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적 명분론에 인질 잡힌 사회

기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과대평가 받고 있는 직업인은 교수, 가장 과소평가 받고 있는 직업인은 기업인이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닌다. 교수사회엔 경쟁이 거의 없다. 기업사회는 경쟁 그 자체이다 교수사회는 경쟁뿐 아니라 견제도 거의 없다. 기업인은 소비자, 언론, 관청으로부터 집중적 견제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교수로 대표되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士農工商의 계급의식과 유교적 이념, 그리고 文民통치의 지배 이데올로기 덕분으로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일본인 기자는 『한국에서 언론과 지식인들이 국정(國政)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日本에선 지식인 사회가 아무리 떠들어도 정치나 관료의 논리가 굳건하므로 좀처럼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영향력이 과도한 이유중의 하나는 한국인들이 명분에 약한 점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일부 지식인들은 선명한 명분을 내세워 이에 승복하지 않은 이들을 매도하는 전술을 쓰는데, 놀랍게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흑백주의적 論法이 잘 먹혀든다. 일부 지식인들은 「친일파 청산」이란 명분을 들고 나와 李承晩을 反민족적 정권, 金日成을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단정한다.

李承晩은 친일파 청산에선 실패했지만 UN의 승인하에 치러진 자유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수립했다는 압도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 소련의 조종하에 피의 숙청을 통해서 정권을 잡은 金日成의 反민족적, 反민주적 성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李承晩에 대하여 「친일파 청산을 못했으므로 정통성이 없다」는 우둔한 단순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좌파지식인도 문제지만 이런 논리(論理)에 꼼짝없이 따라가는 사람들의 비겁성에 더 문제가 있다. 좌파지식인들은 또 5·16쿠데타가 不法的이었다는 점만 강조, 朴正熙정권이 이룩한 조국근대화란 업적까지 부정한다.

정권의 정통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합법성(合法性)여부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복지의 총체적 향상 여부이다. 일부 학자들은 조국 근대화의 성과를 부정하기 위해서 「朴正熙는 정권의 정통성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제발전을 시도했다」고 비판한다. 朴正熙는 조국근대화란 목표를 처음부터 내걸고 쿠데타를 감행했다. 이것은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된다. 정통성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경제발전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했다면 정통성을 상당부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지식인들은 『경제발전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계층 차별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경제발전의 의미를 축소시키려 한다. OECD에서 펴낸 「1994년 한국 경제 보고서」는 「한국은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가계소득 분배가 가장 평등한 국가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경제 도약기에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이는 교육에 대한 투자와 수출드라이브 정책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가계소득 분포의 평준화 정도를 나타내는 한국의 지니계수도 위의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냉전적 사고」란 허상

최근 지존파 사건을 계기로 의식개혁 캠페인 기사를 게재한 東亞日報의 한 기사는, 농촌에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10년 동안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봉제공장으로 옮겨 월급 70만원을 받고 있는 23세의 젊은이가 『나도 (오렌지족을) 쏴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말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배 왜곡을 지적했다. 국민학교 졸업학력을 가진 23세의 청년이 월급 70만원을 받으면서도 부자들에 대해 살인충동을 느꼈다는 것이 과연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표성이 있는 사례인가.

이런 특수상황을 일반화하게 되면 선동적 효과를 내게 된다. 한국사회의 분배문제는 지식인과 언론에 의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었다. 전체가구의 반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성인의 반이 운전면허증을 소지하며 성인의 10% 이상이 매년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사회에서의 「부의 편재」는 과연 증오와 범죄의 대상이 될 만한 보편상황인가? 좌파지식인들과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은 「냉전적 사고방식」을 집중적으로 매도함으로써 金日成-金正日집단에 대해서 현실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세력을 공격한다.

한승주(韓昇洲) 외무장관까지도 지난 9월24일 경주에서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고(故) 최병우(崔秉宇) 기자 기념심포지엄 발제(發題)연설에서 「냉전적 사고(思考)」를 비판했다. 韓장관은『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냉전구도 해소」라는 목표를 냉전적 사고로 성취해 내기는 어렵다』면서 『냉전적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똑 같은 냉전적 사고로 대응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긴장상태의 계속 아니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北韓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토론 참석자(중견언론인)는 이런 취지의 질문을 했다. 『「냉전적 사고」의 정의(定議)가 무엇이지 알고 싶다. 과연 한국 사회에 「냉전적 사고」가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북한이 전쟁공갈로 나오면 우리도 전쟁불사(不辭)로 맞서야 한다. 對北 경계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도의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냉전적 사고」라고 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한核시설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든지, 北核위기를 맞아 남한에서 자유를 제한해야겠다든지,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야겠다든지 하는 정도의 주장을 「냉전적 사고」라고 하면 이해가 가겠는데 그런 주장이 어디 있나? 韓장관이 말하는 「냉전적 사고」란 결국 한국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 아닌가』 韓장관은 이에 대해 그 특유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써 「냉전적 사고」에 대한 정의를 회피했다.

북한정권은 우리의 적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상하게도 세계사의 수구·퇴보세력인 북한정권을 정면에서 비판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 또는 주사파이면서 진보적 지식인으로 위장한 세력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스스로를 리버럴리스트라고 규정하는 지식인들도 북한정권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노재봉(盧在鳳) 당시 총리는 1991년 봄 관훈클럽토론회에서 남북한 관계를 「전복전쟁의 관계」라고 규정했다. 최근 그 盧의원이 韓昇洲 외무장관에게『남북간 관계는 적대관계인가 우방관계인가』라고 질문했다.

韓장관은『적도 우방도 아닌 특수관계』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헌법, 국가보안법, 그리고 휴전협정은 북한을 反국가 단체나 교전상대로 규정하고 있다. 언론도 이에 따라 북한 국민이란 말을 쓰지 않고 주민이라고 표현한다. 테러, 납치, 마약 밀매, 위조지폐 발행, 정치범 수용소에 의한 양심수 멸종정책 따위의 범죄행위를 일삼고 있는 북한은 국가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도 갖고 있지 못한 「집단」이다.

실상과 법률적 해석이 그러하다면 북한노동당은 우리의 적으로서 제거대상이요 북한 동포는 해방시켜야 할 구제대상이다. 통일의 본질도 북한노동당을 제거함으로써 북한 동포를 구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남북한 관계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외무장관이라면 적어도 『적도 우방도 아닌 특수관계』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대관계다』고 정직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는 적대관계에 있으나 이를 극복,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관계』라는 정도의 외교적 언사정도는 써야 했다. 「적도 우방도 아닌」북한 인민군을 향해서 『쏘라』는 명령을 국군에게 과연 내릴 수 있겠는가.

극우(極右)는 극선(極善), 극좌(極左)는 극악(極惡)

위선적, 좌파적 지식인들은 진보, 개혁, 민족주의, 자주 같은 좋은 말들을 선점(先占)한 뒤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을 수구, 종속, 어용, 극우따위의 극단적 용어로써 공격하는 선동에 능숙하다. 이른바 좌파적 매카시즘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우익(右翼)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을 좌익(左翼)이라고 정직하게 밝히면서 그러는 사람은 全無하다시피 돼 있다. 言行은 분명히 사회주의적인데『나는 진보다』『나는 민주주의자다』『나는 민중노선이다』는 식으로 위장한 상태에서 右翼을 공격한다. 자신의 사상을 숨기고 전개하는 知的 게임은 생산적 토론으로 승화될 수 없고 속임수, 거짓말, 억지가 판치는 선전이나 말장난으로 전락해버린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이념 갈등은 있으나 정정당당한 논쟁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자신을 드러낸 뒤 정직하게 발언하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숙명적으로 대부분의 좌익 지식인들은 知的 사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기자는 『당신은 극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는 극우다. 한국에서 좌익은 공산당 우익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해 왔다. 「극우」란 극도로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극도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극우」란 욕이 아니라 찬사이다. 極右는 極善인 것이다. 한국의 좌익 중에는 공산주의 중에서도 극도의 교조주의를 따르는 북한을 맹종하는 극좌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極惡이다.』 『당신은 옛날과 달라졌다』고 서운해하는 이들에겐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항상 중도를 달렸다. 그런데 1987년 6·29선언을 분수령으로 하여 한국의 지식인사회 전체가 좌회전하는 바람에 중앙선에 있던 내가 右편에 서게 되었을 뿐이다』
朴正熙를 옹호한다고 기자를 수구(守舊)라고 공격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해방이후 한국에 나타났던 정치세력중 최악의 수구는 金日成집단이다. 「주체사상」이란 주술(呪術)로써 인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북한을 1백년 전의 王朝시대로 돌려놓은 金日成이야말로 최대의 守舊요 퇴보이다. 최대의 진보세력 朴正熙였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개혁을 「국가 근대화(近代化)」라고 부르는데 그 일을 치러낸 이가 바로 朴正熙.가 아닌가. 그러니 당신이 守舊이고 나는 진보이다』

朴正熙와 군사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평가하고 金永三정부의 개혁방향을 비판한다고 해서 기자를 「군사문화 美化」「反개혁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왔다.

『개혁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金永三식 개혁을 비판하는 것이다. 군사文化의 美化가 아니라 군사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높게 평가하고 하나회 같은 군사정치문화를 비판한다. 유구한 文民통치 시절에 한국이 정체되었고 짧은 군사정권 시절에 유례없는 발전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주의깊게 보자는 것이다』

한글전용은 제2의 독립운동이요 한글·한자 혼용론자들은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도 있다. 이런 논법의 연장선상에는 옛 중앙청(더 옛날엔 조선총독부) 건물,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철거하는 데 반대하는 세력은 친일파라는 도식과 선동이 등장한다. 위선적 명분론이 한국사회를 인질화하여 공표분위기를 조성하면 긍정적·생산적·관용적 발상은 파괴적·부정적 풍조에 눌려버린다. 그만큼 국가발전은 저해되고 국력은 낭비된다.

정의구현사제단과 컴퓨터 부정설 문제

지난 7월21일 천구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박홍(朴弘) 신부의 『무지의 폭력』에 대한 견해」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학생운동의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라는 朴弘 서강대 총장의 발언에 대해 「양심과 상식을 이탈한 망상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 성명서는 또 「우리 한총련(韓總聯)이 주사파들에 의해 조종을 받는 단체가 아니라 민족의 현실을 고뇌하는 젊은 청년학생들의 자치적 결사」라고 주장한 뒤 「朴신부와 언론, 당국의 터무니없는 주장보다는 그들의 순수하고 당당한 주장을 믿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이 성명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사고 방식을 연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첫째, 韓總聯조국통일위원회는 「통일되기 한해 전 5월28일」자 출범선 언문에서 북한의 對南적화전략을 완벽하게 추종하는 내용의 출범을 발표했다. 「韓美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군중운동을 전재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미군기지의 철폐를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이다… 이북에 대한 부당한 핵사찰압력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연습중단 투쟁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다.

연방제식 통일방안의 유일성과 합리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흡수통일을 반대하고 국가연합을 반대하는 우리의 통일방안은 연방제 방식 외는 없다(후략(後略))」 이 선언문의 방향 제시대로 韓總聯은 올해 폭력적, 불법적 시위를 되풀이해 옴으로써 한국사회를 갈등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단체를 「애족적 결사」로 보는 이 사제단은 북한 노동당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하다.

둘째, 朴弘총장·언론·정부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 韓總聯학생들의 주장을 「순수하고 당당한 것, 그래서 믿을 만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한국의 체계세력에겐 깊은 불신감을 親北 反체제세력에겐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사실오인이라 함은 「金日成 분향소」를 설치, 분향하고도 경찰이 분향소를 조작했다고 거짓말을 한 全南大 일부 학생들의 예(例)가 잘 입증해주고 있다. 사제단의 성명서 어디에도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도 유의해 볼 만하다. 셋째, 이 성명서에서 구사하고 있는 낱말들은 너무 거칠고 감정적이라 성직자들의 글 같지가 않다. 편견, 무지, 망상 「무지의 폭력」, 거짓 예언, 멸망….

독선(獨善)은 위선을 낳는다

정의구현사제단이 朴弘 총장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거짓 예언」이란 말은 사제단에 돌려주어야 할 낱말이다. 정의구현사제단(당시 대표 김승훈(金勝勳)신부)은 1988년 2월16일「13代 대통령선거의 개표과정에서 컴퓨터조작에 의한 부정이 있었다는 증거를 포착했다」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 컴퓨터 부정설을 확산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컴퓨터 부정설」은 아무리 첨단 문명사회에서 살아도 인간들이 증오와 독선, 위선과 비겁에 사로잡히면 무지와 편견의 암흑사회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게 됨을 증명했다.

개표과정과 컴퓨터에 대한 기본적 이해력만 있어도 웃고 넘겨버려야 할 「컴퓨터 부정설」은 한때 우리 사회 큰 화제가 되어 곳곳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토론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주제로 만들어 우리 사회에 불신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국론과 국력의 낭비를 가져온 데 대하여 정의구현사제단은, 「컴퓨터 부정설」을 활용한 일부 정치인 및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說」또는 양시론(兩是論)으로 끌고간 기자들과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사제단은 한번도 재개표를 요구하지 않았다. 컴퓨터 부정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사실 오인에 대해 사과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제단이 처음부터 컴퓨터 부정설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서도 그런 주장을 강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자아낸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5월에 서울大 학생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 수사가 축소조작되었음을 폭로, 6월사태의 기폭제를 만드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들이 사제단에 대해서 가졌던 존경심은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란 당시의 유행어로 표현되었다. 그런 사제단에 대한 감동적 추억과 컴퓨터 부정설과 朴弘 총장 비판 성명으로 야기된 「지우고 싶은 기억」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오만은 獨善을 낳고 獨善은 필연적으로 위선(僞善)을 낳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되풀이 강조되고 있는 가르침이다.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통일시대의 칼과 펜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서 갈등하고 있는 한국의 지식인사회와 군대는, 평화시가 아닌 金日成死後의 결정적 시기에서 그런 몸살을 앓고 있다는데서 그 결과는 한국의 장래를 좌우할 정도의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상황은 그것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법이다. 金日成의 죽음을 한반도의 평화정착, 사실상의 분단 고착기회로 파악하는 것은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적 상황해석이다. 우리는 金日成사망을 통일의 최대장애물이 제거된 것으로, 즉 한민족에게 던져진 통일의 天時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하늘은 1950년에 金日成에게 그런 天時를 주었다. 金日成은 유격전 정도나 이해하고 현대전의 본질적인 시간과 속도의 개념을 몰라 전쟁지도자로서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서울을 점령한 뒤 3일을 허송하는 식으로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이제 하늘은 남한에 통일의 기회를 넘겨 주었다. 우리가 『대세는 우리편, 가만 있어도 북한은 망할 것이다』『당장 통일하면 우선 나부터 손해본다』는 식으로 안이하고 이기적인 자세로 임한다면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를 밀어내는 꼴이 되고 만다. 독일국민처럼 묵묵히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순식간에 낚아채는 과감성이 요구된다. 우리가 이번의 기회를 놓치면 한 세대 뒤에는 북한에게 통일의 天時가 도래할지 누가 아는가. 기회는 준비돼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고 한번 지나가 버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통일에의 이런 결정적 호기에 즈음하여 좌파적, 위선적 지식인들에 의한 反軍캠페인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反대한민국, 親北韓, 反軍, 反흡수통일세력은 거의 동일하거나 상호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남하주도의 자유민주주의식 평화통일은 그 본질에 있어서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의 혁명무력을(전쟁을 통하지 않고서) 무력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통일은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에 진주하여 통치체제를 장악하고, 가능하다면 북한을 일정기간 분리통치하에 두고 경제적으로 자립기반을 만들어 주는 식이 될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이 폭력적 혁명 무력이라면 남한의 군사력은 평화적 통일무력이 돼야 하는 것이다. 6·25이후 한국군의 존재 이유는 북한의 전쟁도발의지를 억지하는 것이었다면 통일시대 한국군은 민족통합을 힘으로써 뒷받침하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전쟁 철학자 클라우제비츠는 『군대의 물리력은 칼집에 불과하고 정신력은 칼날이다』고 했다. 이 칼날이 늘 시퍼렇게 서 있도록 하려면 국군의 내부개혁과 함께 軍의 응원단인 국민들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이 요구된다.

통일정신으로서의 상무정신

한국의 상무정신은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그 번영이 국군의 시산혈해(屍山血海)위에 서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국민들이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올해 국군의 날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육군의 선임사단인 수도기계화사단은 6·25동란 때는 수도사단, 월남전에 파견되어서는 맹호부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정예이다. 이 사단사령부에 있는 「맹호부대 역사관」엔 이 부대의 역대 전사자(戰死者) 1만4천2백41명의 명단이 새겨진 동판이 있다.

6·25 이전의 공비토벌전에서 3백75명, 월남전에서 1천4백38명, 나머지는 6·25전사자이다. 6·25전쟁 때 미군의 사망자는 3만5천여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사단의 전사자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사자들의 전사일자를 살펴보니 1950년 6월 25일이 1천99명이었다. 6월25일∼6월30일 사이 전사자들이 모두 6월25일자로 기록돼 있는 것 같다.

사단병력의 10%가 죽었으니 그 몇 배나 될 부상자까지 합치면 6·25초 전에 우리가 궤멸적 타격을 당했다는 기록은 간단하지만 이 전사자 명단이 그들의 피로써 증언하는 그 사실(史實)의 무게는 엄청나다. 이런 희생을 두고서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어떤 論法을 구사해 왔던가.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고, 누가 일으켰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에는 휴전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이런 책임공방은 냉전체제의 산물로서 분단고착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통일 지향적이지는 않다」(인천도덕교사 모임이 지은「아이들과 함께 하는 도덕수업 1」).

「누구 먼저 침략을 시작했느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북한군이… 강릉 남쪽에 상륙했다는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급박한 보고가 있었다. 이튿날 김일성은 이승만 군대가 38선 이북으로 진공을 감행하였으므로… 소탕을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서울지부가 엮은 「학급경영 1학기」). 「이 전쟁은 민족자주세력과 외세의존 세력, 민중세력과 반미중세력간의 내전이다. 철군 1년 만에 미국이 남한을 재침략·재점령함으로써 미국이라는 외세에 의해 강요된 역사를 다시 걸어가게 되는…」1993년 여름호 역사비평.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쓴 「미국과 한국전쟁」).

生活人이 위선자 눌러야

교사와 교수들의 이런 글은 非도덕적이고 反교육적이다. 민족사상 최대의 전쟁범죄에 대해서 「굳이 책임을 따질 필요가 없다」거나 침략당한 한국을 구원하러 온 미국을 재침략자로 규정하는 그런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善惡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는 가치기준과 정의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 학생들이 과연 정상적인 국군·국가관을 가질 수 있겠는가? 평화적 통일무력으로서의 우리 국군은 과연 이런 위선적 논리를 극복하고 통일 이후까지도 국가의 자본과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울타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한국의 진운(進運)이 달려 있다. 로마시민들이 軍役을 명예나 권리로 여겼을 때(세금을 못 내는 빈민이나 노예는 군에 들어갈 수 없었다) 로마는 흥했고 의무로 여겼을 때 로마는 정체했고 용병에 의존했을 때 로마는 망했다.

로마가 세계제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를 잡은 것은 카르타고와의 3차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통해서였다. 한니발 전쟁으로 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26명의 집정관을 뽑아 최고사령관 직책을 맡겼는데 그 가운데 8명이 戰死했다. 국가의 운명을 건다는 건은 엘리트층(層)에게 굉장한 각오와 출혈(出血)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 엘리트層은 통일기를 맞아 과연 그러한 희생정신을 갖고 있는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같은 나라들은 모두 상무정신이란 토양 위에 민주주의란 꽃을 심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가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국민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3국 통일도 화랑정신이란 尙武정신의 뒷받침을 받음으로써 가능했었다. 여기 사하라 사막에까지 퍼진 한국의 군사문화, 그 씨를 말리려는 위선적 지식인들의 反軍선동은 통일을 눈앞에 둔 결정적 시기에 평화적 통일무력을 약화시키려는 反통일적 거동이라고까지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독선과 위선을, 겸손과 균형감각을 정의감과 용기를 낳는다. 통일로, 21세기로 달리려는 대한민국의 다리를 걸고 있는 위선적 지식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면 겸손하게 살아온 농어민·기업인·군인·노동자 등 생활인들이 용기있게 발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