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기자, 20년만의 金賢姬 인터뷰 3시간
“나는 분해서 못 죽는다. 살아 있는 사람도 가짜로 만드는 판에. 살아남아서 복수해야 한다고 다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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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金賢姬와 만난 趙甲濟 기자
오늘 나온 월간조선 2월호는 조갑제 기자가 '20년만에 다시 한, 金賢姬 인터뷰 3시간' 기사를 실었다. '좌파정권하 국정원-방송-홍위병 세력의 융단폭격을 맞고도 버티어낸 이야기'를 다룬 이 기사에서 김현희씨는 이런 말들을 했다.
  
  “(내가 음독 쇼를 했다니)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 하더군요.”
   '(의혹제기 신부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나는 분해서 못 죽는다. 살아 있는 사람도 가짜로 만드는 판에. 살아남아서 복수해야 한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공식사과와 책임자 문책 때까지 국정원과 싸울 것”
  “북한도 이렇게 꼼수를 쓰지 않는다.”
  “국정원이 나를 MBC에 출연시켜 바보 만들려 했다.”
  “국정원 간부로부터 이민 권유 있었다.”
  
  “요코다 메구미가 친구 김숙희를 가르쳤다.”
  “이은혜가 죽었다는 말 믿을 수 없다.”
  “북한에서 공작원 가르친 일본인은 열명 넘을 것”
  “책 쓴 수입금 8억5000만원은 유족회에 기증”
  
  “이제는 정권도 바뀌었으니, 안보를 책임진 중추기관이 亡國(망국)행위를 한 것은 그냥 지나갈 수 없지 않습니까? (국정원이) 사과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지, 그래야 대한민국이 제대로 선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로 바뀌니 이젠 제대로 세워야죠. (舊국정원은) 국가기관도 아닙니다. 무슨 깡패 집단도 아니고(흥분), 북한도 일을 할 때 명분을 주지 이렇게 비열하게 꼼수를 쓰지 않습니다.”
  
  김현희씨는 “밤을 새워가면서 KAL기 수사를 했던 이들이 나를 가짜로 만드는 데 동참하고,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도 이렇게 등에 비수를 꽂다니, 이를 갈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정말 나라를 위하여 (국정원과) 싸우고 있습니다.”
  
  ********************************************
  *본문의 일부
  
  
  趙甲濟(月刊朝鮮 편집위원 겸 조갑제닷컴 대표)
  
  
   “안녕하세요. 알아보시겠습니까?”
  
   세미나장에서 나오는데 金賢姬(김현희)씨의 남편 鄭(정)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안내하여 1층으로 내려왔다.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한 여인에게 다가가선 뭐라고 말을 했다. 여인이 등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알아보시겠습니까?”
   金賢姬씨였다. 나는 멈칫 했다. 15년 전 마지막 보았던 모습을 떠올려, 지금 내 앞에 있는 중년 부인의 얼굴과 오버랩 시키는 데 1초쯤 걸렸다.
   “몰라보겠는데요.”
   살색 점퍼를 입었고, 얼굴이나 몸이 야위어 보였다. 고른 치아를 드러내는 앳된 웃음은 여전하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오고 갔으나 아무도 金씨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남편이 모는 자동차가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지 따져보았다.
   1989년 봄 안기부의 서울시내 安家에서 만나 나흘 동안 김현희씨를 인터뷰한 것이 처음이었다. 세계최초의 인터뷰였다. 그 내용은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마지막은 金日成이 죽은 1994년 7월 직후였다.
   우리 세 사람은 손님이 적은 日食堂의 별실로 갔다. 북한에서는 그를 일본인으로 만들어 對日공작에 써먹기 위하여 교육했으나 그는 아직도 일본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삿포로 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물어보았다.
   “일본 맥주 이름을 다 알지요?”
   “이은혜한테서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다 잊었어요. 일본말을 안 쓴지 오래 되었는데, 몇 달 전 일본인과 말을 하려고 하니 말문이 안 열렸습니다.”
   김현희씨는 “요사이 어머니가 꿈에 나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생존해 있다면 76세이다. 아버지는 79세이고.
   “장례식 장면, 소복 입은 어머니가 가끔 보이는데,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金元錫씨는 1930년 출생으로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와 외교관이 되었다. 어머니 임명식씨는 개성만월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결혼하였다. 임씨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습관적으로 나올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김현희씨는 朴世直 안기부장의 인도로 여의도 침례교회에 나가 세례를 받았다. 요사이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성경을 읽는다고 한다.
  
   “세계에 이름을 떨칠 아이”라는 예언
  
   큰 딸인 김현희는 어릴 때 사주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세계에 이름을 떨칠 아이다”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이런 식으로 이름을 떨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라고 푸념한 적도 있다.
   “아버지는 6·25 때 군인이 되어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오셨다고 해요.”
   김현희씨는 태어난 다음해인 1963년에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해가는 아버지를 따라가 1967년까지 살았다. 안기부는 김현희씨의 진술에 근거하여 당시 쿠바주재 외교관 명부를 입수, 김원석씨의 이름을 확인한 바 있다.
   “하바나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얼음과자를 엘라데로라고 하는데 그것을 사 먹던 추억, 어머니 심부름을 하다가 마호병을 깨뜨린 일, 아버지를 두고 우리가 귀국할 때 고생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김현희씨는 “쿠바는 독재를 해도 김일성-김정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새삼 말하였다.
   “북한은 邪敎집단이지요. 사이비 종교이지 독재도 아니에요.”
   김씨는 안기부에서 범행을 자백한 뒤에도 김일성 이름에서 ‘주석님’이란 존칭을 떼는 데 몇 달 걸렸다. 20년 전 김현희씨는 나를 만났을 때 명언을 남겼다.
   -그때 김현희씨는 이런 말을 했어요. “북한에선 히즈 스토리(His Story)를 가르치는데 남한에 와 보니 히스토리(History)를 가르친다”고요. 혹시 이 말을 어느 책에서 읽고 한 겁니까?
   “그건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날 식사중에도 김현희씨는 고장난 보일러 걱정을 자주 하였다. 생활인으로 변한 김씨를 아직도 ‘미녀 테러리스트’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를 만나면 “이걸 꼭 물어봐달라”고 부탁하는 일본인들이 있다. 납치자 구출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이다. (월간조선 2월호에서 全文을 보세요).
[ 2009-01-17, 17: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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