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아래 글은 일본 유일의 교포 신문 <통일일보(대표 姜昌萬)>가 연재 중인 ‘조총련 패망사’를 <조갑제닷컴>이 번역‧게재한 것입니다.

전회(前回)에서 소개한 <<在日의 정신사>>를 좀 더 살펴보자. 이 책은 이른바 ‘재일정치범’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다. 이 가운 데에는 ‘XX일보’가 정체를 폭로한 반국가 사범 XXX의 사례가 있다. 저자 뿐만아니라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속아 넘어가 조총련의 선동과 거짓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조총련에 채용되어 대남공작원이 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정말로 혁명가가 되려 했던 사람도 있다. 또 자신이 조총련의 덫에 걸린 것을 알게 되어 꺼림직함을 느끼면서도 파멸의 순간까지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주변의 선동과 위로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영웅이나 희생자처럼 강변하기도 했다. 제각기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

XXX은 유학 중 범죄를 저질러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 후 정부의 너그러운 배려로 일본에 돌아왔는데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적단체인 범민련과 반국가단체로 지정된 한통련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저지른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행위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 그 누구도 이 점에 대해 문제삼지 않았다.

재일정치범 가운데에는 당사자로선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실수는 있었지만 대남공작원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자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주위의 동정을 받게 된다는 유혹에 사로잡혀 의도적으로 과장-거짓말을 섞기도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결코 공작원(공산주의 혁명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조총련 등 반국가 단체의 지원을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뭉쳐서 한국에 맞서 싸웠다는 점이다. 평양과 조총련이 얼마나 거짓말쟁이인지는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알면서도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 당국에 의한 ‘고문에 의한 정치범 조작설’ 선전은 의심하지 않는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서로 타협과 양보를 못하는 남북 간의 상대적 투쟁의 본질을 알게 되면 북한에 유리한 언동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것이다. 재일정치범은 거의 북한의 김씨 왕조의 폭압 체제를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재일의 정신적 풍토 하에서 <<재일의 정신사>>를 쓴 저자는 조총련에 의해 공작원이 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재일정치범들의 주장은  저자 자신의 회고에 의해 쉽게 부인됐다. 자신의 미숙함을 솔직히 인정한 저자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저자가 대남공작원으로서의 경험을 밝힌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여기서 내 자신에 대해 쓰고 싶다. ‘혁명’의 시대 내 자신이 바로 그 와중에 있었다. 앞서 밝혔지만 동경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을 당시 나는 이미 유학동(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 등 민족조직으로부터 떠나 있었다. 조선노동당에 직결되어 있는 지하조직-혁명조직에 들어가 있었다. 내 자신도 在日로서 ‘세 개의 국가’ 사이에서 살아왔다. 사람들에게 말할 정도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역시 在日 역사의 한 토막으로 밝혀 두고 싶다. 교토, 카츠라의 유학동 기숙사에 들어가 인생 처음으로 동료를 갖게 되어 가난한 학생 생활을 했다.

내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는 어떤 자신감도 없었지만 동경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면 나름대로 길은 열릴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원 합격 이후 졸업 직전의 1980년 2월경 갑자기 총련 중앙 교육부의 지도원으로부터 동경으로 가면 유학동으로부터 떨어지라는 지시를 받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동무에게 특별한 임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동시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명 받았으며 “학비와 생활비는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지도원은 일본 대학 출신으로 당시 유학동을 담당하는 실무 책임자로 몇 번 얼굴을 맞혔던 인물이다. 나에게 내린 지시는 재일본조선인 중앙교육회 간부 등 나를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의논한 후에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인간관계, 동료의식을 잃어 적막의 세계에 들어갈 것을 예감하고, 이것만으로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在日의 정신사』 113~114 페이지)>> (계속)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