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日成의 마적단 심리 연구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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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본에서 발간된 '아시아 冷戰史'(中公新書)는 일본 法政大 법학부 교수 시모도마이 노부오(下斗未伸夫)씨가 쓴 책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개설서인데 최신 정보와 미공개 문헌을 토대로 아시아 냉전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스탈린은 1948년에 북한을 괴뢰국가로 내세우기 위해 헌법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이해 4월24일 모스크바 교외 별장에서 몰로토프, 주다노프 등 당간부들과 함께 북한헌법을 직접 검토하여 완성시켰다. 일부는 스탈린이 써넣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북한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헌법은 남한을 괴뢰국가 북한의 해방되지 않은 영토로 규정하였다. 國名이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소련측에서 만들어둔 러시아語 이름을 直譯한 것이었다. 남북한 노동당을 통일하기로 한 것도 소련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스탈린의 행동은,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인 측근들과 함께 워싱턴에 앉아서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어준 것과 비슷하다.
  
  이 책에서 현대 러시아 역사가인 안드레이 라니코프는 '북한은 소련 제25軍이 만든 괴뢰국가이다'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북한정권을 꾸밀 때 소련이 한 역할은 東歐 공산국가를 만들 때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헌법제정, 군대건설, 지도자의 선택까지 소련이 맡았기 때문이다.
  
  1940년 이후 만주에서 소련으로 피신해 와서 소련군 장교로 근무하던 金日成을 괴뢰국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한 것도 스탈린이었다. 金은 소련의 88여단에 편입된 후 만주나 조선에서 抗日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金日成 본인도 일본의 패전 이후 하바로프스크 교외에 머물면서 소련군 장교로 출세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고 그와 친교가 있었던 소련군 장교 유비첸코는 회상하고 있다. 이때 金日成은 아들 金正日에게 '유라'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이런 金日成이기 때문에 李承晩 대통령은 그를 스탈린의 꼭두각시로 규정하고 사대주의자로 몰았다. 金日成은 중국공산당 소속으로 抗日 빨치산 운동을 한 것이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적은 없다. 그는 1940년 이후 1945년8월까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군의 장교로서 오히려 親日분자였던 셈이다. 소련군이 8월에 만주, 조선으로 진격할 때도 그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소련군 장교로서 출세하기로 결심했던 것도 조선독립에 대해서 한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金日成이 소련군의 꼭두각시로 선택되어 북한에 들어왔을 때 그는 조선인의 애환을 모르는, 조선인의 魂을 지니지 못한 일종의 외국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사대주의자의 본성을 발휘하여 스탈린과 毛澤東의 지원에 힘입어 동족을 치기 위한 외세의지형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는 또 조선땅을 점령하고 분탕질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마적단의 정신상태를 아들에게 유전시켰다. 이것이 북한의 비극이었다.
  
  이런 그를 한국의 독립에 기여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자가 광복 60주년 8.15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나서니 이 행사는 反대한민국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2005-04-25, 10: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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