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나지 않은 최보식의 李熺性(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인터뷰:"全斗煥은 12·12와 상관있고 5·18과는 無關"
"光州 수습되고 3개월 뒤 전두환이 대통령 돼… 안 그랬으면 光州 문제에 전두환 이름 안 나왔을 것." "전두환은 새카만 후배… 내게 '형님' 하며 어려워 해" "날 뛰어넘어 越權했다?… 내 성격 알면 이런 말 안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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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도 '지휘 체계가 이원화됐다'는 말들이 있었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나 몰래 따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는 소리인데, 그건 범죄요. 그러면 내가 그냥 두고 볼 것 같소. 내가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오."
 "1996년 재판 당시 광주 현지까지 내려가 조사를 벌였으나 발포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없었어요."
 "(재판은) 내 입장에서 보면 허무하게 진행됐소. 공판 과정에서 내게는 질문이 거의 없었소. 오직 전두환에게만 하고. 당시 정국을 총괄한 계엄사령관에게는 별로 질문할 것이 없었던 모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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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광주사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 ⓒ동아일보



 [(편집자 注)광주 5·18 사건 36주년을 앞두고 崔普植 조선일보 기자가 진압작전의 최종 지휘자였던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李熺性(이희성) 씨를 인터뷰하였다. 월요일마다 조선일보에 실리던 '최보식이 만난 사람'은 어제 나오지 않았다. 이희성 씨는, 당시 신군부의 실력자였던 全斗煥 합동수사본부장 겸 중앙정보부장이 광주 진압 작전에 개입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李 씨는 '병사들이 혼란 속에서 위험을 느껴 쏜 것일 뿐, 발포 명령도 없었다'면서, '광주 사태가 불처럼 他지역으로 번져 전국에서 民亂이 일어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 군에서는 그런 국가 위기 상황을 걱정했고, 절실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터넷을 통하여 알려진 인터뷰 全文은 다음과 같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5·18에 대한 유감 표명과 광주 망월동 묘역 참배설(說)이 보도됐을 때, 그쪽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광주 방문은 와전된 것이다. 5·18에 본인 책임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당시 희생자가 있었고 대통령이 된 뒤로 충분히 수습을 못 한 데 대해 아쉽다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그는 광주의 가해자로 잘못 인식돼왔다. 이는 사실관계에서 명백히 틀린 것이다. 본인이 가장 억울해하는 대목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광주 학살 주범'인데, 반성 없이 억울해하니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판단과 해석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 문제라면 기자(記者)로서 한번 확인해볼 필요성은 느꼈다. 1980년 당시 정국을 관장한 李熺性(92)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만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첫인상이 단아했다.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의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그는 방문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무엇이 궁금하오? 하나하나 질문하면 답변드리지. 늙어서 생각이 잘 날지는 모르겠소.'

 나는 곧바로 본질로 들어갔다.

―당시 계엄사령관이라면 5·18 상황을 전체적으로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소. 전국 계엄 상황이었으니, 국방장관과 대통령께 주요 사안은 보고했지만 내가 全權을 쥐고 통괄했다고 할 수 있소.'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 재판에서 5·18과 관련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요?

'그렇소. 계엄사령관이었기에 책임을 진 거요. 5·18을 어떻게 보느냐를 떠나 결과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았소. 희생자와 유족이 많이 생기지 않았소. 국가적으로 이를 추스르는 차원에서 이들의 요구와 주장을 감안해야 하는 거요. 내가 높은 자리에 있었기에 그걸 피할 수는 없는 거요. 도의적 책임을 진 거요(8개월 복역하고 특별사면됨).'

―당시 국정 수반인 최규하 대통령도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오. 군의 작전 상황이니 계엄사령관과 국방장관에게 있지, 군을 잘 모르는 대통령께서야 책임질 일이 아니오.'

―도의적 책임은 그렇고, 실제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5·18 당시부터 대학가에서는 '광주 학살 주범'으로 전두환을 특정했습니다.

'그건 군의 작전 지휘 계통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요.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5·18과는 무관하오. 그는 12·12(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이유로 정승화 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한 사건)와는 상관있지만 5·18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계엄군 출동과 발포 명령을 그가 배후 조종했다는 게 통설입니다.

'법정에서도 '지휘 체계가 이원화됐다'는 말들이 있었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나 몰래 따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는 소리인데, 그건 범죄요. 그러면 내가 그냥 두고 볼 것 같소. 내가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계엄사령관이 위계상 높지만 당시 모든 힘이 전두환에게 쏠리지 않았습니까?

'전두환은 새카만 후배였고 내게 '형님, 형님' 하며 어려워했소. 나를 뛰어넘어 감히 월권해? 내 성격을 알고 이런 관계만 알아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옵니다. 전두환은 밝은 사람이지, 음습하지 않아요. 몰래 그렇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오. 내 단호히 얘기하오. 광주에 관한 한 전두환 책임은 없소.'

―그렇다면 5·18에 전두환을 지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봅니까?

'광주가 수습되고 3개월 뒤 그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오. 대통령만 안 됐으면 전두환 이름이 그 뒤로 나오지 않았을 거요.'

―전두환이 아니라면, 누가 5·18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겁니까?

'지휘 계통의 최고위에 있는 계엄사령관인 나와 국방장관(周永福)이오. 그래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소. 전두환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그는 보안사령관이었고, 내 참모에 불과했소. 참모로서 내게 건의할 수는 있었겠지만, 작전 지휘 체계에 있지 않았소. 진압 작전에 개입할 수 없었소. 그는 광주에도 내려간 적이 없소.'

―적극적인 스타일인 전두환이라면 광주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오히려 한번 내려갈 만하지 않았습니까?

'현지 보안 부대를 통해 보고가 올라오니까 그도 광주 상황을 알고 있었소. 내려가 본들 뭘 하겠소. 부대장에게 격려금이나 건네주는 게 고작이잖소.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내게 보고하고 광주에 내려간 적 있소. 광주 현지 부대에 배속시킨 공수여단 격려차 간 것이오.'

―전두환이 육사 동기생 정호용을 통해 작전 지시를 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재판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정말 군대 체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요. 특전사령관도 광주에 파견된 자기 부하들을 지휘할 수가 없소. 작전 책임과 지휘권은 배속된 부대 지휘관에게 있소. 조언은 할 수 있겠지만, 이래라저래라 작전 지휘를 하는 것은 군법에 어긋나는 거요.'

―'역사 바로 세우기'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1980년 5월 21일 '자위권(自衛權) 보유 천명' 담화를 발표할 때 보안사 참모가 초안을 건네줬다'고 진술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전두환의 5·18 개입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검찰 조사를 서너 번 받았어요. 꼭 밤중에 잠 안 재우고 심문을 했어요. 졸려서 정신이 몽롱해질 새벽에 진술서 서명을 받아요. 검찰이 신사인 줄 알았는데 그런 트릭을 써요. 그래서 보안사 참모인지 계엄사 참모인지 헷갈렸던 거요. 계엄사 참모였다고 하더군요. 설령 보안사 참모라고 해도 그런 건의를 해올 수 있는 거요.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오. 애초에 담화 발표 구상은 나 혼자서 한 거요.'

―왜 그런 구상을 했습니까?

'계엄군이 일방적으로 공격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다만 담화 내용에 대해 신경을 썼어요. 장차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봤으니까. 그래서 참모들을 불러 문안을 검토한 뒤 발표했소.'

―장차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자위권 보유 천명'이 '발포 명령'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예상했다는 건가요?

'재판 과정에서 '사정을 모르는 병사들은 자위권을 발포 명령으로 알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소. 그런 해석은 오버요. 공격을 받아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 개인마다 정당방위 차원의 '자위권'이 있다는 것이오. 피동적인 것이오. 발포 명령과는 다르오. 더욱이 담화문에서 '자위권이 있다'고 한 게 아니라 '자위권이 있음을 경고한다'고 했소. 예방 목적이지, 자위권을 적극적으로 발동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소.'
 
―자위권을 천명한 담화 발표 뒤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됐습니까?

'실탄 지급은 일선 부대 지휘관 차원에서 이뤄지는 거지, 계엄사령관이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오.'

관련 재판 기록을 보면 '자위권 담화'가 있기 전에 실탄 발사가 이미 있었다. 5월 19일 시위대에게 포위된 계엄군 장교가 위협사격을 한 게 첫 발포였다. 20일 밤 광주역에서는 실탄 사격으로 4명이 숨졌고, 21일 담화 발표가 있기 전에도 총격전이 벌어졌다.

―누가 발포 명령을 한 겁니까?

'1996년 재판 당시 광주 현지까지 내려가 조사를 벌였으나 발포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없었어요.'

―총 맞은 시민들이 있는데 발포 명령자가 없다는 게 과연 말이 됩니까?

'전투라는 게 우발적이고 부화뇌동해서 일어날 수도 있소. 겁에 질려 있는 사병들이 막 쏘고, 어디서 날아온 총알에 누가 맞았는지도 가릴 수 없었소. 한밤중에 아군끼리 교전도 있었소. 다만 5월 27일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은 적극적이었소. 도청 지하실에 TNT와 수류탄 등 무기가 있었고 무장한 주동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오. 당시 북에서 이를 이용 안 할 리가 있었겠소.'

―당시 담화문에 '상당수의 다른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광주에 잠입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근거가 있는 겁니까?

'첩보는 있었지만 확증을 잡지 못했소. 확증이 없는데 어떻게 얘기하겠소. 다만 무기고를 털고 시위대를 조직적으로 이끄는 등 민간인이 할 수 없는 행동이 있었소.'

―광주가 수습된 뒤 왜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뒤처리와 민심 위무(慰撫)가 시급해 그런 조사에 착수할 수 없었소.'

―공수부대를 투입해 초기에 과잉 진압을 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 있었는데요?

'당시 공수부대는 소요 진압 임무가 있었소. 5월 18일 아침 휴교령이 내려져 있는데 학생들이 들어가겠다며 전남대 정문에서 군인들과 충돌한 게 발단이었소. 학생들은 가방에 넣어온 돌을 던졌고 군인들이 무방비로 맞은 거요. 그 뒤 시내에서 학생들이 집결하자 군인들이 뒤쫓아가며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소. 이를 본 시민들은 공수부대원들이 무자비하다고 흥분한 거요. 어떤 세력이 '경상도 공수부대가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며 악성 루머를 퍼뜨렸소.'

―광주가 수습된 뒤인 6월 초 정부 합동조사단이 현장 조사를 마치고 '초기 진압 작전의 과오 책임을 물어 당시 현장 지휘관을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린 게 맞습니까?

'그건 맞소. 하지만 내가 반대했소. 현장 지휘관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피해자가 생겼으나 그건 앞서 말한 대로 불가피한 상황도 없지 않았소. 나는 지금도 작전 실패는 아니라고 봐요.'

―숱한 사상자를 낳은 국가적 비극을 초래했는데?

'한 사건을 이쪽·저쪽, 위·아래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오. 광주 사태가 불처럼 타 지역으로 번져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 군에서는 그런 국가 위기 상황을 걱정했고, 절실했습니다.'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 재판에서 그 나름대로 진실 규명이 이뤄졌다고 봅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허무하게 진행됐소. 공판 과정에서 내게는 질문이 거의 없었소. 오직 전두환에게만 하고. 당시 정국을 총괄한 계엄사령관에게는 별로 질문할 것이 없었던 모양이오.'●

[ 2016-05-16, 18: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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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고수     2016-05-20 오후 12:13
―당시 국정 수반인 최규하 대통령도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오. 군의 작전 상황이니 계엄사령관과 국방장관에게 있지, 군을 잘 모르는 대통령께서야 책임질 일이 아니오.'

이 부분을 뜻깊게 읽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는 것만으로 책임을 물을 만 한데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부분 평가한다
   현고수     2016-05-20 오후 12:05
항상 궁금했다. 왜 당시 계엄사령관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는지. 당시 계엄사령관과의 인터뷰는 내기억으로는 처음 본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을 취재를 하고도 신문에 싫지 않는다니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 그나마 조갑제닷컴에서 실어주어 참 감사하다 이런 사실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사람은 기자라 할 수 없고 언론인이라 할 수 없다. 언론은 참으로 소중한 역할인데 지금은 언론이 신뢰가 안가고 제역할을 못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현고수     2016-05-20 오전 11:59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인터뷰인데, 취재를 하고도 이런 내용을 신문에 실지 않은 조선일보는 언론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言論..말하고 논할 수 있는 특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그러지 못하면 신문 찍어 내는 것이 부끄럽지 아니한지
   유신     2016-05-20 오전 8:52
조갑제!
이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
지금 소위 민주 조선에서 백주에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데 소위 대기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 이런 너절한 최보식이 기사나 대문에 올려놓고!
부끄럽지도 않냐?
그냥 사라져라!
   自由韓國     2016-05-20 오전 1:39
참 답답합니다..전두환하고 광주사태는 직접 관련이 없죠...전두환이 발포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던데...할말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2016-05-19 오후 12:20
증거를 잡지 못했을 뿐이지 북괴군 침투에 대한 첩보는 분명히 있었군요
   사과     2016-05-18 오후 5:50
요즘 조선일보가 맛이 갔습니다 보수가 지리멸렬 하니 슬슬 눈치를 보고 있군요 정의고 공정보도고 다 신문도 회사니 이득도 내야되고 우선 살아 남아야 된다이거지요 배가파산하면 쥐가 먼저 도망간다지요 조선도 별수없지요 좌파신문은 계속 악착같은대 이것도 웰빙족이군
   靑旻     2016-05-18 오후 3:18
이희성 장군의 육성을 직접 들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민간인들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던 세력들을 지금이라도 밝혔으면 더욱 좋겠고 분명 밝혀야한다고 본다. 해마다 열리는 광주사태를 기념하기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에만 집착하는 세력들은 대한민국 국민들께 왜? 그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 주길 바란다.
   동탄사람     2016-05-17 오후 9:51
육사출신들중에도 가끔 제대로 된 사람이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국군을 반란군으로 매도하고 있는데도, 뜨끈미지근하게 세월을 보낸 사람들 말이오.
조선이 망해서 한일 합병이 되고 나서도 뜨끈 미지근 했지요.
이제라도 제대로 말하고, 사실을 밝혀서 나라가 제대로 되도록 하는게 밥값을 하는 길 아닌가요?
오늘도 떠민당, 국민당은 광주, 절라도에 돌아 다니며, 선동질하고, 아부하느라 정신을 봇차리고 있지요.
내가 보기에는 떠민당 당사를 아예 광주로 옮기면 좋을 성 부른데 말이오!
   이중건     2016-05-17 오후 8:39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지 않으면
엄청난 빗나간 과녘을 학살
   우야     2016-05-17 오후 3:39
이 분은 진짜 사나이군요!
노병의 진실에 대한 말씀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중히     2016-05-17 오후 2:40
5.18전문가 김대령 재미사학자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민들이 보셔야 될 듯..
광주가 중심지가 된 것은 "아세아 자동차"라는 군납업체가 있기 때문이었고,
이들은 이 지역의 위장 취업자 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갑차등을 탈취한 괴한들은 현지 시위대가 아니라 "외지인"
이었다..
현지 시위대가 할 수 있는 능력밖의 일이었다..
이 부분에 조갑제 대표께서는 별도의 연구와 취재가 필요한 듯 합니다..

좀 더 많은 학자들이 진실규명에 발 벗고 나서야 되겠다..

역사 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딸부자     2016-05-17 오후 12:01
당시에 광주교도소안에 어떤 민주화 인사가 갇혀 있었길래 4차례나 교도소를 탈취하려
했는지요? 자유대한민국 국민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행태를 보였는데 민주화운동이라~~ 아무리 흘러간 과거라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지 못하면 자유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싶다.. 정말 걱정스럽다 올바른 양심회복 합시다~~ 거짓말하지 맙시다~~
   삼류작가     2016-05-17 오전 9:56
내가 지금까지 광주사태의 진상에서 가장 의문점을 가지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정말 전두환이 광주사태진압을 지휘했는가? 좌파세력들의 주장처럼 '학살원흉'인가? 전두환이 발표명령을 했나? 아니면 그의 지시를 받은 부하가 내린 것인가? 그런데 청문회를 하고 그렇게 철저하게 이잡듯 뒤지고 했는데도 그에 대한 증거도 안나왔고 발포명령자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몇십년이 흐르도록 말이죠.

아무래도 이상하다, 전두환은 광주사태의 진압책임과는 무관한 것이 아닌가? 의도적으로 신군부가 광주사태를 조장 학살을 자행했다는 좌파세력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안들수가 없었죠.

이제서야 좀 알것 같군요. 아,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그동안 왜 그렇게 좌파들의 타깃에서 벗어나있었는지도 알것 같습니다. 사회 정치적 기류가 어떻게든 전두환을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으로 해야했으니, 팩트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았던 거라고 보입니다.

그가 광주사태의 책임자가 아니어도, 그가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돌팔이매질을 당해줘야 문제가 매듭이 지어지고 이 일이 봉합될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게 팩트라고 밝혀지는걸 피해당사자들이나 좌파세력들이나 국민들까지도 용납할 수가 없었을겁니다.

'광주사태 사망자들이 어디까지나 '악랄한 살인마 전두환'의 직접 지시로 인해 숨진 순교자여야 하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고, 전두환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우발적인 총격으로 인해 숨졌다는게 사실로 밝혀지는 것을 피해자 유족들이나 좌파세력들이나 야당들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인터뷰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리는게 거부된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사회인것 같습니다. 아마 전두환씨가 관속에 들어가고도 한참은 시간이 지나야, 적어도 그가 광주사태와는 무관했다는게 인정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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