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신체장애자의 실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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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身體장애자의 實態
  
  早期치료와 교육으로 자립능력을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장애자들이 당국의 무관심과 사회의 외면 속에 버려져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1981년 5월 신동아>
  
   내동댕이쳐진 장애아들
  
  장애자는 일반적으로 「정신적 신체적 결함이 정상인으로서 일과를 수행해나가는데 뚜렷한 장해가 되어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정박자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기타 지체부자유자 등등. 경제개발협회 표본조사로는 이들이 우리나라에 1백 8만 6천8백명쯤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보다 50~100%나 더 높게 잡고 있다.
  
  심신장애아의 탄생이 부모에게 안겨주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청천벽력이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였죠. 자식과 제 목숨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습니다」(뇌성마비 어린이의 어머니 차모씨)
  
  「의사의 선고를 듣고 나는 미친 듯 병원문을 뛰쳐나왔습니다.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보니 등에 업혀 있어야 할 아이가 없었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 아이를 안고 나왔습니다」(뇌성마비 어린이의 어머니 李모씨)
  
  처음에는 대개 경악 충격 슬픔 분노 저주 낙망으로 받아들여지며 그 뒤에 오는 것은 보통 수치감이며 연민의 정이다. 수치감과 저주와 낙망을 못이길 대 부모들은 종종 아이를 버린다. 연민의 정을 「병신자식」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부모는 물론 더 많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도 할 말은 있다. 자식을 「인간」으로 만들 방법도 돈도 없고 병원이나 재활원에 보낼 돈도 더더구나 없다. 집에 두면 온 가족이 희생된다.
  
  아이 때문에 처녀는 시집가기가 어렵고 총각은 장가가기가 어렵다. 밥벌이 가야할 어머니는 아이를 동물처럼 묶어두고 도는 가축처럼 바깥에서 자물쇠를 채워 가둬두고 가야 한다. 고부싸움,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동생은 「병신이 무슨 형이야!」하고 대든다. 가정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돈 있는 사람은 장애자보호시설이 잘 돼 있는 외국으로 이민갈 생각까지 한다. 고아라야만 받아주는 보호시설로 보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가 장애기아를 만들고 있다고 항변한다.
  
  부산시청 부녀아동과. 이 사무실 안엔 요람이 있어 보통 한 두명은 누워 있다. 모두가 파출소에서 발견해 수용의뢰한 기아들. 개중엔 심신장애아들이 많다. 지난해 부산시내에서 발견된 기아 6백 24명 가운데 약 35%(2백 11명)가 장애아들이었다.
  
  이들 기아들을 미지의 운명으로 인도하는 사람은 고용원 李건재씨(58). 부산 임시수도시절인 지난 51년부터 기아수송(?)업무를 맡고 있다. 그의 품을 거친 기아들은 3만에 육박한다. 이력이 난 솜씨로 옷을 갈아 입히고 기저귀를 채운다. 보리차와 우유를 먹인 뒤 한손에 하나씩, 여기에다가 두서너명은 걸려서 주렁주렁 데려갈 때도 있다. 동래구(東萊區) 노포동(老圃洞)에 있는 기아임시보호소에 도착하면 바지가 오줌으로 흠빡 젖어 있기가 일쑤.
  
  「그래서 사변때가 인심이 더 후했다」고 말하는 李씨다. 지금처럼 비정한 방식으로 버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아기가 태어난 날짜와 미안하다는 글을 써넣은 쪽지 한 장쯤은 예쁜 포대기에 끼워 넣은 게 보통이었다. 장애아도 그때가 훨씬 적었다. 요즘은 버리는 게 아니라 내동댕이친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산부인과 병원침대, 한겨울의 역대합실, 숲속, 모래톱, 산꼭대기, 비내리는 날, 눈오는 날 등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숲속에 버려진 아기가 모기떼의 집중공격을 받아 발견된 직후 심진 적도 있다. 쪽지 대신 아기의 뽀얀 팔뚝에 생일이나 이름을 휘갈겨버리면 그래도 예절을 갖춘 격이다. 李노인은 아기들을 기아보호소에 넘기고 돌아설 때 늘 가슴이 찡해진다. 그새 정이 든 것이다. 李노인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 불고 하는 정박아를 떼놓고 나오면서 그는 중얼거린다. 「사람은 모두 제 살 길을 타고 난다」
  
  장애기아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은 각시도의 기아임시보호소. 잘되면 국내나 해외입양된다. 버린 부모가 되찾아가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두 달 뒤 다른 심신장애아 시설로 옮겨진다. 장애아가 입양되는 예는 거의 없다. 토실토실 건강하며 예쁜 남자아기를 選好하는 양부모들이다. 일단 데려갔다가도 장애아로 밝혀지면 무슨 상품처럼 바꿔달라고 떼를 쓸 정도다. 간혹 외국에서 장애아를 받겠다는 양부모가 나타나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기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장애아들중 일부는 기아보호소에서 이름을 부여받는다. 직원들이 작명해주는 이름들이다. 김지미 정윤희 윤정희 문희 신성일…… 이런 배우들 이름은 동이 난지 오래다. 제과회사가 신문광고란에 발표한 추첨자명단이나 전화번호부 명단이 좋은 작명교과서다.
  
   사육되는 정박아들
  
  釜山市 海雲臺區 佑洞의 어느 정박아보호시설. 82명이 수용돼 있는데 지능지수가 25~70사이다. 지능지수 75~51은 교육가능급, 50~26은 훈련가능급, 25이하는 완전보호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분류하고 있다. 곧 대부분은 교육과 훈련으로 재활이나 사회복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건 어디까지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佑洞의 이 정박아시설엔 한평 남진한 방 한칸에 10여명씩 수용돼 있어 냄새가 진동한다. 지난 겨울의 흑한 속에서도 온기를 찾기가 힘들었다. 이들이 부숴버리는 유리창은 갈아끼우가 못해 판자로 막아놓았다. 아이들은 뙤약볕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휑하니 하늘만 쳐다본다. 추워도 더워도 아파도 배고파도 의사표시가 잘 안된다. 그들의 코 닿는 곳에 현란하고 풍성한 해운대 유락지구가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기엔 침묵만 있다. 교육이나 재활은 고사하고 가축처럼 사육되고 있다는 것이 좀 잔인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것이 시설운영자의 책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1인당 하루 쌀 4백32g, 정맥 1백32g, 부식비 2백65원, 월 6백원의 연료비를 정부가 지급하고는 있지만 이같은 생계비로 장애아들에게 가장 긴요한 충분한 영양공급이 될 리가 없다. 반찬은 콩나물이나 시래기국, 단무지, 콩볶음이 고작이다. 그래도 식사시간이 정박아들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색하지만 밝은 웃음, 난해한 대화라도 있는 시간이다.
  
  전국 50개 심신장애아 수용시설엔 4천2백17명이 보호받고 있다 지체부자유아가 1천5잭62명으로 으뜸이고 정박아가 1천5백30명으로 그 다음이다. 세 번째는 농아 6백61명, 맹아 4백64명으로 되어 있다.
  
  장애자들 중 가장 극진한 보호와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정신이 성하지 못한 정박자들이다. 한국에선 이들이 가장 심하게 따돌림 받고 있다. 재활과 교육이 가장 어렵다는 점과 투자에 대한 효율이 적다는 점들이 이들을 장애아 중에서도 밑바닥을 맴돌게 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는 가능성이 높은 장애아들부터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76년의 경제기획원 통계에 따르면 6~14세 사이 정박아동수는 18만3천9백여명. 이들 중 약 93%는 교육을 통한 사회복귀 및 재활이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전국 14곳의 정박아특수학교에 재학중인 아동수(2천2백31명)는 교육가능 정박자의 1%에도 못미친다. 나머지 99%는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가정이나 수용시설에 방치돼 있다는 얘기다.
  
  돈이 있어도 정박아를 공립학교에 입학시키려면 수십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이처럼 정박아재활에 대한 인색한 투자는 이 사회속에 폭발물을 방치하는 결과를 빚어 끝내는 그 보복이 이 사회로 되돌아오게끔 만든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약체화는 물론이고 범죄의 多發이란 앙갚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본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소년원에 수감된 전체비행아동중 약 60%가 정박아 또는 정박아와 정상아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는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온정의 두가지 방식
  
  釜山市 釜山鎭區 草邑洞 信愛院에는 지체불구아와 정박아 72명이 수용돼 있다.
  이들을 매일 찾아와 두서너 시간씩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 있다. 인접한 美아야리아부대 권투코치 「노먼 와이스」씨(53). 유태계미국인이다. 그는 오전에 와선 방방을 돌아다닌다. 목말라 태워주고 소아마비어린이와 권투흉내를 내기도 하고 업어주고 안아주고 천진난만하게 어울린다. 어린이들도 그들 친구처럼 대한다. 사귄지 8년이나 되니 차라리 그들의 아버지다.「와이스」씨는 눈빛에는 동정이나 자선하는 사람의 의젓함이나 우월감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만나서 기쁜 그런 사이,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와이스」씨의 형제도 기아였다. 동생 「멜빈 와이스」씨는 미해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富平전투에서 전사했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형에게 보낸 편지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동생이 한국고아들을 꼭 껴안고 있는 사진. 그 뒤에다가 동생은 「이들의 얼굴이 나와 다른 점이 있나요?」라고 썼다. 「와이스」씨는 동생의 전사소식을 접하고는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어린이의 사진을 다시 꺼내봤다. 그는 해운하사관으로 복무중이었는데 65년부터 휴가만 얻으면 신애원으로 달려왔다. 두 불구고아에게 달마다 15달라씩 보내주었다.
  
  제대를 하자 독신인 그는 지난 74년 9월 아예 신애원 고아들과 같이 살기로 마음먹고 부산에 왔다. 연금과 권투코치료 및 영어회화강사료 등 돈이 생기는대로 신애원 장애아들에게 붓기 시작했다. 신애원에선 그 돈으로 78년엔 마당에 작은 수영풀장을 만들었다. 해수욕이 소원이던 불구아이들이 그들만의 바다를 갖게 된 것이다. 여름만 되면 앉은뱅이 곱추 사지마비어린이 할 것 없이 첨벙첨벙 뛰어들어 바다에의 향수를 달래고 있다. 「와이스」씨의 생활신조는 「인간의 가치는 그가 남을 얼마나 도와주었느냐에 다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간혹 이곳에 위문단이 온다. 대학생 그룹, 교회청년 등등. 이들은 지체부자유아들을 불로모아놓고 위문공연이란 걸 한다. 두서너시간을 잡아먹기도 한다. 흥이 나는 것은 위문단뿐이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은 슬금슬금 빠져나가버린다. 그제야 장애아들을 위한 위문공연이 아니라 자기도취를 위한 자위공연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멀쓱해지기도 한다.
  
  장애자의 해라고 언론기관마다 성금이 많이 들어온다. 어느 곳을 도와야 하는지 몰라서 언론기관에 맡긴다는 고마운 독지가들도 많다. 그러나 어느 불구 시설에 가져다주라고 지명을 하명 성금을 맡기는 수도 적지 않다. 바로 갖다주면 번거롭지 않을텐데 굳이 이런 우회전달을 쓰는 데는 자선사실을 신문에 내달라는 뜻도 들어 있다. 특히 지난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이런 일들이 잦았다.
  
  신애원을 매주 한번씩 찾는 외국인이 또 한사람 있다. 카나다인 「노르만 소브카」여사. 40대의 여자로 물리치료사다. 그의 남편은 慶北 月城郡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의 고위기술자다. 「소브카」여사는 일부러 月城에서 차를 몰고 내려와 3시간씩 물리치료봉사를 해주고 돌아간다. 그녀의 치료방법은 미모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스파르타식이다. 부모가 밥을 늘 떠먹여주던 뇌성마비아 李모군(14)에겐 그것을 중단시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먹게 했다. 1년만에 李군은 제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숟가락질이 슬로우 비데오 장면처럼 느리고 40~50분이 걸린다 해도 그것은 李군에겐 난생 처음의 자립행위였다.
  
  「소브카」여사의 남편도 종종 이곳을 찾는다. 피아노를 잘치는 그는 노래를 가르쳐준다. 노래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장애아들이 스스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끔 이끌어준다.
  「물고기를 던져주면 하루 배고픔을 덜어주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배고픔을 덜어준다」
  「소브카」여사의 이 말은 명절때만 되면 불우시설에 쏟아지는 「먹을 것」선물의 홍수와 감상적인 불우이웃돕기에 대한 꼬집음 같이 들리기도 한다.
  
  한 정박아시설원장은 「사탕발림식의 자선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아무 보탬이 되지 않지만 원아들을 위해선 그런 것도 고맙게 받아야 할 입장」이라고 말한다. 그런 자선도 안하는 사람보다는 낫다는 얘기다.
  
   지구 끝까지 걸어라
  
  정박자를 포함한 전국심신장애자들 가운데 보호시설과 재활 및 교육시설에 수용되거나 교육받고 있는 사람들은 약 1.2%인 약 1만3천4백명. 이들중 4천2백여명은 고아들이다. 교육 및 재활시설로는 장애고아수용시설에 설치된 특수학교, 일반학교 안에 몇 학급씩 들어 있는 장애아 특수학급, 장애아들만 가르치는 장애아전문학교, 기타 직업훈련원 및 재활원 등으로 나눠진다. 장애고아들을 제외하고 일반가정의 장애자들이 이런 시설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 1.2%에 속하는 이들 선택된 장애아들은 「우리도 사회의 보살핌을 받으면 떳떳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고 있다.
  
  「선생님, 발사 1초전」
  뇌성마비장애아 丁군(12)의 신호다. 수업시간중 소변이 마려울 때 이렇게 외친다. 정박아학교인 釜山 惠星學校 3학년생. 지능지수 68에다가 허벅지에서 발가락까지는 활처럼 휘어 굳어져 있다.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땐 엎드러 기어서만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늘 소변기를 옆에 두고 공부했다. 3학년에 들어서부턴 「발사 1초전!」을 외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소변을 한다는 행위에 대해 비로소 부끄럼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자각은 변소로 가겠다는 의지로 바뀌었다. 담임교사 鄭영자씨와의 데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화장실에 가겠다는 마임이 고마워」鄭교사는 丁군을 꼭 변소까지 손잡고 데려다 준다.
  
  丁군은 축구시합엔 늘 문지기다. 어느 날 축구시합이 끝나자 동료정박아들이 정군을 잊고 먼저 들어와 버렸다. 鄭교사가 丁군의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놀라서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丁군은 운동장을 헤엄치듯 포복해오고 있었다. 먼지 땀투성이가 된 채 「날 두고 간 배신자들!」이라고 저주를 하고 있었다. 이 저주는 혼자서 걸어야겠다는 집념으로 바뀌었다.
  
  丁군은 그 뒤 한시도 쉬지 않고 온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핀잔을 주면 「선생님이 사람은 움직여야 산다고 하더러」고 대꾸한다. 丁군이 제힘으로 일어서려다가 책상을 안고 모로 넘어지면 교사보다도 친구들이 먼저 그를 부축해준다.
  
  丁군이 복도를 처음 혼자 걷던 날은 이 학교의 경사였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곡예사가 줄타듯 걸었다.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쑥 빼고 두손으로는 하늘을 운전하며 약 15m를 걷는데 성공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趙오련 선수의 대한해협횡단보다도 더 뜨겁게 丁군의 걸음마를 축하해 주었다.
  
  丁군의 집에선 학교가 있는 南區 大淵洞 산 옆으로 이사를 왔고 그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와 아들과 생활을 같이 했다. 丁군은 걸을 수는 있어도 마음 먹은대로 정지는 할 수 없다. 넘어지지 않으면 정지할 수 없는 것이다. 정교사의 말대로 「넘어지지 않으려면 지구 끝까지」걸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장애자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여 극기, 노력하고 사회의 편견과 싸우지 않으면, 즉 걷지 않으면 넘어져버리는 장애자들의 운명이다.
  
  惠星학교 정박아 R양(11)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단 1초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몸이 불편한 급우들속에서 야생마처럼 뛰어다닌다. 내 것, 네 것 구별이 없다 갖고 싶은 것은 곧 내 것이다. 급우들을 쫓아버리고 학습물과 책걸상까지 차지해 버린다.
  
  담임교사는 R양 때문에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가정에 연락을 했다. 어머니는 안 나타나고 아이 업은 가정부가 왔다. 학습저해요인이 덧붙여진 것이다. 가정부와 R양은 숨바꾹질을 한다. R양은 가정부를 우습게 보며 계속 난장판을 벌였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불렀다. 교실에서 어머니와 또 술레잡기가 벌어졌다. 날뛰는 R양을 붙들어 교실 뒷구석으로 끌고간 어머니는 「같이 죽자」고 R양의 팔목을 꽉 물었다.
  
  어머니도 실격되어 물러나고 이번엔 R양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교실 뒤에서 딱 버티고 서서 R양의 학습을 지켜보자 R양은 그제야 겁을 먹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번엔 측은하여 교사가 말을 걸면 「아부지 무섭다」고 우는 소리만 했다. 부모는 R양을 정신신경과에 데리고 갔다. 「이런 아이는 기운을 확 빼버려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지어준 약을 먹였다. 정말 축 늘어져버렸다.
  
  정신이 좀 깨어나니 「엄마, 학교가자!」고 졸랐다. 온갖 난리법석을 일으키면서도 R양은 그새 학교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 가능성을 믿고 교사가 열심히 교육한 덕분으로 R양은 이제 「선생님 우리 집에 놀라 온나」라고 할만큼 고마움이란걸 알게 됐다.
  
   情에 감사하는 아이들
  
  「이런 감동은 평생 처음입니다. 교육계에 35년 있었습니다만 비로소 인간을 만든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하루하루 달라지고 잇습니다. 워낙 정에 메말라 있어서 그런지 정을 쏟아 붓는 만큼 그 효과가 정직하게 나타나는군요」
  
  釜山鎭區 草邑洞 草邑국민학교 황칠조(黃七助)교사의 말이다. 그는 일반교사들이 가기 싫어하는 신애원내 특수학교로 자원했다. 30명의 정박아와 지체부자유아들을 두 학급으로 나눠 가르치고 있다. 이들을 가르치다보니 자신도 깨우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첫시간에 그를 맞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성한 아이들과 다르다. 당기에 힘이 있는 눈동자다. 인정 대화 지식에 대한 갈망이 서린 순진무구한 눈총을 받으면 절로 의욕이 솟구친다는 것이다.
  
  「숙제 검사합시다」고 소리치는 아이들. 칭찬을 듣고 싶은 것이다. 주의를 주면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깍듯이 사과한다. 교사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는 안간힘 같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라 하면 무덤을 많이 그린다는 장애아들이지만 화분을 가꾸는 데는 보통 열심히 아니다.
  
  4시간 수업이 끝나는 마지막 시간엔 늘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얼씨구나 좋다고 가방을 챙기는 성한 아이들과 는 딴판이다. 불구로 태어난 아픔에다가 부모로부터 버림까지 받은 2중의 상처를 하루하루 조금씩 아물게 하며 감사할 줄 알고 의욕을 가질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보람을 느낄 때마다 자원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黃교사다.
  
  일반인들은 장애아들의 성격이 삐딱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많이 갖고 있다.
  서울 三育재활원의 상담원 李淸子씨의 조사는 이런 편견에 반증이 되고 있다. 장애고아 1백명을 상담한 결과 80%가 부모 있는 고아였다. 이들은 자기들을 버린 부모를 크게 원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부모를 「미워한다」는 아이가 10%에 불과하고 장애아로 태어난 것이 부모탓이라고 저주하는 아이는 4%에 지나지 않았다. 「나를 버렸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무척 괴로워 하며 죽고 싶어 할 것이다」라고 오히려 부모들을 동정하는 장애아들이 많았다.
  
  형제들이 자기를 사랑했었다고 회상하면서 「내가 엄마 아빠에게 큰 짐이 됐을 것이다」라고 오히려 「부모의 유기행위」를 이해하려고 드는 것을 보면 세상과 격리되고 혈육과 떨어지고 및과 소리조차 거부당한 이들 「침묵의 장애아」들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때묻지 않은 백지같은 맑은 양심의 밭(心田)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쏟아 붓는 온정엔 정직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출처 : 신동아
[ 2003-07-04, 16: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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