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손님들이 자주 찾아온다. 대부분 여자들로 아내의 지인들이다. 그 아줌마들은 음식을 해서 각자의 집에 초대하곤 하는데 서로 음악시디도 나누어 듣고 책도 돌려보고 한다. 그 중 문재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아줌마가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쉬고 있다던데, 남편이 잘 버는지 쉬면서 취미로 전공과 전혀 거리가 먼 日文學 공부를 하려 대학원에 진학하여 뭔 학위를 받았다고 하더라. 한겨레신문만 본다는 자기주장이 강한 아줌마였다.




나는 그 아줌마를 상대로 딱 한 번 심술 아닌 심술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 아줌마 심기가 불편할만한 내용의 日本글 번역을 부탁한 것이다. 나는 일종의 일간베스트 같은 日本의 어느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는 편인데, 한번은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NLL과 관련한 글을 보았다. 은어와 비속어가 판을 치는 사이트의 글이어서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대강은, 민주당 의원들을 가리켜 ‘한국 의원들도 NLL이 영해선이 아니라며 북한을 두둔 한다’는 요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한 의미도 알 겸, 민주당을 간접적으로 흉보기도 할 겸 해서 문재인 열성 팬인 아줌마에게 번역을 부탁했던 것이다.




처음에 호쾌히 번역해주마 하고 갔던 그 문재인 팬인 아줌마는 A4용지 한 장 분량 정도 되는 글을 번역해 주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뭐, 그런 내용하고 관계있는 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당장 번역 필요한 거 아니지요? 언뜻 보니 잘 모르겠던데...’하고 말더라.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번역 부탁은 내 나름으로는 일종의 좌익교화(左翼敎化)운동이었다.




아내 말로는 문재인 팬인 아줌마가 예전에 문재인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 무작스러운 스타일의 아내 후배에게 한마디로 박살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언니야! 문재인이 언니 신랑이가? 밥이나 묵자’ 이 말로... 그 무작스러운 아줌마는 대학시절부터 좌파들에게는 항상 간단무식하게 대한단다.




한번은 아줌마 네 명이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논적이 있었다. 어쩌다 정치 이야기가 나와 문재인 팬인 아줌마가 지난 대선 때 누굴 찍었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들 화제를 돌리려 했는데 내가 그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말해 버렸다. 잠시 후 ‘박근혜’ 찍었다는 말이 하나 둘 나왔다. 문재인 팬 아줌마가 갑자기 옆에 있던 친구 아줌마에게 약간 멋쩍은 말투로 ‘이제 실토하는군’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줌마는 학생들 논술을 가르치는 아줌마로 부드럽게 한마디 했다. ‘말 안하려고 했는데, 사실 어딜 가나 박근혜 찍은 사람은 입을 다물거든. 문재인 찍은 사람들 목소리가 하도 커서 그치들 때문에 왕따를 당할까봐. 근데 그런 선동은 정말 좋지 못하다고 본다...’




그날 문재인 지지자인 아줌마는 수세에 몰리다 갔다. 평소 좌중을 리드하며 열변을 토하는 스타일인데 우리 집에서 갖가지 사안마다 점잖게(?) 참패하고 간 것이다. 이후 그 문재인 팬 아줌마는 아내 앞에서는 정치 얘기를 아예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그 아줌마는 변함없이 우리 집에 놀러오곤 한다. 평소 아내가 성심껏 대했기 때문일까. 그러다 문재인에게 등을 돌렸으면 좋겠다.




아내는 조선일보 전도사다. 말속이 느리고 말수도 없는 편인데 좌파성향인 아줌마에게까지 조선일보를 받아 보게 만든 전적(?)이 있는 사람이다. ‘유용한 할인광고 전단지가 많이 끼여 들어온다’는 방법으로 꾀인 것 같더라. 마치 옛날 기독교인들이 국민학생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누어주고 교회에 데려가는 것 같은 수법이다. 한편 아내는 우파임이 검증(?)된 아줌마들에게는 넌지시 조갑제닷컴 홍보를 하는 편이다. 그런 홍보가 얼마나 먹혀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먹혔다 해도 걱정이다. 행여 그들이 이 글을 보게 될까봐. 그래서 이런 글도 서둘러 지워야 하는 것이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