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땅굴 굴착 중」의 가능성

땅굴은 기술이 아닌 의지의 문제

독자는 1, 2, 3부의 전개과정을 보면서 기사에 기복이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어느 부분에선 땅굴의 존재가 강력히 암시되다가도 또 일면으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 기사를 쓸 때 시간적인 흐름을 기초로 했다. 바로 그 시간의 흐름 즉 취재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 것이 1, 2부의 내용이다. 취재팀 역시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는 의문과 의문 속에 헛갈렸다. 정지용(鄭址龍)씨의 제보내용을 믿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렸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그간의 양태였다. 그러기에 한때 결론을 유보하고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 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것처럼 무책임한 일은 없다. 다른 기사도 아닌 우리의 안보 상황과 직결된 일에서 무책임하게 문제만 제기했다가 아무런 결론과 대안 제시 없이 시치미뗀다는 것은 최소한 양식 있는 기자로선 할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번 취재의 결론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번 취재의 결론을 내리려면 3가지 상황이 고려돼야 한다. 첫째 북한측은 과연 땅굴을 팔 의도와 능력을 갖고 있는가. 둘째 鄭址龍씨의 테이프는 진짜인가. 셋째 과연 鄭씨의 테이프에 수록된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 번째 고려사항인 북한측의 의도와 능력에 대해서 월간조선 측의 의도와 능력에 대해서 월간조선 측은 「판단자」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우선 밝혀야겠다. 우리가 북한측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들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다」라는 것을 명쾌하게 癬?수는 없다. 현재 북한이 땅굴을 파고 있느냐 않느냐에 대해선 군 내부에서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만큼 고급정보에 접할 방법이 없는 우리로선 이에 대한 단정적 견해를 밝힐 수는 없다.

테이프는 조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것은 북한측의 의도를 낙관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3부 후반부에서 밝혔듯이 북한은 10km 이상 땅굴을 굴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이 이 같은 땅굴을 파느냐 않느냐는 선택의 문제이지 능력문제는 아니다. 의도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땅굴을 길게 팔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측이 이 같은 의도를 갖고 있느냐 않느냐를 해석하는 것은 결국 한반도 정세에 대한 판단 또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다. 예비역 장성들을 포함한 군 관계자들 중에는 『땅굴은 북한군의 공동 묘지』라며 그 효능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지만 허화평(許和平)씨처럼 『기습이라는 북한의 전략적 사고는 변화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땅굴을 파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 판단 중 어느 것이 맞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군을 중심으로 한 안보 담당자들은 최소한 「만의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바로 그 「만의 하나」라는 상황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만큼 「저들은 능력도 의사도 없다」는 낙관적 판단에 근거를 두기보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하에 전략전술 개념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월간조선부의 첫 번째 상황에 대한 결론이다. 두 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정지용(鄭址龍)씨 테이프의 진위 문제다. 취재팀은 이 부분에 대한 검증을 두 가지 방법으로 실시했다. 즉 테이프 내용이 신디사이저 등 전자기기로 합성될 가능성이 없는가 하는 검증과 테이프 녹음을 수록할 당시 의도적인 조작이 가능했는가 하는 상황에 대한 검증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녹음 테이프는 전자기기로 합성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또 정지용(鄭址龍)씨가 녹음할 당시 주변에 있었던 현지 주민이나 관련자들은 鄭씨가 조작할 만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고 일치된 증언을 하고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취재팀은 두 번째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鄭씨의 테이프 중 일부에 테이프나 마이크 자체의 잡음 등 전자기적(電磁氣的) 현상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소리가 녹음될 가능성은 있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테이프는 신뢰할 만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규명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점이다. 취재팀은 소리에 대한 탐색에서 처음에는 녹음테이프에 수록된 소리에 기계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만 신경을 집중시켰다.

「갱 차음」 규명을 요구한다

공신력 있는 분석기관의 기계분석으로 90년 10월25일 김포군 후평리에서 채록된 테이프를 포함, 3개 테이프에서 기계음이 확인되었다. 지하에서 녹음한 테이프에 기계음이 실려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동기)기계음으로 분석된 자료를 믿어버리면 월간조선 취재팀은 속 편하게「서울 근교에서의 지하 기계음」이란 사실로 확정, 발표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문을 가져 보았다. 혹시 자연음이 바위 층 등 매질을 통해 녹음될 때 기계음의 특성을 가진 것처럼 분석되어질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한국 표준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자신 있는 견해를 밝힐 능력이 없다』고 했으며 익명을 요구한 ㅎ대학의 ㅇ교수는 『자연음이 매질을 통하면 기계음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자연음이 기계음으로 나타나는 「이변」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군의 청음분석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정지용(鄭址龍)씨의 녹음 테이프 중 기계음으로 나타난 것은 「지하의 원동기에서 나온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겠다. 「그 가능성의 확률이 몇 %냐」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으나 우려하고 대비해야 할 수준임은 분명하다. 취재팀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져 있고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갱 차음이다. 1991년 7월11일 김포군 후평리의 시추공 안에서 녹취된 갱 차음은 철로 위를 달리는 궤도차 소리(규칙적인 「덜거덕―덜거덕」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면서 서서히 커지다가 청음장치 바로 앞을 「웽」하는 소리와 함께 지나간 뒤 점차 약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장감 넘치는 이런 소리는 기계분석도 할 필요 없이 육청(肉聽)으로도 충분히 궤도차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해주고 있으며 그런 소리가 4∼5회에 걸쳐 녹취되었다. 반경 수십km 안에는 지하철도 철도도 안 다니는 후평리 지하에서 들려온 생생한 이 「소리」를 만약 방송국에서 틀어놓는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 갱차음의 철저한 규명을 정부당국에 요구하는 바이다.

분단국가의 기자로서…

월간조선 취재팀이 분석대상으로 삼은 정(鄭)씨의 녹음테이프는 극히 일부에 속한다. 약 2백 개에 달하는 이 테이프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본 사람도, 기관도 없다. 鄭씨 조차도 다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테이프의 종합분석을 포함하여 땅굴 굴착 가능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연구·탐색에는 반드시 민간부문이 제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번 취재를 통해서 우리는 민간인들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새삼 확인한 바 있었다. 이런 작업은 군의 독점 하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공개적으로 전국민의 관심과 역량이 집중된 가운데서 진행되어야 한다. 「후방에 침투한 간첩」을 신고하듯 「후방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는 땅굴의 징후」에 대한 주민들의 신고와 민간인들의 탐사작업을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취재는 「확정된 사실」의 제시를 목표로 했지만 「가능성의 제기」에서 끝났다. 그 가능성이 사실로 확인 될 때의 엄청난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문제제기는 저널리즘의 의무일 뿐 아니라 분단된 나라에서 숨쉬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본능적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끝으로 이번 취재에 협조해 주시고 참여해 주신 많은 관계자들 모두에게, 월간조선은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기사로 인해 그 누구도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