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注>조갑제닷컴에 두 달 넘게 ‘탈북여성의 고발詩’ 72편을 연재한 김수진씨가 자신의 탈북과정을 담은 수기(手記)를 보내왔다. 7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1. 18년 前


‘가난한 백성보다도 간부층들이 먼저 썩는구나’


18년 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지구가 서서히 가라앉기라도 하듯 악몽(惡夢)이 시작되었다. 하늘과 땅이 맞붙어 버렸다고 하면 더 나을까. 모든 집집들의 시계는 망가져 버리고 지옥(地獄), 아니 인간 생지옥이 시작되었다. 옥수수 쌀과 시래기국에 쫓기던 사람들이 그마저도 잃고 지옥에 갇히게 되는 대참상(大慘狀)이 벌어졌다. 갑자기 이 세상의 모든 먹거리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검이 소리 한 번 못 질러보고 나가기 시작했다. 먹지 못해 초들초들 말라버린 사람들이 울음 한 번, 원망 한 번 못 질러보고 소리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 귓가에 어렵지 않게 들려온 것은 “김정일 시대에 와서 망해 버렸다”는 소곤거림이 낮게 떠도는 바람처럼 솔솔 번지기 시작했다. 그 말은 한때 간부였던 층들이 일손을 놓고 나앉게 되자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 그들 속에서 먼저 떠돌았다. 간부층의 몇 사람들이 그렇게 소곤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때 너무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일반 백성들이 감히 생각도 못하는 무서운 소근거림이었다. 그때 내 생각에 떠오른 것은 ‘가난한 백성보다도 간부층들이 먼저 썩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은 그 해부터 식량이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배급소 문 앞을 지키다가 어쩌다 한 번씩 들어오는 쌀자동차를 발견하면 시위군중처럼 달라붙었다. 배급을 타는 것은 여인들의 몫이었건만 밀치고 닥치는 배급소 문턱에서 여인들이 밀려나자 이제는 집안의 家長(가장)들이 배급소 문턱을 지켜서서 힘내기 싸움을 벌였다. 배급 한 번 타자면 숨이 꺽꺽 막히는 속에서 사생결단(死生決斷)을 해야 겨우 순서가 차례질 정도였다. 그 속에서 질식사까지도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완전 배급이 끊긴 1996년도부터였다. 밀치고 닥치던 배급소 문 앞에 개미 한 마리 어른거리지 않는다.


첫째 삼촌네 가족, 외할머니가 굶어죽다

갑자기 벼락을 맞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 굶어죽은 시체들이 나뒹굴고, 썩는 시체들이 나뒹굴고 온 몸에 썩는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한 벌 덮이기 시작했다. 시체가 너무 많아 인차 걷어내지 못해 쉬파리떼들이 날아타고 넘었고 누구 하나 시체를 보며 혀를 차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도 고등(高等)한 동물이 시간을 맞아 떠나는 것처럼 모두 감정이 무뎌져 있었다.

네 죽음이 내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산 사람도 정신이 무뎌진 것 같았고, 동정도 없었다. 모두 무덤덤하다. 나 역시 그랬던 것이다. 길가에 누워있는 시체에 눈길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언제 내 가족이 또한 그들처럼 참변을 당할지 시간을 가늠하기 바빴던 것이다.

죽음은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친척들 속에서도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의 동생인 첫째 삼촌네는 가족이 통째로 굶어죽고 군대에 나간 아들이 혼자 살아남았다. 군대 나간 아들 한 명을 내놓고 네 식구였던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떠돌다가 외삼촌과 작은 아들은 동네의 길바닥에서 굶어죽고 삼촌 엄마와 딸은 평성이라는 낯선 마을 근처를 떠돌다가 그들 역시 굶어죽었다.

죽기 전에 삼촌 엄마가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면서 연락 좀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마운 사람이 편지로 사연을 알려왔다. 내가 쓴 시(詩) ‘제대군인의 울분’은 우리 외삼촌만이 아닌 한때 내가 함께 일하던 제대군인들 중에도 이런 비극이 여러 명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을 주제로 쓴 것이다.

외삼촌네 소식과 함께 또다른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멀리 최북단 산골마을에서 작은 이모와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홀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야말로 말 한 마디 못하고 꼿꼿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던 초기,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가 계시는 그곳에 장사를 갔다가 잠깐 뵌 적이 있다.

그때 벌써 쌀이 한 알도 없던 할머니 집은 시래기 냄새와 나무 내내가 꽉 차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큰 도움을 준 것도 없다. 우리 주머니도 푼푼치 못하여 옥수수쌀 3킬로를 하늘 높은 줄 알고 사서 드리고 그 밤중으로 되돌아섰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먼 곳에서 끝없이 손을 흔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의지(意志)를 가다듬다

훗날 소식을 들으니 작은이모는 먹을 것이 없어 딸과 함께 길거리를 떠돌았고 혼자 남은 할머니가 그냥 집에서 꼿꼿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죽기 전에 동네 늙은이가 너무 기척이 없어 들여다보니 온기(溫氣)가 없는 방에서 홀로 쓰러진 채 운명(殞命)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 늙은이가 자기 집도 때거리가 없으니 죽 한 술 떠 넣어줄 것이 없다고 하면서 물 한 모금을 입에 떠넣어주고 눈을 감겼다고 한다.

이처럼 끔찍한 참상이 우리 친척들 속에서 일어나다니. 아니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은 시기였다. 친척이나 형제를 잃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다행 중의 다행이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을 부르며 대성통곡했다. 이렇게 친척들 이웃들이 죽어나가는 속에서 바짝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대응하지 않으면 자칫했다가는 우리 가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험난한 세상을 차곡차곡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도 죽지 않기 위해 악착스럽게 버텨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집안의 맏이였던 나는 내 어깨 위에 내 가정의 무게, 나의 부모님들, 우리 형제들의 중하(重荷)가 다 걸려있다고 생각하고 결심을 굳혔다. 내가 굶으면 내 가정이 굶고 나의 가족 전부가 쓰러진다고 생각하니 의지를 가다듬고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순간에도 비관하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선 12년 동안을 고착(固着)되어 일하던 직장을 버렸다. 아무리 일해도 출석부에 도장이나 찍을 뿐 1킬로의 쌀도 생기지 않는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 속에서도 가족이 한둘씩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여러 명 나왔다.


6·25 전쟁 烈士(열사) 가족도 굶어죽어

지금도 생생히 잊여지지 않는 건 평시에 烈士(열사) 가족으로 대우를 받던 한 여인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6·25 전쟁 전사자 가족이었다) 당장 굶게 되자 조금씩 가산(家産)을 팔기 시작해서 결국은 집까지 팔고 한지(寒地)에 나 앉아 가족 전체가 굶어죽는 걸 지켜보았다. 우리 작업반의 비서 아바이도 전쟁 참가자인데 굶어 죽었다. 당시는 열사 가족들에게조차 줄 쌀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직장을 버리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벌어서 돈을 손에 쥐고 쌀을 사야만 살 수 있다는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직업적으로 월급도 높았고 뭐든 잘 끌어들이던 남편의 직업도 이 순간엔 불가능으로 바뀌었다. 어쩌다가 벼 열흘분을 준 것으로 마감짓고 종종 무소식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국고(國庫)가 텅텅 비었으므로 도급(道級)기관도 쌀 1킬로 차례지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엔 이런 말이 있었다. 갑자기 국고가 거덜나자 이 시기에 인간의 의지(意志)를 알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간부들을 놓고 백성들이 분석해낸 말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국고를 제 것처럼 쥐고 뒤집어 쓰던 간부들과 그 자녀들이 어쩌지 못하고 제일 먼저 죽어나갔던 것이다.

원래 못 살던 사람들은 항상 의지를 가다듬고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오히려 용기를 내어 장마당을 개척했고 잘 견디어 나갔다. 토대가 나빠 이리저리 밀리고 사람값에도 못 들던 그들이었다. 오늘날 그들의 재산이 불어나 그들이 개인적으로 장마당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국가가 못 들여오는 쌀, 공업품들을 그들의 돈으로 날라와 백성이 죽지 않고 근근히 견디고 있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