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기자 lmhcool@chosun.com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한나라당 추천)이 한나라당 의원, KBS 간부 등과 만나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방송대책 등을 논의한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본인 동의 없이 술자리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이를 공개한 것은 법적·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6일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열린우리당은 강 위원을 출석시켜 “한나라당의 5공(共)식 방송 장악 기도”라며 공세를 폈지만, 강 위원은 “술자리에서 가볍게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법적·도덕적 논란

지난해 11월 강 위원은 신현덕 전(前) 경인방송 대표, KBS Y부장,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등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신 대표가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이날 국회 문광위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을 들어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 비밀 보장 원칙에 따라 이른바 도청물이나 불법 녹취물은 재판이나 징계 증거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사회의 후진성과 야만성을 또다시 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최구식(崔球植) 의원도 “‘나라님도 없는 데서는 욕한다’는 말도 있듯이 가혹한 비민주적 전제군주 치하에서도 백성의 사적 공간은 관용해줬다”며 “최소한의 숨쉴 공간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율사 출신 의원도 “술자리 발언까지 이런 식으로 다 까발려지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하창우 서울변호사협회장은 “대화 당사자가 녹음했기 때문에 불법 녹음은 아니지만, 공공의 이익과 상관없는 사적인 대화까지 녹음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했다.

◆무슨 내용 담겼나

국회 문광위원들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강 위원은 “(한나라)당에서 방송에 관심을 가져 달라. 우익 단체들이 방송회관에 와서 ‘이렇게 하려면 문 닫아라’라고 시위를 해줘야 된다”고 했다. 또 “우리가 정기적으로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지금은 패싸움하는데 그거 따질 수 있나”, “내년 대선 때 노조가 제대로 들어서면 반은 정연주(KBS 사장) 견제할 수 있다. 국회의원 몇 분 당선되는 거보다 KBS 노조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 Y부장이 KBS에 관리자 노동조합을 설치하는 문제를 언급하며 “이거 되면 정권 찾아오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이 문제가 법원에 걸려 있는데 내일이라도 손을 쓸 수 있으면…”이라고 하자, 유 의원은 “요즘은 안 통하는 판사도 많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