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厚洛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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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厚洛 전 정보부장은 '朴대통령이 金大中씨를 납치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말해왔다. 그는 '내가 朴대통령에게 납치 사실을 알린 것은 우리 배가 金大中씨를 데리고 오사카항을 떠난 이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1980년 봄에 李厚洛씨가 울산 同鄕 친구이자 김대중씨와도 친했던 최영근씨(국회의원 역임)를 통해서 金씨에게 '당신 납치는 朴대통령이 지시하여 이뤄진 것이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는 說도 있다. 기자가 1985년에 崔씨를 만나 물었더니 그는 자신이 그런 말을 들었다고 확인해주었다. 그의 증언을 소개한다.
  '나는 李厚洛 金大中씨 두 사람과 각각 별도로 오랜 친교가 있다. 최고회의 공보실장 시절의 李厚洛씨에게 金씨를 처음 소개해준 것도 나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10·26뒤 나는 李厚洛씨를 만났다. 지금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지 앉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물어 보았다. 그의 해명은 대강 이랬다.
  <金大中씨가 해외에서 朴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개시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사석에서 대통령은 불쾌한 어조로 金씨를 없애라는 뜻의 욕설을 했다. 나는 농담으로 넘겨버렸다. 그 며칠 뒤 朴대통령은 청와대로 날 부르더니 정색을 하고 이 문제를 金鍾泌씨와도 이야기한 것이라며 엄명을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金씨를 죽였을 경우, 그 책임이 언젠가는 나한테 올 것이라는 걸 모를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지 않는가. 결국 나는 납치를 해서 한국에 그를 데려다 놓는 선으로 대통령의 명령을 소화하기로 했다. 그래서 애당초부터 납치였지 제거 지시가 아니었다. 金씨가 말했듯 배 위에서 바다로 던져지기 직전에 비행기가 와서 생명을 건지게 됐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비행기는 가지 않았다.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럴 기회는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얼마든지 있었다. 그를 붙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며칠이나 되지 않았는가. 오히려 나는 金씨가 부산 근교에 상륙했을 때 의사를 보내 건강을 보살피게 했었다.
  이 사건 뒤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넌, 金大中이한테 가 붙어!'란 힐난도 들었다.>
  
  나는 李厚洛씨의 이 말을 80년 봄에 金大中씨에게 전해주었다. 金씨는 李厚洛씨가 金씨의 목숨을 살렸다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李厚洛씨는 자신의 해명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므로 증거는 없다고 봐야겠다. 다만 수 십년간 李씨와 사귀어 온 나로서는 그가 시키지도 않은 납치를 스스로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너무나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朴대통령은 李厚洛씨의 이런 변명을 예상했음인지 [자신의 입장]을 기록해 두었다. 그것은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의 기사다. 그는 1974년12월7일 2백여 개 신문에 동시에 실리고 있는 그의 칼럼에 [내가 확인한 金大中 납치사건]을 썼다. 이 기사는 당시의 상황으로선 [이례적으로] 국내 언론에도 일제히 보도 됐다.
  <(前略)나는 드디어 朴대통령에게 金씨의 납치사건에 관해 말했다. 朴대통령은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인상에 냉철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특성을 잃고 감정이 폭발하여 내 질문에 답변했다. 그는 말하기를 이전에는 그 자신이 이 논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고 그래서 金大中씨 납치사건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정중하게 '나는 하나님께 맹세코 내가 이 추악한 사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은 李厚洛씨에게 이 납치사건의 책임을 물어 해임했다고 말했다>
  
  朴대통령 측근들의 증언들을 종합하면 압도적으로 李厚洛 정보부장이 독단적으로 金大中 납치를 지시한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어 있다. 李厚洛씨가 최영근씨한테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시점은 金大中씨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보였던 1980년 봄이었다. 살 길을 찾기 위해서 죽은 朴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동시에 당시 金大中씨의 경쟁자이던 金鍾泌씨도 물고 들어갈려고 했을 수도 있다.
  
  金씨를 살려서 데려오면 국제문제가 생길 것이 뻔한데 왜 李厚洛 부장이 그런 바보짓을 스스로 하였겠느냐 하는 주장이 꼭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정보부였다면 한국의 反共 단체가 김대중씨를 납치해온 것처럼 위장하고 검찰과 경찰은 수사를 해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영구미제 사건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던 정보부의 음모를 뒤집어버린 것은 일본 경찰이었다. 그들은 납치에 가담했던 駐日 한국대사관의 金東雲 1등서기관 지문을 현장에서 채취하는 데 성공하여 金서기관을 소환하려 했던 것이다. 金서기관이 소환을 피해 먼저 귀국하면서 정보부의 소행임이 입증되었다(물론 한일 양국 사이에선 金東雲 서기관이 상부 지시 없이 가담한 것으로 하여 사건을 덮었다).
  
  朴대통령이 金大中씨가 서울로 돌아온 직후 정보부 李龍澤 국장에게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을 보면 이 사건을 괴한들이 한 것으로 조작하여 덮어두려는 뜻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정보부가 진상조사를 하면 결국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李厚洛 부장이 金大中씨의 해외 언동에 대한 보고를 대통령에게 자주 올리니까 대통령이 신경질을 냈고, 이를 납치 지시로 해석하기고 한 李厚洛 부장이 '대통령의 뜻을 한 발 앞서 시행한다'는 소신에 따라 金大中씨를 납치했다가 자신의 신세를 망친 경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 2005-03-28, 17: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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