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으로 복귀-거듭된 실패

귀국해서 전방사단인 경기도 연천 부근의 모 사단의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中卒 하사관 생활에 환멸을 느껴 전역지원서(장질부사 병력의 건강 사유서 첨부)를 내고 1971년 3월 29부로 전역명령을 받고 약 1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다. 퇴직금은 30만 원 정도로 기억된다. 軍에서 장기복무를 하고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취업의 길을 모색해 보았지만 군에 입대하기 10여 년 전과 같이 취업의 길은 만만치 않았다.

마침 이웃집에서 廢紙(폐지)를 수집해서 제지공장에 판매하는 폐지고물상을 운영 중이었는데 약간의 자본금을 투자하는 동업을 요청해서 그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곳저곳의 고물상에서 수집한 폐지를 트럭으로 다량 수거해 제지공장에 넘겨주는 장사였는데 1년여를 해보았으나, 결국은 그도 폐업하고 말았다.

퇴직금 중 일부 남은 돈으로 그 당시 기아 자동차에서 생산되는 0.5톤 삼륜차를 사서 用達業(용달업)을 하게 되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충남 예산에 자리를 잡고 월세 방을 한 칸 얻어 살면서 해 보았으나, 이마저 실패했다.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가 택시회사에 취업해서 택시운전을 하게 되었다. 기본요금은 90원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휘발유 값이 저렴해서 이곳저곳으로 주행하면서 택시손님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승객을 찾기 위해 어느 시간대에 어떤 장소로 가야 하는지에 관한 영업기법이 우둔하니 잘 헤쳐 나갈 수 없었다.

어느 날엔가 서면 부근에서 신호위반으로 교통경찰에 적발되었다. 그 당시에는 현장에서 운전면허증을 회수해가고 부산市警(시경)에 출두해 하루 종일 교육을 받고, 과태료를 납부 후 운전면허증을 찾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이 기회에 장래성이 없는 택시운전을 접겠노라 결심하고, 운전면허증 회수도 포기한 채 부산을 떠나게 되었다.

‘보일러취급기능사 1급’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우여곡절 끝에 서울 성동구 자양동, 잠실대교 인근 D 제지공장 보일러실에 취업이 되었다. 자양동에 월셋방을 얻어 살았다. 태어난 지 100일이 된 아들과 아내 세 식구의 단촐한 살림이지만 밥상도 없어 사과상자를 활용했다. 아내는 김장철이 되면 김장독이 없어 김치를 비닐봉투에 담아 가마니에 넣고 땅 속에 묻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제지공장은 24시간 풀가동되어서 나는 1주일 간격으로 3교대 근무를 하였다. 8톤짜리 水管(수관)식 보일러 운전을 배우면서 보일러 관련 국가기술자격인 ‘보일러 취급기능사 1급’을 취득하면 급여도 더 올라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격증 취득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구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가 1974년, 우리 나이로 34세 되던 때였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라도 졸업했더라면 하는 원망과 탄식을 하면서 晝耕夜讀(주경야독)의 끈질긴 노력 끝에 약 10개월여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에는 내무부에서 시험을 주관하고, 응시자격 서류를 시험 합격 후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응시자격은 전문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증명서 또는 7년 이상의 관련분야 경력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나는 중졸의 학력인데다 입사경력은 10개월뿐이어서 응시자격 서류를 제출함에 고심하던 중, 불현듯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222 나이키유도탄대대 A포대에는 병사들 목용용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를 군속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나는 선임하사관으로 책임 관리자로 되어 있었다. 근무했던 부대를 방문하니 마침 전에 副(부)포대장으로 함께 근무하다 월남파병도 함께 해서 맹호사단 정보참모부에서 근무했던 허영욱 대위님이 소령으로 승진해 砲隊長(포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즉시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아 와서 내무부에 제출해 ‘보일러취급기능사 1급’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였다.

新正 휴무 혹한에 공장 설비들 冬破(동파)

이를 바탕으로 보다 더 처우가 좋은 회사로 移職(이직)이 가능하게 되었다. ‘위험물취급기능사2급’ 자격을 취득하고, 다시 대전 신탄진에 위치한 ‘한국이연’이라는 자동차부품 제조공장(피스톤 등 제조)에 工務係長(공무계장)의 직위를 받아 移職(이직)했다. 제지공장에서보다 네 배에 가까운 월급을 받았다. 이 회사에 근무하면서 둘째인 딸아이가 태어났다. 첫째와 다섯 살 터울이었다.

헌책방에서 고등학교 화공학교과서를 사서 보일의 법칙, 샤르의 법칙, 아보가드로의 법칙, 화학분자식 등의 공부를 지속해서 ‘위험물취급기능사 1급’ 및 ‘환경기사 2급’ ‘열관리기능사 2급’을 취득하여 다시 충북 옥천에 위치한 경운기, 트랙터 등을 생산하는 ‘국제종합기계’라는 농기계공장의 공무과장 대리 직책을 받아 移職을 하였다. 2000여 명의 생산직 사원들이 근무하는 국내 굴지의 농기계생산 공장이었다. 나는 이곳 회사의 필수자격요건인 위험물취급기능사 1급, 열관리 기능사 2급, 환경산업기사 2급 등의 국가기술자격증을 갖고 직원 10여 명을 거느리고 보일러 시설, 위험물 시설, 폐수처리 시설, 대기오염 시설 등을 유지 관리하는 업무를 했다.

新正(신정) 5일간 공장 전체의 휴무기간이 종료되고 출근해보니 영하 20도의 혹한에 의해 공장 전체의 많은 설비들이 얼어서 冬破(동파)되어 있었다. 屋外(옥외)에 설비된 스팀배관 라인, 급수배관 라인, 급수펌프 등 모든 설비가 凍結(동결)되어 공장가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를 수리하여 정상 가동하기까지 1주일 동안 생산 공정이 정지되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고 나는 이로 인하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공장장인 전무님을 비롯한 임원 및 각 부서장들이 참석하는 징계위원회에서, 나는 공무과장 대리직을 원활히 수행치 못한 책임을 물어 엄한 질책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 역시나 불시에 발생한 돌발사건에 관련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됨에 항변하였다.

“이는 천재지변이며, 손실을 입힌 시설물들은 옥외시설물들로서 또한 옥내에 설치된 각종 펌프시설들도 실내에 난방시설이 全無(전무)하며, 각 부서의 부서장들을 위시해서 모든 임원들은 책임이 없고, 과장대리에 불과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것이 과연 적법한지 다시 한 번 되돌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직원을 제출하겠습니다.”라고 발언을 하니, 회의장은 순식간에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고, 잠시 후 나에 대한 징계는 없었던 일로 하고 모두가 더 열심히 일하자는 공장장님의 훈시로 징계위원회의는 종료되었다.

공장장의 폐수 찌거기 매립 지시에 반발해 辭職(사직)

나는 공장의 환경산업 기사로서 환경책임자로 선임되어 있어 특히 폐수처리 시설 유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농기계 생산 공정의 淘金(도금)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는 산성폐수 및 시안폐수 등의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배출허용 기준은 매우 엄격하였다. 폐수처리과정에서 배출되는 찌꺼기는 건조시켜서 중량을 축소시켜 자루에 담아 저장해 한 트럭 분량이 되면 폐수처리업체에 넘겨주는데 이 비용이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 S법대 출신의 공장장이 원가비용을 절감하려는 생각에, 폐수 찌꺼기를 많은 비용을 들여 처리하는 과정을 원가절감 차원에서 이를 공장 내의 부지에 매몰 처리하라는 지시를 했다. 나는 폐수처리 관련 환경법에 위반되는 방법을 취할 수 없노라고 설득해 보았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이런저런 회유(승진)와 협박으로 나를 압박해 왔다. 나는 결국 辭職願(사직원)을 내고 회사를 나왔다.

다시 무직 상태로 지내다 마침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전국의 에너지관리실태를 점검하는 임시직원으로 약 1년여 동안 전국 방방곡곡으로 출장을 다니며 생산 공장의 열관리 실태를 조사하고 지도하는 업무를 했다. 2인 1조로 편성되어 출장을 나와 2일간의 일정으로 2개 업체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편성된 S공대 화공과 출신의 네 살 연상의 지식이 다양한 존경스런 분을 모시면서 열심히 열관리 진단업무를 수행했다.

‘열관리 기사 1급’ 합격

당시 나의 가족은 대전에 거주하고 나는 서울 용산구 원효로 인근에 하숙방을 얻어 종로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1981년 여름에 마침 국가기술자격인 ‘열관리 기사 1급’ 응시 원서를 내고 약 3개월간 시험공부를 했다. 합격자 발표 2~3일을 앞두고 에너지관리진단반원 중의 직원이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 친구가 있어 미리 합격 여부를 타진하겠노라고 했다. 우리 진단반원 중 응시자는 이공계대학 출신의 약 20여 명이었는데, 이들의 수험번호를 전화로 알려주고 1시간쯤 지나서 합격자 통보가 왔다. 공교롭게도 기라성 같은 이공계 대졸자들을 제치고 합격자로 통보된 이름은 중졸 학력의 오상환뿐이었다. 축하를 받으며 나는 30여 명 동료들에게 커피를 샀다. 시험응시자 중에서도 제일 高齡(고령)이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의 열관리 실태조사기간이 종료되어 나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쇼핑센터에 총무과장 겸 설비과장으로 취업이 되었다. 이 건축물은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이어서 마감공정을 마무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서 개장했으나, 건축주가 재력이 미흡하여 건물이 매각이 되어 다른 건축주가 인수를 하였다. 이곳에서 2년여를 근무하다가 다시 과천시에 소재한 새로이 開店(개점)하는 쇼핑센터의 설비과장으로 1년여를 근무 하게 되었다. 이곳은 국내굴지의 대형건설회사인 H건설에서 시공한 바 인수과정에서 H회사 건설인력의 소개로 다시 서울 강남에 위치한 G백화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가 1985년, 어느덧 45세의 불혹의 나이를 훨씬 지났지만 中卒의 학력 탓으로 주임이라는 낮은 직급으로 입사했다.

氷蓄(빙축) 냉방설비 시스템 도입

그 당시 서울엔 백화점이 몇 군데밖에 없었다. G백화점은 대중사우나, 수영장, 볼링장, 당구장, 스포츠센터 등을 겸비한 판매유통시설이어서 개점하면서부터 고객이 많이 몰려와 매출이 급성장하였다. 당초 건축주가 백화점 상가를 분양 또는 임대 목적으로 설계해서 신축을 하였으나, 분양이 순조롭지 못해 건축주 스스로가 유통업을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환기시설이 미흡하여 外氣(외기) 도입량이 절대 부족한 건물이었다. 겨울철인 1월에도 백화점 내의 조명 열과 많은 입점고객들로 붐비어 쾌적한 적정온도를 유지하려면 냉방시설을 가동하여야 할 정도로 실내온도가 높은 실정이었다. 더욱이 전반적으로 냉방용 냉동기 용량이 절대 부족하였다.

백화점의 공조냉난방, 급·배수 시설, 수영장, 대중사우나 등의 기계 및 소방 설비 유지관리 팀장으로서 냉동기 증설을 시급한 과제로 보았다. 증설하는 냉동기를 어떤 기종으로 할까 고심하였다. 당시 많이 사용 중이던 터보냉동기의 냉매는 오존층을 파괴하여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여름철 냉방수요 증가로 한낮 피크타임에는 예비전력이 부족한 실정이었기에, 심야시간에 운전해서 얼음을 얼려 저장해두었다가 한낮에 냉방에 이용하는 ‘氷蓄熱 冷房設備(빙축열 냉방설비)’ 시스템 도입을 계획했다.

국내 굴지의 냉동기 생산제조업체 영업담당자들과 협의를 해보니 모두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고개를 저었으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LG전선 중공업 영업부장을 설득해서 LG전선 중공업 설계팀과 함께 6개월여 동안 G백화점 실정에 적응하는 빙축 냉방 설비시스템을 설계 후 견적을 받아 품의서를 작성했다. 그 당시 약 7억 원의 공사비용이 소요되었다.

백화점의 오너(회장님)께서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실행 중이지만, 국내에서는 전연 생소한 처음으로 시행하는 ‘빙축 냉방설비 시스템’에 관해 신뢰하지 못하고 타사에서 먼저 도입해서 성공한 후에 그때 실행하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LG전선 중공업의 중역께서 직접 백화점 회장님을 방문해 나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만약에 빙축 냉방설비 시스템을 도입해 실패하게 되면 공사 비용의 10배인 70억을 투입해서라도 재래식 냉방설비로 再施工(재시공)해 드리겠노라고 회장님께 약속하여 결재를 받을 수 있었다. 냉동기는 L중공업에서 개발생산하고 氷蓄槽(빙축조)에 설치되는 빙축용 코일(coil)은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 에어 코일 컴퍼니’에서 수입하는 조건으로 L중공업과 계약을 체결했다.

美 볼티모어의 빙축열 생산공장 견학

계약 조건으로 빙축열 코일 생산 공장인 볼티모어에 위치한 ‘볼티모어 에어 코일 컴퍼니’사로 출장검수 및 미국의 쇼핑센터에서 운영 중인 빙축 냉방설비 견학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와 L중공업 영업부장과 설계과장 및 신축중인 Y백화점 건설 본부장 등 4명이 미국출장 검수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인천공항에서 LA행 항공기를 탑승해서 LA에 도착 후 다시 환승하여 볼티모어-워싱턴 국제공항에 착륙하니 ‘볼티모어 에어 코일 컴퍼니’사에서 검은색의 리무진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회사에 도착하였다.

볼티모어는 메릴랜드 주 최대의 공업도시인 동시에 江(강)에 접해 있는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볼티모어 에어코일 컴퍼니’ 사는 冷却塔(냉각탑:cooling tower) 등을 제조하는 세계적인 회사인데, G백화점의 빙축 열조에 시설되는 코일 발주비용은 약 10만 달러 정도였다. 공장의 생산 공정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생산현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뉴욕 주의 작은 도시인 시라큐스의 쇼핑센터를 방문하여 이곳에 설치된 빙축 냉방설비 시스템을 견학하였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나니 ‘볼티모어 에어코일 컴퍼니’ 사에서는 우리 일행에게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시켜주었다. 중역 한 분이 직접 운전하는 승용차에 탑승해서 안내를 해주었다. 우리는 캐나다 여권이나 비자가 없어 통과할 수 없어 미국 측 아메리칸 폭포를 관람하게 되었다. 雨衣(우의)를 입고 유람선에 승선하여 폭포를 관람하는데 낙하하는 물소리를 귀로 듣고, 또한 눈으로 보는 웅장함이란 壯觀(장관)이었다.

에너지 절약 공로로 상공부장관 표창장 받기도

백화점 영업으로 모든 공조냉난방설비 등을 가동하면서 빙축 냉방설비를 시공하는 공사는 매우 난해하였다. 빙축 열조를 설치하는 장소 물색에서부터 영업이 중단되는 야간을 이용하여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당초 예정했던 工期(공기)보다 훨씬 지연되었다. 약 2년간에 걸쳐 공사가 마무리되고 시운전(試運轉)에 돌입했다. 야간에 냉동기를 가동해서 빙축 열조에 얼음을 얼려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날 한낮 더위가 피크일 때에 빙축 열조의 얼음을 녹인 냉수를 순환, 실내 냉방을 하는 시운전을 실시하면서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시운전은 성공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전력에서 나에게 면담요청이 있어 방문하니 한전에서는 그 당시 심야전력 활용을 위한 심야전력제도 관련규정을 입안 중이었다. 한전은 선구자가 된 나를 칭찬하며 G백화점에 5000여 만 원의 지원금도 주었다.

당시 진념 동력자원부장관께서 來訪(내방)하시어 나는 브리핑 보고를 드렸고, SBS 고희경 여기자가 현장을 방문하여 빙축 열조를 견학하고 나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다음날 아침 8시뉴스에 방송이 되기도 하였다. 에너지관리공단의 요청으로 빙축열 시스템 도입 과정과 관련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이에 더하여 G백화점 회장님께서 노태우 대통령께 전기에너지 절약사례를 직접 보고하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그 후 Y백화점 신축시에도 빙축 냉방설비 시스템이 설계에 도입되어 LG전선 중공업에서는 20억여 원의 공사발주를 하는 등 빙축 냉방설비의 선두주자로 입지가 구축되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나는 에너지관리공단의 추천으로 상공부장관으로부터 에너지절약 공로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한편 나는 노태우 정부에서 시도한 200만 호 신도시(분당, 평촌, 일산, 산본, 중동) 건설 당시 안양시의 평촌신도시에 33평형 아파트를 분양 신청해 107대 1의 경쟁에서 당첨이 되어 난생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1992년이니까 내 나이 52세가 되어서야 월세, 전세를 돌다가 일부 대출을 받아 내 집을 장만하게 된 것이다. 승용차도 한 대 할부로 장만하였다.

백화점 증축공사와 에너지 절약

1995년에 G백화점 增築(증축)공사가 진행되었다. 연면적을 약 30% 정도 늘리는 공사였다. 나는 이 기회에 공조 설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큰 계획을 수립하였다. 10여년 가까이 백화점 공조 냉난방 설비를 유지관리 운영해오면서 파악한 것은 공조 설비에서 外氣(외기) 도입량이 극히 부족하여 실내의 환기상태가 적정하지 못해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가 어려웠다. 실내온도보다 외기온도가 낮은 계절에는 다량의 외기를 도입해서 외기냉방은 물론 실내공기도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건물 내의 단면적이 극히 작은 급·배기 PIT를 통한 환기량을 대폭 늘리기 위하여 각 공조실 외벽을 뚫어 매 층마다 별도의 급·배기 덕트를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하여(공사비 1억 원) 품의를 상신하였으나 이 역시나 회장님의 결재를 얻기 어려운 일이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필수적인 공사임을 설득해 마침내 결재를 얻었다.

연면적 30%를 넓히는 증축공사로 또다시 냉동기 한 대가 증설이 되고 옥상에는 冷却塔(냉각탑:cooling tower)도 증설해야 했다. 1995년 6월28일 우여곡절 끝에 증축공사가 완료되어 준공 필증을 수령하고 全館(전관) 개장했다. 그 다음날 아이러니하게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발생하였다. 사고의 원인 중에 옥상의 냉각탑 하중 문제도 있어서 나는 증축 과정에 옥상에 신설한 냉각탑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되었는데, 구조기술사가 선정해준 위치에 시공한 관련서류를 제시하여 무난히 감사에 통과했다. 나의 임의대로 위치선정을 하지 않고 전문 구조기술사의 자문을 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음해 여름철에 전력요금을 결재하시던 회장님께서 증축 후의 전력요금이 전보다 훨씬 적게 부과된 원인이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설비시스템 개선의 효과임을 비로소 확인하고 무척 놀라워하시었다.

관할소방서인 강남소방서의 G백화점 지도점검에서 수계 소방 설비인 소방펌프의 유지관리상 결함 사항을 지적받고 나는 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했다. 소방 전문지식을 습득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약 6개월여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소방 기계 설비기사 1급’ 국가기술 자격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12년 다닌 직장을 퇴직

나는 평생 동안을 내가 맡은 직무분야에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백화점에서 매일 밤 10시나 12시에 퇴근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내가 관리하고 있는 기계설비의 고장이나 급·배수설비 등의 누수현상 등 각종 장애가 발생하면 다음날의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케 돼 이를 밤새워 수리하여 정상화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항상 늦게 퇴근하시는 회장님도 이러한 상황을 자주 목격하시고 어떤 날은 수리가 완료되는 것을 확인하시고 퇴근하시기도 하였다.

빙축 냉방설비 시스템 도입은 물론 전기에너지 절약 등 큰 일들을 거침없이 해내는 나를 회장님은 신뢰했다. 반면 중졸 학력인 나를 질투와 시샘으로 회장님께 중상모략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오인하여 監査(감사)를 받기도 하였다.

IMF 초창기인 1997년 12월25일에 나는 勸告辭職(권고사직)을 받고 12년 동안 열심히 일하던 일터에서 쫓겨났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퇴임인사도 하지 않은 채로 회사를 떠났다. 주임으로 입사하여 12년 근무 후 퇴직할 때의 나의 직위는 기계설비 팀장(次長)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