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옥 씨

 “검찰은, 司法살인을 당한 이모부 李穗根(이수근)에 대한 재심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에 담당 검사를 검찰에 고소하고, 저는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 1인 시위에 나설 것입니다.”

 6월3일 裵慶玉(배경옥·간첩으로 몰려 1969년 사형 당한 이수근 씨의 처조카) 씨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裵 씨는 지난 5월23일, 이수근 씨에 대한 재심청구를 회피하고 있다는 이유로 담당 검사를 대검찰청에 고소(직무유기 혐의)했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이모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1인 시위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裵 씨는 오는 6월4일부터 大檢을 시작으로 서울시청 앞, 국회 앞 등을 순회하며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死刑… 무기징역… 減刑… 그리고 재심

 배경옥 씨의 사연을 이해하려면 먼저 약 50여 년 전 발생한 ‘이수근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한다. 1967년 3월22일 오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副사장 이수근 씨가 판문점을 통하여 극적으로 탈출, 남한에 귀순했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1969년 1월27일, 李 씨는 변장한 채 위조여권을 만들어준 배경옥 씨와 함께 남한을 탈출, 홍콩행 비행기에 탔지만 1월31일 월남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에서 李大鎔(이대용) 공사 팀에게 붙들려 서울로 송환되었다.

 그해 3월22일 서울형사지법은 이수근, 배경옥 피고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검찰, 법원은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간첩이고, 북한으로 再入北(재입북) 하기 위해 탈출했다고 보았다. 이수근은 사형이 선고되었음에도 항소를 포기, 그해 7월2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수근이 사형된 뒤, 從犯(종범)들에 대한 항소심과 상고심이 진행되었다. 1969년 12월23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배경옥 씨는 무기징역이 확정판결 되었다. 이후 裵 씨는 징역 20년으로 減刑(감형)되었고, 1989년 12월22일 출소했다. 이 판결은 이미 사형이 집행된 이수근에 적용된 간첩 죄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08년 12월1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는 배경옥 씨에 대한 재심 공판(서울고등법원 2005재노20호)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 원심을 파기하고 裵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단, 여권 위조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출소 후 19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裵 씨에게 씌워진 간첩혐의가 벗겨진 것이다.

 裵 씨가 제출한 고소장

 무죄 판결 이후 裵 씨는 이모부 이수근 씨의 재심청구에 主力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수근에 대한 재심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경옥 씨는 “검찰은 이모부에 대한 재심청구를 공람종결 처분함으로써 이를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게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주장했다.

 供覽終結(공람종결)이란 더 이상 조사할 필요성이 없고 마땅한 법적 조치를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검찰이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裵 씨가 지난 5월 大檢에 제출한 고소장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피고소인은 대한민국 검사로서 2013. 고소인(注: 배경옥)으로부터 亡 이수근의 재심을 청구하여 줄 것을 청구 받았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2015년 말경 고소인이 대검찰청에 민원을 제기하자, 그제서야 2016.2.2 진정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420조에 따른 재심 청구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공람종결 처분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기 위해 6월3일, 裵 씨의 법률 자문인 L 모 변호사와 전화통화를 했다. L 변호사는, 검찰이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 이유) 제5항을 근거로 공람종결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有罪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免訴(면소)를, 刑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刑의 면제 또는 原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란 조항이다. 즉, 검찰은 ‘이수근 씨의 죄목을 뒤집을 만한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재심청구 사유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裵 씨 측 변호인, ‘裵 씨의 자백이 증거로서의 효력 상실…
이수근의 범죄행위도 증명력 상실했다고 보는 게 타당’

 L 변호사는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배경옥 씨가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받았을 때 재판부는, ‘(1969년 당시) 裵 씨의 진술 중 상당수가 강압에 의한 자백으로 보여진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었다. 그렇다면 결정적 증거였던 從犯(종범) 裵 씨의 자백이 증거로서의 효력을 사실상 상실했으므로, 正犯(정범) 이수근의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들도 증명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L 변호사는 배경옥 씨 재심결정문과 재심판결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보고서 내용도 근거로 제시하며 재심사유에 충분히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裵 씨의 재심결정문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20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의 재심판결문에는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간첩으로서 反국가단체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라는 점과 관련하여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명력이 없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2006년 12월1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도 이 사건에 대해 <국가는 수사과정에서 불법감금, 자백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 및 증거재판주의 위반에 등에 대해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국가는 확정판결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유가족의 피해를 구제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보고서 중 ‘이수근 사건’편 인용).

 참고로 형사소송법상 유죄 선고를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가 재심청구를 할 수 있으나 裵 씨는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럴 경우, ‘公益(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에 명시(424조 2항)되어 있다.●

이수근의 처조카 배경옥 드림.

배경옥 씨가 1인 시위용으로 만든 플래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