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 같은 거드런의 原罪(원죄)

제랄드의 아버지인 토마스 크라이치의 죽음은 인간적인 능력의 한계를 생생하게 밝혀준다. 죽음 앞에 無力(무력)한 아버지를 보면서 제랄드는 자신의 도덕적 폭력의 全能性(전능성)이 浸蝕(침식)당하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은 그의 존재의 統合(통합)성을 파괴한다:

〈 “그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이 계속 파괴되었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의 공허한 조개껍질이 되고 그 껍질의 사방에서 바다의 咆哮(포효)같은 시끄러운 소리만 울렸다… 그는 援軍(원군)을 찾아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영혼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암흑의 거대한 空虛(공허)속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를 잃으면서 제랄드는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무서운 죽음의 공간”을 느끼게 된다. 欺瞞的(기만적)인 자기확신의 低邊(저변)에 잠복되어있던 空虛(공허)에 직면하게 된 제랄드는 거드런에게로 돌아선다:
〈 “뭔가가 와서 그의 영혼 안에 있는 죽음의 텅 빈 공허를 채우고 외부에서 밀려오는 압력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 처한 그의 본능은 그를 거드런에게로 안내하였다… 그는 그녀와 가까이 있기 위해서 그녀의 스튜디오까지 그녀를 따라가곤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하나의 운명처럼 그녀의 발뒤꿈치를 따라 다니는 것을 느꼈다… ”〉

거드런은 제랄드를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어두움에서 나오는 제랄드의 모든 신비는 해체된다:

〈그가 마치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온 사람처럼 그로부터 희미한 백색의 빛이, 하나의 하얀 氣(기)가 발산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知識(지식)의 나무에 달린 사과를 따는 이브(Eve)처럼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모두를 두 손안에 넣을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만지기를 원하였다. 그 여자는 그에 관한 값진 지식을 갖고 싶었다.〉

이브는 거드런에 대한 적합한 이미지이다. 原罪(원죄)는 未知(미지)의 지식을 알려는 욕망이며 금지된 지식을 침범하는 죄이다. 지식에 대한 이브의 욕망은 그녀가 아담과 공유하던 순결하고 망각되어 있던 관능을 파괴하고 自意識(자의식)의 짐으로 대체한다.

타인의 자아(ego)를 知的(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신비하고도 신성하게 남아 있어야 하는 개별적인 자아를 침범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지식은 자기망각이라는 再生(재생)의 가능성까지 파괴해 버린다.

제랄드와 거드런은 서로를 흡수하기를 바란다. 제랄드는 공허를 메우기 위해서 거드런을 빨아들이기를 원하고 거드런은 제랄드을 섭취하여 지식을 얻기를 원한다. 제랄드는 생명자체를 위해서 그녀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녀보다 약하다.

거드런은 정신의 자양분이 되는 자극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 그에게 파고들기 때문에 동물의 시신을 뜯어먹는 새처럼 추하다.

실제로 그녀는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처럼 파멸의 생물체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의 손은 새처럼 그의 신비적인 몸체를 뜯어먹고 싶어했다.” 존재론적 필요에 의해서 찾아온 제랄드를 거드룬이 집어삼키는 것은 잔인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6
그녀는 사람을 凍死(동사)시키는 차가운 우주

제랄드는 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胎兒(태아) 및 幼兒(유아)로 묘사된다.(아프리카 여인상은 제랄드에게 태아를 연상시킨다) 제랄드는 大母(대모)에 의존하고 싶은 욕망과 함께 자궁으로 회귀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 二重的(이중적)인 이미지는 제랄드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나타낸다. 羊水(양수)가 들어 있는 子宮(자궁)의 이미지는 제랄드와 물과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한다. 제랄드가 물에 끌리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자궁 속과 같은 안정을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궁은 퇴행적일 뿐 아니라 파괴적이다. 자궁은 태아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지만 성인에게는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제랄드의 幼稚症(유치증: infantilism)이 그의 공격성의 요인이다. 그의 난폭성(brutality)은 離乳(이유)에 대한 좌절의 표현일 것이다.

그의 난폭성은 結合(결합)의 한 방법이다. 그의 공격적 행동의 裏面(이면)에는 자궁의 안락한 양수로 되돌아가서 자아를 해체하려는 갈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의식은 일시적으로는 천국적인 안락을 제공하지만 죽음을 가져온다. 분리의 痛症(통증)과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융합에 의해서 고문당하는 제랄드의 정신이 歸着(귀착)하는 곳은 소멸이다.

분노를 외부의 대상에 폭발시키든 아니면 보호를 받기 위해 여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든 제랄드는 정서적으로 외부의 세계에 의존한다. 반면에 거드런은 고립적이고 自足的(자족적)이다. 그녀는 비록 폐쇄적인 자아로 인해 고통받지만 그로 인해 보호를 받기도 한다.

제랄드의 外部指向的(외부지향적)인 의지는 외부와의 충돌로 인해 그의 자아를 지속적으로 손상시키지만 자신의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거드런은 빙설처럼 냉정한 의식으로 타인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거드런의 차가운 피는 너무나 냉정하고 철저해서 그녀의 영혼은 그녀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눈으로 이미지화된다. 그녀의 얼음처럼 차가운 지식은 파멸적이며 제랄드의 파멸을 촉진하는 사악한 힘이다.

제랄드는 비록 알프스의 눈 속에서 비인간화되고 눈과 동일시되지만 거드런의 빙설에 희생물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해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알프스에서 제랄드는 분노와 의지의 인간에서 긍정적인 인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드런은 의도적으로 제랄드의 창조적인 변화를 저지시키고 그로 하여금 자제력을 잃고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항상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겠어요?” 그녀는 달래듯이 말하였다…
“난 당신을 항상 사랑하겠어요.,” 그는 괴로운 듯이 억지로 말을 짜내었다…
“나를 조금 더 사랑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나를 조금 덜 원하도록 하세요…”
그녀는 반쯤은 경멸하듯이 그리고 반쯤은 달래듯이 말하였다〉

거드런에게 매달렸다가 냉정하게 배척당하고 절망과 혼돈의 회오리에 휘말려 죽음을 재촉하는 제랄드에게 독자들은 동정을 느끼게 된다.

눈은 거드런에게 적합한 이미지이다. 거드런이 겨울의 알프스산맥 속에서 ‘눈과 흰 봉우리로 형성된 하나의 거대한 자루(a great cul-de-sac)가 자신을 이상한 歡喜(환희)로 가득 채워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백색의 거대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땅은 태아를 담고 있는 자궁 같은 것이다. 그 곳은 ‘세상의 중심이고 탯줄이며 배꼽’같은 곳이다. 거드룬이 그 눈 자루를 향해서 현기증이 나도록 느끼는 환희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外延(외연)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현기증은 자신과의 만남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녀는 바로 사람을 凍死(동사)시키는 차가운 우주이다. 그녀는 제랄드가 回歸(회귀)의 대상으로 선택한 겨울여인이다.

자궁 속에 있는 양수의 안락함으로 되돌아가기를 추구하는 제랄드는 겨울 여인인 거드런의 차가운 양수의 호수 속으로 다이빙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된다. 거드런을 의미하는 隱喩(은유)가 되는 눈 속에서 죽음으로써 그가 갈망하는 거드런과의 융합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악마적인 인간의 특성

조롱이 로에르크의 삶의 방식이다. 북극적 축소의 순수한 化身(화신)인 그는 방어적이면서도 자극적이다. 그는 자연스런 감정을 부정한다. 거드런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매달리는 기계의 巨匠(거장) 제랄드를 떠나서 기계의 예술가인 로에르크에게로 간다.

로에르크는 ‘해체의 신비에 관한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제랄드가 산업의 지도자로서 자신도 이해 못하는 힘에 의해서 해체를 전파하지만 로에르크는 기계적 축소에 대해 객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유기적인 인간의 영혼이 無(무)의 존재로 축소되는 현상에 아무런 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악마적인 형태의 북극적 존재양식이다. 해체되고 축소되어 파멸되어 가고 있는 현대의 북극인들을 즐기면서 조롱하며 지켜 볼 수 있는 악마적인 특성-이것을 거드런과 로에르크는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악마적인 북극인들이다.

‘연애하는 여인들’의 주요 인물들 중에서 버킨과 어슈라만이 파멸과 해체를 면하고 ‘연결된 두 개의 동등한 별’로서 북극의 눈 덮인 凍土(동토)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게 된다. (끝)


(다음 편부터는 제인 오스틴의 ‘傲慢(오만)과 偏見(편견)’(Pride and Prejudice) 해설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