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데이비드 스트로브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은 북한의 핵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을 겨냥하는 거다. 언젠가는 자신들이 핵무기로 한국을 완전히 통일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30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의 절반을 한국에 투자한 데이비드 스트로브는 미 외교관 중 한국말을 제일 잘하는 이로 통하던 인물이다. 2002년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게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핵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며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을 때 현장에서 그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했던 이도 바로 스트로브였다고 한다.

2006년 국무부를 퇴직한 스트로브는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며 2015년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발생한 반미주의(Anti-Americanism in Democratizing South Korea)》란 책을 펴냈는데, 곧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한국의 반미(反美) 현상은 잠잠해졌음에도 지난 10년간 반미 문제에 천착, 이런 책을 낸 데 대해 “2007년쯤부터 집필을 시작했고 상황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반미감정은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이 자임하는 ‘세계 경찰관 역할’이란 게 얼마나 좋지 않은 면이 있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나 미군 측이 한국과 북한 문제 관련 일을 하면서, 이런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공부했으면 했다”고 밝혔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반미’라고 하면 2001년 부시 행정부 때를 떠올리지만 스트로브는 그 현상이 1999년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민주화한 것은 오래전이지만 진보적인 대통령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속에서 당선됐고 취임 후 1년간 외환위기 해소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1999년 가을쯤 되니 다른 것들도 생각할 여유가 생겼는데 이때 노근리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한테 어떤 나라인가’란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6·25전쟁 때 작은 사건으로 미국 전체를 판단하는, 잘못된 시각이 제기된 것이다. 노근리 사건 이후 고엽제 문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 미선이 효순이 사건 등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부시 행정부의 적대적 대북정책, 그리고 오노 사건이 추가되면서 점점 더 심각해졌다. 김대중정부 출범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가 권력을 잡았고 언론의 386세대 기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미 여론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38노스를 운영하는 조엘 위트 등과 한국의 노무현정부 때 외교·안보 인사들의 ‘북한이 원하는 모든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협상하자’는 주장에는 “우린(미국 행정부) 이미 모든 의제를 올려놓고 협상을 해 봤다. 내가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일 때 4자회담을 했는데 그때도 그랬다. 북한 사람들은 애초에 협상할 의지가 없다. 북한 측은 오로지 미군철수만 원하고 있다. 긴장완화 조치를 통해서 평화체제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될 때에도 북한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다. 북한의 태도는 늘 ‘그런 건 얘기할 필요가 없다. 미군철수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협상 제스처는 미군철수를 끌어내기 위한 쇼이자 게임이었다. 그런 북한의 태도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일축했다. 이어 “북한이 그간 보여준 모습 때문에 이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로, 워싱턴 의회에서도 북한 제재에 관한 법은 만장일치로 통과된다”며 “미국이 언젠가 다른 입장을 취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스트로브는 차기 한국 대선에서 야당이 권력을 잡아 ‘햇볕정책 2.0’ 같은 걸 편다면 한·미 대북정책 조율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전히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