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가난과 부패는 북한체제를 지탱해주는 수단이자 방법이다. 북한주민들이 겪는 처절한 가난과 최고위층으로부터 일반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일상화된 부정부패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가난이 심해지면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높여주기 때문에 가난은 체제의 위기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고 여기에 권력층의 부정부패가 겹쳐지면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붕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일시적인 분단상태로 존재하는 일방인 북한은 남한이라는 대안체제가 있기 때문에 가난과 부정부패는 체제를 위협하는 첫째가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은 1980년대 가속화된 경제침체로 생필품 공급 중단과 부정부패가 심각해졌고 1992년부터는 식량배급 중단사태로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식량배급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면서 대량 아사가 발생하고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지만 붕괴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남한에서는 북한의 조기 붕괴론이 등장했고 미국도 북한이 조기 붕괴한다는 가정하에 2,000MW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하고 제네바 핵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 조기 붕괴론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북한 경제의 붕괴와 심각한 식량난, 북한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 김일성 사망 등이었다. 그러나 조기 붕괴론이 거론된 때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북한정권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각한 가난과 부정부패 속에서도 북한정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것은 가난과 부정부패가 체제유지에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북한은 독특한 통제 시스템을 이용해 가난과 부정부패를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의 통제시스템은 계층별, 직업별로 다중화되고 특화된 감시체계와 외부로부터의 철저하게 폐쇄된 정보통제, 사회여론과 소문의 조작, 분산 특화된 식량배급 체계의 적절한 활용 등으로 가난과 부정부패가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

북한이 가난을 체제유지 수단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가 김일성 사후 대량아사 사태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량아사 사태를 의도적으로 조장 및 방치함으로써 북한주민들이 생존에만 몰두하게 하고 김일성 애도 3년상이라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김일성 체제에서 김정일 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김일성 사망으로 인한 권력 공백과 불안정, 있을 수 있는 반체제 저항의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대량아사라는 참혹한 비극을 이용한 것이다.

대량아사라는 최극단의 가난을 체제유지에 이용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북한상황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1992년부터 북한 북부지역에서는 식량배급의 완전 중단으로 다수의 주민들이 굶어죽기 시작했지만 북한당국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듬해인 1995년에야 국제사회에 공개하고 식량지원을 요청했으나 실질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김일성 체제에서 김정일 체제에로 전환하는 과도기였기 때문에 식량난을 해결할 여유와 의지가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본격적인 대량아사가 시작되는 시기였던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1995년까지의 기간에 식량구입을 하는데 돈을 쓰지 않고 아버지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하는 금수산 기념궁전을 치장하는데 8억9천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돈이면 1995년 국제시장 가격으로 북한의 3년분 식량 부족량에 해당하는 옥수수 6백만톤을 살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주민들의 대량아사 사태를 방치하고 또 의도적으로 조장하였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북한 전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매일 보고 받는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한 권력기관들의 정교하고 다중적인 감시 통제 시스템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 주민동향 등의 정보를 수집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로 되어 있다.

노동당과 국가보위부, 인민보안성, 청년동맹은 각 기관별로 직장, 인민반, 협동농장, 대학 등을 담당하고 있는 당비서, 보위원, 보안원, 인민반장 등으로부터 하루 1회 이상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구역(군), 시, 도를 거쳐 매일 오후 3～6시까지의 시간대에 평양의 중앙노동당의 조직부 관련부서로 집중되는데 중요도에 따라 분류․정리․선택하여 보고된다.

정보수집과 보고 과정에서 모든 형태의 정보들이 가감 없이 그대로 중앙까지 전달되고 체제안보와 관련된 핵심정보들은 곧바로 김정일에게 일일 보고된다. 이같은 정보 수집 및 보고 체계는 해당 기관의 최고위 간부라고 하더라도 간섭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서뿔리 간섭했다가는 반체제 범죄로 엄중처벌된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매일매일 어디에서 몇 명이 굶어죽고 식량 부족실태가 어떠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어있다. 대규모의 아사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 시기에 식량이 아닌 김일성의 시신 영구보존에 거액을 쏟아부은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식량난 조장․방치로 발생하는 사태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김일성 애도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바람에 국가행정기능이 마비되어 식량난이 더욱 악화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사망 직후 처음에 정한 100일간의 애도기간이 지나자 상주의 자격으로 인민들에게 감사문을 보냈지만 다시 애도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마지막에는 3년으로 연장했다.

김일성 애도 3년 기간에 북한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통제를 실시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고 웃음을 통제했으며 심지어 결혼식도 하지 못하게 했다. 뿐만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했고 간부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처벌하는 등 살벌한 공포의 분위기가 조성되였다. 처벌이 두려워진 간부들이 철저한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취하면서 북한정권의 행정기능은 거의 마비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3백만명 이상의 아사자 대부분이 김일성 애도 기간이 늘어난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3년동안에 사망했다.

매일같이 시체가 거리에 방치되는 대량아사 사태속에서 북한주민들은 생존이 최고의 목적이자 삶의 전부였고 이 같은 상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바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실질적 통치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의 간부들과 엘리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사망이후 경제 붕괴와 식량난, 그로 인한 대량아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북한주민들의 불만과 저항의식을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으로 극도의 가난을 강요하는 식량난을 조장․방치하여 북한주민들이 생존에만 몰두하게 만든 것이다.

이와 함께 김일성 유훈통치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죽은 아버지 김일성과의 비교를 통한 김정일의 카리스마 약화를 차단하고 김일성 체제에서 김정일 체제에로 전환의 과도기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선군정치로 대변되는 강력한 폭압통치의 실시는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가난으로 인한 불만과 저항이 김정일에게로 집중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북한이 가난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철저한 정보통제와 소문조작을 통한 사회여론의 조종, 식량배급을 통한 권력층 달래기 등의 보조적 수단들이 복합적으로 잘 활용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 속에서 생활이 어려워지는 원인으로 지금까지 자주 거론되는 것이 “중간층의 간부들이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원인들이 북한주민들에게 먹혀드는 것은 철저한 정보 통제와 외부정보유입의 차단, 북한주민들의 신뢰도가 높은 소문 조작을 통한 사회여론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북한정권이 주는 정보만을 보고 듣기 때문에 20여년이나 계속되는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북한당국의 선전을 믿지는 않지만 미련은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당국이 가난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북한정권의 유지를 위한 통제와 감시를 담당하고 있는 권력기관들도 북한주민들과 똑 같이 식량난을 겪으면 가난이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배급 제도는 권력기관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다가 식량배급 중단이후 핵심권력기관과 중요 공장, 기업소들은 별도의 식량배급 체계를 갖추어 체제위험을 줄였다.

북한의 핵심권력기관인 국가보위부, 인민보안성, 노동당, 인민무력부는 자체의 식량배급소를 갖고 있어 일반주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식량배급이 가능했다. 식량난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1995년경부터 일반주민용 식량배급소의 식량배급은 중단했지만 청년동맹 간부들과 군수공장 등 중요 권력기관과 특수분야의 공장, 기업소는 양정사업소에서 직접 배급을 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분산 특화된 식량배급 체계가 1990년대의 대량아사 사태 속에서도 북한권력기관의 감시와 통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북한당국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보위부의 무자비한 처벌을 가하고 일상생활에서 제기되는 폭력이나 사기, 절도 등의 문제들은 될수록 방치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차별화된 통제와 처벌로 주민들에게 체제저항은 곧 죽음과 직결된다는 공포의식을 심어주는 학습효과를 통해 다른 체제유지 수단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대규모 아사라는 최극단의 가난과 다중적이고 철저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교묘하게 엮어졌기 때문에 북한이 오늘날까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난이 북한주민들의 저항의식을 마비시켜 체제유지에 기여한다면 부정부패는 북한의 통제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장기간의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북한주민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어떤 자리에 있던지 국가가 요구하는 법과 원칙대로만 한다면 굶어죽던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어있다. 수십년전부터 시작된 경제침체와 식량과 생필품, 연료 부족으로 일탈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가 북한사회인 것이다. 여기에 최장기 세습독재를 유지하는 북한은 권력의 힘으로 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에 권력은 일탈의 면죄부이자 돈이고 풍요의 보증수표(保證手票)이다.

권력이 높을수록, 북한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문제들을 다루는 직업일수록, 북한주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을 소유한 권력일수록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국가보위부나 인민보안성, 노동당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권한이 막강해서 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을 우선공급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강탈하여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만큼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

북한 당 간부들은 식량배급이나 부식물 공급과 같이 국가로부터 받는 특혜 외에도 출세와 신분평가 및 보장, 행정기관의 관리를 명목으로 뇌물를 받는다. 보안원은 주민들을 단속하고 통제하면서 뇌물을 받아먹고 주민들로부터 빼앗은 물품을 다시 팔아 2중, 3중으로 돈을 챙긴다. 국가보위부원들도 북송교포나 화교 등 부유층의 신분보장, 불법행위로 인한 단속으로부터 보호 등의 명목으로 뒤를 봐주면서 돈을 받아 챙긴다.

북한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규제와 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모든 요소요소마다 권력과 뇌물이 필요하다. 여행증을 발급하고 장사를 하는 것을 비롯해 일체의 모든 행정 절차에서 허락을 받으려면 권력과 뇌물이 필요하다. 이처럼 국가의 기능이나 조직생활, 주민통제, 직업, 장사 등 모든 분야에서 뇌물과 권력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사회구조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낳지만 권력의 동의와 보호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의 통제시스템을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부정부패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부정부패하려면 권력을 동반해야 하고 권력을 얻자면 북한체제에 철저히 복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려면 할당된 정보수집과 통제, 처벌의 의무를 철저히 수행하여야 한다. 북한의 국가보위부원이나 보안원의 경우 정기적으로 소위 불평분자, 불만분자, 반당․반혁명분자, 간첩 등을 잡아내라는 할당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죄를 씌워 희생양을 만들어서라도 과제를 수행한 자만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유지된 권력은 뇌물과 강탈 등으로 얻어지는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부정부패 구조가 통제 시스템의 자율성을 높여주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체제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다. 북한당국도 체제유지에 기여하는 부정부패의 기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정부패의 사슬구조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주기적인 처벌에 그친다.

가난과 부정부패까지 체제유지에 이용하는 북한의 이 같은 정교한 통제 시스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품이다. 그는 아버지 김일성이 최고권력자로 군림하던 1960년대 말부터 노동당 선전선동부와 조직부를 거쳐 당 조직비서로, 후계자로 오르는 과정에서 북한의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면서 오늘의 북한을 있게 한 정교한 통제 시스템을 완성했다.

가난과 부정부패가 장기간에 걸쳐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난과 부정부패의 고착화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북한사회의 변화 수용능력을 크게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가난과 부정부패의 고착이 사회변화 수용능력을 저하시키는 현상은 북한에 투자한 기업들의 대북사업(김찬구, 『아, 평양아…』비봉출판사, 2005)과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과정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남한기업을 뜯어먹을 대상으로 여기면서 공공연하게 뇌물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제동을 걸면서 방해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변화수용능력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권력과 뇌물을 동반하게 되는 부정부패는 북한사회와 주민들의 생존구조로 고착되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도 없애지 못한다. 북한에서 극도의 가난과 부정부패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삶의 기본적인 형태이고 필수적인 수단이자 방법이다. 또 그 과정에서 수용소에 감금되거나 추방, 총살과 같은 극단적 처벌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몇년사이 회령과 온성 등의 북중 국경지역은 자주 중앙에서 파견한 집중검열을 받고 있다. 집중검열이 끝나면 많게는 몇십명씩 처벌을 받고 추방되지만 부정부패의 사슬구조를 형성하는 원인은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 교체된 간부들은 어쩔 수 없이 부정부패의 삶을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백만명을 아사시키면서 가난과 부정부패를 이용해 체제를 유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으로 인해 변화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체제붕괴에로 갈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잘 다듬어지고 강력한 통제시스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되기 마련이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함으로 해서 몰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 기고】
【2007년 3월 22일】김승철(북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