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사건 意味와 신임 국정원장에의 기대

국정원장이 교체됐다. 김승규 원장이 물러나고 김만복 국정원 제1차장이 원장으로 승진돼 국정원의 지휘 책임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세간의 관심은 주로 신임 원장이 앞으로 간첩단 수사를 제대로 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되었었다. 물러난 김승규 원장이 공개적으로 후임 원장이 ‘코드’인사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우려를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간의 우려는 국정원 직원들의 직업의식과 ‘프로’정신을 가볍게 여기는 기우에 불과하다. 물론 정보기관의 생리로 보아 원장의 지휘는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장이 국정원 전문 수사관들의 수사 의지를 꺾거나 실체적 진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국정원 직원들은 그렇게 쉽게 시류에 영합, 자신들의 직업윤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최근 잇따른 간첩 수사 성공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국정원은 어렵고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마치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급류 속에 놓여 있는 ‘걸림돌’과 같은 형편이었다고 비유할 수 있다. 북한을 무조건 감싸고 지원해야 하는 ‘햇볕’ 포용정책은 그동안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였다. 이런 흐름의 와중에서 간첩을 잡고 북한 정보 수집에 적극 나서야 하는 국정원은 대세를 거스려야 하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고 과거 진상조사로 더 옥죔을 당하면서 주눅이 드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특히 대공 및 대북 정보 분야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었다. 간첩을 잡는 일은 어느 사이엔가 더 이상 애국적인 일이 아니게 됐다. 오히려 정부가 싫어할까봐 눈치를 살펴야 하고 통일 인사 탄압이라는 역공세를 걱정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 되어 버렸다. 북한 정보분야도 형편은 비슷했다. 햇볕정책이 ‘묻지마’ 정책으로 변모하면서 북한정보는 그 유용성을 잃어버렸다. 햇볕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사용될 뿐 그 외의 정보는 사장되기 일쑤였다. 국정원은 그 존재 의의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데도 대부분의 국정원 직원들은 흔들림없이 묵묵히 거센 시대 조류를 고집스럽게 거스르는 정보 프로 근성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가 7월의 필리핀 국적으로 위장한 고첩 정경학 및 이번 ‘일심회’ 간첩단 검거로 나타났다. 이는 그 어느 때의 간첩 검거보다 값지고 귀한 쾌거다. 북한이 더 이상 안보 위협이 아니라고 모두 손 놓고 있을 때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랜만에 국정원이 나라를 지키는 제구실을 했다는 의미 이상의 중대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비로 북한 핵실험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재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과 간첩단 사건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남적화라는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서로 연계된 사안이다.

왜 북한은 그토록 집요하게 간첩을 지속적으로 남파하고 있는 것일까? 고첩망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북한으로서도 간단한 사업이 아니다. 핵개발처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이며 철저한 목적 의식과 계산 없이는 엄두를 못내는 위험한 사업이다. 북한이 이런 어려운 대남사업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즉 남한의 ‘레짐체인지’를 통한 적화의 꿈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간첩단 사건은 김정일이 아직도 대남 적화의 끈을 붙잡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렇다면 북한 핵무기의 용도는 자명하다. 남한혁명을 겨냥한 김정일의 주요 수단일 뿐이다. 여기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현 안보 상황은 과거 남한 적화를 위해 각종 테러를 실제 지휘했던 사실상의 테러리스트인 김정일 손에 ‘지고의 무기’라는 핵무기가 들려 있는 악몽적 상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주장대로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안심하고 살 상황”이 결단코 아니다.

이 엄중한 정세 하에서 우리 안보체제의 중추기관인 국정원 책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국정원이 이번 간첩단 검거를 통해 보여준 국가 보위의 결연한 의지와 철저한 프로 정신에 의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임 국정원장이 국정원 출신의 ‘커리어’ 정보 관리이기에 더욱 큰 기대감을 갖게 된다.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 그것이 정녕 국정원의 존재 이유이며 국민의 바람이고 신임 원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일 것이다.

이병호 전 안기부 차장, 울산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