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운동은 추석 연휴에도 계속된다!


점심 무렵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근처를 지날 때였다. 도로원표 앞에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보여주는 현수막을 걸어 놓고 안티조선운동을 벌이는 자가 있었다.

지난 수년 간 매주 토요일 점심시간 무렵이면 늘 보아오던 풍경이라 그 자체로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앞을 지날 때면 ‘어휴, 징하기도 하다. 몇 년을 두고 같은 소리만 하나’하는 지겨움, 역겨움이 앞서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제는 낯익은 그 안티조선 현수막을 보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묘한 감동(?)까지 밀려왔다.

왜냐하면 오늘이 추석연휴의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중심부에서는 차(車)도, 보행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점심을 사 먹으려 해도 문을 연 식당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식당은 고사하고 빵집이나 커피점까지 문을 닫아 빵 한 조각 사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명절 휴일에도 어김없이 늘 나오던 그 시간에, 그 장소에, 그 현수막을 들고 나오다니… 비록 그 주장하는 바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한결같은 그 투쟁의지만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티조선 활동가가 나를 감동(?)까지 시킨 것은, 한나라당의 작태와 대비가 됐기 때문이었다.


무능과 무기력함 드러낸 한나라당

주지하다시피 한나라당은 어제 새벽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려다가 실패했다. 한나라당이 예산결산특별위 위원 50명 가운데 29명,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172명을 차지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추경예산 국회통과가 무산되는 바람에 특단의 민생대책을 통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지지도를 제고시켜 보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꿈은 글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렸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거대 여당 한나라당은 무능과 무기력함을 그대로 노출시켰고, 야당은 야당대로 ‘날치기 미수’에 앙앙불락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나? 한 마디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단이 의원총동원령을 내리고 의원들을 불러 모았지만 40여 명의 의원들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 최고위원 가운데도 나타나지 않은 자(이럴 때 놈 '者‘자를 안 쓰면 언제 쓸까?)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 측근이란 자 중에서는 술자리에 있으면서 소집에 불응한 자도 있었다고 한다.


예결위 불참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변명

이날 자리를 비웠던 한나라당 예결위원 7명의 변명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우선 '추경안이 불발될 것 같아 지역구로 갔다'는 이 아무개. 방송인 시절 마이크만 잡으면 청산유수이던 사람의 변명치고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말은 바로 하자. 추경안이 불발될 것 같아 지역구로 간 게 아니고, 자기가 지역구로 갔기 때문에 추경안이 불발된 것 아닌가?

황 아무개는 '중요한 간담회가 있어서 지역구에 갔다가, 예결위가 끝난 뒤 본회의장엔 앉아 있었다'고 변명했다.

간담회의 ‘간담(懇談)’이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만 찾아봤어도 그런 얘기는 못한다.

‘간담’은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는 의미다.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라 커피나 한 잔 하면서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가 ‘간담’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도 직업상 각종 ‘간담회’에 곧잘 쫓아다니는 편이지만, ‘간담회’ 간판을 걸고 진행되는 행사치고 변변한 행사 못 봤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중요한 간담회’라는 것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

황 아무개는 그런 변명에 앞서, 자기 지역구에서 있었던 ‘중요한 간담회’가 무엇인지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의 존재이유도 모르나?

예결위에 불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변명 가운데 압권은 유 아무개의 변명이다. 국회에 있어야 할 시간에 지역구에 내려갔던 그는 “원내대표나 예결위원장이 추경안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고, 꼭 참석하란 말을 안 했다'며 '밤에 비행기도 끊겨 못 갔다'고 변명했다.

이건 아예 국회의원이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국회가 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자의 변명이다.


‘국회’가 왜 생겼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국회’라는 기관이 생긴 이유, 그리고 그 국회가 정치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국회가 국민의 혈세를 정부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감시하는 기관, 정부의 예산을 통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은 모두 위정자의 과도한 과세(課稅)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산심의는 국회 존재 이유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원내대표나 예결위원장이 추경안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을 안 해 줘서 자리를 비웠다”?

이건 “나는 국회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금뱃지를 달았습니다”라고 자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뇌아(無腦兒)도 이런 무뇌아가 없다.

못 배운 인간이 그런 소리를 하면 열이나 안 받겠다. 그 어려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그걸로는 성에 안 차는지 미국 가서 로스쿨 나와 미국변호사 자격증까지 따고, 거기에 덤으로 미국 대학에서 법학석사 학위까지 받아온 인간이 그런 소리를 하는 데는, 정말 기도 안 찬다.


'웰빙정당' 한나라당의 자업자득

사실 이번 사태는 한나라당의 자업자득이다. 지난 총선 때 영혼이 없는 인간, 투지가 없는 인간, 애국심이 없는 인간, 책임감이 없는 인간들을 공천했기 때문이다.

애국우파들이 좌파 정권 10년 동안 투쟁해 온 애국자들을 공천하라고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하는 것을 외면하고 학벌이나 명함, 배경을 보고 공천한 결과가 이것이다.

웰빙하면서 세상을 살다가 ‘웰빙 정당’에 화려한 이력서를 내밀어 ‘웰빙 공천’을 받은 후, 정권교체 바람을 타고 ‘웰빙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이념적 줏대를 세우지 못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웰빙 정치’를 한 결과가 이것이다.

10년 만에 청와대에 들어간 자기당 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추경예산을 통과시켜야 할 시간에 술자리에서 해롱대거나 지역구에 내려가 노닥거린 한나라당 의원들, 그들로 상징되는 이 나라의 보수우파세력이 과연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거리에 나와서 누가 봐 주건 안 봐 주건 상관없이 묵묵히 투쟁을 벌이는 좌파세력에 맞서 4년 후에 다시 정권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이 나라 이 체제를 끝내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4년 후에도 다시 대선에 승리하고 싶다면. 4년 후에 지금의 민주당 짝이 나지 않으려면, 한나라당은 오늘 추석연휴에도 거리에 나와 1인 투쟁을 벌인 안티조선 활동가에게서 배워야 한다.

적어도 그 안티조선 활동가는 그가 있어야 할 시간에, 있어야 할 장소에 있었다. 여러 해를 한결같이 투쟁했다. 설사 그가 좌파 알바였다고 해도, 그는 알바비 값은 하는 자였다. 세비값도 못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보다는 그가 낫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나를 절망하게 하지만, 그 안티조선 활동가는 나를 각성시키고 분발시킨다. 이 점에서도 그 이름 모를 안티조선 활동가가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낫다.

한나라당과 애국우파의 맹성과 분발을 촉구, 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