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개포동까지

14번 시내버스가 운행될 때니까

87년 여름쯤인가 보다.



야근하고 주간지 원고마감 대다 보니

오후 서너시쯤 퇴근을 하는데

서초동 진흥아파트 4거리에서 일이 났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물이 콸콸 몰려들어 고이기 시작하는데

운전수가 고속돌파를 감행한 것이다.



잘 건넜다면 이 글은 없을 것이고...

능히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한 깊이 이상이라

그만 엔진이 풀썩 꺼찌면서 버스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밖을 보니 네거리는 어느새 물바다

복도로 들이친 물은 드디어 좌석 밑까지 이르러

좌석 위에 발을 올리고 설 수 밖에 없었다.



용감한 남자 몇은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리고

비명을 지르던 젊은 여성 하나는

의로운 타이어방 청년의 등짝에 업혀 탈출했다



물이 더 차면 지붕밖에 없는데

어설프게 올라가다 추락하면 바로 사회면 기사감

다행히 비가 멎고 물이 빠져 대형참사를 모면했다.



지인 중에 강남 부동산에 밝은 부잣집 아들이 있어

그날 겪은 이야기를 했더니

사고 지점이 바로 강남에서 가장 낮은 상습침수지라는 게 아닌가...



그로부터 한 해 뒤 옮겨간 회사에서

주필로 모시는 분이 바로 그 아파트에 사시는지라

그 날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아무 말이 없으셨다.



시치미를 떼신 그분은 창간호에 묘한 여론조사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인물 톱으로 김대중을 올리더니

10여 년 후 6-15때 기어이 사고를 쳤다.



국영방송 사장으로서 언론사 사장단을 이끌고

평양에 가서 김정일한테 충성의 서약을 하고 돌아오는 바람에

민주투사 언론인이란 세평은 햇볕에 바랜 허명이 되고 말았다.



사흘째 내리는 비로 그 일대가 물바다가 되는 걸 보니

강남좌판지 뭔지 호강에 자빠진 소리들 작작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하늘의 경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