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이어지는 자서전>

일본도 가을의 상징을 밤나무로 하는 데 놀란 적이 있다. 2003년 가을 북한 인권 세미나 차 도쿄에 갔다가 목격하였다. 아마도 동북아 지역의 가을 풍경은 모두 밤나무로 표징(表徵)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인 1960년대 북한에도 밤나무가 많았다. 추석을 전후하여 밤 따러 가는 것이 일이었다. 유년기 시절 놀러 가는 곳은 외가가 있는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였다. 외가가 있는 마을의 뒤 동산 뒤렁골에는 밤나무가 참 많았다. 외삼촌과 이모들과 함께 싱그러운 야생 박하 냄새를 맡으며 밤 따오던 기억을 하면 지금도 즐겁다. 착하고 순박한 외가 분들은 조카인 저를 유난히 잘 대해줬다.

비록 강낭밥밖에 없지만 내 천에 꼭 나가 물고기, 가재를 잡아 짭잘한 반찬을 차려주곤 했다. 마을 앞 내 천은 상류로서 맑은 물에 자라는 버들치, 납쭈래기, 날치, 뚝지, 꺽지, 쏘가리, 모래무치, 가재가 많았다. 그물이 없으니 큰 망치인 메로 큰 돌을 내리치면 그 밑에 숨어있던 물고기들이 어리쳐 떠오른다. 이것들을 건져내는 것이 먹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한편 물이 느슨하게 흐르는 곳에서는 맨 손으로 더듬어 수십 마리 붕어를 순식간에 잡기도 했다. 재수 엄청 좋을 때에는 메기와 뱀장어 같은 대어를 잡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뱀을 잡아 기겁하기도 했다. 실제로 남궁영이란 학급 친구는 뱀에 물려 병문안 가기도 했다. 북한 전역에서 이 지역은 내 천의 물고기와 가재를 익히지 않고 먹어 발병하는 디스토마 위험 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생태 지역이었다.

태어나 기억나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인 1962년부터이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살았던 황북도 곡산군 사현리에서이다. 마을의 대형 스피커에는 당대의 최고 가수 왕선하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도 들으니 어린 나에게도 귀에 못이 박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백두에 정기는 넘치고 우리 손으로>로 시작되는 <천리마 선구자의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어른들은 등 짐으로 거름을 논밭에 나른다. 기계는 물론 축력(畜力)도 없어 인력으로 나르는 것이다. 6·25 전쟁보다 더 무서운 파괴는 공산화(협동화)이다. 전쟁 시기에도 없었던 다수의 아사가 공산화 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공산 종주국 소련에서 태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홀로도모르 1932-1933년). 북한도 공산화로 인하여 소를 비롯한 가축이 많이 사라져 인력에 의거해야 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공산화되니 자기 밭머리 대추나무부터 베어 화목으로 쓰더라고 했다. 밭머리 나무도 내 것이 아니되어 베버리는 판에 자기 집의 가축들을 가만 놔 두었을까. 공산화는 6·25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부터 본격화되어 완성된 것은 1958년이다. 이 당시를 경험했던 장학수의 저서 <붉은 별 아래 청춘을 묻고>에 보면 가축 고기가 대량 쏟아져 값싸졌다 그 후에는 아예 없어졌다고 했다. 위에서는 정치싸움으로 쑥대밭이 되고 아래에서는 내 것이 아니어서 쑥대밭이 되는 것이다.

식량난으로 수많은 인민이 굶주려 죽거나 앓아 죽었다. 우리 아빠도 결핵성 늑막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새 장가 들어 너무 밤 작업을 하지 말라는 사자성어가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튼튼한 편의 엄마도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이빨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다 영양 부족 증상인 것이다.

사회 환경은 이렇게 궁핍했어도 다행으로 생태가 보충을 한다. 우리가 사는 곡산군 사현리 근처에 큰 저수지가 있었다. 아빠가 이 저수지에서 큰 골뱅이(우렁이)를 잡아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유일한 단백질 공급인 것이다. 냇가에도 물고기가 흔하게 보여 돌을 던져 잡기도 했다. 물고기 잡는 정신에 팔려 유치원 가는 것을 까먹기도 했다. 정성스럽게 다려 입혀 보낸 옷에 온통 흙칠 적셔 온 나를 보고 잡아온 물고기들을 던져버리며 욕하는 엄마와 마주하기가 일쑤였다.

이 지역에서 1965년 이사를 해 다시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사 온 서흥군에서는 외가 방문도 있고 하여 10년, 20년 단위로 가 볼 수 있었다. 서흥군에서 평안남도 은산군으로 이사 간 해는 1970년이다.

그로부터 10년 지난 1979년에 가보니 그 많던 밤나무들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내 천의 물고기는커녕 물 자체가 말라 있었다. 서흥읍(신막)에서 남한리를 거쳐 고성리 가려면 야산 길로 가야 한다. 범 나온다는 무서운 전설이 깃든 산길이다. 고성리에는 중학교가 없어 이 산길 넘어 남한리 중학교에 다녀야 했다. 중학생이던 외삼촌(서봉호)은 이 산 길로 오다 그만 어둠이 닥쳐 너무 무서워 하수관에 숨어 날 밝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1960년대까지만도 이런 오싹한 느낌을 받던 산길이다.

하지만 10년 지난 1970년대에는 그런 오싹함이 사라졌다. 정확히 1987년 군대 간 남동생(이인복)을 만나려 가는 겸 들렀던 그 산길은 생땅들이 드러나 보이는 황야의 산길일 뿐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정말 실감했다.

일제 때부터 <정주 밤>으로 유명한 밤 고장은 평안북도 정주이다. 1985년 정주로 시집 간 아래 여동생(이정희 한의사) 결혼식 때 가보니 마을 뒷산들에 밤나무들 자체가 사라졌다. 정주 밤이란 유구한 전설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북한에 그 많던 밤나무가 사라진 과정은 이러했다. 일제 시대와 8·15 해방 후 1954년까지는 익어 자연 낙하한 밤을 주워 먹었다. 하지만 공산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55년부터는 장대기로 밤을 쳐서 떨군 밤 송이를 강제로 까서 먹기 시작한다. 왜냐면 자연 낙하 밤을 기다리다가는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공산화로 인하여 식량난이 산열매 채취를 부추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를 가속화시킨 것은 주인 없는 산들이 되어(국가 소유) 관리자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산림 경찰 격인 산림 안전원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내 것이 아닌 바에 주민들에게 감정 사는 것은 우둔한 짓이기에 못 본 체하는 것이 상책이다. 또 먹고살겠다고 여기저기에서 덤벼드는 주민들을 다 단속할 수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자연 낙하 밤을 기다리기 전에 장대기로 밤을 털어 먹어야 임자인 것이다. 그러니 자연 낙하 밤을 먹으려는 자는 행차 뒤 나팔이 되는 꼴이다. 이렇게 장대기로 털어 먹던 밤나무들은 그런대로 1960년대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1970년 당 제5차 대회 이후부터 즉 1970년대에는 양상이 확 달라진다.

장대기로 밤을 털어먹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높은 곳은 털 수가 없다. 기는 놈 위에 뛴다고 밤나무에 올라 도끼로 가지를 찍어 내린다. 그러자 뛰는 놈 위에 난다고 밤나무 밑 둥을 톱으로 잘라 통채로 넘겨버린다. 밤뿐 아니라 잘라진 밤나무를 화목으로 쓰니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 되니 누구나 유혹인 것이다.

그 많던 밤나무는 이렇게 사라져 갔다. 아마도 5년 안에 모두 작살이 난 것 같다. 그 많던 외가의 황북도 서흥군 고성리 뒷동산 뒤렁골의 밤나무도 그 유명한 평북도 정주군의 밤나무들도 이렇게 사라진 것이다.

밤나무가 사라진 것은 식량난과 직결되어 있다. 다시 상기해보며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내 것이 안되는 공산화로 장대기 밤 털이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공산화 시작인 1954년부터이며 1960년대까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식량 배급을 제 양으로 제때에 줄 때이다. 북한 역사상 가장 잘 살았다는 시기이다. 그 전이나 그 후나 이때만큼 잘산 적은 다시는 안 왔다. 이는 필자가 직접 경험한 바이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자 밤나무가 급격히 사라진다. 이때부터 월 식량 배급 중에서 4일 분을 자르기 시작한 것과 직결된다. 이른바 전략미(전쟁미)로 자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식량 배급인데 월중 4일 분을 자르니 대체 식량을 마련해야 했다. 밤과 도토리는 대체 식량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밤 나무 하나를 놓고서 북한의 역사를 말할 수도 있다. 공산화한 후 10~15년 만에 밤나무들이 사라진다. 밤나무만 사라졌을까. 밤나무와 함께 민둥산화는 가속되었다.

1960년대 말에 외가에 가면 외삼촌들이 화목을 해오는데 나무 그루터기를 뽑아 지게에 지고 오는 것이다. 나무 그루터기는 양호한 화목으로서 지고 올 때 흐뭇해 한다. 그 나머지 화목은 잡관목을 칡넝쿨에 묶어오는 것이다. 1966년 내가 처음 인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방과 후 작업은 겨울용 화목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8살인 우리가 해오는 화목이란 어린 소나무를 잘라 끌고 오는 것이었다. 1966년도에 벌써 황해도에서는 장작으로 화목할 만한 나무가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69년 민족보위상(국방장관) 김창봉을 숙청하면서 그 죄과를 씻는다며 인민군이 후방 사업(대민사업)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후방 사업이란 자식을 군대 보낸 후방 주민들에게 화목을 해다 주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 어쩌면 먹는 것보다 더 급하다는 것이 화목이다. 인민군이 후방 사업으로 해다 준 화목을 보면 잡관목을 묶은 나무단들이었다.

이렇게 잡관목으로 화목하던 1960년대는 선생이다. 1970년대에는 잡관목도 없어 나무 입과 풀들을 긁어다 불을 때게 된다. 한편 곡 집을 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논 밭에 거름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 없어진다. 유기질 비료인 거름이 없으니 화학 비료만 남게 된다. 화학 비료만 주게 되면 토양은 급격히 산성화된다.

1979년 남포농업대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갔을 때 김일성 교시가 내려왔다. 농업 대학생들을 풀어서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라는 것이다. 토지 조사 결과 전국의 경지가 산성화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토지의 산성화는 논에서보다 밭에서 치명적이다. 김일성은 전국의 밭에 생 흙을 파서 펴라고 교시했다(흙깔이 전투). 산성화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넓은 밭들에 생흙을 실어 갈 기계 수단이 부족하다. 그러니 인력으로 생 흙을 어떻게 다 편단 말인가.

그럼에도 상부에서 하도 닦달하니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검열대가 오기 전에 이미 있던 밭의 겉흙을 모아 곳곳에 봉분을 만든다. 이미 산성화된 겉흙을 모아 놓은 것이다. 검열을 마치면 모아 놓은 봉분들을 밭에 도로 펴야 한다. 산성화 방지는커녕 쓸데없는 작업만 더 들이게 된다. 좀 빗나간 얘기이지만 이렇게 끊임없는 작업 동원으로 밥을 더 먹어야 한다. 옷과 신발도 더 닳아 없어진다. 그 대신 식량은 부족하여 더 배고파지고 옷과 신발은 부족하여 더 헐벗게 된다. 악순환 고리는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1980년대에 들어선 북한은 모든 면에서 설상가상에 이른다. 마침내 1980년 후반부터 식량 배급을 제때에 못 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아사자가 생기기 시작한다. 1987년 함경북도 라진 선봉지구로 출장 갔을 때이다. 라진에서 굶어 죽은 가정부가 있다는 현지 간부의 말을 들었다. 그때는 아사자가 몇 명이 안되어 당국에서 쉬쉬 하도록 단속했다. 인민의 나라에서 인민이 굶어 죽는다는 것이 말이 안되어 그냥 심장마비로 급사했다는 식으로 말을 퍼뜨리게 했다.

1990년대 들어서 사정은 매우 심각해진다. 식량배급을 제때에 못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주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는 대량아사로 이어져 간다. 신기하게도 한평생 인민에게 이팝에 고깃국을 준다던 김일성이 죽은 해부터이다.

김일성이 급사한 이유는 한 마디로 쪽팔려서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지독한 독재자라고 해도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자기가 평생 한 말을 잊을 수는 없다. 이팝에 고깃국을 준다고 했는데 평생 강낭밥에 된장국도 못 주게 된 쪽팔림이다. 반대자들을 다 숙청하고 언론을 완벽하게 막아 놓은 북한에서 욕하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자기 마음속에서 비판과 비웃음은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김일성 급사 전에 회의가 경제 즉 식량난에 관한 것이었다. 강냉이 배급도 못 준다니 <인민의 어버이>가 얼마나 쪽팔렸으면 심장마비가 왔겠는가.

김일성 사망에 이 비교가 맞겠는지 모르겠지만 참고적 얘기를 하게 된다. 제2차대전 시기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수용소 기간 남의 것을 빼앗아 먹어 상대를 죽게 만든 죄책감이 엄습해와 이를 못 이겨 자살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자살은 아니지만 그 역시 그 비슷한 압박을 받아 심장이 멎은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이 해가 바로 1994년으로서 3백만 대량 아사의 서곡이 된다. 300만 아사 숫자는 중앙당 비서로 있던 황장엽이 1997년 탈북하여 증언한 것이다. 중앙당에 보고된 자료에 기초한 것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