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북정책을 거의 180도 바꿨다. 한나라당이 4일 발표한 ‘한반도 평화비전’은 한나라당판 햇볕정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내용이다. 연 3만명 규모의 북한 산업연수생 도입, 서울∼신의주 고속도로 건설 지원, 북한 산업단지 현대화 지원, 대북 제한 송전, 금강산·설악산 관광특구 조성 등 대대적인 대북 지원이 핵심이다. 한나라당측은 특히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통한 대북 현금 유입, 연간 15만t의 쌀 무상 지원 등엔 북한 핵 포기라는 전제 조건도 달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先선안보, 後후교류협력을 강조해 동북아 탈냉전 흐름에서 현실 대응력이 미흡했다”고 자신들의 기존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새 대북정책이) 방향성에선 현 정부와 비슷해진 측면도 있다”고 했다. 북핵 6자회담의 진전으로 한나라당만 외톨이가 될 것 같아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상당 부분 따라가겠다는 얘기다.

이 대북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은 “북한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지원이 끊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직접 북한에 가서 이런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고도 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 난다”는 식의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이 북한의 이런 공갈에 넘어가 한나라당에 표를 주지 않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외톨이가 될지 모른다는 ‘왕따 공포’에다 북한의 협박에 주눅 든 ‘北風북풍 공포’가 겹쳐져 정당의 기본 노선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결국 북한의 협박에 두 손 모두 번쩍 든 셈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금은 북핵 제거에 모든 정치·외교·안보적 역량을 집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은 이제 곧 핵 물질 신고와 핵 시설 불능화에 들어가야 한다. 중대한 시점이다. 북한이 협상 카드를 잘게 잘라서 件건마다 더 많은 요구 사항을 붙일 거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북핵 포기’라는 대전제를 제 손으로 허물어뜨린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前전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도 찬성으로 돌아섰다. 남북정상회담 쇼 한번에 국민 여론이 뒤집어질지도 모르니 “우리도 그때 찬성했었다”고 알리바이를 만들어 두려는 것이다. 대한민국 유권자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비핵화에 필요하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비핵화는 남북정상회담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한나라당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이 정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대선 정략이라고 비판해 왔지만, 자신들도 대북정책을 대선 정략에 이용하려 골몰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한나라당의 이런 ‘左派좌파 보수’식 성형 수술을 얼마나 예쁘게 보아 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