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남편의 9.11 논평: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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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世界史를 바꾼 9.11 테러가 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늦은 밤 CNN이 중계하던 테러의 참상을 지켜보면서 "이걸로 김정일도 끝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 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였고, 對테러 전쟁이 新冷戰처럼 세계인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youtube.com을 뒤지면 9.11 테러의 현장 비디오가 많이 실려 있는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특히 불타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뛰어내려 즉사하는 사람들의 動영상이 많다. 이 비디오들은 언론기관에서 확보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00명 이상이 뛰어내렸다고 한다. 물론 한 사람도 살지 못하였다. 다가오는 불길과 연기 속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는 방법을 선택한 게 하늘로의 탈출이었다. 땅과 충돌할 때의 속도는 시속 150km를 넘었으리라고 한다. 알 카에다가 납치한 넉 대의 여객기가 흉기로 쓰이는 바람에 약3000명이 죽었다. 그런데 한 한국인은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고 公言하였다. '그가 만난 사람들'이 궁금하다. 그 가운데는 한명숙씨도 포함되어 있는가?
  
  9.11 테러로 뉴욕시의 소방관 343명도 죽었다. 이들의 죽음도 '당해 싼 죽음'인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고 오는 10월26일에도 나설 가능성이 있는 한명숙씨가 남편을 대신하여 해명해야 할 사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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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테러 10주년을 맞아 자료를 검색하다가 이런 걸 발견하였다. 5년 전에 金成昱 기자가 쓴 글이다.
  
   박성준氏 '나는 맑시스트 크리스천'
   '지하드는 미국이 아랍에 가한 폭력 비해 약소(弱小)'
  '9`11...내가 만난 사람들은 통쾌하다는 반응'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의 국무총리 지명으로 그의 동지적(同志的) 반려자로 불려온 남편 박성준씨의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성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성준씨는 1940년 경남 통영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자신의 妻 한명숙, 박경호, 김국주 등을 포섭한 혐의 등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朴씨는 1981년 출소 당시 해방 후 당시까지 가장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최장기수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출소 후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神學)을 공부한 박성준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맑스주의자”“평화주의자”“퀘이커”등으로 소개해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존 언론에 보도된 관련내용을 가감 없이 게재해본다.
  
   “...朴 선생(박성준氏) 순서가 돌아오자 자신은 지나온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며 『기독교인, 맑시스트, 퀘이커, 불교에 막 눈을 뜬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그 살아온 내력으로 사람들과 소곤소곤한 만남을 갖고 싶어 마이크를 쓰는 모임, 인터뷰, 텔레비전 출연은 가급적 사양한다.(週刊기독교 2003년 11월 1509호 인터뷰기사 中)”
  
   朴씨는 季刊 ‘새길이야기’2001년 겨울(3호) 인터뷰에서도 ‘출소 후 신학(神學)수업의 이유’에 대해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보자.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처음에 일주일 코스로 펜들 힐 영성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朴씨는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戰*이라크戰*북한제재 등에 반대(反對)하는 소위 반전평화(反戰平和)운동을 벌여왔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전은 “군수산업의 이익을 도모하고, 석유이권과 중동패권을 노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제물로 삼는 전쟁이 아닌 침략(侵掠)(2003년 3월25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으로, 아프가니스탄전은 “최첨단 신무기를 대거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몰고 그 나라의 자연을 마구 짓밟고 완전초토화하는 것(2002년 3월21일 著‘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등)”으로, 91년 걸프전은 “수십만의 젊은 이라크 병사들이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사막에서 살육되고, 미국이 이라크 사회의 인프라 구조를 파괴해버렸고 생필품의 수입마저 막는 경제제재를 지금도 풀지 않아서 백만 이상의 이라크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 등 병으로 죽어갔다(‘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등)”며 反美논리를 전개해왔다.
  
   그는 특히 미국의 대북(對北)제재가 한반도에 전쟁을 부른다며 김정일 정권의 不法행위를 어떠한 형태로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2002년 경 쓴‘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는 글을 일부 인용해보자.
  
   “설마 설마 하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한 민중(民衆)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경각심을 드높여 예의 주시하자. 부시 대통령과 미국정부에게 화해와 평화를 향한 우리 겨레의 역사적 행보를 방해하지 말라고 단호히 경고하자...만에 하나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덮쳐온다면 우리는 휴전선 일대에 평화의 천막을 치고 평화를 호소하는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평화음악회, 평화단식*농성 등 행사를 벌이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산하자”
  
   그는 같은 글에서“우리의 평화와 우리의 안전을 남의 손, 외세*강대국 미국에 맡겨놓고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맞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며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를 내 건 박성준씨의 반미(反美)주의는 인류보편의 범죄로 규정되고 있는 ‘테러리즘’에 대한 우호적(?) 판단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슬람의 지하드[소위 ‘성전(聖戰)]는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이라며 심지어 9*11테러에 대해“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以上 ‘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논문 中)”고 말했다.
  
   같은 글에서 일부를 인용해보자.
  
   “한반도는 위험을 안고 있는 불안한 지역입니다. 그 중심에 언제나 미국이 있지요. 우리가 이번의 사태(9*11사태)를 보면서 ‘오만한 미국의 콧대를 꺾었다!’‘미국도 당해봐야 한다’는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미국이 무슨 짓을 했기에 테러리스트들이 그토록 처참한 보복을 생각해내게 되었는지, 그들의 사무친 한과 절망과 증오의 뿌리가 무엇인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게 합시다.”
  
   박성준씨의 반미(反美)주의는 반전론(反戰論) 또는 평화론(平和論)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테러행위나 김정일*후세인 등 독재자에 대한 비판은 찾기 어렵다.
  
   김성욱기자
  
  
  [ 2006-04-10, 21:15 ] 조회수 : 770
  
[ 2011-09-11, 18: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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