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한에 온 지도 이제는 3년째다. 내가 탈북을 결심하고 남한에 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었다. 국가안전보위부라는 독재기관에서 복무한 나로서는 남한에 온다는 그 자체가 고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에 와서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은 지나간 세월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의 탈북이 북한의 독재기관에서 복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난 5월에 김정일 피습설이 나돌면서 비록, 사실은 아닐지라도 순간이나마 독재자 김정일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후련해졌었다. 탈북자들만 하더라도 김정일만 죽으면 고향으로 다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독재기관이나 당에서 복무하는 사람들중에 김정일의 독재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독재정권의 붕괴를 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 중에는 나의 탈북을 선뜻 도와준 이들도 있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내 주위의 친구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 남조선의 김재규가 평양에 나올 것이다. 아무리 정권을 튼튼히 꾸려도 3대 세습이 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할 거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그 사명 자체가 수령을 정치사상적으로 견결히 옹호 보위해야 하는 보위기관이다. 하지만 이곳은 독재자 김정일과 주민들의 동향, 외부세계의 소식을 더 잘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의 국가 안전보위부는 특성상 라디오를 들을 수 있으며 외국영화들을 제한 없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은 약간의 틈만 있는 사람이면 의식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기점으로 된다.

때문에 보위원들의 사상변화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빠를 수 있다. 지금 보위기관에 복무하다가 탈북하여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수십 명에 달한다. 이들은 남한사회에서도 잘 정착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나와 같이 근무했던 최정현씨를 만난 적이 있다. 나와 최정현씨는 국가안전보위부 본부에서 근무했다. 우리는 서로가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을 회고했다. 우리는 북한에서도 자주 술자리를 가졌었는데 그때마다 김정일 독재정권에 대해 불만이 많았었다. 더구나 수많은 간부들을 대거 숙청한 피비린내 나는 <용성사건> 이후 나나 친구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그런데 최정현씨가 먼저 가족과 함께 탈북을 하였고 나는 그와 가깝다는 이유로 조사를 많이 받았다. 다행히도 나를 담당했던 사람이 친구라서 형식상 조사를 받았고 진술서도 꾸몄지만 조사과정에 나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체제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자료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자료에는 당, 군, 정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하부 말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적혀 있었다.

요시찰 명단으로 불리는 자료들에는 빨간색, 노란색 등이 이름들에 체크되어 있었다. 빨간색은 특별요주의를 뜻하며 노란색은 항시 주의라는 뜻으로 구분된다. 빨간색으로 체크된 사람들은 24시간 감시를 당한다.

남한이나 외부세계에서 북한이 독재국가이고‘일심단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북한 내부에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김정일 독재정권이 얼마 가지 못한다고 장담하고 있다. 지금 김정일의 후계구도설이 언론에 나돌고 있다. 만약 북한에서 정말로 후계문제가 물망에 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김정일 독재정권의 멸망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탈북자 오상민(前 국가안전보위부 소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