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잃으면 반드시 죽음이 온다
J.S. Mill의 ‘자유론’ 발췌요약 (1)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자유의 탄생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영국이나 네덜란드, 프랑스와 독일 등 서방의 선진국들은 예나 지금이나 지속적으로 부유하고 러시아나 루마니아, 터키나 중국 등 동부유럽과 유라시아의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난한가? (서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가 경제학의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되어있다. 천연자원이나 우호적인 기후는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반대로 건강한 정치제도와 지속적인 법치가 부유한 나라를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선진적 지표는 20여 개 정도의 서구에서만 진화되었는가? 중국이나 러시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법치가 서구만큼 진화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서구보다는 항상 잘 살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 교수는 선진적 지표(법치와 민주제도)의 형성과 진화에 기여한 결정적인 성분(ingredient)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하였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구성원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 즉 타인에게 느끼는 친밀감(affinity)을 가리킨다. 친족이든 아니든 어떠한 형태의 연줄(권력 배경, 혈연, 학연, 지연 등)도 없는 사람에게도 차별 없이 동일하게 느끼는 친밀감이 사회적 자본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각종 연줄로 묶여 있는 사회에서는 민주정치와 법치의 바탕이 되는, 보다 객관적이고 자유로운 판단이나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렵게 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전체주의국가에서처럼 아예 불가능할 때도 많다.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는 수백 년이 걸린다. 푸트남은 이탈리아의 지방자치연구를 통해서 전제군주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남부지역은 사회적 신뢰수준이 낮고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일한 시기에 시민들이 도시국가를 세우고 함께 뭉쳐서 통상과 자주국방을 하며 번영하였던 북부의 자치지역은 선진적 지표가 매우 높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부유하고 국가경영도 잘하고 있다. 푸트남 교수의 연구는 독재국가의 타율적인 사회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구조적으로 미약하게 되며, 이런 사회에서는 민주적 정치제도나 법치의 진화를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부유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민주제도나 법치가 확고부동한 전통이 되지 못한 나라는 전술한 바와 같이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으로 부유하게 되더라도 다시 가난으로 돌아가기 쉽다.

요약하면 개인의 자유가 국가권력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제한되는 사회에서는 민주정치와 법치의 진화가 느리거나 불가능하게 된다. 자유가 없으면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거의 불가능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목숨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오늘날 자유가 전혀 없는 전체주의 독재국가 북한이 이를 입증한다. 완전통제 국가 북한에서는 대량 餓死(아사)와 공개처형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헨리 패트릭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절규는 불변의 진리라고 하겠다. 자유를 잃으면 반드시 죽음이 온다. 자유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극악한 독재국가 북한에 비해서 한국은 26배나 부유하다. 이는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우리를 富饒(부요)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은 자유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밉살스러운’ 깡패 거지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빨갱이 악령이 나라를 점거하고 나라를 북한식 전체주의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어도 제대로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자유가 왜 소중한지를, 왜 자유를 잃거나 빼앗기면 목숨까지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심지어 ‘배운 지식인’조차 자유에 대한 개념 자체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건국 후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사상史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을 발췌 소개하고자 한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에서, 특히 그리스, 로마, 잉글랜드의 역사에서 민중과 권력자 사이의 투쟁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옛 시대에서는 이러한 투쟁은 백성 또는 특정 계급의 백성과 정부 사이의 투쟁이었다. 자유라는 것은 정치적 통치자의 폭정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였다. 통치자는 (고대 그리스의 인기 있었던 일부 지배자를 제외하고) 그들이 다스리는 민중과 반드시 적대적인 자리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통치자들은 한 명의 지배자 혹은 지배부족 또는 지배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의 권위는 세습이나 정복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被治者(피치자)의 만족을 위해서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통치자의 지배권에 도전하지도 않았고 지배자의 압제적인 통치행위에 경계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지배자의 권위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 민중의 정부가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거나 먼 과거에 책에서 읽은 것이라면 민중은 자신들의 권력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개념(notion)은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개념(무제한적 민중권력 개념)은 프랑스 혁명 같은 일시적인 탈선행위 때문에 반드시 손상을 입을 필요는 없다. 최악의 탈선은 봉기하는 소수 민중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고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민중을 위한 제도의 기능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군주와 귀족계급의 압제에 대한 발작적이고 돌발적인 난동이다. (계속)

 

참고
- John Stuart Mill, On Liber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 The Economist Nov 23rd 2019

[ 2019-12-31, 09: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