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현실 감각을 잃는 것의 위험성
‘부시의 9·11테러 지휘설’을 믿으려면 부시가 수천 명을 살해하고 이 계획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金永男(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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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20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정치 칼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미쳐 있다(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를 全文 소개한다. 이 칼럼은 각종 음모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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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얼마 안 돼 美 연방상원에서는 총기 규제를 강화하자는 방안이 논의됐다. 총기소지 옹호자 세 명은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려 애리조나주에서 워싱턴 DC까지 2500마일을 달려갔다. 이 중 한 명은 총기 규제 강화가 “미국을 사회주의 세계의 일원으로 들어가게끔 하려는 체제 전복 시도”라며 “이는 혼란을 야기할 것이고 우리의 敵(적)들이 강해지게만 할 뿐”이라고 했다. 큰 반향을 일으킨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The Paranoid Style in American Politics)’이 출간되고도 이 같은 현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총기소지 옹호론자들은 아직도 총기 규제가 실시되면 미국이 적에게 노출되기 쉽게 된다고 주장한다. 총기뿐만 아니라 여러 부문의 편집증적 행태는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나쁜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일부는 조금 더 나간다. ‘출생 의혹 제기자(birthers)’들은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헌법에 따라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바마의 출생증명서에는 그가 하와이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으며 이를 반박할 티끌의 증거도 없다. 추가로 하와이의 지방紙 호놀룰루 어드버타이저 문서보관소에 따르면 신문 알림란에 오바마의 출생 사실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일부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은 이 모든 증거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출생) 48년 후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게 하기 위해 조작한 것들이라고 믿는다. 이코노미스트와 유거브(YouGov) 여론조사 기관이 함께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6%의 공화당원들은 오바마가 해외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오바마를 향한 다른 음모론들은 더욱 흠이 많다. 일부 미국인들은 그가 안티크라이스트(antichrist)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는 예수가, 사탄이 천국(하늘)으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구절이 있는데 히브리어로 ‘번개’와 ‘천국’이 ‘버락 오바마’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또 오바마의 전용 리무진의 별명이 ‘괴물(The Beast)’인 것도 한몫 했다. 이러한 주장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오바마가 나치라는 說(설)도 있다. 오바마는 낙태가 합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낙태를 지지해온 사람들은 優生學者(우생학자, 注: 인간에게는 우등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가 있으며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학문)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가 나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는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흡연을 반대하기도 한다!
  
배리 골드워터(注: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가 急(급)부상할 당시 책을 쓴 호프스태터는 정치적 편집증이 여러 형태의 분노와 과장, 의심, 음모 판타지로부터 나오며 극우주의자에게 잘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우파성향의 사람들이 이러한 소설을 만들어낸 예는 많다. 고립주의자(Isolationist)들은 1940년대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알면서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도록 했다고 비난했다. 1990년대에는 백악관 법률고문을 맡았던 빈스 포스터가 정치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 것을 두고 그가 암살됐으며 당시 대통령이던 클린턴家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좌파도 이러한 판타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인 예르미야 라이트는 미국 정부가 흑인을 죽이기 위해 에이즈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를 알고서도 전쟁을 하려고 묵인했다고 믿는 사람은 18%에 달한다. 일부는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직접 테러를 지휘했다고도 믿는다. 이러한 것을 믿으려면 부시가 수천 명의 미국인을 살해하고 이 같은 계획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닉슨이 주거침입죄(注: 워터게이트 사건)를 저지른 것도 숨기지 못하는 게 미국이다.
  
음모론을 믿는 것이 위안이 될 수는 있다. 문제가 잘못되더라도 이 복잡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한 비밀스러운 정치권의 탓으로 돌리면 된다. 또한 음모론을 믿으면 일련의 사건에 대해 내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의기양양해질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편집증은 대가도 따른다. 우선 차분하고 논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정부가 자신의 할머니를 죽이려 한다고 믿는 사람과 건강보험 개혁의 장단점에 관해 토론할 수 있겠는가? 양쪽의 정치인들이 나서서 불을 지피려 해도 안 된다. 사라 페일린(공화)은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안이 ‘사악’하다고 주장하고 해리 리드(민주)는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외친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민주)는 시위대의 행태가 ‘미국인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데이비드 아라노비치는 그의 책 ‘부두 히스토리(Voodoo Histories)’에서 음모론 판타지가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이 담긴 책 ‘시온 장로의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를 읽었다. 하마스의 창설자들도 이 책을 읽었다. 티모시 맥베이는 미국 연방 정부가 악랄한 계획을 추진 중이라며 1995년 오클라호마에서 폭탄 공격으로 168명을 죽였다.
  
현재 미국인들은 과격화된 타운홀 미팅 등을 보면서 또 한 번 오클라호마식 공격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우려한다. 일부 시위대는 오바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다. 또 일부는 시위대 틈에서 자신이 차고 있는 총을 과시하고 있다. 남부빈곤법률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바마 취임 이후 ‘愛國(애국)’을 자칭하는 과격한 그룹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위협을 확대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 비밀경호국은 총을 찬 시위대가 대통령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한다. 미쳐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를 害(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또 이를 무시해서만도 안된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이념적 논쟁의 톤을 낮춰야 한다. 시위대는 오바마를 히틀러와 연계시키기 전에 역사 공부를 좀 더 해야 한다. 토크쇼 호스트들은 이런 편집증 환자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자꾸 정부가 그들을 향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말을 하면 어느 누군가는 이에 맞서 싸우려 할지 모른다. 리 하비 오스왈드(注: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가 보여줬듯 한 사람의 폭력적 성향이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안길 수 있다.
 

[ 2019-01-07, 21: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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