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필요한 것 중에는 생명 건강 등 천부적 요소 외에 일자리를 뺄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현상중에 결혼 연령의 고령화가 있다. 이는 취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앙일보가 최근 미혼 남녀 500명에게 결혼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시급한 대책을 물었더니 62.6%가 주택과 취업 문제 해결이라는 응답이었다고 한다. 주택도 결국 일자리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결혼연령 고령화는 저출산으로 이어져 미래의 국가적 여러 문제를 낳게 된다. 실업자 문제가 큰 불안요소다. 그런데 대책이 마땅찮다.

기업들이 사람을 뽑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하면 사람 내보내는 것으로 상식화 되어 있다. 구조조정에는 계열사나 부동산 등을 매각하여 자산을 건전화하는 방법, 임금동결이나 복지축소 등으로 비용절감에 나서는 방법, 대주주의 출자(증자)로 부채를 줄이는 방법, 등 여러 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의례 사람 자르는 것으로 해결하려 든다. 잘못된 관행이다. 자르고 안 뽑으면 실업문제는 더욱 가중된다.

[여담]

<나는 1998년 12월 말일자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그 한 해 전인 1997년 11월 21일 정부에서 IMF 구제금융 발표가 있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는 건설업종이라 직격탄을 맞았다. 많은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한 부서책임자였던 나도 대상자를 선별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일이라 모두들 담담히 받아들였다. 한 해에 세 번이나 그 짓을 했다. 고통스러웠고 나 자신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복지는커녕 월급이 안 깎이는 것을 감지덕지 여겨야 할 판으로 회사원의 좋았던 시절은 끝난 것 같았다.
사회는 불안했지만 오히려 바깥에 기회가 보이는 듯하여 과감히 사표를 냈다. 내 개인적으로는 더 있어봐야 결국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는 일로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상황판단은 잘못되었다. 회사는 새로운 환경에 차츰 익숙해지고 정부의 건설경기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몇 년 후에는 전에 없었던 호경기를 맞은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기업 구조조정 한다며 사람 내보내고 새로운 채용을 기피하는 일이었다. 사람을 줄일 게 아니라 급여를 줄이거나 최소한 몇 년간은 동결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사람을 내보내지 않고도 웬만큼 건전한 회사라면 버틸 수가 있었고 호경기에 신규채용의 여력도 비축할 수가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급여를 동결하는 듯했으나 한 숨 돌린 노조의 행패에 손을 들고 말았다. 한번 잘못된 관행은 고치기가 어렵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각 그룹들이 매년 경쟁적이었던 신입사원 채용 숫자가 이후 급격히 줄었다. 잘못된 구조조정(감원잔치)을 경험한 후유증이다. 대신 남은 직원들의 급여는 쑥쑥 올라갔다. 현재 직원들 평균 연봉이 억대를 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일자리를 나눌 생각은 않고 차고 앉은 이들만 배가 터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여기에 끼고 싶으나 끼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불만과 시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양극화의 문제다. 이는 큰 사회 불안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택받은 자들의 천국'이다. 국회의원, 천국에서 산다. 그들은 못할 게 없다. 자기 급여 자기들이 정하는 사람들이다. 판검사, 천국에서 산다. 공무원들을 철밥통이라 하지만 그들은 원자로밥통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궁금한 것은 같은 시험에 합격하고도 초임 발령에 검사는 4급, 판사는 3급 대우다. 그리고 나이 서른도 안된 애송이가 3급 대우의 판사라니 지금 조선시대인지 묻고 싶어진다. 공기업과 대기업 정규직들, 역시 천국에서 산다. 연봉 1억? 뭐 하는데?

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천국 사람들로부터 돈을 거둬 사는 천국 사람이다. 그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설쳤지만 결코 비정규직(실업자 포함)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다. 한상균의 행패로 온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정작 더 큰 위력의 폭탄은 그의 머리띠에 쓰여 있던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과 실업자 문제는 언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백화점주차장 인질강도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만약 한꺼번에 터지면 정변(政變), 혹은 사변(事變)이 되는 것이다. 큰 사회불안 요소다.

옆 집이 불에 타거나 물에 잠기면 내 집도 위험해진다. 내 집만 생각할 게 아니라 옆 집도 생각해야 하는 간단한 이유다. 외환위기로 중산층이 무너지자 강남 술집이 텅 비었고, 돈 있는 자들이 모처럼 왕 대접 받았다고 한다. 해서 나온 건배 구호가 '이대로!'였다던가! 한심한 작태였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1997 정변'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대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가슴에 불만이 가득 차 평소 '나라 망해부러라!'며 저주하던 소외 국민들의 승리였다. 그들의 염원(?)대로 망하는 길이 활짝 열렸다. 길거리 전봇대에는 '식모 구함' 대신 '파산신청'이 붙었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을 박정희가 정변을 일으켜 질서를 바로 세우는가 싶었으나 兩金(김영삼ㆍ김대중)의 정변으로 현재 또 다시 해방정국으로 회귀한 상황이다. 花無十日紅이라더니 잠시의 豪奢(호사)는 一場春夢이었던가, 불과 몇십 년 전 일들이 이미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