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현지 요원, 駐UAE 한국대사관·駐바레인 일본대사관의 빛나는 초기 대응
秘話/32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로 재구성해본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막후의 긴박한 순간들(2)

趙甲濟/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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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파견 안기부 직원의 활약
  
김승일이 유고 베오그라드의 메트로폴리탄호텔에 투숙했을 때 인근 공원에서 찍은 사진.
  김승일과 김현희가 바레인공항에서 저지되지 않고 로마로 가버렸다면 이 사건은 영구미제(永久未濟)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이 수사를 통해 북한 정권의 소행이라고 발표해도 범인이 없는 상태에선 ‘주장’으로 그치거나 안기부의 자작극(自作劇)이란 누명을 썼을 것이다. 김승일·김현희 두 범인의 체포의 공(功)은 일본 정부의 신원 확인과 이에 따른 주바레인 일본대사관 직원의 민첩한 대응에 돌려야 하는데, 그 배경에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안기부 요원의 활약이 있었다고 한다.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의 보고서에 실린 익명(匿名)의 활약을 소개한다.
  
  〈•1987.11.29. 오후(현지시각, 이하 동일) UAE 두바이로 출장을 갔던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두바이공항에서 KAL 858기 실종 소식을 듣고, 직무 경험과 기(旣)입수했던 첩보에 근거해 同 사건이 폭탄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아부다비의 한국대사관과 대한항공 지점에 전화를 걸어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 파악을 요청
  
  •11.29. 밤 대한항공 직원과 UAE 한국대사관 직원이 아부다비에 내린 KAL 858기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과 행적을 파악한 결과 ‘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간 부녀(父女)지간으로 보이는 신이치와 마유미를 발견
  
  •11.30. 오전 UAE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이전 일본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신이치와 마유미가 일본 이름임을 바로 파악하고, 양인(兩人)의 수상한 여정과 함께 입국 금지자 명단에 야카베 마유미가 등재돼 있는 점 등의 이유로, 대사관과 대한항공을 통해 본격적으로 추적을 개시
  
  •11.30. 오후 UAE 한국대사관은 UAE 일본대사관을 통해 양인의 신원 파악을 의뢰하는 한편, KAL 바레인 지점은 양인의 바레인 입국 사실과 Full name, 여권번호, 리젠시호텔 투숙 사실 등을 파악했고 KAL 아부다비 지점은 이들의 이전 행적지 투숙 장소 등을 파악
  
  •11.30. 21:30분경 駐바레인 한국대사관 대사대리는 양인의 투숙 호텔 방을 방문, 하치야 신이치와 필담을 나누는 등 거동 수상 여부를 확인했으나 특이사항 없는 것으로 판단
  
  •12.1. 새벽 일본 정부로부터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이 위조된 것임을 통보받은 駐바레인 일본대사관은 바로 리젠시호텔을 방문해 공항으로 향하는 양인을 추적, 바레인 마나마 공항 경찰에 양인의 출국을 제지해줄 것을 요청, 검문하는 도중 공항 로비에서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가 음독(飮毒)
  
  •마유미가 일본인이 아님을 확인한 일본은 사고기 등록국이자 최대 피해국인 한국의 마유미 인수를 지원하는 방침을 정했고, 바레인 정부는 마유미를 직접 수사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테러에 대한 우려와 한국 정부가 제시한 북한 테러 관련 증거 등의 이유로 한국 정부에 마유미를 인도키로 결정, 바레인 정부 사정으로 인해 두 차례에 걸친 인도 연기 끝에 1987.12.15. 한국 정부에 인도
  
  •1987.12.23. 마유미는 바레인 수사당국에서의 진술 내용과 국내 압송 직후의 진술 내용이 허위였음을 자백하고, 자신의 본명이 김현희이고 북한공작원으로서 KAL 858기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고 진술.〉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이 안기부 요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가 한 일은 현지에서 대사관과 대한항공 직원들을 독려하고, 신속하게 신이치와 마유미의 신원과 소재 파악에 나서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희의 飮毒을 지켜본 日 외교관
  
김승일과 김현희가 사용했던 독약 앰풀.
  1987년 12월 1일 오전 신이치와 마유미는 바레인공항 출국심사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나카와 사무관에게서 “위조여권으로 밝혀졌으므로 출국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두 사람은 로비 의자에 앉아 담담하게 기다렸다. 둘은 바레인 경찰관들이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자살할 타이밍을 엿봤다. 김현희의 자살용 독약 앰풀은 가방 안 말보로 담뱃갑 속 담배 개비 안에 들어 있었다. 김현희는 옆에 앉은 주범(主犯) 김승일이 건네준 담배에 불을 붙여 피우면서 신호를 기다렸다. 김승일이 “나는 살 만큼 살았지만 마유미 씨한테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자 이를 신호로 해석한 김현희는 담뱃갑을 꺼내려 했다. 이때 경찰관이 가방을 달라고 하자 담뱃갑을 챙기고 건네주었다. 경찰관은 담뱃갑도 달라고 했다. 독약이 든 담배 개비를 꺼내고 담뱃갑을 건네주자 경찰관은 “그 담배도 달라”고 하였다.
  
  김현희가 주저하는 사이 경찰관이 담배 개비를 빼앗았다. 김현희가 경찰관 손에서 담배 개비를 낚아채어 독약 앰풀이 들어 있는 부분을 깨무는 순간 경찰관이 덮쳤다. 앰풀의 앞이 터지면서 기화(氣化)된 청산 성분이 김현희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런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김승일은 앰풀을 와작와작 깨물고 들이마셨다. 실신한 김현희를 관찰한 사람이 바로 새벽부터 두 사람을 추적한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사무관 스나카와 쇼준 씨였다. 그는 2003년 출판된 《극비(極秘)지령》이란 수기(手記)에서 이렇게 썼다.
  
  〈신이치(김승일)와 마유미는 격렬한 발작 상태에서 전신(全身)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였다. 몸의 모든 근육의 말단까지 경련 상태였다. 마유미의 몸이 더 격렬하게 경련하였다. 심장이 전기 쇼크를 받은 것처럼 몸이 튀어 오르기도 하였다. 눈을 감고 입은 조금 열려 있었다. 입의 왼쪽에 찢어진 상처가 보이고 피가 묻어 있었다. 이번엔 신이치의 경련이 심해지고 마유미는 조용해졌다.〉
  
  한국의 음모론자들은 김현희가 ‘음독쇼’를 했다는 주장을 하고, 노무현 정부는 해명하기 위해 독극물 투약 실험까지 했다.
  
  
  “수사 협조 구하기 위해 시계, 올림픽 기념선물 송부 바람”
  
  한국 정부는 일본과 바레인뿐만 아니라 기체 수색을 하고 있는 태국과 버마 정부의 협력을 얻으려 무척 애썼다.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11월 30일 최광수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격려용 선물을 요청한다.
  
  〈KAL기 사고 수색 및 조사에 임하고 있는 태국 측 관계자(RCC, 군, 경찰 등)에 대한 격려용 선물로 사용하고자 하니 손목시계 20개 구입, 명일 중(12.1.) 송부 바람.〉
  
  버마 주재 한국대사 역시 12월 1일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KAL기 직행 또는 방콕 경유로 선물용으로 한국산 사과, 배, 감을 가급적 많이 수송해주시고 시계, 국산 골프공, 기타 올림픽 기념선물 등을 송부 바람〉이라고 썼다.
  
  한국 정부로서는 바레인에서 체포된 마유미가 북한공작원이란 확신을 가졌지만 그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게 큰 과제였다. 일본 정부는 여권이 위조된 경위를 쉽게 파악했다. 실재하는 일본인 신이치는 1983년 8월에 미야모토 아키라라는 사람에게서 사업 확장을 위해 동남아 여행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여권 발급에 필요한 서류와 인감을 건넸다. 미야모토가 이를 이용해 위조여권을 만들어서 신이치에게 제공했다. 미야모토는 한국과 일본의 공안기관에 북한에 포섭된 공작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제주 출신으로 본명은 이경우다. 4·3폭동에 가담한 뒤 1949년 일본으로 달아났고, 1964년에 처 양희연을 비롯한 가족을 북송(北送)시켰다.
  
  
  바레인에 김현희 인도 요청
  
  한국 정부는 1973년에 가입한 민간항공의 안전에 관한 ‘몬트리올 협약’을 법적 근거로 하여 김현희를 인도해달라고 바레인에 요청한다. 이 협약은 범죄의 직접 피해국에 대한 재판 관할권을 인정했다. 12월 5일 최광수 외무장관은 바레인 외무장관 앞으로 편지를 보내, 원인 규명을 위한 긴밀한 협의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같은 날 정해융 바레인 주재 한국대사는 공식적으로 혐의자 인도 요청을 하고, 바레인 내무성 범죄수사국(CID)의 책임자인 아이언 핸더슨 소장을 만났다. 바레인의 각 부처 장관은 왕족(王族)이 맡고 있지만 그 밑의 실무책임자는 영국인들이었다. 60대 고참 수사관 출신인 핸더슨 소장도 그렇게 고용된 영국인이었다. 정해융 대사는 면담 결과를 보고한다.
  
  〈대사관 소속 서기관 및 본국에서 온 안기부 직원을 대동, CID 핸더슨 소장을 방문하고, 유류품 점검을 상세히 확인, 핸더슨 장군에게 범인이 북괴 파견 혐의자임이 틀림없으니 시체 및 범인의 인도를 요청했음. (핸더슨은)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며 자기가 암시했다고는 말하지 말고 외무성 당국에 우선 요청할 것을 권유했음.〉
  
  정 대사는 이날 “북괴 측의 수법과 동일한 점을 설명하고 서울에서 온 수사팀이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 왔으니 면담해줄 것을 요청하자 핸더슨 소장은 이에 동의했다”면서 “안기부 직원 등과 함께 간첩 신광수·정해근 간첩 사건을 설명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왔던 독극물 사진을 제시, 성분을 설명했다”고 보고했다. 핸더슨은 “바레인은 수사할 의지가 없으며 당사국에 신병 및 모든 압류품을 인계할 방침이며, 이번 사건이 북괴 소행으로 보이므로 한국으로 인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What shall I do…”
  
  정해융 대사는 다음 날 보고서에서는 핸더슨 소장 면담 내용을 더욱 자세하게 소개했다. 핸더슨이 마유미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협조를 해줘야 한다. 당신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당신을 나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영어로 말하자 마유미는 “What shall I do…”, 즉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영어로 답변했다는 것이다. 핸더슨은 “마유미는 가족에 대한 말을 하니 약간 눈물을 보였으며, 햄 샌드위치를 좋아하나 적게 먹어 영양제 파우더를 복용시켰다”고 한다. 핸더슨은 이날 정해융 대사에게 마유미 호송 과정의 보안을 위한 제안도 했다.
  
  〈1. 전세기가 바람직하며 극비보안을 위해 도착 후 최단기간 내에 떠나도록 하는 것이 좋음.
  
  2. 방법은 활주로 끝에 계류시켰다가 인수 즉시 떠나면 될 것임.
  
  3. 신병 인수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 부근 영공상에서 인터셉트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4. 특별기 현지 도착은 자정 부근이 좋음.〉
  
  정해융 대사는 12월 6일 바레인 외무장관에게 김현희의 인도를 요청하는 공식 외교문서를 전달했다. 한국 정부는 7일 박수길(朴銖吉) 외무부 제1차관보를 외무장관 특사로 임명해 바레인에 파견했다. 최광수 외무장관은 6일 정해융 바레인대사에게 보낸 전보에서 “혐의자 송환 문제는 극비리에 행해져야 하는바 이와 관련한 여하한 기자회견은 그곳에서 일절 하지 말기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다음 날에도 보안을 강조한다.
  
  〈마유미 등을 아국(我國)이 인도받아 서울에 데려오는 작업은 그 성격상 철저한 대외 보안이 필요하므로 인도 교섭, 실제 신병 인수 및 귀지 출발 과정 등에 있어서 보안을 유지 바람. 정부는 마유미 등이 안전 수송돼 서울에 도착한 후 이 사실을 발표할 계획임.〉
  
  최 장관은 같은 날 일본과 태국, 버마, 바레인 대사들에게 “KAL기 사고와 관련해 국제전화 사용빈도가 늘어난 상황에서 보안 사항 누설 위험이 높아지고 있으니 아주 긴급하여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되도록 전화 대신 암호 전문을 이용하기 바라며, 통화 시에는 보안에 각별 유념하도록 조치 바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해융 바레인대사는 12월 7일 최 장관에게 마유미를 만나본 자신의 관찰 의견을 보고하였다.
  
  〈관찰에 의하면 마유미의 용모는 중국 태생의 한국인이라는 인상이 짙었음. 신이치가 마유미를 범행을 위한 도구 및 가족 위장을 위해 고용했을 가능성 및 마유미가 중국인일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임.〉
  
  정 대사는 이날 별도의 전보를 통해 기밀 유지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털어놨다. 그는 “마유미 서울 호송건의 대외 보안에 최선을 다할 것이나 주재국 보안 당국도 지적하듯이 주재국은 작은 나라이고 인척 관계가 서로 얽힌 실정이라 작은 일도 구두로 전달되기 쉬우며 외무성에 서류가 가면 아무리 ‘SECRET’이라는 표시가 있어도 흘러나간다고 할 정도이니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보안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최광수 장관은 다음 날인 12월 8일 정 대사에게 또 한 건의 전보를 통해 기밀 유지를 다시금 당부한다. 그는 “귀지(貴地) 특파원은 귀직의 발언을 인용, 동건 관련 제반 수사 현황과 교섭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바, 본 건의 미묘하고 중요한 보안 필요성을 감안, 현지 특파원에 대한 각별한 보안 조치 바람”이라고 지적했다.
  
정해융 바레인 주재 한국대사가 1987년 12월 7일 마유미를 관찰한 의견을 외무장관에게 보고하는 문서.



(계속)
[ 2019-04-22, 15: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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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19-04-24 오전 3:24
전두환 대통령 시절 안기부이니 이런 일이 가능했지 이 정부 국정원이라면 택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증거를 인멸하고 범인 국외 탈출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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