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러시아의 슬픔
반공자유-교양영어(12): The Gulag Archipelago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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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러시아의 슬픔

모세는 이집트에서 수백 년 동안 종살이하며 고난을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여 홍해를 건너 사막의 불모지인 시나이반도에 도착한다. 도착 후 그가 첫 번째로 한 중요한 일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아서 공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계명에 의해 백성을 다스리고 지도한다. 10계명은 神意(신의)를 담고 있는 공동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규범이다. 규범이 파괴되면 공동체는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모세는 십계명 석판을 보관하고 있는 法櫃(법궤)를 至聖所(지성소)에 모신다. 제사장 외에는 일반 사람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는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갔다. 백성의 지표는 법이라는 것이다.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여호와 하나님 즉 神의 대리인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城門(성문)앞에 도달하였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으로 쫓겨난다. 백성들이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여호와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막에서 40년간 헤매며 법을 지키는 훈련을 받은 후에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다. 가나안 福地(복지)는 현대적 의미로 선진복지국가이고 이집트는 후진국이라고 하겠다.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장구한 세월동안 법치의 훈련을 받아야한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러시아를 통치한 피터大帝(대제)는 개명군주였다. 그는 러시아의 현대화운동의 아버지이다. 그는 직접 신하들을 데리고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 가서 선진국을 체험하고 배웠다. 황제 자신이 신분을 위장하여 조선소에서 4개월간 일하며 선진기술을 익혔다. 서구식 도시를 건설하고, 서구식 건물을 세웠다. 신하들의 복장도, 수염까지도 서구식으로 바꿨다. 서구식 군대도 창설하고 서구식 산업을 일으켰다. 지배층에서는 불어가 거의 일상어가 되어 갔었다.

피터大帝 이후에도 러시아는 체제나 정권을 초월해서 서방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 온 나라이지만 불행히도 서방과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는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수도 없이 많은 혁명을 하고, 수도 없이 많은 전쟁을 하고, 수도 없이 많은 계몽 운동을 하고, 수도 없이 많은 숙청을 하고, 수도 없이 많은 수용소 군도를 설치하여도 여전히 가나안城 밖에서 헤매고 있다. 왜?

러시아에서는 역사적으로 법치의 DNA 형성이 미흡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법치라는 DNA가 불변의 전통으로 확립되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는 결코 들어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大帝는 법치가 문명건설, 더 나아가 선진문명건설의 핵심 인자라는 것을 간과하였던 것 같다. 법치(rule of law)는 법의 집행에 있어서 공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치는 법 앞에서는 至尊(지존)의 황제나 최하층의 거지도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제도 법을 위반하면 감옥에 가고 거지도 법을 어기지 않으면 감옥 갈 걱정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가 법치국가이다.

大帝가 서구식 도시나 건물을 건설하고 서구식 군대를 양성하면서 동시에 법치를 실행하였더라면, 그래서 법치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도입하고 이에 따른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사회건설에 헌신하였더라면, 그리고 후세의 지도자들도 자유민주주이념의 실행을 이어 나갔더라면 러시아는 지금쯤 삶의 질과 양면에서 서방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 있을 것이다. 自國民(자국민)을 수천만 명이나 살해한 공산당 독재나 지옥의 수용소 군도 같은 참혹한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자유민주주의적 법치주의를 배척하고 계속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를 지속한다면 300년 뒤에도 여전히 서방 선진국의 꽁무니를 쫓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러시아의 슬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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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leksandr Solzhenitsyn

Aleksandr Solzhenitsyn was a Russian novelist, short story writer, and historian. An outspoken critic of communism and the Soviet Union, Solzhenitsyn published only one book in his home country –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in 1962 – but by the end of the decade, he was widely revered as one of the best writers in the world, winning the Nobel Prize of Literature in 1970.

Four years later, after publishing “The Gulag Archipelago,” Solzhenitsyn was exiled from Russia, where he returned in 1994,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He passed away in 2008.

“The Gulag Archipelago”

In 1970, Aleksandr Solzhenitsyn won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for the ethical force with which he has pursued the indispensable traditions of Russian literature.”

Today, however, he is mostly remembered as the author of “The Gulag Archipelago,” a gargantuan non-fiction work in three volumes on which he worked for more than a decade and which resulted in his exile from the Soviet Union once it was published in Paris in 1973.

How could it not? The book – which is extremely difficult to summarize – chronicles the legal and political history of the gulag, i.e., the Soviet forced labor camp system, and is based on his personal experience, the testimony of as many as 256 former prisoners, and all-encompassing research.

Aleksandr Solzhenitsyn에 대하여

Aleksandr Solzhenitsyn은 러시아의 소설가이고 단편 작가이고 역사가이다. 공산주의와 蘇聯(소련)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가인 Solzhenitsyn은 그의 조국에서는 1962년에 단지 한 권의 책 ―“Ivan Denisovich의 삶의 하루”―만 출간하였지만 그 후 10년 끝에 가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았으며 197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용소 군도”를 발표한 4년 후에 Solzhenitsyn은 러시아에서 추방되었으며, 소련 해체 후 1994년에 소련으로 돌아왔다. 그는 2008년에 作故(작고)하였다.

“수용소 군도”

Aleksandr Solzhenitsyn은 1970년에 “도덕적 힘을 사용하여 러시아 문학의 필요불가결한 전통을 추구한 공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주로 “수용소 군도”의 저자로 기억되는데 “수용소 군도”는 그가 10년 이상동안 쓴 3권으로 된 거대한 논픽션 작품이고 1973년에 파리에서 출판되었을 때 소련으로부터 그의 추방의 결과를 가져온 작품이다. 어떻게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 책―요약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데―은 그 군도의 합법적이고 정치적인 역사, 즉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제도의 역사를 기록하고(chronicle: 연대순으로 기록하다) 자신의 경험과 256명만큼 많은 前 죄수들의 증언과 광범위한 조사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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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llel to this general historical account – which, for the first time, pointed the finger of blame for the gulags in the direction of Lenin in addition to the many pointed at Stalin – Solzhenitsyn describes the particular experience of a zek (short for “zakliuchennyi”, a Russian term for “prisoner”), depicting his typical route from the arrest and the show trial to his inhumane treatment and eventual release.

Usually, the torment started in the middle of the night when the future prisoners were at their most disoriented mood. Sometimes – such as right before and after the war or during the years of 1929-30 – the government didn’t hold anything back, arresting thousands of people on a daily basis. For example, during the Great Purge of 1936-8, modern studies estimate that as many as 1,000,000 people lost their lives on suspicion of being saboteurs and counter-revolutionaries. Of course, many more were arrested and put in the gulags after a brief interrogation based on a presumption of guilt – and it was almost impossible to prove yourself otherwise. Either way, you were in for a treat! That is if you are a masochist and by “treat” you mean “a vicious torture” and a prolonged lesson in the art of discipline and punishment given by the Bluecaps. And these Bluecapse surely knew their business: as if a modern Inquisition, they were capable of subjecting one of at least 31 different (documented) types of serious mental and physical brutalization.

이런 전반적 역사 이야기와 병행해서―이것은 처음으로 수용소에 대해서 Stalin을 향한 많은 비난의 손가락에 더해서 Lenin 쪽으로 향한 것인데―Solzhenitsyn은 zek( 죄수를 의미하는 “zakliuchennyi”의 축약형)―의 특별한 경험을 기술하며 체포와 보여주기 재판에서부터 비인간적인 처우와 최종적 석방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대체로 고문은 미래의 죄수들이 낯선 상황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disoriented) 상태에 있을 때인 밤중에 시작되었다. 때로는 ―전쟁 직전·직후에 또는 1929~1930년과 같은 그런 때―정부는 매일 수천 명을 체포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함이(hold anything back) 없었다. 예를 들어서 1936~1938년의 大숙청 동안에 1,000,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파괴분자 또는 반혁명분자 嫌疑(혐의)로 목숨을 잃었다고 현대의 연구들이 평가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사람이 유죄추정에 바탕을 두고 한 간단한 심사 후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달리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어쨌든 대접받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피학대음란증 환자라면 그렇다는 것이고 “대접”은 “사악한 고문”을 의미하고 Bluecaps(소련 군경)에 의해 주어지는 형벌과 징벌 기술에 대한 장기 학습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 군경들은 확실히 그들의 과업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의 중세 종교재판관인 것처럼 31개 종류의(기록된) 혹심한(serious) 정신적 육체적 가혹행위 중에서 적어도 하나는 실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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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even admitting guilt affected their behavior not one bit, it was basically for the sheer fun of it! Now, “first love” is a phrase you are used to hearing in somewhat more positive contexts, but back in the pre-war Soviet Union, you could hear it uttered by the gulag guards as they introduced the zeks to their first cells. The zeks really hoped that something would change once the Red Army won the Second World War, but their hope was in vain. The only thing that changed was the number of prisoners, which suddenly included numerous émigrés and POWs. And, in a very short time, almost all of Stalin’s numerous real or imagined enemies.

The procedure was the same for everybody: an arrest performed through the use of massive force, a show trial for the people to learn of the guilt of the prisoner, and then either a 25-year sentence or a capital punishment. In time, the number of capital punishments – which surged during the pre-war Great Purge – is reduced, which means that the number of gulag inmates has steadily risen.

죄를 인정하는 것도 그들의(군경의) 행동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죄를 인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순전히 재미 삼아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오늘날에는) “첫사랑”은 다소 더 긍정적인 상황(contexts)에서 익숙하게 듣게 되는 語句(어구)이지만 과거(back) 戰前(전전)의 소련에서는 수용소 경비병들이 죄수들을 감방에 끌어 넣을 때에 경비병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죄수들은 赤軍(적군: Red Army)이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뭔가가 변하기를 희망하였지만 그들의 희망은 헛된 것이었다. 유일하게 변한 것은 죄수들의 수였으며 그 수에는 갑자기 수많은 망명자와 전쟁포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짧은 기간동안에는 거의 모든 Stalin의 수많은 진짜 또는 상상의(imagined: Stalin이 생각하는) 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절차는 동일하였다: 대규모 병력의 사용을 통해 수행되는 체포, 그 죄수의 죄를 사람들이 알도록 하기 위한 공개재판, 그 다음에는 25년 또는 사형선고 (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형선고의 수는―戰前(전전) 대숙청 기간에 갑자기 증가했었는데― 감소되었는데 이것은 수용소 수감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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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some of these are wicked thieves – as opposed to the more intellectually-oriented political prisoners of before – the life in the gulags for many becomes even less bearable than before. And this leads to some fairly unexpected developments, such as the 1953 Vorkuta and the 1954 Kengir uprising, the latter of which lasted for an unprecedented period of two whole months and resulted in the creation of a mock government and a blooming cultural activity.

Things get better after the death of Stalin and Khrushchev’s secret speech denouncing his cult, but, even so, Solzhenitsyn felt a moral obligation to write this book. Now we know that it contributed to the fall of the Soviet empire possibly more than any other.

Key Lessons from “The Gulag Archipelago”

The Soviets Had Their Own Concentration Camps

You probably know a lot about Nazi concentration camps, but not that much about the gulags operated by the Soviet Union for the four decades between 1918 and 1956. “The Gulag Archipelago” is the defining book on the subject. And it boils down to: most gulags were just as bad as Auschwitz. But, unfortunately, much less known.

Ideology Gives Evil the Necessary Determination

At one famous point in the book, Solzhenitsyn explains why Macbeth and Iago were little lambs compared to Hitler and Stalin. Keyword: Ideology. The former two didn’t have one; whether Nazism or communism, the latter two rooted their evil firmly within it:

이들 죄수 중 일부는 사악한 절도범들이기 때문에―이전의 지적 성향의 정치범들과 대조되는―수용소의 많은 죄수에게는 생활이 이전보다는 견디기가 어려워졌었다(less bearable). 그리고 이것은 1953년의 Vorkuta 봉기와 1954년의 Kengir 봉기 같은 매우 예기치 않는 사태(developments)를 일으켰는데 Kengir 봉기(the latter)는 전체 2개월이라는 전례가 없는 기간 동안 지속되었고 모의정부와 꽃 같은 문화활동의 창조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Stalin의 죽음과 Stalin 숭배를 비난하는 Khrushchev의 연설이 있은 후에 상황(things)이 호전되었지만 심지어 그렇더라도 Solzhenitsyn은 이 책(수용소 군도)을 써야 할 의무를 느꼈었다. 이제 우리는 그 책이 아마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련제국의 몰락에 더 많이 기여하였다는 것을 안다.
 
“수용소 군도”의 핵심 교훈

소련인들은 그들 자신의 수용소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you)은 나치의 집단수용소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1918년과 1956년 사이 40년 동안 소련에 의해서 운영된 집단수용소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다. “수용소 군도”는 그 문제(subject)에 관해서 선명하게 설명해주는(defining) 책이다. 대부분의 수용소는 Auschwitz에 못지않게 사악(bad)하다는 것,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아는 것이 중요하다:boils down to).

이념은 악에게 결심을 부여한다

소설의 한 유명한 시점에서 Solzhenitsyn은 Macbeth와 Iago는 Hitler와 Stalin에 비교하면 어린 양들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핵심이 되는 말은 이념이다. 앞의 두 사람은 이념(one)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뒤의 2명은 공산주의든 나치즘이든 이념 안에 악을 단단히 뿌리박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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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ology – that is what gives evildoing its long-sought justification and gives the evildoer the necessary steadfastness and determination. That is the social theory which helps to make his acts seem good instead of bad in his own and others’ eyes…

That was how the agents of the Inquisition fortified their wills: by invoking Christianity; the conquerors of foreign lands, by extolling the grandeur of their Motherland; the colonizers, by civilization; the Nazis, by race; and the Jacobins (early and late), by equality, brotherhood, and the happiness of future generations… Without evildoers, there would have been no Archipelago.

Evil Is Buried Deep Inside the Human Heart

However, it’s wrong to say that Hitler and Stalin were evil people and that the rest of us are good. Things would have been a lot easier that way:

“If only there were evil people somewhere insidiously committing evil deeds,” exclaims Solzhenitsyn, “and it were necessary only to separate them from the rest of us and destroy them!” The truth is – the painful truth – that the line separating good and evil passes not through states, nor between classes, nor between political parties either — but right through every human heart — and through all human hearts. This line shifts. Inside us, it oscillates with the years. And even within hearts overwhelmed by evil, one small bridgehead of good is retained. And even in the best of all hearts, there remains… an un-uprooted small corner of evil.

이념―그것은 惡行(악행)에게 그것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확고함과 결단을 제공한다. 이념은 악인에게 그 자신의 눈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의 행위가 악한 것 대신 선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는 사회적 이론이다. 그것이 종교재판소의 재판관들(agents)이 그들의 의지를 강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즉 (심판관들은) 기독교신앙에 호소함에 의해서, 외국을 정복하는 자들은 모국의 영광을 찬양함에 의해서, 식민지 개척자들은 문명의 이름으로(야만의 땅에 문명의 빛을 전달한다는 명분으로), 나치스는 인종의 이름으로, 그리고 Jacobins은 평등과 형제애와 미래세대의 행복의 이름으로… (그들의 결의를 강화하였다). 악행을 하는 자들이 없었더라면 군도도 없었을 것이다.

악은 인간의 深淵(심연: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다

그러나 Hitler와 Stalin은 악인들이었고 나머지의 인류는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that way) 상태(things: Hitler와 Stalin의 악행)는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악인들이 어딘가에서 음흉하게 악행을 저지르고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나머지 우리로부터 그들을 분리하여 그들을 제거하는(destroy) 것만 필요하다면(얼마나 좋겠는가!)“라고 Solzhenitsyn은 외친다. 진실은―고통스러운 진실은―선과 악을 분리하는 경계선은 국가를 통해서도 아니고, 계급사이도 아니고, 또 정당사이도 아니고 바로 모든 개개인의 마음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인류의 마음을 통해서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계선은 변한다. 우리의 내부에서 그 線(선)은 세월과 함께 변한다. 그리고 심지어 악으로 압도당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작은 線의 교두보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선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 악의 작은 구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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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apparent from the title of his novel The First Circle and from various details there and in other works that Alexander Solzhenitsyn is familiar with at least the imagery of Dante's Divine Comedy . One direct and several indirect references to it also suggest a Dantean subtext in his longest and most ambitious project, The Gulag Archipelago. Indeed, the loci of the Comedy — Inferno , Purgatorio , and Paradiso —are transformed in the Gulag into metaphorical representations of the various stages in the development of man's consciousness—and especially Solzhenitsyn's consciousness—during the ordeals of arrest, inquest, imprisonment, and exile. The Inferno is surely the most prominent and in some ways the most memorable part of Solzhenitsyn's work. It is the phase in which most of the zeks live—the phase of unremitting hatred, cynicism, and selfishness caused by the cruelty and degradation of their experiences in prisons and labor camps. It is a life among rapacious thieves and police informers, a life in which only the self matters. The Purgatorio is the stage reached by those who, like Solzhenitsyn himself, begin to question the validity of all ideologies and who recognize and admire the strength of those whose personality derives from an uncompromisingly spiritual worldview. But in the Purgatorio the light of understanding is just beginning to penetrate the darkness; the process of spiritual rebirth is in an embryonic state.

When a zek crosses the threshold of the Paradiso (as Solzhenitsyn clearly does—notably in Part IV), he attains a wisdom and understanding not yet accessible to the majority of men. He realizes that attachments to property, possessions, and even loved ones only add to the sufferings of the prisoners. He now knows that the life of the spirit, divorced from earthly preoccupations, is the only life that is eternal and inviolate. With that realization he has achieved the ultimate knowledge and the ultimate happiness.

그의 소설 “제1 서클”의 標題(표제)로부터 그리고 그곳과 다른 작품에 나타나는 다양한 세부사항으로부터 판단해 보면(from) Alexander Solzhenitsyn은 Dante의 “神曲(신곡)”의 이미지와 친숙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神曲”에 대한 한 번의 직접적인 언급과 수개의 간접적인 언급은 또한 그의 가장 길고 가장 야망적인 작품(project)인 “수용소 군도”안에 나타나는 Dante적 서브텍스트[言外(언외)의 뜻]를 암시한다. 진실로, “神曲”의 장소(locus)들이―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 “수용소”에서는 체포와 심문과 투옥 그리고 추방의 시련동안 인간 의식 —그리고 특히 Solzhenitsyn의 의식—의 발전(변화)의 다양한 단계에 대한 은유적 표현들로 변형된다. Inferno는 확실히 Solzhenitsyn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몇 가지 면에서는 가장 기억할만한 부분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죄수들이 살고 있는(처해 있는) 상태이다―감옥과 노동수용소의 잔인함과 타락이 원인이 되는 끊임없는 증오, 냉소와 이기심의 상태(이다). 그것은 탐욕스러운 도둑들과 경찰밀고자 가운데 사는 삶이고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는 삶이다. 연옥은 Solzhenitsyn자신처럼 모든 이념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개성이 단호한(uncompromisingly) 정신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오는(derive) 사람들의 힘을 인식하고 숭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도달되는 단계(무대)이다. 그러나 연옥(수용소 군도의) 에서는 깨달음의 빛이 이제 방금(just) 어두움을 관통하기 시작하고 있다; 정신적 재생의 과정이 태아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죄수가 Paradiso(천국)의 문턱을 건너가면(Solzhenitsyn이 분명히 하는 것처럼—특히 Part IV에서), 대부분의 죄수들(men)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한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는 재산과 소유와 심지어 연인에 대한 집착은 죄수들의 고통만 증가시킬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제 세속적인 것에 몰입하는 것으로부터 분리된(divorced) 정신의 삶이 영원하고도 神聖(신성)한 유일한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깨달음과 함께 그는 궁극적인 지식과 궁극적인 행복을 성취하게 되었다.

[ 2020-09-23, 12: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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