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진들이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면 문제

4·13 총선 공천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진짜 친박이 누구냐’며 이른바 親朴 검증론이 불거져 나왔다. 공천관리위원회가 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실제 공천 기준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비박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실제로 일부 후보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혹은 공천을 받은 뒤) 자신이 眞朴(진박·진짜 친박)이라며 소위 ‘眞朴 마케팅’을 보여주기도 했다. 沈 부의장에게  공천 당시의 친박계 내부 사정을 물어보았다.

사진/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홈페이지.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그들의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친박계로 분류되는 모 의원이, ‘朴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진 사람으로만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괴이한 소문이 돈 적은 있다. 오죽하면 이런 소문이 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沈 부의장은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만, 일부의 과도한 돌출적 행태는 오히려 대통령을 곤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朴 대통령이 對面(대면)보고를 꺼리고 書面(서면)보고에 치중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이 直言型(직언형) 인사보다는 유순한 인물만을 선호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면보고에 치중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국정과 관련한 보고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참모진들이 같은 생각만 하고, 思考(사고)의 스펙트럼이 제한되어 있다면 문제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재풀(pool)의 확대는 물론, 내부 반대 의견을 활성화하는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인)’도 필요하다.'

大權주자도 黨權에 도전하게 길 터줘야

그는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승리가 불투명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총선 패배의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 沈 부의장은 지난 6월, 당헌·당규에 있는 당권-대권 분리기간을 1년 6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하자고 제안했다. 새누리당 당헌(제93조)에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 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沈 부의장이 이 같은 제안을 한 이유는, 8월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뽑는 당대표 경선에 대선주자도 출마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는 ‘그간 대권주자로 거명됐던 인사들이 총선에서 낙선하는 등 우리 당은 대선주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규정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유지하면 대선에 나올 후보群이 8월9일 당대표 전당대회에는 나올 수 없게 된다. 야당에 비해 대선주자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대권주자들이 당권에도 도전하게 해 몸집을 불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沈 부의장의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6월16일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위원장 김희옥)가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현행 당헌·당규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결국 전당대회는 현행 당헌·당규대로 치러졌고, 8월9일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차기 大權주자로서 반기문은…

새누리당 內 대권주자 5인(김무성, 유승민, 홍준표, 남경필, 오세훈)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는 개개인의 평가 대신 “새누리당에서 거론되는 모든 분들이 대한민국을 이끌 충분한 능력과 경륜을 갖추고 있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黨外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검증작업을 잘 통과하고 그의 꿈과 구상이 좀더 구체화 되면 사람이 모일 것이다. 그러면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대망론이 부상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보호 무역주의와 北核 문제 및 사드 배치 등 동북아 경제안보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제 외교 전문가인 潘 총장의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반기문 총장이 국가비전이나 국정운영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반기문의 꿈과 구상, 즉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국가 비전과 정책목표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부의장을 넘어 더 큰 정치적 꿈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장은 국회부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당과 나라를 위해 더욱 책임있는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유명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19대 국회 기간 중 총 102개 법안을 發議(발의), 그중 34개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법안 發議 실적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했다고 한다. 19대 국회 법안 투표율도 93.94%를 기록했다. 해외 출장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곤 늘 국회에 출석했다는 뜻이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의 홈페이지에는 수상목록이 올라와있다. 

<2016 법률소비자연맹 제19대 국회의원 공약대상 / 2016 법률소비자연맹 제19대 국회 종합헌정대상 / 2015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 자유경제원 자유경제입법상 / 2015 제19대 국회 대한민국 헌정대상 / 2015 제2회 머니투데이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 / 2014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3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3 건설경제신문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2 건설경제신문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2 바른사회 시민회의 우수의정활동상 / 2012 법률소비자연맹 제18대 국회의원 공약대상…>

그가 수상한 상들 대부분은 의정활동과 관련된 것이다. 沈 부의장은 “국회의원은 貰費(세비)를 받고 국민을 대표해서 일하는 자리이다. 상임위 및 법안 표결에 참석하는 건 칭찬받을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라고 단언했다. 한 언론인은, “그의 성실한 의정활동은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계파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는 자세를 갖췄다. 그래서 비토(veto)세력이 매우 적은 편”이라고 沈 부의장의 의정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심재철은 부의장은 법안 발의를 할 때 세 가지를 먼저 고려한다고 했다. 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실효성이 있는지, 불필요한 규제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를 살핀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법안 중 하나는 '공중화장실법'이라고 했다.

'이 법의 핵심은, 여성 공중 화장실의 대변기 수를 남성 화장실의 대·소변기 수보다 더 많게 설치하게끔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평소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여성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 남성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단통법(端通法) 개정안 발의

20대 국회에서도 그의 법안 발의는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端通法) 개정안이다. 沈 부의장의 설명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폰 단말기 가격을 균일화 해 가격차별 문제는 해소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예전보다 비싼 가격에 휴대폰을 구매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부가 가격을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업체가 자율적으로 할인 등의 혜택을 소비자들에게 부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단통법을 통해 휴대전화 모델별로 보조금 상한금액(최대 33만 원) 등 최고 약 38만 원의 지원금만 지급할 수 있도록 묶어놓았다. 이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게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그는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한다면 각 업체(제조업체 및 이동통신사)별 가격 경쟁이 붙을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휴대폰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의 옥살이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운동권에 몸 담은 뒤부터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두 번의 옥살이를 경험했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을 목전에 둔 그때,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그해 5월15일 전국의 대학생 약 8만여 명이 서울역 광장 등지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그는 이 시위를 주도하다시피 했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 그의 증언이다.

'李壽成(이수성)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후에 국무총리)의 중재 아래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24개 대학 총학생회장 회의가 열렸다. 학생 지도부는 철야농성과 해산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수성 처장은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학생들의 안전 귀가 보장을 약속받고, 학생 지도부에 해산을 설득했다. 나를 포함한 '해산파'는 야간에 진압대와 맞붙을 경우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학생들에게 해산을 권유했다.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격론 끝에 해산이 결정됐다.'

이 사건은 훗날 '서울역 회군'으로 불렸다. 他 학교 총학생회장 중 일부는 시위를 강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산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沈 부의장이었다. 그는 '훗날을 기약하자'는 취지로 시위 '강행파'를 다독였다.  시위의 시작과 끝을 그가 주도한 셈이다.

서울역 시위 후 심재철 부의장은 지명수배를 당해 약 두 달 간 도피생활을 하던 끝에 검거되었다. 沈 부의장이 끌려간 곳은 치안본부 특수대였는데, 그의 심문은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 헌병들이 했다고 한다.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3년 특별복권으로 석방되었다. 그의 첫 번째 옥살이였다.

그후 동대문 여자중학교 영어교사로 2년 간 재직했다. 1985년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했다. 1987년 12월, 그는 MBC 노조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방송사 사상 최초의 노조였다. 그는 초대 노조 전임자를 맡았다. 1992년 9월 초, MBC 노조가 공정방송을 내세우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沈 부의장도 당국에 의해 핵심 파업 주동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되었다. 경찰이 파업현장을 급습했던 10월2일, 그는 노조 조합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도주했다.

두달 여 간의 도피생활이 계속되었다. 고심하던 沈 부의장은 '차기 노조 집행부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신임 노조위원장 선거가 예정된 11월20일 이전에 경찰에 자진 출두한다'고 결심했다. 11월18일 경찰에 출두한 그는 곧바로 구속(업무방해 등의 혐의)되었고, 0.78평짜리 독방에 수감되었다. 두 번째 옥살이였다. 그는 1993년 2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구치소를 나왔다. MBC 파업으로 구속된 사람 중 맨 마지막 출소자였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

MBC 복직 후 그는 또 다른 시련을 겪는다. 1993년 6월30일, 자신의 프라이드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를 이용해 출근하던 중 시커먼 물체가 그의 차를 덮쳤다. 5톤 짜리 트럭이었다. 프라이드는 트럭 밑으로 구겨져 들어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초여름의 아침이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이송된 그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그의 집도의였던 정경영 박사는 '피가 멈추지 않는다. 어느 한 군데에서 나는 게 아니라 내장 곳곳에서 출혈이 심각하다'고 보호자에게 말했다. 정 박사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라는 말도 남겼다.

급히 수혈을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소용이 없었다. 병원 내 비축해 놓은 혈액은 동이 났다. 이때 MBC 동료 기자들의 공이 컸다. 병원에 와 있던 MBC 국제부의 황외진 기자와 김대환 기자는 황급히 연세대 총학생회실과 도서관으로 가 학생들에게 호소했다. 

金 기자는 도서관에 있는 학생들에게, '여러분 심재철 씨 아시죠? 1980년에 서울대 총학생회장 했던 그 사람입니다. 오늘 교통사고를 당해서 수술 중인데 피가 많이 모자랍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급합니다!'라고 소리쳤다. 黃 기자는 교내 방송국에 협조를 얻어 긴급 수혈 호소방송을 내보냈다. 그 덕에 30여 명의 학생들이 수혈을 해주러 왔다. 수술 이틀 후엔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후배 전동권 기자가 혈소판을 뽑아주기도 했다.

8개월간의 치료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퇴원할 수 있었다. 정경영 박사는 '이렇게 산 것은 기적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沈 부의장은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고문을 심하게 당한 탓에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소문이 한때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심 부의장은 “기적적으로 회생해 재활훈련을 하며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매일매일 장애와 싸우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생의 전환: 정계 입문

1995년 가을, 청와대 비서실에서 그에게 집권여당 신한국당 입당 제의를 해왔다. 그는 처음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서울의 봄을 짓밟았던 신군부에 대한 단죄없이 합류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 뜻을 (당시 여권에) 전달했다. 이전에도 야당 측으로부터 입당 제의가 왔으나 모두 거절했었다. 나 자신이 정계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달 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소위 역사 바로 세우기란 명목으로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5·18특별법이란 소급입법도 제정해 신군부 핵심 인사들을 법정에 세웠다. 그 직후 신한국당에서 다시 입당을 제안해왔다.

'어떻습니까? 심재철 씨? 이젠 여건이 되었잖아요?'

沈 부의장은 고민했다. 그가 5·6共 민정당의 後身인 신한국당에 입당한다는 건 운동권의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일 수 있다. 그는 '여당 입당에 대해 민주화 동지들 사이에서 찬반이 엇갈렸던 게 사실이다. 격론도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沈 부의장은 학생운동 경력자들이 꼭 야당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현실 정치판이 아무리 더럽다고 해서 그저 침을 뱉거나 외면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민주화 세력 일부가 집권세력으로 들어와 우리 정치의 선진화와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뤄졌다”고 自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