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은 ‘음모론’(陰謀論, conspiracy theory)은 주로 사회적 혼란기에 유포된다. 음모론은 잘 설명되지 않는 사건을 설명할 때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9.11테러 부시 美행정부 자작설 ▲Area51(51구역) 외계인 거주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영국 왕실 개입설▲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에이즈(AIDS) 바이러스 인공개발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 ▲케네디 대통령 암살 배후설 ▲진주만 공격 미국 유도설 ▲미국의 한국전쟁 남침 유도설

물론 수많은 음모론 가운데 사실로 밝혀진 사건들이 더러 있다. 

잘 알려진 음모론 중에 ‘MK-ULTRA’ 프로젝트의 경우 사실로 밝혀졌다. 대략적인 내용은 과거 CIA가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기술을 연구했다는 것인데, 1974년 뉴욕타임즈를 통해 폭로되고, 1975년 美의회가 조사해 실제로 있었던 사실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나치(Nazi) 과학자 구출 계획으로 알려진 ‘페이퍼 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의 경우도 사실로 밝혀졌다.

문제의 작전은 美전략사무국(OSS)이 1945년부터 1946년까지 패전한 나치 독일 과학자 수백 명을 미국으로 데려와 독일의 첨단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작전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쪽의 경우 자신들이 설정한 가설에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크게 받아들이고, 자기 가설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내린 결과에 매몰되어 과정을 생략한다. 결과의 한 부분만 같으면 과정을 잊어버리고 자기 가설과 일치됐다는 희열에 빠져버린다.

사람들은 미제의 사건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들의 경우 해석이 단순-명쾌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음모론적 해석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음모론적 해석을 하는 상당수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고학력자들이다. 

이념 문제와 관련해 이념과 사실이 충돌할 때는 사실 편을 들어야 한다. 이념은 주관(主觀)이고 사실은 객관(客觀)이다. 객관적 사실은 주관적 신념보다 중요하다. 사실을 짓누르는 이념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이념과잉은 사실을 무시하고 질주하다 사고를 낸다.

역사문제, 특히 당대사(當代史) 관련 문제는 직접적인 평가보다는 직서주의(直書主義)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어떤 사안의 경우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냉철하게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사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주로 미제의 사건을 다룰 때 ‘그럴듯한’ 대안(?)이 된다. 음모론이기 때문에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생각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쪽과 음모론을 비판하는 쪽 모두 객관적·과학적·논리적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음모론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다. 바로 이것이 음모론이 끼치는 '해악'이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