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실례失禮)지만 먼저 일어날게요.”
“성숙이(성수기盛需期)라 비행기 티켓이 비싸.”
“사람 많은 번아가(번화가繁華街)는 가기 싫어.”

인터넷에서 ‘웃긴 자료’로 분류되어 있는 맞춤법 파괴 사례들이다. 웃어넘길 수만은 없을 정도로, 특히 10대 학생들이나 젊은 층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맞춤법 파괴는 인터넷 문화와 SNS의 발달로 비속어와 줄임말, 신조어 사용이 증가하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 학력 저하에 있다. 전광진(全廣鎭) 성균관대 교수는 ‘학력 저하’의 원흉이 간단한 단어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문장을 익히려는 무모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全 교수는 “저명 교육학자 헨리 아담체프스키(Henry Adamchiewski) 교수가 말했듯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는 없다’. 단어 뜻도 모르면서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는 없고 정확한 사고는 정확한 단어(용어)의 사용에 의해서만 가능하므로 학업에 있어서 ‘단어 실력’ 즉 어휘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고등학생(약 300명)을 대상으로 ‘재미 한국인 과학자’의 ‘재미’가 무슨 뜻이며, 그런 뜻을 일러 왜 ‘재미’라고 하는지를 물어 보았더니 정확한 답을 제시한 학생이 5%였고 대학교 졸업 예정자(297명)를 대상으로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의 ‘신명’이 무슨 뜻인지, 그러한 뜻을 왜 그 두 글자로 나타냈는지를 물어 보았더니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학생이 7명(2.3%)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 그토록 간단한 한자어(在美/身命)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단어 불감증’이 바로 학력 저하의 주범임을 알게 된 전광진 교수는 국어 어휘에서 한자어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데 주목했다(우리말 총 어휘의 59%, 학술도구어의 99%, 개념류 사고도구어의 98%가 한자어). 수학(修學) 능력이 한자어 지식에 좌우된다고 본 것이다. 全 교수는 어려운 한자어를 어떻게 잘 습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LBH(Learning by hint) 교수학습법’을 개발했고 이 학습법의 활용을 위해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2392쪽, 6만6000원, LBH교육출판사)을 편찬했다.

기존 사전들을 이용해 LBH 학습법을 활용하려면 국어사전에서 수학적 정의를 찾고 다시 옥편을 통해 단어를 이루는 한자의 뜻을 찾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에서는 이 과정을 한 번에 해결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신개념 국어사전’이다.

‘국어사전(左)’과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右)’ 비교 예

이를테면 위에서 예로든 ‘실례失禮’의 경우 ‘예의(禮義)를 잃음[失]’이라는 속뜻을 제시하고 한자어의 훈음을 달아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낱낱의 글자가 무슨 뜻이며 그것이 단어의 뜻에 어떤 힌트 역할을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식으로 단어를 익히면 ‘실례’를 ‘신뢰’로, ‘성수기’를 ‘성숙이’로 잘못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용하는 한자어를 선별해 수록한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된 최초의 사전으로 초판 15쇄를 찍었다. 올해 6월 초등학교用 한자어 1만 5000개를 수정 보완하고, 시사 한자어 등 약 2000개를 추가해 증보판을 냈다. 총 수록 어휘는 약 6만 개(표제어 4만272, 부속어 1만9252)이며 어플리케이션(‘속뜻사전’)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편저자 전광진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사범대학(NTNU)에서 문학석사를, 국립대만대학(NTU)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경희대 중어중문학과 조교수 및 부교수를 거쳐, 1997년 이후 현재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李知映(조갑제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