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3세)가 생긴 이후 가지게 된 몇 가지 마음의 변화가 있다. 하나는 길을 지나가는 다른 아이들이 귀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앞으로 내 자식이 적어도 이민을 가지않는한 살아가게 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향방이다. 즉 나라의 안전보장(안보) 문제가 걱정이 된다.

북핵 문제는 꽤 오랜 동안 취재해온 분야인데 딸이 태어난 이후에는 내 자식에게 보다 ‘안전한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써왔다. 남들은 이 문제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돈 모아 ‘웰빙’을 즐기는지 모르지만 내 경우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어느 모임에 가던지 이야기의 주제가 북핵 문제로 이어지면 한마디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체 핵무장 여론조사 높은 것 신뢰할 수 없어”

최근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핵문제로 이어졌다. 기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보문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핵무장 문제가 주제였다.

A: 며칠 전 NSC에서 북핵을 담당했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가 북한의 소형화된 핵탄두가 80여기 가량 된다고 했다. 김정은은 합리적 지도자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6개월 이내, 한국은 1년 이내에 핵무장이 가능하다. 북한이 실제로 핵단추를 누르게 되면 6개월, 1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도 즉각적인 핵무장이 가능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차원에서 핵무장 선언이 어렵다면 민간•NGO 등에서 지속적으로 자체 핵무장을 얘기해야 한다고 본다. 북핵 문제를 미국이 해결 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벗어나야 한다. 이 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로 보는 시각부터 벗어나야 한다.

B: 국민들의 자체 핵무장 지지도가 70%정도로 나오는데 이런 여론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게될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오자와 이치로가 중국에 가서 일본은 핵무장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미국이 일본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핵무장을 할 수 없다. 우리는 핵무장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북한과 일본에 끼여 살게 될 수도”

A: (영리한 일본 우파가 오자와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말하고 싶었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일본이 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국가화 하려는 이유는 사실상 중국과 북한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이 핵을 가지고 일본을 위협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핵무장이 가능한 국가를 만들려는 게 일본 우파들의 생각이다. 지금이야 일본이 미국에게 2차 대전 이후 거세(去勢)를 당해 운신의 폭이 넓지 않지만, 일본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핵무장의 길을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핵무장을 하려거든 보통국가화된 일본이 핵무장을 하기에 앞서 한국이 먼저 핵무장 선언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하고 싶으면 보통국가화된 일본이 핵무장을 하기 전에 빨리 하는 것이 좋다. 핵으로 무장한 일본이 한국을 도와줄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모겐소는 핵보유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관계를 “일본이 미국의 핵폭탄 공격을 대책 없이 맞고 있었던 것처럼, 핵을 보유하지 않는 나라는 핵을 보유한 적국에 대들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수없으면 우리는 북핵과 일본핵에 끼여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남의 나라(일본) 얘기할 때가 아니다”

B: 일본은 미국이 없으면 전쟁도 할 수 없는 나라다. 일본은 전쟁수행 능력이 없는 상태다.

A: 얘기가 재밌어져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겠다. 한국은 자체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갖추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이 걸린다. 그 사이에 북한이 핵무기를 서울에 쏘면 아무런 대책이 없다. 한국군을 믿고 싶지만 KAMD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군납비리가 또 발생하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국방장관이 군납비리는 “생계형 범죄”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는가. 일본의 경우 자체 미사일 방어체계를 착실히 준비했다. 미국 이외의 국가 중에서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통해 미사일 요격에 성공한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참고로 PKO나간 한국군이 탄환이 부족해서 일본의 자위대 탄환 빌려다 쓴 사례도 있다. 지금 우리가 남의 나라 얘기할 때가 아니다.

참고로 위 글에서 A는 필자이고, B는 현직 안보기관 관계자였다. 요즘 우리나라 안보기관 종사자들 가운데에는 “개성공단을 더 많이 만들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통일이 되면 북한 핵무기가 우리 것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수준이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