가 그날은 달빛도 없어 칠흑 같은 어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어둠을 뚫고 현장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가 떠나면서 한 말은 이렇다. 『나는 원래 잠이 없는 사람이라 여인숙에서도 밤에 할 일이 없다. 그러니 일밖에 더 하겠는가. 게다가 조용한 밤에는 영감이 잘 떠오른다』

김종우(金鍾又)씨에게 다우징거 사용법을 배운 강(姜)씨는 이제는 스스로 지하의 맥을 찾아내는 전문가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깜깜한 밤중에 휴전선 인근의 야산에서 막대기를 잡고 이리저리 살피는 그의 모습을 그려볼 때 그가 스스로 미쳤다고 표현한 말이 새삼 되살아났다. 그는 이제는 땅굴의 존재 여부를 놓고 따지지 않는다.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존재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한다. 姜씨는 지난 4월10일 경기도 연천군 아미리 애미 마을에서 땅굴징후 지역을 폭파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7개의 시추공에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지하 16∼20m 지점에서 폭파해 본 결과 길이 10m, 깊이 1∼2m 가량이 함몰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현상이 지하에 땅굴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확신하는 姜씨는 현재 확인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88년 8월 자신의 텃밭을 시추현장으로 내줬다가 땅굴 찾기의 주역이 돼버린 김천환(金天煥_씨는 지금도 청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전자기술자인 金씨는 청음기를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녹음 테이프의 진실을 확신하고 있다. 또 지난 3년여 동안 집 앞에 파진 시추공을 통해 꾸준히 「지하음」을 들어왔기에 사실을 규명하려는 그의 집념은 대단하다. 『돈을 2천만원 정도 모아 집 앞에다 3개의 시추공을 뚫어 기어이 찾아내겠다』는 그의 말은 그가 갖고 있는 내면을 모두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누가 애국자인가?』

정지용(鄭址龍)씨와 강정산(姜井山)씨를 도와 연천 지역에서의 탐사활동을 펼쳐온 김종우(金鍾又)씨는 원래 마산에서 동물병원을 개업했던 수의사이자 농장주이다. 안정된 생활을 해왔던 그는 지하세계를 탐사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한 후 휴전선 부근의 산야(山野)를 누비는 땅굴탐지 전문가로 전전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홍태식(洪泰植)씨(68) 李영만씨(47) 등 鄭址龍씨의 일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연천군 두일리 주민들도 땅굴을 발견하겠다는 일념에서는 모두가 똑같다. 땅굴 찾기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선 대개 비슷한 성품이 느껴진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鄭址龍씨처엄 순박하고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姜井山씨를 만났을 때 취재팀은 그가 소탈하면서도 어떤 부분, 즉 땅굴의 존재 문제를 논할 때는 매우 단호하다는 것을 느꼈다. 확신이 없다면 그같은 「미친 짓」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취재팀은 땅굴 찾기에 나선 민간인들의 순수성과, 진실성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신이 무오류(無誤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곧 진실이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확신의 계기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또 그 계기를 편견 때문에 잘못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취재는 결국 이들의 믿음의 계기가 된 사실에 오류가 개입할 여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검증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취재팀은 그들의 믿음의 계기가 오류보다는 무 오류에 더 근거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 것이다. 군 내부에서도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장성을 포함한 몇몇 인사들이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번 취재의 초반기는 마침 총선 유세가 활발히 전개되는 때였다. 곳곳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의 금전공세가 나타나고 30억원 이상의 돈을 내고 전국구 의원직을 따냈다는 보도가 나올 때였다.

취재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감한 생각에 젖어든 적이 있다. 『도대체 저들은 뭐 하는 자들인가』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들이 진정 우리 사회를 책임질 선량후보들인가에 회의가 갔다. 신문의 정치란을 보다가 눈을 돌려 땅굴을 찾는 민간인들의 얼굴을 보면 『도대체 애국의 기준은 무엇이며 출세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었다. 휴전선 부근의 야산에서 추위에 떨며 땅굴을 찾는 한 인간군상(人間群像)과 유권자의 표를 사기 위해 돈을 뿌려대는 또 다른 인간군상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