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궁정동 밀실의 유일한 생존자 드디어 입을 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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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겪은 10·26
  - 청와대의 권력투쟁
  - 金載圭의 배후(背後)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朴대통령의 마지막 나날들을 지켜 보았던 金桂元씨는 10월26일 밤에는 차중에서 인간 朴正熙의 죽음에 임종했던 사람이다. 최후의 만찬장에서 살아난 대가를 값비싸게 치렀던 金씨는 [왜 김재규의 권총이 세발째 고장나버렸는가]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리면서 10월의 총성, 그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1987년 10월 월간조선>
  
  제1부 내가 겪은 10·26
  
  무등병도 못되는 전 육군총장
  
  육군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전 대통령 비서실장 金桂元씨(64)가 군인으로선 예비역 [무등병]도 못되는 신분으로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큰집을 혼자서 쓸쓸히 지키고 있다. 10·26이후 아예 군적에서 삭제됐다는 것이다. 역사를 뒤바꿔놓은 궁정동 [대행사]에 참석했던 제3공화국 권력의 핵심멤버 네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김계원씨. 그는 그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그의 일생을 바치다시피 한 25년 동안의 군 경력을 모두 빼앗겨야 했던 것이다. 취재진이 용산경찰서 근처에 있는 그의 집을 찾은 것은 지난 9월16일 밤 10시 반.
  
  그는 밤늦은 시간에 혼자서 집을 지키다가 플래시를 들고 나와 대문을 열어주며 취재진을 맞아주었다. 취재진은 부엌 옆에 달린 식당에 가서 환갑을 넘긴 바깥주인이 끓여 준 커피를 마시면서 이튿날 새벽까지 인터뷰를 계속했다. 이 인터뷰는 이튿날 아침에도 계속됐다. 작달막한 키에 선비같은 인상을 풍기는 그는, 악몽 같은 10·26의 그날밤을 되살리며 무례하게 찾아와 무례하게 던져대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주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가 7년만에 침묵을 깨고, 그만이 간직하고 있던 운명적 사건의 숨겨진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 10·26사건의 미스터리와 그 성격을 해명하기 위해서 꼭 밝혀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 金載圭가 朴대통령 살해를 결심했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김재규가 마지막 만찬자리에서 살해를 결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후5시 조금 지나서 제가 궁정동에 도착, 미리 와있던 김재규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어요. 김재규는, 오랫만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저녁에 초대했는데, 왜 하필 이날에 갑자기 각하가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말이 진실되게 느껴졌읍니다. 저는 김재규가 그날 대통령과 만찬이 있는 줄 알고서도 정승화 장군을 이용할 목적으로 초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8월 월간조선 기자와 만난 정승화(鄭昇和)씨도 {그날밤 김재규가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나를 거사에 이용할 목적으로 초대한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金桂元씨는 {미리 거사를 계획했다면 왜 권총을 멀리 떨어진 자기 사무실에 두었다가 만찬도중에 가져 왔겠읍니까. 만찬장 2층에도 방이 있는데…}라고 했다.
  
  박대통령의 [최후의 만찬] 차지철
  
  1979년 10월26일 저녁 6시5분쯤 朴대통령과 차지철(車智澈)경호실장은 궁정동의 중앙정보부장 공관 옆에 있는 비밀 식당 나동(棟)에 도착,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金桂元대통령 비서실장, 金載圭정보부장과 합류했다. 만찬장의 자리배열은 직사각형 식탁의 안쪽에 朴대통령이 혼자 앉고, 그 맞은편엔 金실장, 金부장이 앉았다. 車실장은 金부장의 왼쪽 측면에 떨어져 앉았다.
  
  {그방에 사연이 있읍니다. 김재규가 그 집을 다 지어놓고 나한테 [각하 모실 텐데 한번 봐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먼저 가봤어요. 어떻게 돼 있는가 하면 식탁 밑이 파여 있어서 발을 뻗기에 편하게 돼 있읍니다. 또 발 놓는 자리에 스프링이 달린 쿳션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움푹 파인 곳에 사람이 쏙 들어가면 스프링이 눌려서 사람 몸 전체가 쑥 들어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그후 제일 처음에 내가 각하를 모시고 파티를 할 때, 김재규가 설명을 하드만. [유사시에는 여기가 대피할 장소도 됩니다]하고, 그랬더니 박대통령이 [이렇게?]하고 몸을 구부리더니 상 밑으로 들어가 보시데요. 아아 참, 그런데 그만 일이 그렇게 됐어요. 또 그날 사건이 있던 날도 난 각하께서 거기에 들어가신 걸로 알았어요}
  
  - 그날 술자리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어색했읍니까?
  
  {그렇지 않았어요. 김부장이 언제나 그러하듯 시바스 리갈을 주전자에 따르고 직접 잔에 얼음을 타서 대통령과 저한테(필자 주…김 부장과 차 실장은 이날 술을 마시지 않았다) 건네주었어요. 각하께선, [역시 김 부장이 해야 술맛이 있어]라고 말씀하시니, 김 부장도, [제가 바텐더 노릇은 잘 하지요]라고 받았어요} 金桂元씨는 궁정동 현장검증 사진에서 술상 위에 시바스 리갈 병이 놓인 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했다. 술병은 방바닥에 두고 주전자에 담긴 술을 따라 마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술을 마셔 본 사람은 그 현장 사진이 잘못됐다는 걸 다 압니다. 박 대통령은 꼭 주전자에 술을 담아서 술을 마셨읍니다. 요전에도 누가 그 사진을 보고 나한테, [주전자로 술 따라 마시는 술상에 주전자가 없고 술병이 올라와 있는가]그럽디다. 현장검증때 내가 수사관들한테 이 사실을 지적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무시해요. 나하고 김재규 사이의 방바닥에 술병이 없이 가까이 앉아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야지 [왜 당신이 김재규 권총을 못 빼앗았느냐]고 추궁할 수 있겠지요} 金桂元씨는 {화제가 부마사태, 김영삼씨 문제, YH사건 등으로 바꿔지면서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沈·申양 참석으로 대행사 시작되다
  
  그날의 [대행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저녁 6시50분쯤 심수봉양과 신재순양이 술자리에 들어갔다. 저녁 7시 뉴스 시간에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이 방영됐다. 박대통령은 자신의 음성을 그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다. 박대통령이 뉴스를 보고 있는 사이 김재규는 그 방을 들락거렸다. 후에 이때 김재규가 방을 들락거리며 부하들과 결행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계원씨는 이때까지도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 김재규가 그날 밤 그 방에서 자주 들락거렸는데 평소에도 그랬읍니까?
  
  {그럼요. 아 자기 집인데! 가령 내가 여기에 대통령을 모신다면 내가 세번만 들락거리겠어요. 대통령이 계신데 [야, 물 가져와라]하고 소리를 지르겠어요. 자기가 직접 가서 가지고 와야지요}
  
  - 박 대통령은 그 집엘 자주 갔읍니까?
  
  {그 집을 그 몇달 전에 새로 지었읍니다. 그 집에 가신 것이 한 서너 번 됐나요? 내가 모시고 갔을 땐 늘 그 멤버들(박대통령, 김계원, 김재규, 차지철)이었읍니다}
  
  - 그날 술자리는 예정이 돼 있던 건가요?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4시반쯤 알았어요. 각하가 생각이 나시면 경호실장한테 얘기를 하죠. 누구 누구 참석하게 하라고 각하가 꼭 결정합니다}
  
  - 그날 정승화장군은 어떻게 궁정동에 오게 됐겠읍니까?
  
  {난 정승화 장군 말이 맞다고 봐요. 김재규가 미리 약속했다가 청와대에서 술자리를 준비시키니까 김정섭씨에게 대신 접대를 시켰을 겁니다. 사실 그때 나도 저녁때까지 내 사사로운 약속을 못했어요. 언제 대통령께서 부르실지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김재규가 [거사]를 사전에 준비했다고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날 밤 삽교천에 관한 뉴스는 7시20분에 끝났다. 대통령은 자기 얘기가 끝나자 TV를 끄라고 했다. 이때 많은 국민들은 TV에서 박대통령이 연설하는 걸 보면서, 대통령이 갑자기 아주 늙은 것처럼 보였고, 그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착 가라앉아 있어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김계원 실장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했다는 것이었다.
  
  이 따위 버러지같은 자식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자. 뉴스가 끝나고 심수봉 양이 대기실로 가서 기타를 들고 들어와서, 그 후에 더 유명해진 [그때 그 사람]과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르고 차지철을 지명했다. 차지철은 [도라지]와 [나그네 설움]을 불렀다. 그가 이생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였다. 차지철에 이어 신양도 심양의 기타 반주에 맞춰 [사랑해 당신을]불렀다.
  
  - 총격사건이 있기 전에 박 대통령과 술자리에 참석했던 어떤 아가씨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대통령께선 그 자리에 앉은 이후 일을 당할 때까지 한번도 자리를 뜬 적이 없읍니다. 잘못 알려진 겁니다}
  
  신양의 노래가 끝나고 7시35분쯤 주방의 남효주가 이 자리에 들어와 김재규에서 귀엣말로 {과장님이 뵙자고 합니다}했다. 이말을 듣고 김재규가 밖에 나갔다 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때 김재규가 옆방으로 가서 자신의 부하인 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로부터 {준비가 끝났읍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재규가 술자리로 다시 돌아오자 정치얘기가 흘러나왔다. 김계원씨는 그날 총격 직전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오갔다고 확인했다.
  
  박정희 : 미국의 브라운 장관이 오기 전에 김영삼이를 구속 기소하라고 했는데 유혁인이가 말려서 취소했더니 역시 좋지 않아. 국방장관 회의고 뭐고 볼 것 없이 법대로 하는데 뭐가 잘못이란 말이야. 미국놈은 범법해도 처벌 안하나.
  
  김재규 : 김영삼은 사법조치는 아니지만 이미 국회에서 제명된 걸로 처벌했다고 국민들이 봅니다. 같은 것으로 두 번 처벌하는 인상을 줍니다.
  
  박정희 : 중앙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당신네는 (신민당 의원들의)비행조사서만 움켜쥐고 있으면 무엇 하나. 딱딱 입건해야지.
  
  김재규 : 알겠읍니다. 정치는 대국적으로 상대방에게 구실을 주고 국회에 나오라고 해야지 그러니 않고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차지철 : 신민당놈들 그만두고 싶은 놈은 한 놈도 없읍니다. 언론을 타고 반정부적인 놈들의 선동에서 그러는 거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 자식들, 신민당이고 뭐고 나오면 전차로 싹 깔아뭉개겠어요.
  
  김재규 : (오른쪽에 있던 김계원을 오른손으로 툭 치면서)각하를 똑바로 모시십시오. (차지철을 보며)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읍니까?(탕! 권총 한 발 발사)
  
  차지철 : 김부장, 왜 이래! 왜 이래! 박정희 무슨 짓들이야!
  
  김재규 : (박대통령을 향해서 또 한 발 발사)
  
  이 대화 직전에 김재규가 [거사]를 함에 있어서 박대통령까지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할 결심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김계원씨는 지금, 김재규가 당일 순간적으로 일어난 발작적 충동으로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박대통령과 김재규는 고향이 같아 특히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넷이 있다가도 고향 얘기가 나오면 두 분이 얘기가 척척 맞거든. 그러면 차지철이하고 나하곤 아주 할 말이 없어지고 그랬어요}
  
  - 누가 김재규 칭찬을 하면 박대통령이 좋아했다지요.
  
  {예, 씩 웃으셨지요. 아주 온정어린 눈으로 김재규를 봤어요. 그런데 김재규가 어떻게 대통령을 쏠 수 있었느냐, 이게 나한테도 사실 의문입니다}
  
  사신(死神)의 그림자 따라 다녀
  
  여기서 잠시 26일 오전 청와대 안 헬리포트로 시간과 장소를 되돌린다. 박정희 대통령은 헬리포트로 가는 차중에서 동승한 김계원실장에게 {노모님의 병세가 어떠냐}고 물었다. 김실장이 {병세가 좋지 않다}니까 대통령은 {내일과 모레는 찾지 않을 테니 고향(풍기)에 내려가서 노모님을 모시라}고 했다. 김실장은 박대통령의 헬리콥터에 같이 타고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장으로 갔다. 그런데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삽교천으로 내려가는 이 헬리콥터에 동승할 것을 요청했다가, 보기좋게 딱지를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마사태로 궁지에 몰려 권력암투에서 밀려나는 게 아닌가 하고 조바심하던 김재규를 더욱 화나게 했다는 것이다. 이 헬기에는 대통령, 김계원 실장, 차지철 등이 함께 탔다.
  
  김계원씨가 말한다.
  {헬기에서 내가 주로 말을 많이 했지요. 대만에 8년 있다 보니까 국내사정을 잘 몰랐거든요. 모든 게 변화된 게 신기로왔으니까요. 그때 지붕개량 등 많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헬기가 충청도 오지쪽에 가니까 초가집이 그냥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내가 [각하, 초가집 다 없어졌다더니 여기 초가집 그냥 많이 남아 있읍니다]그랬더니, 대통령이 [그래, 큰길가에만 우선 했지]그래요. 이런 농하고 갔지요} 오전 11시 헬기는 삽교천 방조제준공식 현장에 도착했고 곧이어 준공식이 거행됐다.
  
  이 준공식에서 한 대통령의 치사가 그가 한 마지막 연설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신(死神)의 그림자가 박대통령을 따라다니는 듯한 조짐이 엿보였다. 박대통령이 방조제 위의 포장도로를 시주한 뒤 삽교호 기념탑 제막식에 참석해서 제막용 줄을 잡아당겼는데, 이때 기념탑에 씌운 커튼이 활짝 열리지 않고 반만 걷힌 것이다.
  
  제막식을 마친 박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이륙하기 직전 수행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그를 그림자처럼 따랐고 말년에는 술상대가 돼 주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박대통령은 근처에 준공된 한 통신시설에 내려 준공 테이프를 끊고, 다시 헬기를 타고 도고온천 관광호텔로 가서 내릴때 두번째 사고가 났다. 이 호텔에서 사육하던 노루가 헬기 소리에 놀라 내뛰다가 무엇에 부딪혀 즉사한 것이다. 그런데 김계원씨는 그때 이 사실을 몰랐고 {대통령께도 보고하지 않아서 아마 대통령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날 박대통령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농촌에만 오면 신바람이 났다. 대통령 일행을 태운 헬기는 모두 3대였다. 1번기에는 대통령과 김실장, 차지철 등이 탔고, 2번기에는 청와대 참모들이 그리고 3번기에는 경호원들이 탔다. 대통령 일행이 도고 온천을 떠날 때, 1, 2번기가 이륙을 한 뒤에도 경호원들이 탄 3번기에 기체고장이 나서 잠시 이륙이 지연됐다. 이것이 세번째 사고로 경호원들이 탄 헬기에 사고가 난 게 어쩐지 심상치 않았던 것만 같다. 박대통령은 도고온천을 이륙해서 현충사를 눈여겨 돌아봤다.
  
  그는 생전에 충무공을 가장 존경했으며 그의 사당인 현충사를 꾸미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박대통령은 서울 상공에 와서도 그대로 내리지 않고 한 바퀴 돌았다. 그는 그때 6·25의 폐허 위에 솟은 서울 시가를 내려다 보면서,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흐뭇해 했을 것이다. 이때문에 2번기가 먼저 도착해서 참모들이 1번기에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하기까지 했다. 집무실로 돌아온 박대통령은 임방현 대변인에게 연두기자회견 준비를 채근하고, 사신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궁정동으로 미끄러지듯 빨려들어갔다.
  
  정보부장 교체설은 사실무근
  
  다시 얘기를 궁정동 현장으로 돌린다.
  
  - 김재규가 총을 쏠만한 무슨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읍니까?
  
  {정보부장이라고 하는 자리가 국가에서 대통령에게 가장 신임받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린데, 업무에 임해서 제3자가 모욕적으로 나온다면 그런 충동을 받을 수도 있겠죠}
  
  - 일설에는 박 대통령이 정보부장을 바꾸기로 마음을 굳히고 김재규 위로 파티를 한 것이다. 그것을 미리 알고 김재규가 그런 일을 한 게 아닌가, 하기도 했읍니다.
  
  {그거는 아닐 겁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말을 하신 적도 없었고, 오히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말입니다. 차지철에게 정보부장 자리를 주고, 김재규에게 경호실장 자리를 주는 게 어떤가 하고, 한번 건의를 드려봐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물론 말을 꺼냈던 건 아니고. 왜냐하면 차지철이 정치를 잘하는 줄 알고 계시고, 또 차지철이 저도 제가 잘 하는 줄 알고. 또 김재규는 솔직히 각하에 대한 충성심이 자기가 제일인 줄 알고…. 더군다나 각하께서 둘다 사랑하고 신임했으니까요}
  
  - 상당히 오래 전부터 박 대통령이 차지철의 정보를 더 신임했다지요?
  
  {그런 점도 있었지요. 내가 정보부장 할 때도 각하께서 나한테 다 맡기는 것 같으면서도 꼭 어떠한 것은 다른 채널을 통해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내가 정보부장 자리에 있을 때 제일 골치 아픈 사람이 야당 지도자였던 A씨였어요. 그때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게 야당공작이어서 내가 열심히 A에게 자금도 대줘가며 일을 했는데, 대통령께선 당시 재벌 국회의원이던 B씨를 통해서 또 일을 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A씨는 나하고 B씨, 이렇게 두 군데서 돈을 받고 있었어요}
  
  그날 저녁 7시40분쯤 김재규가 쏜 첫 총탄은 차지철의 오른쪽 팔목을 꿰뚫었다. 김계원씨는 {이 버러지 같은 놈아!}(김재규의 고함), {김부장 왜 이래! 왜 이래!}(차지철의 목소리), {이거 무슨 짓들이야!}(박대통령의 고함) 이 세마디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고 말한다. 이때 차지철은 오른쪽 팔목 관통상을 입고 실내 화장실로 달아났다. 김재규는 총부리를 맞은 편에 앉은 박 대통령에게 돌려 가슴을 쐈다. 김계원씨는 {차지철이 총을 맞고 화장실로 뛰어들어 갈 때 박대통령이 총을 맞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재규가 이때 일어서면서 박 대통령을 쏜 걸로 알려져 있는데, 김계원씨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게 의문입니다. 나는 앉아서 쏜 걸로 압니다. 그런데 현장검증할 때는 서서 쐈다고들 그래요. 나는 김재규가 앉아서 [실장님, 각하를 똑바로 모시십시오]하고 그냥 쏜 걸로 아는데, 서서 쐈다고들 한단 말이오. 그래서 수사관들이 줄자로 재보고 하더니 [이건 밑에서 위로 쏜거다]라고 하더군요} 잠시, 박대통령이 제일발을 맞던 순간을 심양의 입을 통해 들어본다. 심양은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쏘는 걸 보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기타를 멈추고 일어섰읍니다. 대통령께서는 정좌를 하고 눈을 감고 계셨읍니다. 그러다가 각하가 슬며시 옆으로 쓰러졌읍니다. 그래서 총을 맞은 것을 알았읍니다}라고 증언했었다.
  
  권총 고장은 내가 탁 쳤기 때문
  
  한편 방안에서는 총소리를 신호로, 미리 짜여진 계획에 따라 방밖 대기실에 있던 박선호의 총구에서도 불을 뿜었다. 경호원 두 사람을 쓰러뜨린 것이다. 이때 지하실에 있던 전공은 총소리를 전기가 합선하면서 나는 소리로 착각하고 황급하게 전원을 내려버렸다. 순식간에 암흑세상이 됐다. 이렇게 밀실 안에서 김재규가 차지철과 박대통령을 쏘고, 대기실에서 박선호가 두 경호원을 쏜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순간을 김계원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방안이 어두워서 김재규가 [잘못해서] 박대통령을 쏜 줄 알았어요. 그래서 김재규의 권총을 손으로 탁 치면서 {불을 켜라}고 소리치고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복도에 가서 스위치를 찾느라고 더듬거리며,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고 [경호원, 경호원]하고 불렀어요} 이때 김재규는 화장실로 달아난 차지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었다.
  
  이 순간에 대해 김계원씨는 할 말이 있다. 후일, 김계원씨가,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 대통령이 저격받는 걸 보고도, 또 그 저격자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도, [왜 권총을 손을 쳐서 떨어뜨리거나 빼앗지 않았느냐]고 해서 개운찮은 눈초리로 부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나보고 총을 안 빼앗았다고 하는데 거 모르는 소리요. 총쏘는 사람 총 뺏을 사이 어디 있읍니까? 내가 얘기해도 아무도 안 믿는 사실이 있읍니다. 재판 때 내가 내 변호사하고 얘기했읍니다. 채택이 안됐지만…. 그런데 나도 의문입니다.
  
  김재규 총이 두발 나가고 불발이 아니고 고장이 났읍니다. 왜 났느냐. 술 취한 내 기억으로서는, 그 총이 서부활극에 나오는 돌아가는 권총이 아닙니다. 기계작동 권총입니다. 그건 아주 쏘기가 쉽습니다. 김재규도 권총 잘 쏩니다. 나도 권총 잘 쏩니다. 내가 육대 있을 땐 김재규랑 누가 잘 쏘는가 하고 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데 왜 총이 두 발만 나가고 걸렸느냐. 어디가 걸렸냐 하면 총에 탄피가 걸렸어요. 불발이면 불발된 탄약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불발된 탄약이란 방아쇠 뭉치를 딱 쳤는데도 안 나간 걸 말합니다. 그런데 난 권총에 탄피가 끼였던 걸로 압니다.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탄피가 잘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리벌버를 갖고 다니죠}
  
  ―오래 안 써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정보부장이 가지고 있는 권총이라면 오래 안 써도 손질은 잘해 놨을 겁니다. …내 생각엔 김재규가 쐈을 때 손으로 막은 것 같습니다. 그 총은 탄피가 튀어나갈 때 옆을 탁 막으면 걸리게 됩니다}
출처 : 월조
[ 2003-07-11, 11: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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