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세월호 때 해경에 얼마나 잔인한 보도를 하였는지 이제야 알겠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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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헝가리 당국이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의 현장 수색을 위해 사고지점에 수중 드론(무인탐지기)을 투입하려 했지만 유속이 너무 빨라 실패했다고 한다. 양국 수색팀은 강의 수위가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3일 오전 중 수중 수색 여부를 다시 판단하기로 하고, 당장은 수상 수색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부 합동신속대응팀의 현장 지휘관인 송순근 육군대령(駐헝가리대사관)은 1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오스트리아와 체코, 노르웨이에서 소나(수중음향표정장치)와 수중 드론을 가져왔는데, 수중 드론은 유속이 너무 빨라서 투입에 실패했다"고 했다.
  
  송 대령은 또 세월호 침몰 현장인 진도 맹골수도와 다뉴브강 사고현장을 비교하면서 "맹골수도보다 이곳 유속이 더 빠르다"며 "(세월호) 당시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월호 당시 투입됐던 군·경 요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서해는 밀물과 썰물이 있어 (썰물 때) 물이 빠져나가면 유속이나 수위가 낮아지는데 이곳은 강이라서 유속과 수위가 일정하다고 한다"며 "바다는 더 투명한 데 비해 이곳은 수심은 더 낮지만 비가 많이 내려서 (흙탕물 때문에) 시계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사고 때 배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170여 명을 구출한 해경 등의 노력을 매도하였던 언론은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고 수습이 더딘 이유를 세월호 때에 비교하여 상당히 너그럽게 보도하고 있다. 바다나 강이 육지와 다르고 수심과 유속의 제약 속에서 구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면 세월호 때 얼마나 잔인한 보도로 해경을 짓이겼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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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10월,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있었던 낚싯배 충돌 전복 사고로 13명이 죽고 실종되었다(7명 생존). 해경 구조선이 도착한 것은 사고 37분 뒤였다. 세월호의 경우 42분만에 구조선이 도착하였다.
  
   이번은 현장까지 거리가 2km, 세월호는 19km였다. 수중 구조 요원이 도착한 시각은 이번이 사고 72분 뒤, 세월호의 경우는 160분 뒤였다.
  
   세월호는 더욱 악조건을 갖고 있었는데 선장과 선원들이 피신하여 船內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김경일 정장이 지휘하는 소형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9시30분, 절벽처럼 기울어가는 세월호에 접근, 구조용 短艇(단정)을 내려 세월호 船側(선측)에 붙여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9시38분, 시시각각 기울어가는 船體(선체)를 올려다보면서 自力(자력)으로 船室(선실) 바깥으로 나온 승객들을 집중적으로 구조하던 중 배가 전복된 것은 10시17분이었다.
  
   즉 事後的으로 계산하여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시간은 9시38분부터 10시17분까지의 39분이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시간이고 현장 상황은 더욱 급박하였을 것이다. 당시 거대한 船體가 모로 돌면서 넘어가는(엎어지는) 모습을 海面(해면)에서 위로 쳐다보면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던 해경은 배가 언제 엎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경비정과 구조 헬기, 그리고 해경의 연락을 받고 몰려온 어선들이 172명을 구조한 것은 "영웅적 행동"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인데 재판부는 정장에게 초인적 능력을 주문하였고, 못 미친 부분을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아 징역 3년형을 선고했었다.
  
   청와대의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간은 어제가 사고 후 56분, 세월호가 72분 뒤였다. 대통령에게 보고된 시간이 빠르다고 살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닌 점에선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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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2014년 5월25일 세월호가 침몰할 때 맨 먼저 현장에 도착, 많은 승선자들을 구했던 해경 123艇(정) 김경일 정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그날 출동상황을 설명해주시오?
  “4월16일 오전 8시57분에서 58분 사이에 목포해경 상황실장으로부터 긴급 구조명령을 받았습니다. 수백 명이 탄 배가 전복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임무를 띠고,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13.7 海里(해리) 떨어져 있었는데 즉시 엔진을 全速(전속)으로 돌리면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9시30분에 세월호에서 1해리 떨어진 해상에 도착, 35분에 短艇(단정: 고무보트)을 내리고, 37분에 船尾(선미) 쪽으로 출동시켰습니다. 그러는 사이 배의 확성기로 ‘퇴선하라’는 방송을 8~10회 했습니다. 123정을 船尾 쪽에 매어두려 했지만 넘어가는 배를 따라 같이 딸려갈 것 같아 船首(선수) 쪽으로 가서 배를 접안시켰습니다. 9시45분부터 사람들이 툭 툭 바다로 뛰어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70도 이상 기울고 있었습니다. 船內(선내) 진입도 시도하였습니다. 이00 경사였습니다.”
  
  海警(해경)자료와 김경일 정장의 증언을 종합하면 李00 경사의 행적은 이렇다.
  <9시43분경 좌현 선미로부터 3분의 1 지점 舷側(현측)에 올랐으나 선실 쪽으로 진입하는 입구가 가까이 없고, 내부 구조물까지의 거리는 3m 이상인데 경사가 60도 이상이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구명벌을 (발로 차서) 두 개를 바다로 던졌다. 9시48분경, 123정이 船首(선수)에 접안하였을 때 승객들이 조타실로부터 호스를 이용, 탈출하였다. 이들은 나중에 선원들로 밝혀졌다. 李 경사는 123정의 홋줄을 이용, 조타실로 진입, 퇴선방송을 하려고 하였으나 경사가 너무 심해 미끄러져 내렸다.>
  
  김경일 艇長(정장)은 “이 경사가 던진 구명벌 중 하나만 터졌다”면서 “이 경사가 船內(선내)로 들어가려고 해도 통로의 너비가 3m를 넘고(잡을 데가 없었다는 뜻) 절벽처럼 기울어 있어 들어갈 수 없다는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김 정장은 “9시50분 세월호가 너무 기울어 123정을 빼기 직전에도 박00 경장을 시켜 조타실에 한번 더 올라가라고 했는데, 로프를 잡고 조타실의 입구 쪽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선체는 80도까지 기울었고 조타실의 경사가 심해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려왔다”고 했다. 해경 자료는 <朴 경장은, 123정이 세월호 선수의 컨테이너 등의 충격 위험으로 이탈하자 승객 1인과 함께 바다로 뛰어내려 123정의 고무보트에 구조되었다>고 썼다. 金 정장은 기울기가 60도가 넘은 상태에서 선실과 조타실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自力(자력)으로 탈출하는 사람을 구조선에 끌어올리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船內에 올라가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대는 고작 20~30분 정도였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의 구조는 실패하였다고 단정한 데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잘못이 없습니다. 특수 장비가 없는 100t짜리 경비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였습니다. 특공대원을 태운 큰 배가 왔으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만, 60도가 넘었고 계속 기우는 배 속으로 들어가서 구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바다로 뛰어들거나 船室 바깥으로 나온 이들을 중심으로 구조한 것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세월호로 달려오면서 승객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표류하고 있거나 구명재킷을 입고 퇴선 대기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조용해서 당황했습니다. 배가 전복하기 직전에 船尾(선미)를 통해서 많이 탈출했습니다.”
  
  그는 조타실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구했다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하여 “시간에 쫓기면서 이리저리 뛰고 있는데 구출된 이들에 대하여 일일이 신원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 자신의 말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데 불만이 많았다. 해경이 172명 중 80여 명만 구했다고 비판하는 데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선미 쪽에서 123정 소속 고무보트가 탈출자들을 구해서 어선 등에 옮겨 태운 숫자를 더하면 실제로는 110명 이상을 우리 해경이 구했습니다.”
  
  김 경장은 동영상에 나오는,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 선실 안에서 창을 깨려고 의자 같은 것으로 치는 장면은 현장에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23정 구조원들이 세월호의 顚覆(전복) 직전에 선실 窓(창)을 깨고 여섯 명을 살린 이야기도 했다.
  “누군가가 조타실 밑에 사람이 있다 그래 가지고 저희들이 다시 이 망치하고 손도끼를 가지고 들어가서 조타실 아래 3층인가, 4층인가의 선실 창을 깨고 여섯 명을 끌어냈는데 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몇 명은 구조선으로 옮겼지만 몇 명은 바다로 뛰어들게 하여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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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專門家는 없고 '얼치기'만 많았다>는 조선일보
  
   지난 4월 말 조선일보는 1면 머리 기사로 해경을 비판했는데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다. 기사 제목은, <세월호 침몰 순간에도… 초기 구조작업도… 사후 수습 과정도… 현장에 專門家는 없고 '얼치기'만 많았다. 災難(재난) 전문가 아닌 펜대 굴리던 관료가 事故대책 총괄>이다.
   이 기사의 副題(부제)는, <① 초기 구조 海警 - 배 밖 선원 구조에만 집중… 갑판으로 승객 대피 유도 못해 ② 사고 수습 정부 - 시종일관 쩔쩔매다가 가족별 전담 공무원 11일 만에야 배치 ③ 침몰 당시 선원 - 처음 탄 항해사가 교신… "위기 상황땐 반드시 선장이 했어야">이다.
   뽑음말도 비난 일색이었다.
   <구조 다급한 시점에 인양 크레인부터 불러 무용지물
   "식당칸에 생존자" 주장에 밀려 초기 골든타임 놓쳐
   27인승 소방헬기, 해경과 交信안돼 현장 맴돌다 철수>
  
   너무나 감정적이고 단정적인 다음 문장이 이 기사의 시작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선원들의 승객 대피 유도, 해경의 초기 구조 작업은 물론 실종자 가족 지원 등 사고 수습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모든 것이 엉망'인데 어떻게 172명이 구조되고 대부분의 屍身(시신)이 수습되었나?
   이 기사는 <사고 당일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해경은 선내 승객들의 대피를 유도하거나 선내에 진입해 구조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오전 9시30분 해경은 배 밖으로 나와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만 구조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선내로 들어가거나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나오라고 알려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고 질타하였다.
  
   조선일보는, 달아난 선장이 해야 할 일을 해경에 돌렸을 뿐 아니라 해경 헬기 구조대와 123정 구조대가 船內로 진입하였고, 조타실에 올랐다가 미끄러졌던 사실도 묵살한 사실 왜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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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艇長에게 징역 3년
  
   광주지방법원 형사 11부(부장판사 임정엽)는 2015년 2월11일 세월호 사고 때 현장에 맨 먼저 도착, 구조활동을 지휘, 승객 172명을 살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해경 123 경비정의 김경일 정장(57세)에게 업무상과실치사 및 공문서허위작성 등의 죄를 적용, 징역 4년형을 선고, 법정 구속하였다(2심에선 징역3년, 대법원에서 확정).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점과 유리한 점을 동시에 고려, 刑量(형량)을 정하였다고 밝혔다. 먼저 불리한 量刑(양형)요소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피고인은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사고현장에 출동하였을 때 123정의 승조원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건져 올리도록 지시하였을 뿐 다수의 승객들이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이 세월호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하여, 적절한 퇴선유도조치가 실시되었을 경우 생존할 수 있었던 일부 승객들이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하여 사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고, 사망한 피해자의 가족들뿐 아니라 국민들이 해경의 구조 활동에 대하여 실망과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퇴선방송을 실시하였다는 허위내용의 인터뷰를 하여 피해자들의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남겼다. 피고인은 부하 직원들에게 구조 활동에 관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거나 사고 당일 함정일지의 기사 부분을 떼어내고 허위의 내용으로 다시 작성할 것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재판부는 金 경장에 유리한 量刑(양형)요소도 적었다.
  
   <피고인은 승조원이 12명에 불과한 소형 경비정의 함장이었는 바, 평소 피고인에게 부여된 임무와 실시된 훈련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세월호와 같은 대형 여객선 사고의 구조작업을 총괄하는 현장지휘관의 직책을 적절히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피고인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시점에 이미 세월호가 복원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전복되고 있었고,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의 퇴선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승객들을 유기한 채 세월호를 탈출하였기 때문에, 승객들이 船內(선내) 대기방송에 따라 대기하고 있는 사실을 몰랐던 피고인으로서는 짧은 시간 안에 승객들의 퇴선유도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조치를 이행해야만 했다.
   세월호의 전복 사고 및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에 관한 주된 책임은 회사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청해진해운 임직원들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승객들을 저버린 세월호의 선원들에게 있다. 비록 피고인에게 승객들의 퇴선유도를 위한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업무상과실이 인정되지만, 피고인의 잘못은 구조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발생한 것이므로 위와 같은 청해진해운의 임직원들과 세월호 선원들의 잘못에 비하여 무겁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은 34년 동안 해경으로 일하였으며, 이 사건 이전에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고, 처와 취업을 앞둔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양형요소와 피고인의 나이, 직업,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범행의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의 조건들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기준의 권고형량을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고 했다.
  
  
   슈퍼맨이 되지 못한 罪
  
   위의 선고문에서는 모순점이 발견된다. <피고인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시점에 이미 세월호가 복원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전복되고 있었고,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의 퇴선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승객들을 유기한 채 세월호를 탈출하였기 때문에, 승객들이 船內(선내) 대기방송에 따라 대기하고 있는 사실을 몰랐던 피고인>이라고 하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승객들의 퇴선유도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조치를 이행해야만 했다>고 적은 것이다.
  
   재판부가 설명한 그런 인식과 조치 이행에는 시간, 공간, 인원이 제약되어 있었다. 육지처럼 평평한 곳에서 무한대의 시간과 무한정의 인원이 주어졌는데도 적절한 조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김경일 정장이 지휘하는 소형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9시30분, 절벽처럼 기울어가는 세월호에 접근, 구조용 短艇(단정)을 내려 세월호 船側(선측)에 붙여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9시38분, 시시각각 기울어가는 船體(선체)를 올려다보면서 自力(자력)으로 船室(선실) 바깥으로 나온 승객들을 집중적으로 구조하던 중 배가 전복된 것은 10시17분이었다.
  
   즉 事後的으로 계산하여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시간은 9시38분부터 10시17분까지의 39분이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시간이고 현장 상황은 더욱 급박하였을 것이다. 당시 거대한 船體가 모로 돌면서 넘어가는(엎어지는) 모습을 海面(해면)에서 위로 쳐다보면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던 해경은 배가 언제 엎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경비정과 구조 헬기, 그리고 해경의 연락을 받고 몰려온 어선들이 172명을 구조한 것은 "영웅적 행동"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인데 재판부는 정장에게 초인적 능력을 주문하였고, 못 미친 부분을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아 징역 4년형을 선고, 법정구속까지 한 것이다.
  
   사고 당일 오전 9시46분경 선장 이준석 및 조타실 내 선원들은 세월호의 조타실 앞에 도착한 123정에 탑승하기 시작, 모두 탈출하였다. 이준석 선장은 김경일 정장에게 “내가 선장이다”고 밝힌 뒤 船內(선내) 정보를 전달,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도왔어야 했는데 신분을 감추었다. 金 정장으로선 선장이 해야 할 일, 즉 승객들의 안전 유도보다는 구조 지휘관으로 해야 할 일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이 부분에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경비정, 헬기, 어선들이 몰려와 40~50분 안에 172명을 살렸던 것이다. 재판부의 선고 내용은 金 정장이 처했던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무시하고, 김경일 정장이 평지에서 시간이 충분할 때나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나열한 뒤, 하지 않은 것을 추려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한 셈이다.
  
   완벽하게 좋은 조건에서 완벽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불완전한 상황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하지 않았다고 벌을 준다면 모든 인간은 법관 앞에서 슈퍼맨이 되지 않으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퇴선방송은 선장이 해야 하나, 정장이 해야 하나?
  
   재판부는 나름대로 검사의 공소사실을 검증,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는, 피고인이 사고현장 1마일 앞 해상에 도착한 오전 9시30분경에 세월호의 선체 밖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이 즉시 승객들에 대한 퇴선방송 등 퇴선유도 조치를 실시하였어야 했다고 주장하였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고인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때부터 09:44경까지 사이에 퇴선유도조치를 실시하지 아니한 것이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는 선체가 계속해서 기울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우라면 선장 및 선원들에 의하여 승객들에 대한 대피 및 퇴선지시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세월호의 선장 및 선원들은 진도VTS와 둘라에이스호 선장으로부터 승객들의 퇴선을 권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을 퇴선시키기 위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고, 안내데스크의 승무원은 승객들에 대하여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여러 차례 실시하였다. 피고인이 사고현장에 도착하였을 당시 세월호의 승객들이 선내방송에 따라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123정의 승조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하여, 사고현장으로 가는 동안 세월호의 승객들이 船體(선체) 밖으로 나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구명벌, 사다리 등을 준비하였으나 사고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하였다. 그들은 그 이후 사람들이 갑판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퇴선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123정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목포해경 511호 헬기의 기장 양회철도 증인으로 출석, 세월호가 40도 이상 기울어져 있음에도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이후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船內(선내)에서 퇴선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법원은 <피고인을 비롯한 구조요원들은 사고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선내방송에 따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하였다. 피고인이 지휘하였던 123정의 평소 주된 임무는 불법어업 단속이었고, 구조임무는 해양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만 수행하는 것이었다. 세월호 사고는 해상 근무 경력이 길었던 피고인으로서도 접해보지 못한 대형 사고였다. 해양경찰청의 함정훈련교범 및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에도 구조세력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즉시 승객들에게 퇴선방송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내용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비롯한 123정의 승조원들은 이 사건과 같은 대형 여객선의 전복 사고에 대비한 훈련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피고인으로부터 현장의 상황을 보고받은 해경 상황실에서도 오전 9시57분 경까지 피고인에게 퇴선방송에 관한 지시를 한 적이 없었다>고 일단 김경일 정장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였다.
  
  
   재판부도 부인한 검찰의 무리한 기소 내용
  
   검사는 <피고인이 09:46경 세월호의 조타실 근처에 123정을 접안시켰을 때 세월호의 승무원들 또는 123정 승조원들로 하여금 세월호의 조타실에 있는 방송장비를 이용한 퇴선방송을 실시하도록 지휘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면서 범죄사실로 적시하였다. 법원은 이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모두 조타실을 빠져 나온 후 123정의 승조원 박상욱이 조타실 내부까지 올라간 사실이 있으나, 박상욱은 123정의 홋줄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피고인이 박상욱에게 조타실에 올라가 선내방송을 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 선체의 기울기가 60도를 넘어섰고, 처음 승선하는 배의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박상욱이 방송장비를 찾아 그곳까지 올라간 후 방송장비를 정확하게 조작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세월호의 2등 항해사 김영호도 09:00경 조타실에서 선내방송을 시도하였으나 비상버튼을 누르지 않아 방송이 되지 않았었고, 선내전화 0번을 이용하여 방송이 가능하다는 점은 세월호의 승무원들조차도 잘 알지 못하였다.>
  
   검찰이 얼마나 무리하게 김경일 정장을 옭아매려 하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검사는 현장지휘관인 피고인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이후에 무전으로, 구조작업을 하던 헬기의 인명 구조사를 지휘하여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를 실시했어야 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부분도 무죄로 판단하였다.
  
   <09:45경 512호 헬기가 사고현장에 추가로 도착하였으나, 위 헬기에 타고 있었던 인명 구조사는 바다에 빠져있는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헬기에 탑재된 구명뗏목을 터트린 후 바다에 뛰어내린 점, ② 511호 헬기와 513호 헬기의 인명 구조사들은 123정이 사고현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세월호로 내려갔고, 사고현장에 출동한 인명 구조사들은 무전기 등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헬기 조종사와 연락을 할 수 없었던 점, ③ 피고인으로서는 헬기의 구조상황이나 인명구조사의 역할 등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헬기에 대한 구조지휘 경험도 없었던 점, ④ 자신의 부하인 123정의 승조원들을 통한 퇴선유도 조치가 가능한 상황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09:44경 이후에 헬기조종사 또는 인명 구조사에게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를 할 것을 지시하지 않은 행위가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검사는 <피고인이 09:51경, 09:57경, 09:58경에 TRS를 통해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실 등으로부터 세월호에 승선하거나 마이크 또는 육성을 통해 승객들을 안정시키고 퇴선을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았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면서 업무상과실죄를 적용하여 하였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선실 대부분이 물에 잠겨 그런 조치를 취하였다고 해도 실효가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① 피고인이 09:51경 받았던 지시는 직원들이 세월호에 올라가 승객들을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라는 것인데, 승객들 대부분이 탑승하고 있던 세월호 4층 갑판은 09:50경 이미 물에 잠겼기 때문에 그러한 지시를 이행하기 어려웠던 점, ② 09:57경 이후에는 세월호의 4층과 5층의 출입문이 모두 물에 잠겼고 세월호의 객실 유리창의 구조상 밖에서 마이크나 육성으로 대피지시를 한다고 하여 승객들이 객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 의문인 점, ③ 피고인이 위와 같은 지시를 받을 당시 123정은 구조된 승객들을 다른 해경정에 옮겨 태우고 있었고, 이후 123정의 승조원들은 세월호의 선수에 접안하여 유리창을 깨고 안에 있던 승객들을 구조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위와 같은 지시를 이행하지 아니한 것이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
  
  
   재판부가 원하는 방법대로 했더라면?
  
   위의 법원 판단들을 보면 업무상과실치사 부분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재판부는 아래 부분을 有罪 사유로 판단하였다.
  
   <구조활동에 관한 피고인의 업무상과실은 피고인이 세월호의 승객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던 09:44경 이후 123정의 승조원들에게 세월호에 접근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거나 세월호 선체에 올라가 출입문 근처에서 승객들의 퇴선을 유도할 것을 지휘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세월호 승무원들로부터 선내방송이 곤란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면 123정의 승조원들에게 빠른 속도로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조타실에 진입하도록 지시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다른 구조방법을 선택하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의 상황과 구조요원들의 안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피고인으로서는 좌현 갑판이 침수되기 전에 여객 구역의 출입구에 최대한 접근하여 퇴선방송을 하고 승객들의 퇴선이 가능한 출입구를 찾아 승조원으로 하여금 퇴선유도를 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아닌 인간이, 제한된 인원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그런 이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가이다. 재판부 역시 거대한 선체가 급경사를 만들면서 전복되는 현장 상황을 육지의 사고 정도로 생각하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문을 하고 있다. 제한된 구조인력으로서는 自力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구조하기도 급한데,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노력(출입구에 접근, 퇴선 유도 등)에 시간과 인원을 배당하였다가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결과를 빚었을 가능성이 있다(그러한 경우엔 왜 쓸 데 없는 일을 하다가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었는가로 추궁을 당하지 않았을까. 재판부가 원하는 그런 구조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부 승객"이란 新개념
  
   재판부는 오전 9시44분 이후에는 김경일 정장이 방송장비를 이용하여 승객들의 退船(퇴선)을 유도하였어야 했다고 판단한다. 9시44분이란 시간이 중요하다. 123정의 고무 短艇(단정)은 9시38분경부터 세월호와 123정 사이를 오가며 기관부 선원들과 승객들을 구조하였고, 피고인도 9시44분경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현재 못 나오고 있답니다. 일단 이곳 직원 한 명을 배에 승선시켜 가지고 안전 유도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이를 근거로 하여 재판부는 9시44분 이후에 김경일 정장이 퇴선 방송을 하지 않은 부분을 업무상과실로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피고인은 당시 123정의 방송장비를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였다고 하더라도 출동한 헬기소리와 세월호의 구조 등에 비추어 볼 때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에게 퇴선방송의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현 4층 갑판에서 다른 승객들을 구조하던 김동수, 김성묵의 법정진술, 김○연, 김○희의 각 진술서의 기재, 전남201호에서 촬영한 동영상의 음성 및 영상에 의하면, ① 헬기가 떠 있는 상황에서도 우현 4층 갑판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사람들과 선체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사실, ② 전남201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헬기가 상공에 떠 있는 상황에서 서로 대화를 했던 사실, ③ 사고 이후에 세월호의 3층 좌현 출입문이 열려 있었고, 그 주변에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123정이 세월호의 선체에 접근하여 대공마이크 등을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였다면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일부 승객들이 퇴선방송을 들을 수 있었고, 123정의 퇴선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핸드폰이나 육성으로 선내에 있던 다른 승객들에게 퇴선을 하면 구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파할 수 있었던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09:44경 이후에 123정의 장비를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업무상과실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위의 설명은 아래와 같은 재판부의 판단과 자체적으로 모순된다.
  
   <승객들 대부분이 탑승하고 있던 세월호 4층 갑판은 09:50경 이미 물에 잠겼고 09:57경 이후에는 세월호의 4층과 5층의 출입문이 모두 물에 잠겼고 세월호의 객실 유리창의 구조상 밖에서 마이크나 육성으로 대피 지시를 한다고 하여 승객들이 객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재판부는 <퇴선방송을 실시하였다면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일부 승객들이 퇴선방송을 들을 수 있었고>라고 하여 "일부 승객"이란 개념을 도입하였다. 재판부의 판단에 의하더라도 123정의 퇴선방송을 들은 일부 승객들은 핸드폰이나 육성으로 선내에 있던 다른 승객들에게 "퇴선을 하면 구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절벽처럼 되어버린 선실을 빠져나오는 사투를 했어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전파하고, 행동하는 데 걸린 시간을 계산해 봐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세월호는 10시17분 이후엔 전복, 침몰하여 구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60~90도로 기울어가는 船體를 올라갈 수 있나?
  
   재판부는 또 김경일 정장이 절벽에서 천장으로 변해가는 세월호에 해경을 보내 퇴선 유도를 하지 않은 것도 유죄로 판단하였다.
  
   <09:44경 세월호의 경사가 60도 이상이었고, 바다에 빠진 승객들을 구조하는 데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123정의 승조원들에게 직접 세월호에 승선하여 퇴선을 유도하도록 지시할 수 없었다>는 김경일 정장의 주장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123정의 승조원들이 세월호의 갑판에서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고, 당시 상황에서 그러한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였으므로, 피고인이 이를 123정의 승조원들에게 지시하지 않은 행위는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123정의 승조원 이형래는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09:43경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세월호의 갑판에 올라갔고, 피고인도 09:44경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승조원을 세월호에 승선시켜 퇴선을 유도하겠다는 보고를 하였다. 피고인은 그 후 이형래 또는 다른 승조원들에게 세월호의 갑판에 올라갈 것을 지시하지 아니하였고 09:46경 조타실에 접안하여 세월호의 선원들을 123정에 옮겨 태웠다. 많은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피고인으로서는 조타실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 이외에 더 많은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는 조치를 선택해야 했고, 세월호 갑판 및 출입구 근처에서 실시할 수 있는 퇴선유도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조타실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과 동시에 실시할 수 있었다. 123정의 승조원 이형래가 세월호의 3층 로비로 통하는 출입문 근처를 지나갈 당시 출입문이 열려 있었고 그 근처에는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123정의 승조원이 출입문 근처에서 퇴선지시를 하였을 경우 출입문 근처에 있던 승객들이 123정이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승객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전파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은 9시 경부터 몸을 가눌 수가 없어 퇴선방송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해경 경비정이 도착한 9시30분 이후엔 기울기가 더욱 심해져 해경 요원들이 선실로 기어올라간들 구조 지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재판부는 김경일 경장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벌을 준 것이다. 판사들이 60~90도로 경사된 선체를 인간이 올라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실험해보고 선고했는지 궁금하다.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들"
  
   결국 <9시44분 이후 123정의 장비를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지 않은 것>과 <123정의 승조원들이 세월호의 갑판에서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를 하지 않은 것>이 김경일 정장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하도록 만든 주된 이유가 되었다. 재판부는 김 정장의 그런 행위와 승객 사망의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들"이란 또 다른 新개념을 도입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123정의 방송장비로 세월호 밖에서 퇴선방송을 실시하거나 123정의 승조원을 통해 세월호의 갑판에서 퇴선유도 조치를 실시하였다면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들은 세월호 선체를 빠져나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피해자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들>에 주목해야 한다. 재판부는 김경일 정장의 업무상과실치사 죄에 의하여 이들이 죽게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재판부는,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에 기재된 피해자들은 세월호 탑승 당시 4층 후미에 있는 SP-1, 2, 3 선실에 객실을 배정받았고,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후 배정받은 객실에서 그 死體(사체)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모두 56명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김경일 정장의 적절한 조치가 있었으면 살 수 있는 생명이었다고 주장한다.
  
   <세월호의 4층 좌현 갑판은 09:50경 바닷물에 잠겼으나, SP-1, 2, 3 선실 내에는 캐비넷이 있어 승객들이 우현 방향의 출입구를 통해 복도로 나올 수 있었고, 복도에는 선미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었기 때문에 위 선실에 있던 승객들은 우현 방향의 경사를 올라갈 필요 없이 다른 객실에 있던 피해자들보다 쉽게 선미방향의 출입구로 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위 선실들에 있던 승객들 증 일부는 10:13경까지 위 선실을 나와 선미쪽 출입문을 통해 세월호에서 탈출하였다. 피고인이 09:44경 123정의 방송장비를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거나 123정의 승조원들을 통해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조치를 실시하였다면, 출입문 근처에 있던 승객 또는 승무원들이 퇴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한 사실을 짧은 시간 안에 위 선실에 있던 피해자들에게 전달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09:44경에는 피고인이 지휘하던 123정이 대기하고 있었고 09:50경 이후 어선들이 도착하여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사고 당시 수면이 잔잔하고 수온도 차지 않았기 때문에 위 선실의 승객들이 탈출하였을 경우 짧은 시간 안에 구조될 수 있었다.>
  
  
  세월호 선원이 했어야 할 일을 해경이 하지 않았다고 벌을 주나?
  
   재판부는 4층 후미에 있는 SP-1, 2, 3 선실에서 발견된 50여 명의 사체 주인공들은 김경일 정장의 적절한 조치에 의하여 살릴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를 읽어보면 김경일 정장에게 하느님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초인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판사는 뱃전에 붙어 있는 승객들을 구출하는 작업을 지휘하면서 상부에 무전 보고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정장에게 아래와 같은 조치를 20분 정도 안에 해치우도록 요구한다.
  
  
   1. 선장이 탈출, 선내의 지휘기능이 마비되었다는 상황 파악
  
   2. 세월호의 내부 구조도 모르고 승객 탑승 상황도 모르는 상황에서 <세월호의 4층 좌현 갑판은 09:50경 바닷물에 잠겼으나, SP-1, 2, 3 선실 내에는 캐비넷이 있어 승객들이 우현 방향의 출입구를 통해 복도로 나올 수 있고, 복도에는 선미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었기 때문에 위 선실에 있던 승객들은 우현 방향의 경사를 올라갈 필요 없이 다른 객실에 있던 피해자들보다 쉽게 선미방향의 출입구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어야 한다.
  
   3. 그런 다음, <123정의 방송장비를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거나 123정의 승조원들을 통해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 조치를 실시>하였어야 한다. 이 방송도 늦으면 안되고 9시44분 경에 했어야 한다.
  
   4. 이 모든 조치는 길어야 20분 안에 이뤄졌어야 했다.
  
  
  재판부는 세월호가 침몰하고, 시신 수습이 거의 끝나 내부 상황이 알려진 다음에, 全知全能(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입장에 서서,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 하는 인간 김경일 정장을 향하여 “이렇게 했어야지” 하고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감옥생활 4년을 선고, 환갑을 옥중에서 맞도록 판결한 것이다. 문제의 선고문엔 비밀이 하나 있다.
  
   <피고인이 09:44경 123정의 방송장비를 이용하여 퇴선방송을 실시하거나 123정의 승조원들을 통해 승객들에 대한 퇴선유도조치를 실시하였다면, 출입문 근처에 있던 승객 또는 승무원들이 퇴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한 사실을 짧은 시간 안에 위 선실에 있던 피해자들에게 전달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대목이다. 출입문 근처엔 승객뿐 아니라 세월호 승무원들도 있었다. 이 승무원들이야말로 선실 구조와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승객들이 탈출하도록 유도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럴 수 있는 정보와 의무를 가진 이들이다. 선원들이 해야 할 일을 선체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당시 구조에 분주하였던 해경이 대신했어야 한다니!
  그러지 않았으니 감옥에서 老年의 4년을 보내라니! 正義를 진실 위에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하면 진실은 수단이 되어 인간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
  
  
   正義 위에 세운 진실이란 이름의 지옥
  
   청와대 司正 부서에 근무하였던 한 변호사가 하던 말이 생각 난다.
   "검사는 기술자예요. 대통령이 누구를 잡아넣으라고 하면 부처라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자란 말입니다."
   해경의 일부 사람들은 김경일 정장이 중형을 선고 받게 된 것은 대통령이 수사 시작도 전에 해경의 구조를 실패라고 규정, 해경해체라는 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경의 구조가 실패라는 대통령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김경일 정장을 처벌해야 한다는 부담을 검찰이 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언론도 대통령과 함께 해경을 난타하니 검사와 판사도 마음 놓고 무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먼저 定義된 正義 위에 진실을 세우려고 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피가 흐르고 고민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인간은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기사나 공소장 속에서 하나의 기호로 존재하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 2019-06-02, 18: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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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국     2019-06-03 오전 10:21
세월호의 가장 큰 피해자는 김경일 정장이고 해경해체가 부당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해경 수뇌부는 해경을 지휘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지요. 대규모 재난이나 위기관리를 할 능력이 없는게 문제였습니다.
김경일 정장님은 그런 조직에 있었다는게 죄였고, 그야말로 해양 재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언론의 기레기들 뿐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속에서 살았다는게 죄지요.
죄를 판단한 판사.......옳고 그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문지식도 없는데 뭘 판단하는것인지......김경일 정장님 그대는 저런 엉터리 속에서 열심히 업무를 한 당신은 최고입니다.
거대한 선체가 침몰하는데 작은 배 가지고 접근하여 목숨걸고 인명을 구한 당신을 표창대신에 징역을 가도록 한 우리가 잘못이 많습니다. 해경 매뉴얼에 거대 선체가 침몰하는데 가까이 가서 구조하도록하는 매뉴얼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입니다. 작은 배는 침몰되거나 빨려들어갑니다. 그래서 침몰 선체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가르칩니다. 어느 한 곳이나 제대로 된 곳이 없으니...........
   나는자연인이다     2019-06-01 오후 11:08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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