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경비대의 총탄에 쓰러지다

지난 10월, 북한에서 친구, 친척들로 거의 한 개 분대의 대열이 탈북을 시도해 강을 넘어섰다. 그들이 강을 넘어서고 보니 기다린다는 브로커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도로 건너 맞은편 야산으로 은밀히 피신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숨은 산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경비대가 수시로 순찰하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불안이 시작되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차는 끝내 나타나지 않자 기다림에 대한 動搖(동요)가 일어났다. 이렇게 끝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두 패로 나누기 시작했다. 네 살 아기엄마까지 있으니 여자들은 그 자리에 잠시 둬두기로 하고 남자들로 갈라져 갈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혹시 차가 약속된 장소를 헛갈려 다른 곳에 멈춰 서지 않았을까 하는 위구심과 끝내 차가 나타나지 않으면 좀 든든하고 새로운 은폐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금방 갈라져 도로에 나섰는데 얼마 못가서 북한 국경경비대와 맞닥뜨렸다. 그들은 뛰기 시작했다. 뒤따라 경비대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첫 총소리에 야산 풀숲에 숨어있던 아기의 아버지가 쓰러졌다. 지척에서 그것을 아기엄마와 아기가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자 아기는 아버지를 부르며 슬피 울기 시작했다. 아기엄마는 흐르는 눈물도 주체할 새 없이 먼저 아기의 입을 손으로 꼭 막았다. 아기 하나뿐이 아닌 여러 명의 목숨이 여인에게 달려 있었다. 아기가 울면 남아 있는 여자들의 행처까지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달아나던 행렬이 스스로 멈춰 섰다.
경비대는 가까이에서 잡힌 사람들에게 수갑을 채워 수습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나면 숨어있는 여자들까지도 발각되고 잡히면 그들 모두가 다 끌려가게 되었다. 지금은 탈북을 무조건 한국行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정치범 수용소 行이다. 수용소에 끌려가면 그들은 다 된 인생을 맞이한 것이나 같다.
쓰러진 남편까지 갈라졌던 남자 5명이 다 끌려가고 소란스럽던 곳이 잠잠해지자 아기엄마가 아기의 입에서 손을 뗐다. 그제야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새까맣게 죽어 있었고 이미 숨이 넘어간 상태였다. 총에 맞아 거꾸러진 남편을 보고 정신이 없었던 아기 엄마는 아기가 숨이 넘어간 줄도 몰랐다. 죽은 아기를 본 아기엄마가 그 자리에 기절해 쓰러졌다. 모두 아기 앞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 후 며칠 만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총을 맞은 남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나머지 잡혀간 남자들은 보위부의 감방 안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훗날 브로커에게 알아보니 탈북할 때 돈이 적었던 그들은 중국 브로커에게 물어야 할 돈을 30퍼센트밖에 물지 못했다고 한다. 도착하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중국인 브로커들 속에서 동요가 일어나서 차가 그들이 잡혀간 다음날에야 도착했다. 살 길을 찾아 희망을 품고 나섰던 여섯 명의 목숨이 도중에서 잘못되었다. 나머지 살아남은 여자들은 (한국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가족이 탈북하다가 통째로 잡혔다

이 사건도 한 달 전 일이다. 내가 잘 아는 평안남도에서 들어오던 가족 일행이 강을 건너서는 순간에 발각되어 보위부에 연행되어 갔다. 평안남도에서 연선까지 들어오는 길은 탈북하기만큼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떠나는 길이다. 요즘 브로커들에게 몇 년 전과 다른 규정이 생겼다. 도내의 다른 곳엔 절대 다녀 올 수 없다는 규정이다. 여행증을 어디로 떼는가에 따라서 보위부의 감시가 붙는 것이 일쑤이고 사람이 며칠만 보이지 않아도 의심하고 있다. 전에도 있던 일이었는데 그 때보다 몇 배로 철통보안이 강화되었다 한다.
전기가 없어 차도 잘 다니지 않는 불편한 북한에서 <사망통지서> 같은 것이 아니면 일부러 고생을 사서 먼 곳으로 여행증을 떼는 것 자체가 의심을 사고 있다. 그건 영락없이 벌써 국경 너머의 심부름으로 알고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他道(타도)에 좀 다녀오라고 하면 아주 많은 돈을 뿌려도 가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이 가족 일행이 몇 개 道(도)를 지나 국경까지 들어온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강을 건너는 순간에 경비대가 양쪽에서 달려든 것이다.
잡힌 가족은 온 가족이 다 한국에 들어오고 마지막 남은 가족들이었다. 한국에 먼저 온 그들의 가족들은 나에게 잘 째인 연극 같다고 했다. 북한 보위부가 그들이 떠나자 뒤따른 것 같다고 한다. 보위부의 연극에 진짜로 걸려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떠나올 때도 그들이 지키고 있다가 놓쳐 버렸다. 잇달아 일어나는 탈북자들의 북송으로 해서 국경 연선은 지금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한다.


브로커들의 수난시대

요즘 북한은 보위부가 브로커들에게 “일을 해주라. 그리고 고발하라”고 한다고 한다. 북한의 한 브로커는 말한다.
“북한에서 해먹을 일이 없어요. 이젠 우리 브로커들의 수명도 끝장 난 것과 같아요. 단속이 너무 심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전화 심부름으로 조금씩 숨살이하던 것도 요즘은 빡 제동이 걸렸어요.”
그들의 말처럼 요즘은 전화 한 통 주고받기가 매우 힘들다. 훼방이 심한 북한의 전화 파장장애로 해서 전해오는 말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고 전화비만 손해 보기가 일쑤이다.
북한주민들은 잠자는 시간을 내놓고는 늘 감시 속에 산다. 속한 조직은 물론이고 옆집, 친구, 심지어 먼 친척까지 감시의 울타리이다.
요즘 국경연선 사람들의 유행어는 “잘못했다가는 파리 목숨이다. 혼자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족 안에서 한 사람이 걸리면 그 한 사람을 건지기 위해 집까지 팔아도 건지기 힘들다. 한 사람 살리기가 가족 죽이기이다. 보위부의 파리채에 걸려들지 말라”이다.
그러니 요즘 강을 건너서는 사람이 없다. 생활은 점점 더 쪼들리고 헤어날 길은 없고 그 헤어날 길이 탈북인데, 살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사람은 부지기수인데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한다. 강을 건너서다 죽고, 건너서서 죽고, 오다가 죽고.
압록강, 두만강에 흐르는 피는 마를 날이 없다. 연이어 있는 탈북자 北送(북송)으로 한동안 직접적인 탈북은 뜸할 것으로 예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